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2019 나비기금과 함께 떠나는 베트남 평화기행단 류미선
1.전쟁증적박물관
이곳은 미국의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의 죄악과 만행의 증거와 흔적을 기록하고 있고, 미군편에 가담해 그 전쟁에 참가했던 한국군의 모습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대표님께서 겉으로 보이는 현 베트남의 모습만 볼 것이 아니라 이분들이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기록해왔고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보고, 우리 한국이 민간인학살을 어떻게 대하고 기억하는지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박물관에 마음을 다잡고 들어갈 수 있었어요.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건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이었습니다. 전쟁과 각종 범죄를 일으킨 미국에게 그들의 독립선언문에 나온 것처럼 베트남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했는지 되묻는 것이죠. 정말 위트있게 호통을 치는 전시였습니다.
미국의 베트남전쟁 시기 최대 민간인학살은 4시간 동안 504명이 학살된 밀라이(MY LAI) 학살입니다. 504명 중 182명의 여성이 학살되었고 그중 17명은 임산부였습니다. 그리고 173명의 어린아이가 학살되고 그중 56명이 태어난 지 5개월 미만 신생아였습니다. 학살이 일어난 지역은, 밀라이 마을만이 아니라 ‘산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의 썬미(SON MY)지역 전체입니다. 밀라이는 학살이 자행된 마을 중 미군들이 발음하기 쉬운 마을 이름이었습니다.
이 박물관의 인상 깊었던 사진은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 어린아이가 더 어린 자신의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웅크리는 사진이었습니다. 이곳의 사진들은 전쟁 당시 어떠한 고통을 베트남 사람들이 겪어야만 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참혹했던 전쟁의 순간을 생생히 담은 사진들을 보며, 우리는 학살을 몇 명이 돌아가셨는지 숫자로만 기억하는데, 역사 속의 사람들을 기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였습니다.
베트남에 베이비 붐이 일었을 때 베트남 사람들이 아이를 가지려 했으나, 아이들이 다 사산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베트남 사람들은 호찌민시에 가장 큰 산부인과 병원으로 사산아를 보내었고 산부인과에선 이 사산아들을 포르말린 용액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셀 수도 없는 아기들의 집단 무덤은, 피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사죄하라는 베트남 사람들의 말 없는 항거였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전쟁, 그리고 전쟁 후에도 이어진 피해라는 엄청난 역사 사이에는 한국이 있었습니다. 1954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이 막 끝났을 때 먼저 파병을 하겠다 하였고, 이후에도 몇 번이고 파병을 시도합니다. 박정희 정권 때에도 마찬가지로 먼저 파병을 하겠다고 했었고 이후 미국에서 요청이 오자 UN도 NATO도 거절했던 파병을 바로 진행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베트남에 가장 오래 주둔한 나라이자 미군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보냈었기에 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민간인들을 강간하고 인권을 짓밟았으며, 학살했죠.
이곳에서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가해국으로서의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가 정의롭게 해결되고 할머니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미국의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민간인학살에 대한 가해자들의 책임을 다하고, 진상이 규명되고,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게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은 우리 후대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이 박물관은 1975년 전쟁이 끝난 해에 처음 세워졌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하루 먹고 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한 일은 역사에 대한 증거를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살은 어둠 속에 암장되고 세상 밖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간인학살이 굉장히 많았지만 그 모든 학살을 저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베트남분들이 이러한 전쟁과 학살들을 기록하고 지속적으로 기억하는 태도가 우리도 갖추어야 하는 자세가 아닐까요.
