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2월 16일 별세하신 길원옥 할머니 추모제로 진행하였습니다. 주관은 대학생 역사동아리에서 하였고 사회는 서예진 역동연 전국대표님이 보았습니다.
먼저 길원옥 할머니와 먼저 가신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을 추모하며 묵념을 올렸습니다.
서예진 역동연 대표님의 주관단체 인사말 후 추모사가 이어졌습니다. 수요시위 자원활동가 임계재 님, 평화나비 네트워크 강태성 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해주셨습니다. 이어 현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특별전시 중인 <평화와 소녀, 상>에서 <노래하는 집, 길원옥>을 전시 중인 한톨 작가님, 호랑 전 정의연 활동가가 보내준 길원옥 할머니께 쓴 편지를 정의연 활동가들이 대독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에서 보내 주신 추모사를 정의연 활동가가 읽었습니다.
그리고 추모의 마음을 담아 헌화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길원옥 할머니를 보내드리기 위해 평화로에 모인 많은 참가자들이 차례로 꽃을 한 송이씩 할머니께 올리며 추모와 평화를 향한 다짐의 마음을 보내 드렸습니다.
추모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극단 경험과 상상에서 <노래가 된 할머니, 길원옥>을 공연해 주셨습니다. 길원옥 할머니들을 비롯한 많은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목소리, 다짐, 이야기 들을 극과 노래로 풀어 감동적인 무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1부 길원옥 할머니 추모제를 마치고 2부 1688차 수요시위를 진행했습니다.
가장 먼저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이어 연대발언이 있었습니다. 역동연 소속 서울여대 사다리 전혜림 회장님, 성공회대 25학번 (연DAY) 조현수 님, 일본 유스포럼 후쿠오카 시마다 켄지, 아리타 히로키 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하였습니다.
역동연 소속 서울여대 사다리 전혜림 회장님과 역동연 소속 한양대 사다리 안재현 님이 추모와 다짐의 마음을 담은 1688차 수요시위 성명서 낭독을 한 뒤 마지막으로 역동연 소속 서울-인천 사다리 회원들과 참가자들이 함께 길원옥 할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바위처럼>에 맞춰 신나는 율동을 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주관단체인 대학생 역사동아리 외 서울 인천 사다리, 진보당, 전국여성연대,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천주의 성요한수도회, 사월혁명회(사무처장 한찬욱), 진보대학생넷, 평화나비 네트워크, 사람과평화(용인시), 성심수녀회,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연대, 이화여대 사다리, 천주섭리수녀회, 경기청소년평화나비, 한국YWCA, 독일 프랑크푸르트, 성미산학교, 윤철우, 조서희, 오늘도 우리는 연데이, 김민혁, 강다현, 민족통일애국청년회, 아카이브평화기억, 성공회대학교 사회윤합학부 학생회 /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김윤희, 조성두(역사기억평화연대), 장은영(한국작가회의), 김항곤(역사기억평화행동), 임연화, 이경희, 구로푸른학교지역아동센터,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홍덕진 목사, 이화여대 노학연대모임 바위, 천주교 장상연합회 JPIC, 구로여성회, 김가비, 김상률, 김서현(청년촛불행동), 박지영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온라인 댓글로는 장상욱, 제주도푸른달, Sung Park(시애틀늘푸른연대), Friends of 'Comfort Women' in Sydney – 시소연, 우순덕, skylove185, 박은덕, 조안구달, Yoonseo Lee, 권채현, 김삐약, 이민기, 인스톨, 제2독립군TV, 푸른민주, SAYU, 오구구, 각두헴, 하얀 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수어 통역은 현서영 님께서,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추모사_강태성 평화나비 네트워크
"하나님. 우리 아이들은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게 해주세요."
길원옥 할머님께서 생의 마지막에 이렇게 기도하시고 눈을 감으셨을 것 같습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에서 인권운동가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시고, 젊은 아이들에게 일본군 성노예제를 알려 오셨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이 씨가 되고, 땀방울이 비가 되어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는 모든 청춘들이 피어날 수 있었습니다.
길원옥 할머니는 저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할머니였습니다.
