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5차 정기 수요시위 주관은 성매매근절을위한 한소리회에서 하였고 사회는 성매매피해상담소 WITH US 말이 활동가님이 보았습니다. 대구에서 사시며 열심히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해 활동하시는 이용수 할머니께서 모처럼 수요시위에 참가하셨습니다.
먼저 성매매근절을위한한소리회 연대 단체 활동가님들이 신나는 <바위처럼> 율동을 하였습니다. 40여 명의 활동가님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멋진 율동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임연희 한소리회 상임대표님의 주관단체 인사말 후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두레방 주디 활동가님, 순천여성인권지원센터 태양 님, 막달레나공동체 노수미 활동가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하였습니다.
참가단체 소개 후 김은진 & 배무진 공동대표님, 임정희 실행위원장님이 성명서 낭독을 하고 힘찬 구호를 외치며 1675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주관단체인 성매매근절을위한 한소리회 외 (사)성매매근절을위한한소리회 연대단체 - (사)경원사회복지회 (사)나누리회 (사)막달레나 (사)햇살사회복지회, 동두천성폭력상담소, 두레방상담소, 두레방외국인여성지원시설, 성매매피해상담소 WITH US, 성매매피해자지원시설 희망터&샘, 순천여성인권지원센터, 청소년지원시설 헤아림,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평택여성인권상담센터 품,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수원관구, 장원택, 김태연, 최혜진, 전교가르멜 수녀회,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 자립지지공동체(이재영, 김후이, 정경화), 여성교회, 난민안전연구소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유튜브 온라인 댓글로는 Friends of 'Comfort Women' in Sydney – 시소연, Sung Park(시애틀늘푸른연대), Goo Lee(시애틀늘푸른연대), 임계재, the85thday1, 조안구달, 빛과 소금, 우순덕 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수어 통역은 현서영 님이,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연대발언_주디(두레방 활동가)
안녕하세요, 두레방 신입활동가 주디라고 합니다. 반성매매 활동가 선배님들, 동지들과 이 자리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나비 활동을 통해 처음 수요시위에 참여하였습니다. 당시 부산에 살던 저는 매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비대면 수요시위’를 고안했고, 매주 부산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과 모여 손피켓을 만들거나 핸드폰 전광판에 문구를 띄우고 사진을 찍어 비대면 수요시위를 진행하였습니다.
10년이 지나고, 두레방에서 반성매매 활동가로 성장하고 있는 현재 왜 일본군’위안부’활동 당시에는 미군위안부 문제에 이렇게까지 눈길을 돌리지 않았던 것인지, 무감했던 지난날의 저에게 분노에 찬 의문을 품을 정도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현실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자행했던 폭력을 한국 정부가 한국 여성들에게 그대로 답습한 것은 물론,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기지촌이 이주여성들로 대체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참담한 동시에 화가 끓어오릅니다. 침략당한 피지배 국가의 설움은 잊은 것인지, 국가로써 국민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던 과오를 짊어진 이 국가가 해방 이후 앞장서서 자국 여성들을 착취한 것도 모자라 이주여성으로까지 확장되는 이 현실을 방치한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개탄스럽습니다.
2015년 위안부 졸속 합의를 규탄하는 24시간 1인 시위를 마지막으로 9년 만에 다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약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최일선에서 늘 자리를 지키던 김복동 할머니도, 활동하던 당시 만나 뵙던 경북의 할머니도 모두 돌아가시고 이제 남은 할머니는 단 8명뿐입니다. 현 정부는 이전 정부의 졸속 합의보다 더 비굴한 태도로 일본 정부의 눈치만 보기에 급급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미군’위안부’라는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역사를 지우려 애쓰고 있습니다. 제가 속한 두레방과 한소리회가 함께 하는 ‘두레방 옛 성병관리소 철거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금도 매일 시정부의 미군’위안부’ 지우기에 맞서 <동두천옛성병관리소 철거저지를 위한 촛불문화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건물을 부수고 역사를 지운다고 하더라도, 지금도 여전한 기지촌 성산업까지 지울 수는 없습니다. 선주 여성들이 지나가고 남은 기지촌에 지금도 있는 이주여성들의 존재를 못 본 척할 수는 없습니다.