2. 남부여성박물관->통일궁
남부여성박물관이 예전엔 휴관일이 없었는데 최근 휴관일이 금요일로 지정되면서 아쉽게 오늘 가지못하였어요 대신 통일궁으로 향했습니다. 사이공의 얼굴이라고도 하는 통일궁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총독부청사 땐 노르돈궁이었고 그 이후 정권궁, 독립궁, 대통령궁, 통일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통일궁은 3층으로 설계되어있고, 전체적인 형상은 연꽃 모양이었습니다, 국빈접견실,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 서재, 영부인의 귀빈접견실, 지하벙커 등이 있습니다. 조금 놀랐던 공간은 영화관과 게임룸입니다. 당시 1대 대통령의 탄압과 독재가 굉장히 심했는데 그 안에서의 부패한 정권의 향락과 사치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은 이 통일궁을 박물관으로 운영하며 베트남이 현재 역사 유산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좋은 추억이 있는 곳은 아니나 그 당시 역사를 후세대와 전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3. 반레 작가님과의 만남
2일차 마지막 일정으로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의 반레 작가님께서 저희를 정말 환하게 맞이해주셨어요!! 그리고 작가님께서 "여러분들이 계속 베트남에 오고 있는것 그리고 그 일정 속에서 우리집을 방문하시는게 하나의 행복입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게릴라로서 참전하시고, 악명높은 호찌민 루트에서 시인을 꿈꿨던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은 작가님은, 이후 친구의 이름 반레로 살아가며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알리고 계십니다. 반레 작가님께서는 독자들과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을 통해 전쟁의 한 순간인 ‘병사의 마지막 시각‘을 나누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전쟁의 근원과 전쟁이 앗아가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반레 작가님께서는 이미 지나간 역사는 바꿀 순 없으나 미래의 역사를 세우는 것은 가능하다는 말을 전해주셨습니다.
오늘 하루 전쟁증적박물관, 통일궁을 다녀오고 반레 작가님까지 뵙고 나서 앞으로 일본군성노예 피해 할머니들께서 이야기하시는 전쟁 없는 평화를 만들어내려면 우리의 기억과 행동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과거에 저지른 죄를 돌려놓을 순 없지만 앞으로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를 위한 역사를 새로 써 갈 주체이기에, 기행이 끝난 후에도 할머니 정신을 잇는 나비로서 행동을 해나가야겠다 다짐했습니다!!
기록: 2019 나비기금과 함께 떠나는 베트남 평화기행단 류미선
1.전쟁증적박물관
이곳은 미국의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의 죄악과 만행의 증거와 흔적을 기록하고 있고, 미군편에 가담해 그 전쟁에 참가했던 한국군의 모습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대표님께서 겉으로 보이는 현 베트남의 모습만 볼 것이 아니라 이분들이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기록해왔고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보고, 우리 한국이 민간인학살을 어떻게 대하고 기억하는지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박물관에 마음을 다잡고 들어갈 수 있었어요.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건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이었습니다. 전쟁과 각종 범죄를 일으킨 미국에게 그들의 독립선언문에 나온 것처럼 베트남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했는지 되묻는 것이죠. 정말 위트있게 호통을 치는 전시였습니다.
미국의 베트남전쟁 시기 최대 민간인학살은 4시간 동안 504명이 학살된 밀라이(MY LAI) 학살입니다. 504명 중 182명의 여성이 학살되었고 그중 17명은 임산부였습니다. 그리고 173명의 어린아이가 학살되고 그중 56명이 태어난 지 5개월 미만 신생아였습니다. 학살이 일어난 지역은, 밀라이 마을만이 아니라 ‘산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의 썬미(SON MY)지역 전체입니다. 밀라이는 학살이 자행된 마을 중 미군들이 발음하기 쉬운 마을 이름이었습니다.
이 박물관의 인상 깊었던 사진은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 어린아이가 더 어린 자신의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웅크리는 사진이었습니다. 이곳의 사진들은 전쟁 당시 어떠한 고통을 베트남 사람들이 겪어야만 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참혹했던 전쟁의 순간을 생생히 담은 사진들을 보며, 우리는 학살을 몇 명이 돌아가셨는지 숫자로만 기억하는데, 역사 속의 사람들을 기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였습니다.