대학생 1학년이었던 2019년, 노래를 좋아하는 저는 우연히 길원옥 할머니의 음반에 코러스로 참여했었습니다. 그 때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을 알기 전이었습니다.
코로나와 군생활로 5년을 보내고, 2024년 대학교로 돌아와 처음 하게 된 동아리가 '평화나비 네트워크'였습니다. 노란색 포스터가 눈에 띄어서 들어갔던 동아리가, 이렇게 깊은 인연이 되었습니다.
작년 한해, 평화나비 활동을 하며 공교육에서 배우지 못했던 일본군 성노예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8.14아카이브를 통해 '노래를 좋아하는 할머니'로만 알던 길원옥 할머니께서 겪었던 일을 알게 되고, 꽃다운 청소년 나이에 '여자로서의 삶이 끝났다'며 삶을 체념하는 소녀일 적 할머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길원옥 할머니께서는 살아계실 적 수요시위에 나오시면 어린 학생들의 손을 꼬옥 잡아주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 일제의 전쟁범죄에 짓밟혔던 할머니의 소원은 바로 우리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대학생들이 '길원옥'이 되어 이 땅에 평화를 이루고, 할머님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해 나가겠습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안녕히가세요.
추모사_한톨 <노래하는 집, 길원옥> 작가
길원옥 님에게.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 가까운 날 동안 저는 당신의 시같은 말 한마디에 흔들리고 떨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이전에 알았지만 몰랐고, 기억했지만 기억하지 못했던 순간과 감정들이 이전보다 더 선명해지고 깊어졌습니다. 당신을 애정하게 되는 날에는 흐르는 눈물을 멈추기가 어려워 곤욕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세상에 들어가 사는 동안에는 제 안에 심고 싶은 마음의 씨앗이 별처럼 가득했는데, 제 안에 담을 수 없는 씨앗들을 줍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어요.
어쩌면, 긴 세월동안 당신이 세상에 뿌린 씨앗들이 세상에 천지인데, 보지 못하고 지나쳤을거예요. 정말 소중한 씨앗들은 거두지 못하고, 씨앗이 아닌 것들에 마음과 몸을 주며 바쁘게 지냈던 저를 종종 돌아보곤 했습니다.
당신의 경험이 가득찬, 당신의 말은 씨앗처럼 작고 담백했지만, 그 앞에 서면 그 작은 씨앗보다 저는 더 작았습니다. 당신이 부르는 노래는 강렬하게 흘러넘치지 않았지만, 언 땅을 녹이고 적시는 봄비처럼 마음을 충분히 적셔주었어요. 당신은 따뜻한 담요가 되어 세상을 감싸주었지만, 당신은 무엇을 더 걸칠 생각없이 충분하다 했습니다. 당신의 노래는 맺힌 ‘한’을 풀어주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끝없는 지옥에 머물러, 반복되는 고통에 머물러야 하는 감정에 자유를 주는 법을 터득하신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당신을 조금은 닮아가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당신이 부른 ‘남원의 봄 사건’을 듣고도 바로 남원에 올 생각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저를 지금, 남원에 있게 해주었습니다. 다른 의미로 저는 남원에서 봄 사건을 맞았습니다. 당신이 자유로워졌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래서 이제는 당신을 만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제는 당신을 그리워하는 일로 당신을 그려야 한다는 소식. 그래서 어쩌면 생명이 태동하는 이 봄에 많은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떠난 당신의 소식은 저에게 ‘남원의 봄 사건’이 되었어요.
남원은 따뜻합니다.
흙내음이 가득하고,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다니고, 밤에는 고라니가 지나다닙니다.
목련에 꽃봉오리가 가득 찼습니다.
땅은 숨을 쉬고, 싹이 오를 틈이 보입니다.
길원옥 님,
곧 맞이할 아름다운 세상을 하늘에서 바라봐주세요.
저와 여름이도 당신을 바라보며 미소와 눈물을 종종 보내겠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곧 뵈어요.
한톨, 한여름 드림. 2025.02.17
추모사_호랑 정의연 전 활동가
길원옥 할머니께
일하면서 여러 장례식에 다녔습니다.
