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경 할머니
강덕경 할머니 (1929~1997)

“우리 할머니들 그리 쉽게 안 죽고, 오래 살 거예요.”

강덕경 할머니는 1929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고등과 1학년이던 16살 때(1944년)일 때 일본인 담임교사에 의해 근로정신대 1기생으로 연행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만 일본 헌병에게 붙잡혀 그때부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게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1년이 지난 1946년이 되어서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남원과 부산 등으로 이동했습니다. 식모살이, 식당일, 하우스 농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지만 번 돈은 ‘위안부’ 후유증으로 인해 병원 치료비로 다 써버렸습니다.

할머니는 1992년(64세)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세상에 알리고 일본 정부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기 위한 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신고 후 위안소에서의 경험과 아픔을 그림으로 그려내 [빼앗긴 순정], [사죄하라], [책임자 처벌] 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1995년(67세)에는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2’에 출연하였으며, 자신이 폐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고 죽기 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자신을 끝까지 영화로 담아주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죽음을 눈앞에 둔 병상에서조차 범죄 인정과 법적 책임을 회피한 채 위로금으로 무마하려 했던 일본의 ‘아시아국민기금’을 거부하셨습니다.

아직 완성해야 할 그림들이 많은데, 그 그림들을 스케치 상태로 남겨둔 채 할머니는 1997년(69세) 2월 폐암으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강덕경 할머니 말씀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누가 관심을 갖겠습니까. 몸이 아파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나와 목청껏 구호를 외치며 기운을 내보려 애씁니다.”

“젊을 때는 결혼하자고 따라다니는 남자들도 많이 있었죠. 그래도 정말 결혼은 못하겠습디다. 제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오냐 좋다고 살 남자가 있겠어요? 요샌 그 때 다 덮어두고 결혼을 해버렸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특히 명절 같은 땐 이렇게 피붙이 하나 없이 그냥 가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아찔해지기도 합니다.”

“8.15 광복으로 위안부 생활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8.15를 거듭 맞으면서 정말 끝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온전한 배상을 받고 책임자 처벌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봐야 진짜 끝날 수 있겠죠.”

“일본은 우리 할머니들이 돈 한 푼이면, 얼마 던져주면 될 줄 알아도, 천만에! 우리 할머니들이 이렇게 비록 나이가 많아도, 이리 아파도, 우리가 죽을 때까지, 다 죽고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라도 일본 정부하고 싸울 테니까. 우리 할머니들 그리 쉽게 안 죽고, 오래 살 거예요. 독해졌어요. 갈수록 더할 거예요. 일본이 그렇게 만들었어, 우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