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수요 시위1724차 수요시위_시민모임 독립

1724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의 주관은 시민모임 독립에서 하였고 사회는 김민수 시민모임 독립 대학생 회원님이 보았습니다.

 

오늘은 이태원 참사 3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참가자들과 함께 이태원에서 희생되신 별들을 추모하며 수요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시민모임 독립 회원들의 <바위처럼> 율동으로 수요시위를 이어갔습니다.

 

박덕진 시민모임 독립 대표님의 주관단체 인사말 후 정의기억연대 한경희 사무총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이영국 반민특위기념사업회 사무총장님, 안숙현 정의당 서울시당 위원장님, 이시은 평화나비네트워크 이화나비 지부장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했습니다.

 

문화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두 번째 달과 심예은 님이 <고풀이(진도 씻김굿 중)>, <기다림에 대하여(강제동원 다큐멘터리 ‘앙구 고향은 북해도’ OST)>, <이별가> 세 곡을 바이올린, 건반 연주와 함께 멋진 목소리로 불러 주셨습니다.

 

참가단체 소개 후 마지막으로 이진희 시민모임 독립 이사님, 한종수 시민모임 독립 회원이자 작가님의 성명서 낭독으로 1724차 정기 수요시위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주관단체인 시민모임 독립 외 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 박의선, 노틀담 수녀회, 문보리, 데니스 클레인, 김혜경, 최진아, 평화나비네트워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 조국혁신당 여성위원회, 강현경, 커뮤니티 ‘다모앙’, 경산 무학고등학교, 인천 세원고등학교, 윤철우, 정의당 성울시당 안숙현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수어통역은 현서영 님이,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연대발언_이영국(반민특위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안녕하십니까?

반민특위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이영국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반민특위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제헌헌법 101조와 법률 제3호로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특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정부에서 최초로 한 역사적인 일이 왜 반민특위를 만드는 것이었을까요?

근대적 민족국가,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40년 동안 우리나라를 짓밟을 동안,

학도병이라는 미명으로 수 많은 청소년 · 청년을 총알받이로 내몰고,

수 많은 꽃다운 청소년을 강제징용 · 강제노동으로 내몰고,

한반도 전역에서 자원을 착취하고 죽음으로 내몰고,

무엇보다 여성의 인권까지 일본제국의 전쟁 도구로 내몰았습니다.

꽃 다운 젊은 여성을 어린 누이동생을 성노예로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악랄한 일본 제국에 앞장선 조선의 앞잡이들이 있었습니다.

아니 아직도 그 들은 21세기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들은 뉴라이트라는 외피를 뒤집어 쓰고 대한국민을 분열로 몰아 넣고 있으며

드디어 윤석열이라는 친일매국노가 3년전 바로 오늘 이태원참사를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2.3 내란을 일으키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1948년 정부가 세워지고 최초로 한 역사적 과업이 반민특위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간단히 말해 매국노들을 처단하지 않고는 민주공화국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불가하다는 것을 명확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두 친일 매국노였고 그 들의 후예인 것입니다.

드디어 1949년 1월 8일 반민특위는 첫 번 째로 친일거부 박흥식을 체포하였습니다.

(박흥식 체포의 현장 책임자가 바로 저의 아버지이셨습니다.)

 

반민특위를 가장 두려워 했던 세력은 누구였을까요?

나경원이 말했던 것 처럼 반민특위가 국론 분열의 원인이라고 떠들던 자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친일파들과 그 들을 정치적 기반으로 대통령까지 했던 이승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명분으로도 반민특위를 없앨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 들은 아주 좋은 하나의 무기를 찾고야 말았습니다.

반민특위는 빨갱이다! 반민특위는 빨갱이다!

이 것이 그 들이 찾아내고 발명한 지독한 무기였던 것입니다.

친일 매국노들이 반민특위를 없애기 위해 발명해낸 무기 빨갱이 사냥은

이 시간에도 대한민국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76년 전 빨갱이 사냥은 이른바 국회프락치사건을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제헌국회에서 젊고 유능하고 애국심에 넘치는 13명의 국회의원을

간첩이라고 조작을 한 사건이 국회프락치사건입니다.

그 분들은 모두 반민특위에 앞장서신 분 들이었습니다.

그 유능하고 똑똑하고 젊은 제헌국회의원의 후손들은 지금 이 시간까지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80이 넘도록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처단되어야할 이승만과 친일 매국 경찰들이 거꾸로 1949년 6월 6일 새벽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마침내 반민특위는 강제로 해체되고야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이승만,

다카키 마사오라는 이름을 사용한 일본군 장교 박정희,

수 백 명을 학살하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오사카가 고향인 이명박,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제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선언한 다카키 마사오의 딸 박근혜,

이태원 참사를 일으키고 마침내 12.3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게 된 역사적 뿌리가 반민특위 강제 해체였습니다

반민특위가 못 다한 역사적 과제를 이어가기 위하여 내란이 정점을 찍고 있던 올 1월 8일 반민특위기념사업회가 첫 깃발을 올렸습니다.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대표님, 오늘 집회의 주관단체인 시민모임 독립의 이만열 이사장님이 창립에 앞장서 주셨고 박덕진 대표님은 현재 운영위원으로 함께하고 계십니다.