어떤 죽음은 더 가까이 느껴지기도 하고, 더 멀리 느껴지기도 합니다.
할머니를 뵌 건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깐 쉼터에 들렀을 때 꺼내주신 달달한 아이스크림이 기억납니다.
이제 막 시작한 활동가라 그런지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주눅만 들어 더 힘든 날이었는데
아무리 바빠도 먹고 하라며 주신 아이스크림이 그날 하루 덜 울고 일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몇 년간
할머니들께서 다 가시기 전까지는 끝까지 해야겠다던 대단한 사명감도 잊고
생각보다 내 친할머니와는 보낸 시간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한참 떨어져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소장님이 돌아가신 후 쉼터에서 보내신 마지막 밤이 기억나서일까요.
그 많은 사람들, 무서운 카메라들 앞에서 누구보다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노래하시는 할머니께서
거의 매일 같이 보던 캠코더와 쉽게 눈을 맞추지 못하시던 모습이
슬프지, 보고 싶지, 라고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시는 모습에
그날은 조금 더 속으로 울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모습이 어떠셨는지.
그 뒤로 5년 정도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셨는지.
나눠주신 만큼의 용기와 사랑은 되돌려 받으셨는지.
답답한 세상 속에서 웃음거리를 찾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떨어져 있는 시간만큼, 그 거리만큼
멀리 느껴져야 할 할머니의 소식이
왜 이리 가깝게 느껴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따뜻한 곳에서 나비처럼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봄이 오면 더 좋은 곳에서 뵈어요.
추모사_일본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
“전쟁 없는 나라, 평화의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길원옥 할머니가 처음 일본에 오셨을 때 일본 국회의원과 일본시민들 앞에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들려옵니다. 일본시민들이 할머니를 처음 뵌 것은 2002년이었습니다. 선한 성품과 평화를 지향하는 확고한 신념이 우러나오는 할머니의 말씀은 일본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그 후 우리들은 할머니의 말씀을 더 듣고 싶어서 여러번 할머니를 초청했습니다. 특히 2010년 2월에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전국행동이 결성되자, 그 해 11월에 할머니는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한국시민 50만명의 서명과 함께 몸소 일본 국회로 와 주셨고, 2013년 5월에는 히로시마, 후쿠야마, 오사카 등 일본 각지 시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과 평화 구축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노래할 때 행복해 하신 할머니, 정대협 식구들과 농담하시면서 배꼽 잡으며 웃으신 할머니, 온 힘을 다 해 평화를 호소하신 할머니, 모든 사람들에게 자상하신 할머니, ‘착하다’는 말을 귀하게 여기신 할머니를.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할머니가 그렇게 원하신 평화의 나라,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야 할 우리들의 과제를.
할머니, 할머니의 뜻을 우리가 꼭 이어갈테니, 이제 고단하셨던 이 세상의 일들 내려놓고 편히 쉬세요. 일본에서 역사인식을 바로 세우고 일본정부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명백하게 인정하도록 전국행동은 앞으로도 계속 투쟁해 나가겠습니다.
2025년 2월 19일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전국행동
제168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간보고
지난 16일, 우리 곁에서 또 한분의 피해생존자가 세상을 뜨셨습니다. 끔찍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노래를 즐겨 부르는 다정한 여성으로, 강인한 인권운동가로 살아가신 길원옥 할머니, 끝끝내 일본 정부의 진정어린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지 못하신 채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비통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991년 8월, 고 김학순 할머니의 일성으로 시작된 피해생존자들의 요구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넘어 전 세계를 뒤흔들고 국제 인권규범에 커다란 진전을 가져왔지만 여전히 일본 정부는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고노담화에서 스스로가 한 작은 약속마저 뒤집으며 역사부정과 왜곡에 몰두해 왔습니다. 피해자들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법원에 호소해 승소판결을 받아냈지만 이마저도 무시하고 있습니다.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성노예는 없었다’, ‘강제동원이 아니’라는 식의 거짓말을 거침없이 쏟아내 왔습니다. 일본 극우의 심장을 가진 한국인들은 참담하게도 대한민국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들을 모욕하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또한 일방적으로 일본 정부의 편을 들어 자국 피해자들의 권리를 빼앗으며 극우 역사부정론에 편승해 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길원옥 할머니. 어렵게 용기 내어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고 세계 곳곳을 돌며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주셨건만, 그 모든 민망하고 서글픈 상황을 보시게 해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그립습니다, 할머니. 우리를 달래 주고 웃게 했던 그 다정한 목소리, 노랫가락... 2020년 그 잔인하던 봄에 손영미 소장님을 망연자실 떠나보내고 돌아온 날, 갑작스럽게 쉼터를 떠나시면서 잡아주던 따듯한 손... 무엇보다 평생 품었던 평화에 대한 간절한 마음....모두 잊지 않겠습니다.