두레방 활동가가 되어 마주한 이주여성들을 통해, 그들을 착취하는 가해자 무리의 결속이 날이 갈수록 더 깊어지고, 분화되어 1인분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흐려지는 것을 봅니다. ‘합법’이라는 미명 하에 끈끈하게 결속된 그들 모두와 맞섭니다. 일본군’위안부’도, 미군위안부도, 현재의 기지촌 이주여성들까지 모든 문제가 연결되어 있음을 그 어느 때보다 여실히 느끼는 요즘입니다.
지난달 성매매 추방주간, 종각역에서 진행된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 집단행동에 내담자들과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그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 가수 미루의 ‘구멍’이라는 노래가 굉장히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산란계로 태어난 닭의 일생을 담은 가사에, 그가 여성 동물이라 겪어야 했던 폭력과 착취를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하며 눈물 흘리며 들었습니다. 단 한 명의 여성이라도 자유롭지 않다면 여성에게 자유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저들의 끈끈함을 우리의 끈끈한 연대로 맞서며, 존재하는 모든 여성의 해방을 꿈꾸며 발언 마치겠습니다.
연대발언_태양(순천여성인권지원센터)
안녕하십니까!!!
저는 성매매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연대단체
사단법인나누리회 순천여성인권지원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활동가입니다.
먼저,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까지 수요집회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뉴스 기사로만 접해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다행히 이 자리를 통해 수요집회에 대해 조금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무지와 무관심에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용기 내어 여러분들께 저의 바램을 담아 지지 발언을 하고자 합니다.
발언자로 제의받고 흔쾌히 오케이 했는데, 막상 내가 수요집회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나는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면서 많은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수요집회가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의 대한민국 방문을 앞두고 시작되었으며 그 후로 정기적인 시위로 발전하였고, 수요시위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최하고, 여성단체와 시민사회단체, 학생들, 풀뿌리 모임, 평화단체, 종교계 등 시민들이 시위를 기획하여 이끌고 있으며, 일본에서 방문한 평화 활동가를 포함하여 외국인들도 참여가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오늘 1675차에 이르기까지 많은 단체와 활동가들이 이렇게 이어가고 있음에 새삼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나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거창하게 현시점의 문제와 대책들에 대한 논의를 제안하는 제안자, 중재자의 역할이 아닌 저는 여성단체에 속한 활동가의 한사람으로써 감히 오늘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이끌어 주고 관심 가져 주시는 모든 활동가들의 노고를 지지 하며, 함께 갈 수 있도록 연대하겠음을 다짐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먼저 일 것 같다는 마음을 전하고자 싶었습니다.
제 이 마음에 동감해 주신다면 힘찬 함성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동감하시는거죠~~ 우리는 연대 하여야 합니다.
이 시위를 주관해 주시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가 있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지난 9월 7일 또 한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문제 제기 이후, 약 30년동안, 정부 대응의 비일관성, 일본 정부와의 관계, 국제사회의 시각에 따라 ‘위안부’ 피해 주제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 논란이 많았고, 그런 가운데 고령의 할머니는 또 이렇게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그럼.... 지금은 몇분이 계실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찾아봤더니, 정부에 등록되어 있는 247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중 생존자는 8명이었습니다. 이분들이 모두 90세 이상이라 하는데,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역사의 피해자가 거의 사라지게 되는 셈이 된다고 한다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끝나게 되는 걸까요?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있는 한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2021년 유엔 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유엔 스위스 제네바사무소에서 일본 정부의 여성정책을 심사한 뒤 일본정부에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배상 청구 등 피해자들의 권리 보장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이 같은 내용의 최종 권고 사항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해결 노력을 위한 권고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고, 이전에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으로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까지도 변함이 없다는 것에 화가 났습니다.
단순히 일본 정부와 우리나라의 관계에서만 이 위안부 문제를 보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 둘 사이에서 할머니들이 삶이 너무 애달프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공창제도(국가주도성매매)의 문제를 이해하는게 먼저 되어야 합니다. 성매매의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 확립되고 한국전쟁 이후 급격히 성장한 공창제도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국가가 여성의 몸을 관리하고 포주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는 일종의 포주 역할을 해 온 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입니다. 공창제도는 한마디로 성병으로부터 안전한 여성의 몸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주도의 정책이었고, 범죄입니다. 위안부여성들의 동원 방식이나 대우 여하가 아니라 일본군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군인의 성욕 처리를 위해 정책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일본인, 조선인, 중국인을 비롯하여 여성들을 성적으로 유린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이 연대활동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래 봅니다.
