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수요 시위1685차 수요시위-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1685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관은 정의기억연대 부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하였고 사회는 유진 활동가가 보았습니다.

 

먼저 여는 노래 <바위처럼>에 맞춰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이 신나는 율동을 했습니다.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관장의 주관단체 인사말 후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한다 조이 한일청년평화포럼 청년준비위원회 회원의 발언을 정의기억연대 열무 활동가가 대독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주안 2024년 정의연 나비의꿈 수상자님, 다카하시 히요 일본 희망씨앗기금 운영위원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하였습니다.

 

‘함께 만드는 타임캡슐’이라는 퍼포먼스가 이어졌습니다. 참가자들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서 내가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종이에 쓰고 병에 넣은 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전시하고 1년 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주관 수요시위에서 열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문화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소수자연대풍물패 <장풍>과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활동가들이 멋진 풍물 공연을 하였습니다. 설은 맞아 신명나는 우리 풍물 소리가 평화로를 가득 메웠고 참가자들이 모두 일어서 함께 춤추며 추위도 날려 버렸습니다.

 

참가단체 소개 후 이지영, 낙영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활동가들이 성명서 낭독을 하며 1685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강태성, 나나세, 역사동아리 사다리, 진보대학생넷, 예수성심전교수녀회, 평화나비 네트워크, 스티브 포비, 윤철우, 이연화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온라잇 댓글로는 Sung Park(시애늘늘푸른연대), Goo Lee(시애틀늘푸른연대), 장상욱, 민서, 얍!신호등이닷, lee파도저편, 삔삥이, Sung Hyun Ryu(시애틀늘푸른연대), 방생학사, 김진숙 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수어 통역은 현서영 님께서,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연대발언_한다 조이(한일청년평화포럼 청년준비위원회)

안녕하세요. 일본의 와세다대학 대학원에 다니며、한일 화해와 평화 플랫폼 청년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다조이라고 합니다.

저는 3년전 여름 한일 화해와 평화 플랫폼의 청년들과 함께 처음으로 수요일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참여하는 데모,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것에 소극적인 일본에서 자란 저는, 데모에 참가하는 것에대해,  무서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수요시위에 참가하는 아침, 먼저 '전쟁과 여성박물관'을 방문하여 할머니가 남긴 그림을 보고, 할머니의 얼굴사진을 보았습니다. 지금의 저의 나이보다 어린 시절에 피해를 입고, 평생을 싸움을 이어간 할머니의 마음을 제대로 이어받아, 수요시위에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강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날은 매우 더운 날이였습니다. 그러나 혹독한 날씨보다, 우익들의 큰 욕설보다,

수요일 시위에 참여하는 우리의 마음이 더 뜨거웠으며 "공식 사과, 법적 배상, 할머니들의 명예 회복"에 대해 목소리를 내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수요시위를 개최하는 정의기억연대, 그리고 시위 참가자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비록 현장에 직접 갈 수 없지만, 온라인을 통해 함께 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각 지역에서, 일본에서, 많은 외국에서도 수요시위에 연대하는 많은 시민이 있습니다. 현장에 있는 여러분에게, 멀리서 연대하는 우리의 힘을 보냅니다.


제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알게 된 계기는 2015년 한일 외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했다고 말했을 때입니다. 그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였습니다. 피해자의 존재를 잊은채, 공식 사과나 진상규명 없는 채, 돈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진실을 잊게 하려하는 모습에 분노를 느겼습니다.

일본 정부가 취해야 할 책임은 금전배상만이 아니며, 배상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은, 일본군이 어린 소녀들에게 성착취를 했던 사실을 인정하는 것, 사과하는 것,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올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이라는 큰 의미를 가진 1년입니다.

일본 정부는 유일한 원자력폭탄 피해국이라는 전쟁의 피해를 말할 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를 침략한 잘못된 과거를 인정하고 국제사회의 표본이 되기를 바랍니다.


최근 몇년간, 한국과 일본은 문화를 통해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양국의 국민이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고 있어, 이전에 비해 혐일·혐한 분위기가 없어진 것은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좋은 분위기에, 일본이 한국에게 저지른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한때의 양호한 관계에 그치지 않고, 진정으로 화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한국에 남긴 많은 피해를 인정하는 것, 사과하는 것, 같은 것을 반복하지 않도록 전하며, 계속 배워야 합니다.

