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운 할머니 (1924~2004)

“단 한사람이라도 우리의 문제를 더 가르쳐야 합니다.”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18세 때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습니다. 인도네시아 스마랑에서 4년 동안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고, 22세에 해방을 맞았습니다. 해방 후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싱가포르 수용소에서 지내다 해방 이듬해에 부산으로 귀국하였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이미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집은 폐허가 되어 할머니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평생을 살아남기 위해 모진 고생을 다 한 할머니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하였고, 이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국내외 증언집회, 수요시위 참가 등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다가 2004년 2월 지병으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이장이 와서는 ‘아가씨, 일본에 센닌바리 맨드는 공장에 가서 한 일 년, 아니 이 년 내지 이 년 반만 고생하시고 나오시면 됩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가는 날 아버지가 풀리나온다 이기라. 그걸 믿었지. 아이고- 그래 가지고 내가 자청을 해 갖구 간 기라.”

“고향 생각 그런 거도 없고 저놈들이 올 때는 다 잊어버려. 그런 거 생각하고 할 여유가 어딨노, 아휴- 무서라,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 소름이 끼쳐.”

“내가 자부튼 목숨만은 부지하자, 내가 이 정신으로 어떻게든 살아도 살아야지, 그래야 살아 나갈 수 있겠다, 내 육체는 니들이 다 가지고 가도 내 맴은 가져가지 못 한다. 내가 결심을 했다 아이가.”

“가만히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살아남은 게 꿈 같애. 꿈이라도 너무 험한 악몽이라. 그러나 하나도 부끄러운 것이 없어. 내가 부끄러운 짓을 했어야 부끄럽지. 나는 떳떳해. 긍께 위안부로 갔다와서 숨낀다 부끄럽다 천만에 말씀.”

“단 한사람이라도 우리 이 문제를 더 알켜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알아야지. 참말로 증언 가서도 애기했는데, ‘우리는 때를 잘못 나서 희생자가 되었지만, 지금 자라는 애들은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을 주장한 사람이 내다. 항상 마음가짐은 그렇지. 아이구, 고만 저런 왜놈들 생각하면 어이구 참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