발언을 준비하면서알게 된 사실은, 우리 지역에서도 지난 6일 광양평화의소녀상 앞에서 문명금 할머니의 24주기 나비문화제가 개최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사를 통해 본 문명금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 끌려갔지만 해방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중국의 조사단 방문 시 생존 사실이 국내에 알려져 이듬해 82세의 나이로 고국 땅을 밟으면서 “참 좋다”라고 했던 할머니는 귀국하고 나서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살다가 별세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인근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몇 분 더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자 합니다.
나아가 오늘 이 자리를 계기로 저도 내년에는 꼭 참석해 보려고 합니다.
현재 살아계신 8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참 좋다”라는 마음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우리의 활동을 계속 이어가며 지역에서도 함께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이 연대활동을 위해 여기 이 자리에 참여해 주신 활동가 한분 한분을 응원합니다. 이상으로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노수미(막달레나공동체 활동가)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는 우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인권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여성들이 겪은 끔찍한 고통과 억압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존엄성을 빼앗긴 채, 강제적이고 조직적인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그 자체로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인권 침해였습니다. 피해자들은 겪었던 고통을 이야기하기조차 어려워했고, 많은 이들이 그들의 경험을 침묵으로 처리해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들은 사회적 낙인과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들은 대개 자신이 무엇을 겪었는지, 왜 그런 일을 겪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그들에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일본 정부에 진심으로 사과를 촉구합니다.
일본정부의진정한 사과와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그 후손들에게 깊은 사과의 뜻을 표하는 것만이 그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과거를 직시하고 올바르게 반성하는 것은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쌓는 중요한 조건이며,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화해의 가치를 심어주는 귀감이 될 것입니다.
일본 정부가 다시 한번 깊이 숙고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사죄와 실질적인 보상 조치를 취하기를 촉구합니다. 이를 통해 일본과 한국, 더 나아가 세계가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더욱 널리 알릴 책임이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살았던 고통의 시간을 함께 기억하며,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존중해야 합니다.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합니다.
위안부 문제는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국제적인 인권 문제로, 전 세계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렸고, 이제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들에게 정의가 실현될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675차 정기 수요시위 주관은 성매매근절을위한 한소리회에서 하였고 사회는 성매매피해상담소 WITH US 말이 활동가님이 보았습니다. 대구에서 사시며 열심히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해 활동하시는 이용수 할머니께서 모처럼 수요시위에 참가하셨습니다.
먼저 성매매근절을위한한소리회 연대 단체 활동가님들이 신나는 <바위처럼> 율동을 하였습니다. 40여 명의 활동가님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멋진 율동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임연희 한소리회 상임대표님의 주관단체 인사말 후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두레방 주디 활동가님, 순천여성인권지원센터 태양 님, 막달레나공동체 노수미 활동가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하였습니다.
참가단체 소개 후 김은진 & 배무진 공동대표님, 임정희 실행위원장님이 성명서 낭독을 하고 힘찬 구호를 외치며 1675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주관단체인 성매매근절을위한 한소리회 외 (사)성매매근절을위한한소리회 연대단체 - (사)경원사회복지회 (사)나누리회 (사)막달레나 (사)햇살사회복지회, 동두천성폭력상담소, 두레방상담소, 두레방외국인여성지원시설, 성매매피해상담소 WITH US, 성매매피해자지원시설 희망터&샘, 순천여성인권지원센터, 청소년지원시설 헤아림, 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평택여성인권상담센터 품,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수원관구, 장원택, 김태연, 최혜진, 전교가르멜 수녀회,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 자립지지공동체(이재영, 김후이, 정경화), 여성교회, 난민안전연구소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유튜브 온라인 댓글로는 Friends of 'Comfort Women' in Sydney – 시소연, Sung Park(시애틀늘푸른연대), Goo Lee(시애틀늘푸른연대), 임계재, the85thday1, 조안구달, 빛과 소금, 우순덕 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수어 통역은 현서영 님이,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연대발언_주디(두레방 활동가)
안녕하세요, 두레방 신입활동가 주디라고 합니다. 반성매매 활동가 선배님들, 동지들과 이 자리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나비 활동을 통해 처음 수요시위에 참여하였습니다. 당시 부산에 살던 저는 매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비대면 수요시위’를 고안했고, 매주 부산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과 모여 손피켓을 만들거나 핸드폰 전광판에 문구를 띄우고 사진을 찍어 비대면 수요시위를 진행하였습니다.