제가 한일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일본이 전시중에, 한국인에게, 성착취·강제 노동·인체 실험 등을 저지른 만행을, 배우고·기록하며·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배우고,  목소리를 내며, 여러분과 연대해 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こんにちは。日本の早稲田大学大学院に通いながら、日韓和解と平和プラットフォーム青年の部で活動している、半田歓喜(はんだ・じょい)と申します。


私は3年前の夏、日韓和解と平和プラットフォームの仲間と共に、初めて水曜デモに参加しました。生まれて初めてのデモ、自分の意見を伝えることに消極的な日本で育った私は、デモに参加すること自体、怖いなとの思いがありました。

デモに参加する朝、”戦争と女性博物館”を訪れ、ハルモ二が残した絵を見て、ハルモ二の顔写真を見ました。今の私の年齢よりも幼いころに被害にあい、一生をかけて闘い続けたハルモ二の思いをしっかりと受け取り、デモで声をあげようという強い気持ちが生まれました。

その日はとても暑い日でした。しかし、酷暑よりも、右翼の大きな罵声よりも、水曜デモに参加する私たちの思いの方が熱く、"公式謝罪・法的賠償・ハルモ二の名誉回復”について声を上げたことを覚えています。

季節が変わっても、変わらず水曜デモを開催する正義記憶連帯、そしてデモ参加者の皆さんに敬意を表し、感謝しています。私は、現場に直接行くことはできないですが、オンラインを通して共に連帯しています。韓国の各地域から、日本から、多くの海外からも、水曜デモに連帯する多くの市民がいます。現場にいるみなさんに、遠くから連帯する私たちの力を送ります。


私が、日本軍慰安婦について知ったきっかけは、2015年の日韓外相会談で、日本軍慰安婦問題を「最終的かつ不可逆的な解決」したと言ったときです。その当時私は高校生でした。被害者を置き去りにしたまま、公式の謝罪や真相究明のないまま、お金で被害者の声を黙らせて、風化させようとする姿に憤りを覚えました。

日本政府がとるべき責任は金銭賠償ではだけではありません、賠償より、比べものにならないほど重要なのは、日本軍が幼い少女たちに性搾取をした事実を認めること、謝罪すること、ハルモ二の名誉を回復することです。

今年は第二次世界大戦終戦80周年という、大きな意味をもった1年です。日本政府は、唯一の被爆国という戦争の被害を語るだけでなく、韓国をはじめアジアを侵略した誤った過去を認め、国際社会の手本になってほしいと思います。


ここ数年、日本と韓国は、文化を通して良好な雰囲気が形成されています。両国の国民が自由に旅行を楽しんでおり、以前ほどの嫌日・嫌韓ムードが無くなったことはとても嬉しく思います。

しかし、良好な雰囲気によって、日本が韓国にした恥ずかしい歴史を隠してはいけない。日韓が一時の良好な関係にとどまらず、本当に和解するためには、日本が韓国に残した多くの被害を認めること、謝罪すること、同じことを繰り返さないよう伝え学び続けることが必要です。

私は自分が日韓の真の和解と平和のためにできること、

それは、日本が戦時中、韓国人に対して、性搾取・強制労働・人体実験等を行った過去を、学び・記録し・語り継いでいくことだと考えます。

私は、これからも学び続け、声をあげ、皆さんに連帯していき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연대발언_김주안(2024년 나비의꿈 수상자)

안녕하세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자원활동가 김주안입니다.

 

일 년 동안 박물관에서 자원활동을 하며 많은 관람객들을 만났습니다. 박물관에 오시는 분들은 정말 다양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관람객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인 관람객입니다. 오디오 가이드 번역본을 무려 6개의 언어로 마련했을 정도로 다양한 곳에서 관람객들이 오시지만, 한국인 관람객은 비교적 많지 않아 영어로 관람을 안내하는 경우가 더 잦습니다. 심지어 오전 동안 한국인 관람객만 방문한 날에는 신기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물론 해외 각지에서 전시를 보러 오신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자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일본군 성노예제는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며, 전시 성폭력과 여성 인권에 있어서 전지구적 연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피해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끊임없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발화하고, 널리 알릴 의무가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덜 가지게 되었을까요? 여전히 일본 정부는 범죄 인정과 공식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일본군 성노예제에서 드러난 군사적, 제도적 전시 성폭력은 전지구적으로 계속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몰라서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국가의 의도적인 묵인 때문일 것입니다.

 

2015년 한일합의는 피해 당사자들도, 공식 인정도, 법적 책임도 없었음에도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더 이상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분명 긴 시간 동안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싸워왔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는 투쟁의 목소리를 가려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작년 여름, 역사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들의 피해 사실을 고작 “끔찍한 삶”이라는 간단한 단어로 축소해버렸습니다. 제가 배웠던 2015년 개정 역사 교과서 역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그리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고, 역사 선생님께서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교과서 속 활자로는 다 담기지 않은 할머니들의 삶과 역사적 진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피해와 투쟁의 복잡다단한 길을 고작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니요. 이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에게 서슴지 않고 2차 가해를 하고 강제동원되었다는 사실마저 왜곡하는 역사 부정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며, 학생들을 역사 부정 세력 꿈나무로 키우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자라서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고, 어떻게 일본군 ‘위안부’ 진상 규명을 위해 목소리를 내겠습니까?