길원옥의 시간, 길원옥의 소망, 길원옥의 사랑, 길원옥의 용기 있는 실천, 이제는 우리가 이어나가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고통도 슬픔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그토록 가고 싶던 고향 땅도 훨훨 날아가시고 보고 싶었던 부모님도 만나세요.
그 어느 때보다 국내정치와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있지만 정의기억연대는 흔들리지 않고 길원옥의 정신을 이어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2025년 2월 19일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
연대발언_전혜림 역동연 소속 서울여대 사다리 회장
오늘은 윤석열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뒤 시민들이 매일같이 거리로 나와 광장을 지켜온지 벌써 76일째(2/19기준)입니다. 12월은 도대체 어떻게 지나갔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운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내란수괴 윤석열을 위해서 서부지법을 불법점거한 폭동사태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이었습니다. 공권력에 대항하는 것은 헌법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그들의 뒤엔 윤석열이 있습니다. 현재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재판을 받는 중이지만, 여전히 국정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극우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발언과 거짓뉴스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시간을 끄는 그의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의 악행은 집권 당시에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내일을 이야기하는데에 중요한 근간이 되는 ‘우리의 역사’를 위협했습니다. 뉴라이트가 집필한 검정교과서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독재정권, 그리고 수많은 학살을 정당화하는 역사왜곡 투성이었습니다.
그와 뜻을 함께하고 있는 정부 인사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안창호 위원장. 인권을 수호하고, 어느 기관보다 정의로운 목소리를 앞장서 내야 할 인권위에서 믿을 수 없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집회우선권이 있다며 수요시위 방해단체의 손을 들어 준 것입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 10일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강행한 <윤석열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 권고안>은 후대에게 기억될 인권위의 수치스러운 과거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가치를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거리낌 없이 훼손시키고, 일상을 빼앗은 윤석열과 이에 동조하는 모든 세력을 규탄하고 연대의 광장에서 함께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고있는 이 이 자리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매주 수요일, 이곳을 지켜오셨던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이자 여성운동가이신 故 길원옥 할머니의 삶과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 할머니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역사왜곡을 일삼는 정부를 대학생이 앞장서서 막고 할머니의 뜻을 따라 전쟁이 없는, 평화가 지켜지는, 인권이 가장 먼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연대발언_조현수 성공회대 25학번 (연DAY)
안녕하세요 저는 성공회대학교 25학번 조현수라고 합니다.