10년이 지나고, 두레방에서 반성매매 활동가로 성장하고 있는 현재 왜 일본군’위안부’활동 당시에는 미군위안부 문제에 이렇게까지 눈길을 돌리지 않았던 것인지, 무감했던 지난날의 저에게 분노에 찬 의문을 품을 정도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현실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자행했던 폭력을 한국 정부가 한국 여성들에게 그대로 답습한 것은 물론,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기지촌이 이주여성들로 대체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참담한 동시에 화가 끓어오릅니다. 침략당한 피지배 국가의 설움은 잊은 것인지, 국가로써 국민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던 과오를 짊어진 이 국가가 해방 이후 앞장서서 자국 여성들을 착취한 것도 모자라 이주여성으로까지 확장되는 이 현실을 방치한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개탄스럽습니다.
2015년 위안부 졸속 합의를 규탄하는 24시간 1인 시위를 마지막으로 9년 만에 다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약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최일선에서 늘 자리를 지키던 김복동 할머니도, 활동하던 당시 만나 뵙던 경북의 할머니도 모두 돌아가시고 이제 남은 할머니는 단 8명뿐입니다. 현 정부는 이전 정부의 졸속 합의보다 더 비굴한 태도로 일본 정부의 눈치만 보기에 급급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미군’위안부’라는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역사를 지우려 애쓰고 있습니다. 제가 속한 두레방과 한소리회가 함께 하는 ‘두레방 옛 성병관리소 철거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금도 매일 시정부의 미군’위안부’ 지우기에 맞서 <동두천옛성병관리소 철거저지를 위한 촛불문화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건물을 부수고 역사를 지운다고 하더라도, 지금도 여전한 기지촌 성산업까지 지울 수는 없습니다. 선주 여성들이 지나가고 남은 기지촌에 지금도 있는 이주여성들의 존재를 못 본 척할 수는 없습니다.
두레방 활동가가 되어 마주한 이주여성들을 통해, 그들을 착취하는 가해자 무리의 결속이 날이 갈수록 더 깊어지고, 분화되어 1인분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흐려지는 것을 봅니다. ‘합법’이라는 미명 하에 끈끈하게 결속된 그들 모두와 맞섭니다. 일본군’위안부’도, 미군위안부도, 현재의 기지촌 이주여성들까지 모든 문제가 연결되어 있음을 그 어느 때보다 여실히 느끼는 요즘입니다.
지난달 성매매 추방주간, 종각역에서 진행된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 집단행동에 내담자들과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그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 가수 미루의 ‘구멍’이라는 노래가 굉장히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산란계로 태어난 닭의 일생을 담은 가사에, 그가 여성 동물이라 겪어야 했던 폭력과 착취를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하며 눈물 흘리며 들었습니다. 단 한 명의 여성이라도 자유롭지 않다면 여성에게 자유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저들의 끈끈함을 우리의 끈끈한 연대로 맞서며, 존재하는 모든 여성의 해방을 꿈꾸며 발언 마치겠습니다.
연대발언_태양(순천여성인권지원센터)
안녕하십니까!!!
저는 성매매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연대단체
사단법인나누리회 순천여성인권지원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활동가입니다.
먼저,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까지 수요집회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뉴스 기사로만 접해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다행히 이 자리를 통해 수요집회에 대해 조금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무지와 무관심에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오늘 용기 내어 여러분들께 저의 바램을 담아 지지 발언을 하고자 합니다.
발언자로 제의받고 흔쾌히 오케이 했는데, 막상 내가 수요집회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나는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면서 많은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수요집회가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의 대한민국 방문을 앞두고 시작되었으며 그 후로 정기적인 시위로 발전하였고, 수요시위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최하고, 여성단체와 시민사회단체, 학생들, 풀뿌리 모임, 평화단체, 종교계 등 시민들이 시위를 기획하여 이끌고 있으며, 일본에서 방문한 평화 활동가를 포함하여 외국인들도 참여가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오늘 1675차에 이르기까지 많은 단체와 활동가들이 이렇게 이어가고 있음에 새삼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나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거창하게 현시점의 문제와 대책들에 대한 논의를 제안하는 제안자, 중재자의 역할이 아닌 저는 여성단체에 속한 활동가의 한사람으로써 감히 오늘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이끌어 주고 관심 가져 주시는 모든 활동가들의 노고를 지지 하며, 함께 갈 수 있도록 연대하겠음을 다짐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먼저 일 것 같다는 마음을 전하고자 싶었습니다.