 

우리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들이 더 거세질수록, 우리는 더 큰 목소리로 외칠 것입니다.

요즘 가방에 배지나 키링을 달아 연대의 마음을 표현하곤 하는데, 나비배지와 나비키링은 길거리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8-9년 전, 제가 중학생이던 시절에는 학생회가 공동구매를 주관해 언제나 학생들의 교복 재킷이나 가방에는 배지가 달려 있었고, 팔에는 형형색색의 나눔팔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처럼 다시 저희의 주위에서 수많은 나비들이 날아다니길 바랍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길 바랍니다. 나서서 역사 부정 세력의 수장이 되는 정부가 아니라, 역사를 바로 세우고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편에서 제대로 문제제기를 하는 정부를 바랍니다. 그리고 끝내 모든 전쟁과 전시 성폭력이 이 세상에서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모입시다.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계속 말합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다카하시 히요(일본 희망씨앗기금 운영위원)

안녕하세요. 저는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작년부터 한국에 왔습니다. 다카하시 히요라고 합니다. 오늘은 일본인으로서, 일본인 남성으로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 운동에 연대를 표명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와서 발언을 합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조선근현대사를 배우고 있는데, 배우게 된 계기는 일본의 역사교육에서 식민지 지배 책임이 투명화되어 있었던 것에 위화감을 느낀 경험입니다. 제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대해 깊이 알게 된 것도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입니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한일관계의 한 토픽으로 알려져 있고 '반일'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할 정도입니다. 이 배경에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비롯한 일본 정부가 행해진 국가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역사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또한, 그런 상태가 상태화되어 버린 현재의 상황은, 일본군 성노예제가 있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남성 사회가 크게 관여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작년에도 여성의 인권이 짓밟히는 사건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성폭력 가해자가 무죄가 되고, 선거에서는 여성 차별을 조장하는 후보자가 표를 모으고, 요즘은 권력을 가진 남성에 의한 굉장히 악질적인 성폭력 사건에 모이는 옹호의 목소리에 우울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여성에 대한 성폭력·성착취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와 계속되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아래 일상적이고 구조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에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신속하게 사실 인정, 공식 사죄를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되며,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인권을 회복하는 동시에 여성에 대한 성폭력·성착취가 구조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바꾸어 가는 책임을 일본 정부에 묻고 싶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살아온 시민으로서, 일본 정부에 그 책임을 계속 물어,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바꾸는 책임을 완수해 가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이 운동을 꾸준히 해오신 할머니들과 여성 운동가 분들, 그리고 시민 여러분께 경의를 표현하고 앞으로도 함께 연대할 것임을 표명합니다.


こんにちは、私は日本から交換留学生として昨年から韓国に来ました。今日は日本人として、日本人男性として、日本軍性奴隷制問題解決運動へ連帯を表明するためにこの席に来て発言をします。 私は大学で朝鮮近現代史を学んでいるのですが、学ぶようになったきっかけは、日本の歴史教育において植民地支配責任が透明化されていたことに違和感を持ったことです。私が日本軍性奴隷制問題のことを深く知るようになったのも大学に入ってからのことで、日本では一般的に、韓日関係の一つのトピックとして語られ、「反日」の象徴とされることもあるほどです。この背景には、日本軍性奴隷制問題をはじめとした日本政府によって行われた国家犯罪を認定せず、二度と同じ過ちをおかさないように歴史教育を行わないことがあります。


また、そのような状態が常態化してしまっている現在の状況は、日本軍性奴隷制問題があったころから今まで続いている男性社会が大きく関係しています。日本では昨年も女性の人権が踏みにじられる出来事が多く起こりました。性暴力の加害者が無罪にされ、選挙では女性差別を助長する候補者が票を集め、昨今は権力を持った男性による非常に悪質な性暴力事件に集まる擁護の声に気が滅入っている人も多いと思います。このような女性への性暴力・性搾取は日本軍性奴隷制問題と地続きの男性中心的な社会のもと、日常的に、構造的に行われています。現在の状況にも結び付いているからこそ、日本政府は迅速に事実認定、公式謝罪を行わなければならず、被害にあわれた女性たちの人権を回復するとともに、女性への性暴力・性搾取が構造的に行われている現在の状況を変えていく責任を日本政府に問いたいです。日本社会で暮らしてきた市民として、日本政府にその責任を問い続け、男性中心的な社会を変える責任を全うしていきたいです。 最後に、今までこの運動を続けてこられてきたハルモニたちや女性運動家の方たち、そして市民のみなさんへ敬意を表し、これからもともに連帯していくことを表明し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