지난 16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이신 길원옥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생존자 할머니는 7분 남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존자 할머니께서 돌아가신다고 해서 우리의 저항의 역사가 끝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길원옥 할머니는 생전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우리들 다 죽어도 없어질 줄 알지만, 아니죠, 우리들이 다 죽고 없어져도 우리 후손 아이들이 없나요? 끝끝내 시위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것 받고 사과받을 것 받아야지 끝이 나지 우리가 다 죽는다고 끝이 나는 것이 아니거든요.” 기억은 힘이 셉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할머니분들의 의지를 기억으로서 이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제가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으로 연대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선 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국과 일본 간의 민족적인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앞으로도 않을려고 노력합니다. 중국의 ‘위안부’ 문제 연구자인 수 즈량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총 41만명으로 추측되며 그중 14만 2000여명이 조선인이라고 합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위안부’ 피해자에게만 사죄한다고 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밖에도 일본에게 사과 받아야하는 수 십만의 여성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족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들과 국제적인 연대가 필요합니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41만명의 여성들이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간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국가가 여성의 인권을 비참하게 유린한 41만개의 사건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41만명의 여성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 사건에 대해 한 번의 연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사건에 대해 수 많은 연대가 필요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정말 많은 지역에서 와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았던 지역인 산청에서는 김우명달 할머니와 김옥순 할머니가 계셨고 그분들을 기억할 수 있는 소녀상과 할매길 걷기가 있습니다. 매년 봄이 되면 선생님과 친구들, 마을 주민분들과 같이 소녀상부터 김우명달 할머니 묘소까지 걸으면서 우리 지역의 할머니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분명 여러분이 살고 계신 지역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께서 살아계셨을 것입니다. 이번 수요집회가 끝이 나고 집에 돌아가서는 꼭 지역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께서 누가 계셨는지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 기억해주십시오. 연대라는 것은 그리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커다란 연대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시마다 켄지, 아리타 히로키 일본 유스포럼 후쿠오카
안녕하세요. 우리는 후쿠오카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Youth Forum Fukuoka입니다. 저희는 2019년 2월 27일에도 '위안부' 문제를 배우기 위한 현장 학습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이 자리에 선 적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성범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차별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 착취를 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고 울며 잠드는 날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고발하면 SNS에서 2차 피해를 입는 일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은 인간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 소중한 성을 착취하고 모욕하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자'로서 살아가는 저에게는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성적 착취가 있을 것입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보고 못 본 척하는 것은 그 착취에 가담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성의 마음으로 성차별을 없애야 합니다.
어느 책에 쓰여 있던 내용인데요.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차별과 마주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부디 일본 정부와 성범죄자, 그리고 그 배경에 있는 우리들은 그 용기를 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하루빨리 그 용기를 가지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을 향해 나아가고, 사과와 그 책임을 지는 정부가 되어 주십시오.
성차별은 사회 전체가 함께 맞서야 할 문제입니다. 할머님과 성폭력 피해자가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 용기를 가지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みなさん、こんにちは。私たちは福岡を拠点にしているYouth Forum Fukuokaです。私たちは2019年2月27日にも、「慰安婦」問題を学ぶためのフィールドワークとして韓国を訪れ、この場にも登壇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あれから6年が経過しましたが、日本軍「慰安婦」問題は解決されませんでした。本当に申し訳ないです。
年々、世界的に性犯罪が続いています。性差別は明るみになってきてはいますが、それでも性的搾取にあい、多くの人が泣き寝入りしなければならない状況が続いています。また、告発するとSNSでセカンドレイプされてしまうこともおきています。
性は人間にとって大事なことです。その大切な性を搾取し、侮辱する行為がずっと続いています。「男」としていきている私には、気づけていない性的搾取があるはずです。私には、到底理解できない、理解できるはずもないことがずっと起こり続けています。そして、このことを見て見ぬふりをすることは、その搾取に加担しているとも言えるでしょう。ですので、自戒の念を込めて、性差別はなくし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とある本に書いていたことですが、自分のうちにある差別と向き合うには勇気が必要です。どうか日本政府と、性加害者、また、それらの背景にある私たちはその勇気をもつことを恐れないでください。一日も早くその勇気をもって日本軍「慰安婦」問題が解決へと向かい、謝罪とその責任を負う政府となってください。
性差別は、社会全体で向き合い続けていく必要があります。ハルモニと性被害者への癒しがありますように。私も、その勇気を持っていき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168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2월 16일 별세하신 길원옥 할머니 추모제로 진행하였습니다. 주관은 대학생 역사동아리에서 하였고 사회는 서예진 역동연 전국대표님이 보았습니다.
먼저 길원옥 할머니와 먼저 가신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을 추모하며 묵념을 올렸습니다.
서예진 역동연 대표님의 주관단체 인사말 후 추모사가 이어졌습니다. 수요시위 자원활동가 임계재 님, 평화나비 네트워크 강태성 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해주셨습니다. 이어 현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특별전시 중인 <평화와 소녀, 상>에서 <노래하는 집, 길원옥>을 전시 중인 한톨 작가님, 호랑 전 정의연 활동가가 보내준 길원옥 할머니께 쓴 편지를 정의연 활동가들이 대독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에서 보내 주신 추모사를 정의연 활동가가 읽었습니다.