베트남에 베이비 붐이 일었을 때 베트남 사람들이 아이를 가지려 했으나, 아이들이 다 사산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베트남 사람들은 호찌민시에 가장 큰 산부인과 병원으로 사산아를 보내었고 산부인과에선 이 사산아들을 포르말린 용액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셀 수도 없는 아기들의 집단 무덤은, 피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사죄하라는 베트남 사람들의 말 없는 항거였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전쟁, 그리고 전쟁 후에도 이어진 피해라는 엄청난 역사 사이에는 한국이 있었습니다. 1954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이 막 끝났을 때 먼저 파병을 하겠다 하였고, 이후에도 몇 번이고 파병을 시도합니다. 박정희 정권 때에도 마찬가지로 먼저 파병을 하겠다고 했었고 이후 미국에서 요청이 오자 UN도 NATO도 거절했던 파병을 바로 진행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베트남에 가장 오래 주둔한 나라이자 미군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보냈었기에 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민간인들을 강간하고 인권을 짓밟았으며, 학살했죠.
이곳에서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가해국으로서의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가 정의롭게 해결되고 할머니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미국의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민간인학살에 대한 가해자들의 책임을 다하고, 진상이 규명되고,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게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은 우리 후대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이 박물관은 1975년 전쟁이 끝난 해에 처음 세워졌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하루 먹고 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한 일은 역사에 대한 증거를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살은 어둠 속에 암장되고 세상 밖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간인학살이 굉장히 많았지만 그 모든 학살을 저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베트남분들이 이러한 전쟁과 학살들을 기록하고 지속적으로 기억하는 태도가 우리도 갖추어야 하는 자세가 아닐까요.
2. 남부여성박물관->통일궁
남부여성박물관이 예전엔 휴관일이 없었는데 최근 휴관일이 금요일로 지정되면서 아쉽게 오늘 가지못하였어요 대신 통일궁으로 향했습니다. 사이공의 얼굴이라고도 하는 통일궁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총독부청사 땐 노르돈궁이었고 그 이후 정권궁, 독립궁, 대통령궁, 통일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통일궁은 3층으로 설계되어있고, 전체적인 형상은 연꽃 모양이었습니다, 국빈접견실, 대통령 집무실, 대통령 서재, 영부인의 귀빈접견실, 지하벙커 등이 있습니다. 조금 놀랐던 공간은 영화관과 게임룸입니다. 당시 1대 대통령의 탄압과 독재가 굉장히 심했는데 그 안에서의 부패한 정권의 향락과 사치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은 이 통일궁을 박물관으로 운영하며 베트남이 현재 역사 유산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좋은 추억이 있는 곳은 아니나 그 당시 역사를 후세대와 전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3. 반레 작가님과의 만남
2일차 마지막 일정으로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의 반레 작가님께서 저희를 정말 환하게 맞이해주셨어요!! 그리고 작가님께서 "여러분들이 계속 베트남에 오고 있는것 그리고 그 일정 속에서 우리집을 방문하시는게 하나의 행복입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게릴라로서 참전하시고, 악명높은 호찌민 루트에서 시인을 꿈꿨던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은 작가님은, 이후 친구의 이름 반레로 살아가며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알리고 계십니다. 반레 작가님께서는 독자들과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을 통해 전쟁의 한 순간인 ‘병사의 마지막 시각‘을 나누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전쟁의 근원과 전쟁이 앗아가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반레 작가님께서는 이미 지나간 역사는 바꿀 순 없으나 미래의 역사를 세우는 것은 가능하다는 말을 전해주셨습니다.
오늘 하루 전쟁증적박물관, 통일궁을 다녀오고 반레 작가님까지 뵙고 나서 앞으로 일본군성노예 피해 할머니들께서 이야기하시는 전쟁 없는 평화를 만들어내려면 우리의 기억과 행동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과거에 저지른 죄를 돌려놓을 순 없지만 앞으로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를 위한 역사를 새로 써 갈 주체이기에, 기행이 끝난 후에도 할머니 정신을 잇는 나비로서 행동을 해나가야겠다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