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신도 할머니 (1922~ 2017)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습니다.”

송신도 할머니는 1922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6살 때인 1938년 중국 무창의 위안소로 끌려가  약 3년간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갈 곳이 없었던 할머니는 “결혼하고 일본으로 가자”던 일본 군인의 말에 속아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일본 하카타항에 도착하자마자 함께 왔던 군인은 할머니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기차에서 뛰어내려 죽으려고 했던 할머니는 미야기현에서 지내던 재일 한국인 남성을 만나게 되었고, 1982년에 그가 사망할 때까지 같이 지내셨습니다.

할머니는 어려운 생활로 인해 공장일, 막노동, 온갖 일을 다 해보지만 끝내 생활 보호금 신청을 하게 되었고, 1972년부터 생활 보호금을 받게 되었지만, “조선인”, “위안부였던 여자”, “일본국가에서 생활 보호금을 받는 주제에”라는 멸시를 받으며 억울함을 품고 왔다가 김학순 할머니의 제소 소식을 듣고 자신도 소송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1993년에 <재일조선인위안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통해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 소송 제기했으나 지법, 고법, 대법에서 차례로 패소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를 상대로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10년에 걸쳐 청구하며 법적 투쟁을 하셨습니다.

2007년에는 할머니의 10년간의 법적 투쟁의 과정을 담은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어 한국에서도 상영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후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 대지진 피해로 인해 도쿄로 이주하셨고, 지난 2017년 12월 노환으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송신도 할머니 말씀

“날마다 얻어맞아서 뺨에는 굳은살이 생겨 이제는 아무리 맞아도 아프지가 않아요. 고막이 터져서 귀도 한 쪽밖에 안 들립니다. 위안소에서 한 문신이 부끄러워서 목욕탕에도 못 가고요. 그래도 살아남은 것만이라도 다행이라고 해야겠지요.”

“젊을 때는 매일 매일 군인들의 꿈을 꾸었습니다. 위안소에 대한 기억은 몇 년이 지나도,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기가 막혀서 술 퍼마시고 행패를 부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 봤자 억울한 심정을 달랠 수도 없고 속상해질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어째서 일본의 전쟁에 조선의 철부지 아이들이 끌려가서 그런 고생을 해야 했는가, 생각하고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동네에는 군인은급을 받는다고 큰 소리 치는 사람들도 있고, 유족 연금을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쟁터에 끌어갈 때는 “나라를 위해서 “라고 하면서 이제 와서 왜 “조선인”, “위안부”, “생활보호”라며 차별하는지, 통 이해를 못하겠어요. 그래서 재판을 일으켰습니다. 어째서 내가 “위안부”를 해야 했는지, 왜 차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러면 동네 사람들도 더 이상 백안시 못하겠지요. 재판을 시작하니까 “생활보호금 받고 남의 세금으로 밥 먹는 주제에”, “일본에 살면서 일본인만 나쁘게 말하지 말라”, “불만이 있다면 한국에 돌아가라” 등의 욕을 듣게 되었습니다.”

“재판을 시작한 후에 정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경험을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믿어줄지 불안했지만 모두 마음으로부터 잘 들어줬습니다. 그 안에는 내가 위안소로 끌려간 때와 같은 또래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지 걱정되고 챙피해서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었지만 할 수 없이 얘기했지요. 그랬더니 그런 아이들도 내 이야기를 잘 듣고 눈물 흘리며 뜻을 알아주었습니다. 반은 속 시원해졌어요. 안심했습니다.”

“잔혹한 전쟁은 두 번 다시 해서는 안됩니다, ‘위안부’만이 아니라 중국인도, 일본군병사도 시달린 비참한 모습을 나는 이 두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또다시 그런 잔혹한 전쟁을 시작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과거를 반성 안 하니까,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 얘기를 눈물 흘리면서 들어준 그 아이들이 그런 잔혹한 전쟁에 끌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최근에는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정말 잠을 못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