그리고 추모의 마음을 담아 헌화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길원옥 할머니를 보내드리기 위해 평화로에 모인 많은 참가자들이 차례로 꽃을 한 송이씩 할머니께 올리며 추모와 평화를 향한 다짐의 마음을 보내 드렸습니다.
추모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극단 경험과 상상에서 <노래가 된 할머니, 길원옥>을 공연해 주셨습니다. 길원옥 할머니들을 비롯한 많은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목소리, 다짐, 이야기 들을 극과 노래로 풀어 감동적인 무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1부 길원옥 할머니 추모제를 마치고 2부 1688차 수요시위를 진행했습니다.
가장 먼저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이어 연대발언이 있었습니다. 역동연 소속 서울여대 사다리 전혜림 회장님, 성공회대 25학번 (연DAY) 조현수 님, 일본 유스포럼 후쿠오카 시마다 켄지, 아리타 히로키 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하였습니다.
역동연 소속 서울여대 사다리 전혜림 회장님과 역동연 소속 한양대 사다리 안재현 님이 추모와 다짐의 마음을 담은 1688차 수요시위 성명서 낭독을 한 뒤 마지막으로 역동연 소속 서울-인천 사다리 회원들과 참가자들이 함께 길원옥 할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바위처럼>에 맞춰 신나는 율동을 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주관단체인 대학생 역사동아리 외 서울 인천 사다리, 진보당, 전국여성연대,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천주의 성요한수도회, 사월혁명회(사무처장 한찬욱), 진보대학생넷, 평화나비 네트워크, 사람과평화(용인시), 성심수녀회,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연대, 이화여대 사다리, 천주섭리수녀회, 경기청소년평화나비, 한국YWCA, 독일 프랑크푸르트, 성미산학교, 윤철우, 조서희, 오늘도 우리는 연데이, 김민혁, 강다현, 민족통일애국청년회, 아카이브평화기억, 성공회대학교 사회윤합학부 학생회 /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김윤희, 조성두(역사기억평화연대), 장은영(한국작가회의), 김항곤(역사기억평화행동), 임연화, 이경희, 구로푸른학교지역아동센터,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홍덕진 목사, 이화여대 노학연대모임 바위, 천주교 장상연합회 JPIC, 구로여성회, 김가비, 김상률, 김서현(청년촛불행동), 박지영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온라인 댓글로는 장상욱, 제주도푸른달, Sung Park(시애틀늘푸른연대), Friends of 'Comfort Women' in Sydney – 시소연, 우순덕, skylove185, 박은덕, 조안구달, Yoonseo Lee, 권채현, 김삐약, 이민기, 인스톨, 제2독립군TV, 푸른민주, SAYU, 오구구, 각두헴, 하얀 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수어 통역은 현서영 님께서,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추모사_강태성 평화나비 네트워크
"하나님. 우리 아이들은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게 해주세요."
길원옥 할머님께서 생의 마지막에 이렇게 기도하시고 눈을 감으셨을 것 같습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에서 인권운동가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시고, 젊은 아이들에게 일본군 성노예제를 알려 오셨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이 씨가 되고, 땀방울이 비가 되어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는 모든 청춘들이 피어날 수 있었습니다.
길원옥 할머니는 저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할머니였습니다.
대학생 1학년이었던 2019년, 노래를 좋아하는 저는 우연히 길원옥 할머니의 음반에 코러스로 참여했었습니다. 그 때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을 알기 전이었습니다.
코로나와 군생활로 5년을 보내고, 2024년 대학교로 돌아와 처음 하게 된 동아리가 '평화나비 네트워크'였습니다. 노란색 포스터가 눈에 띄어서 들어갔던 동아리가, 이렇게 깊은 인연이 되었습니다.