 

반민특위기념사업회에서는 지금 국회프락치사건 재심 소송을 청구할 준비를 거의 마쳤습니다. 오늘 이 집회를 마치고 오후 3시 법무법인 덕수에서 피해자 유족 할머니 할아버지와 만나기로 했습니다. 재심 소송을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때는 왔습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의 눈물을 씻어 드리고자 이 자리에 모이신 민주시민 여러분과 정의기억연대, 오늘 이 집회를 주관하신 시민모임 독립 그리고 우리 반민특위기념사업회가 함께 손을 굳게 잡고 못 다한 매국세력을 깨끗이 쓸어낼 그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안내 말씀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약 20일 후 국회프락치조작사건 재심 후원을 위한 콘서트가 열립니다.

11월 18일 저녁 7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입니다.

또한 11월 25일 저녁 7시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반민특위와 12.3 내란’이란 주제의 토론회가 있습니다. 많이들 참석해주셔서 힘을 더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안숙현(정의당 서울시당 위원장)

오늘 수요집회 발언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정의당 서울시당 위원장 안숙현입니다.

수요집회에 처음 참여했던 것은 1997년이었습니다.수요집회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한일 역사청산 문제, 전쟁과 식민침략에서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 알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피해자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을 넘어 문제의 역사를 청산하고자 투쟁하는 할머니들의 용기에 감동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몇해전 저는 송파지역위원장으로 지역의 단체, 시민들과 함께 소녀상을 건립했습니다.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주는 소녀상을 만들면서 함께 투쟁하자고 용기를 주는 할머니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지만 하지만 여전히 수요집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몇 번이나 바뀌고,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계엄을 막아내도 수요집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우리의 미래의 토대가 되는 역사를 제대로 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그럼에도 지난 한일정상회담에서 과거사에 대한 정리는 어떤 것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한일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다는데 과연 이번에는 다루어질까 걱정이 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제2의 아베라 불리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매년 할 정도로 극우적 성향을 지닌 다카이치 사나에가 일본 총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일관계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일본 총리의 눈치를 살피면서 과거사 논의는 모두 빼고 다른 논의만 하는 정상회담을 반대합니다.

과거사를 제대로 정립하고 청산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일 관계의 제대로된 미래를 그리는 기본이고,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사 청산의 중요 의제가 바로 우리가 매주 수요일 외치고 있는 위안부 문제 해결입니다.

친일 과거, 일제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 배상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연대하겠습니다.


연대발언_이시은(평화나비네트워크 이화나비 지부장)

안녕하세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이화여대지부 지부장 이시은입니다. 오늘은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어떻게 발언을 시작해야할까, 너무나 많은 고민이 들었습니다. 우선, 3년 전 별이 된 159명의 청년들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표합니다. 


 3년 전 오늘, 국가는 없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한창 시험공부를 하다 트위터를 통해 소식을 접한 후, 구조상황을 지켜보며 날밤을 샜던 기억이 납니다. 현실이 너무 참혹하고 암담했고, 더불어 제가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습니다. 


 저번주 이태원참사 추모문화제에 참가하며, 별들과 함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다짐이 무색하게도 며칠 전 제가 접한 소식은 한 빵집에서 20 

대 직원이 과로사로 또 하나의 별이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왜 항상 여성, 아동, 청년이, 힘 없는 자들이 이렇게나 희생당하고 아파해야하는지 분노스럽습니다. 


 3년 전 오늘, 국가는 없었다고 우리는 말합니다. 돌이켜보면 많은 순간에 국가는 없었습니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 배운 것은, 국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기에, 제 역할을 하지 않았기에,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이 일어나고 또 반복되었다는 것입니다. 혹은 국가가 직접 나서 악습을 재생산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올해 초에는, 윤석열이 파면되고 정권이 바뀌면 무엇이 되었든 해결되는게 있겠지 하는 순진한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태원참사 진상규명도, 한일합의 폐기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건설적인 외 

교 담화도 없었습니다.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게다가 최근 일본에선 극우적 역사인식을 가진 다카이치 총리가 부임하며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가 거대한 권력구조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매너리즘에 빠지고는 합니다. 매주 수요시위가 시작될때마다 바위처럼을 부르면서 흔들림 없는 마음을 다지지만 사실 한켠으로는 두렵기도 합니다. 


 최근 이런저런 일로 선배와 대화를 하다, ‘참 내 뜻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어요’ 하고 한탄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배는 ‘내 뜻대로 되는건 없어도 우리 뜻대로 되는 건 있더라‘ 하고 말해주었습니다. 잃었던 초심을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이 거대한 투쟁을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앞서 나간 선배들이 있고 함께하는 동지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태원 참사는 올해로 3주기를 맞았고, 세월호 참사는 11주기가 되었습니다. 오늘로 1724차인 수요시위는 30년을 넘었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동안 우리 대학생이 투쟁을 이어나갈 수 있는 이유는 앞서 이 자리를 지켜주신 선배님들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의 기억투쟁을 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피해자들이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올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 대학생이 앞장서겠습니다. 대학 내 공론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기억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기억투쟁을 이어나가는 주체로서 우리는 세상의 왜곡된 편견과 혐오에 맞서 우리의 기억을 끝까지 이어나가겠습니다. 늘 대학생들에게 힘을 실어 주셔서, 이렇게 발언할 기회를 주셔서 또 너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