제 이 마음에 동감해 주신다면 힘찬 함성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동감하시는거죠~~ 우리는 연대 하여야 합니다.
이 시위를 주관해 주시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가 있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지난 9월 7일 또 한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문제 제기 이후, 약 30년동안, 정부 대응의 비일관성, 일본 정부와의 관계, 국제사회의 시각에 따라 ‘위안부’ 피해 주제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 논란이 많았고, 그런 가운데 고령의 할머니는 또 이렇게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그럼.... 지금은 몇분이 계실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찾아봤더니, 정부에 등록되어 있는 247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중 생존자는 8명이었습니다. 이분들이 모두 90세 이상이라 하는데,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역사의 피해자가 거의 사라지게 되는 셈이 된다고 한다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끝나게 되는 걸까요?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있는 한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2021년 유엔 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유엔 스위스 제네바사무소에서 일본 정부의 여성정책을 심사한 뒤 일본정부에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배상 청구 등 피해자들의 권리 보장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이 같은 내용의 최종 권고 사항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해결 노력을 위한 권고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고, 이전에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으로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까지도 변함이 없다는 것에 화가 났습니다.
단순히 일본 정부와 우리나라의 관계에서만 이 위안부 문제를 보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 둘 사이에서 할머니들이 삶이 너무 애달프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공창제도(국가주도성매매)의 문제를 이해하는게 먼저 되어야 합니다. 성매매의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 확립되고 한국전쟁 이후 급격히 성장한 공창제도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국가가 여성의 몸을 관리하고 포주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는 일종의 포주 역할을 해 온 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입니다. 공창제도는 한마디로 성병으로부터 안전한 여성의 몸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주도의 정책이었고, 범죄입니다. 위안부여성들의 동원 방식이나 대우 여하가 아니라 일본군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군인의 성욕 처리를 위해 정책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일본인, 조선인, 중국인을 비롯하여 여성들을 성적으로 유린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이 연대활동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래 봅니다.
발언을 준비하면서알게 된 사실은, 우리 지역에서도 지난 6일 광양평화의소녀상 앞에서 문명금 할머니의 24주기 나비문화제가 개최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사를 통해 본 문명금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 끌려갔지만 해방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중국의 조사단 방문 시 생존 사실이 국내에 알려져 이듬해 82세의 나이로 고국 땅을 밟으면서 “참 좋다”라고 했던 할머니는 귀국하고 나서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살다가 별세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인근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몇 분 더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자 합니다.
나아가 오늘 이 자리를 계기로 저도 내년에는 꼭 참석해 보려고 합니다.
현재 살아계신 8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참 좋다”라는 마음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우리의 활동을 계속 이어가며 지역에서도 함께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이 연대활동을 위해 여기 이 자리에 참여해 주신 활동가 한분 한분을 응원합니다. 이상으로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노수미(막달레나공동체 활동가)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는 우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인권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여성들이 겪은 끔찍한 고통과 억압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존엄성을 빼앗긴 채, 강제적이고 조직적인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그 자체로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인권 침해였습니다. 피해자들은 겪었던 고통을 이야기하기조차 어려워했고, 많은 이들이 그들의 경험을 침묵으로 처리해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들은 사회적 낙인과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들은 대개 자신이 무엇을 겪었는지, 왜 그런 일을 겪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그들에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일본 정부에 진심으로 사과를 촉구합니다.
일본정부의진정한 사과와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그 후손들에게 깊은 사과의 뜻을 표하는 것만이 그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과거를 직시하고 올바르게 반성하는 것은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쌓는 중요한 조건이며,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화해의 가치를 심어주는 귀감이 될 것입니다.
일본 정부가 다시 한번 깊이 숙고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사죄와 실질적인 보상 조치를 취하기를 촉구합니다. 이를 통해 일본과 한국, 더 나아가 세계가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더욱 널리 알릴 책임이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살았던 고통의 시간을 함께 기억하며,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존중해야 합니다.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합니다.
위안부 문제는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국제적인 인권 문제로, 전 세계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렸고, 이제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들에게 정의가 실현될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