할머니에게 명예와 인권을!

생존자 증언

윤두리 할머니

1942년(15세) 부산 삼화고무공장, 니시무라 피복공장에 취업

1943년(16세) 부산에서 일본군'위안부'로 연행, 부산 영도에 있는 제1위안소에서 일본군'위안부'생활

1945년(18세) 해방 후 위안소 인근 식당에서 일을 하며 여비 마련

1946년(19세) 집으로 돌아와 집안 식구들 부양

1954년(27세) 어머니 사망

나는 1928년 3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오빠는 중학교를 졸업했으나, 나머지 형제 자매들은 국민학교를 졸업했거나 중퇴했다. 형제 가운데 나만 서울 서대문에 있는 천연보통학교에 다녔고, 다른 형제자매들은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여덟 살까지 살다가 서울의 이모집에 올라와 학교를 다녔다. 왜냐하면 점쟁이가 나는 인중이 짧아 명(命) 또한 짧을 것이니, 부모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

강덕경 할머니

1929년 경상남도 진주 출생

1944년경(16세 경) 고등과 1학년때 여자근로정신대 1기생으로 일본으로 떠나 후지코시 비행기 공장에 가게 됨. 그곳 생활이 고달파 한밤중에 도망, 군인에게 잡혀 그길로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됨

1945년 (17세 경)) 해방 후 동포의 도움으로 배편으로 귀국

1946년 경 (18세 경) 위안소에서 임신한 아이를 출산. 이후 부산 고아원에 맡겼으나 4살 때 폐렴으로 사망. 평생을 결혼하지 않을체 식당일, 남의 집 일, 하숙등을 하면서 근근히 생활을 함

나는 1929년 2월 경남 진주 수정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혼하여 나는 대부분의 유년시절을 외가에서 보냈다. 외가는 사는 형편이 괜찮았다. 수정동 가까이 봉래국민학교가 있었지만, 나는 요시노(吉野)국민학교(현 중앙국민학교)에 다녔다. 31회 졸업생이다. 졸업 후 놀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보기에 안되었던지 고등과에 보내주었다. 고등과는 내가 들어갈 무렵에 새로 생겼는데 한 반뿐이었고 학생은 6,70명 정도 되었다. 열여섯살되던 1944년 6월경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