작년 한해, 평화나비 활동을 하며 공교육에서 배우지 못했던 일본군 성노예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8.14아카이브를 통해 '노래를 좋아하는 할머니'로만 알던 길원옥 할머니께서 겪었던 일을 알게 되고, 꽃다운 청소년 나이에 '여자로서의 삶이 끝났다'며 삶을 체념하는 소녀일 적 할머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길원옥 할머니께서는 살아계실 적 수요시위에 나오시면 어린 학생들의 손을 꼬옥 잡아주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 일제의 전쟁범죄에 짓밟혔던 할머니의 소원은 바로 우리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대학생들이 '길원옥'이 되어 이 땅에 평화를 이루고, 할머님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해 나가겠습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안녕히가세요.
추모사_한톨 <노래하는 집, 길원옥> 작가
길원옥 님에게.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 가까운 날 동안 저는 당신의 시같은 말 한마디에 흔들리고 떨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이전에 알았지만 몰랐고, 기억했지만 기억하지 못했던 순간과 감정들이 이전보다 더 선명해지고 깊어졌습니다. 당신을 애정하게 되는 날에는 흐르는 눈물을 멈추기가 어려워 곤욕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세상에 들어가 사는 동안에는 제 안에 심고 싶은 마음의 씨앗이 별처럼 가득했는데, 제 안에 담을 수 없는 씨앗들을 줍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어요.
어쩌면, 긴 세월동안 당신이 세상에 뿌린 씨앗들이 세상에 천지인데, 보지 못하고 지나쳤을거예요. 정말 소중한 씨앗들은 거두지 못하고, 씨앗이 아닌 것들에 마음과 몸을 주며 바쁘게 지냈던 저를 종종 돌아보곤 했습니다.
당신의 경험이 가득찬, 당신의 말은 씨앗처럼 작고 담백했지만, 그 앞에 서면 그 작은 씨앗보다 저는 더 작았습니다. 당신이 부르는 노래는 강렬하게 흘러넘치지 않았지만, 언 땅을 녹이고 적시는 봄비처럼 마음을 충분히 적셔주었어요. 당신은 따뜻한 담요가 되어 세상을 감싸주었지만, 당신은 무엇을 더 걸칠 생각없이 충분하다 했습니다. 당신의 노래는 맺힌 ‘한’을 풀어주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끝없는 지옥에 머물러, 반복되는 고통에 머물러야 하는 감정에 자유를 주는 법을 터득하신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당신을 조금은 닮아가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당신이 부른 ‘남원의 봄 사건’을 듣고도 바로 남원에 올 생각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저를 지금, 남원에 있게 해주었습니다. 다른 의미로 저는 남원에서 봄 사건을 맞았습니다. 당신이 자유로워졌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래서 이제는 당신을 만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제는 당신을 그리워하는 일로 당신을 그려야 한다는 소식. 그래서 어쩌면 생명이 태동하는 이 봄에 많은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떠난 당신의 소식은 저에게 ‘남원의 봄 사건’이 되었어요.
남원은 따뜻합니다.
흙내음이 가득하고,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다니고, 밤에는 고라니가 지나다닙니다.
목련에 꽃봉오리가 가득 찼습니다.
땅은 숨을 쉬고, 싹이 오를 틈이 보입니다.
길원옥 님,
곧 맞이할 아름다운 세상을 하늘에서 바라봐주세요.
저와 여름이도 당신을 바라보며 미소와 눈물을 종종 보내겠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곧 뵈어요.
한톨, 한여름 드림. 2025.02.17
추모사_호랑 정의연 전 활동가
길원옥 할머니께
일하면서 여러 장례식에 다녔습니다.
어떤 죽음은 더 가까이 느껴지기도 하고, 더 멀리 느껴지기도 합니다.
할머니를 뵌 건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깐 쉼터에 들렀을 때 꺼내주신 달달한 아이스크림이 기억납니다.
이제 막 시작한 활동가라 그런지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주눅만 들어 더 힘든 날이었는데
아무리 바빠도 먹고 하라며 주신 아이스크림이 그날 하루 덜 울고 일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몇 년간
할머니들께서 다 가시기 전까지는 끝까지 해야겠다던 대단한 사명감도 잊고
생각보다 내 친할머니와는 보낸 시간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한참 떨어져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소장님이 돌아가신 후 쉼터에서 보내신 마지막 밤이 기억나서일까요.
그 많은 사람들, 무서운 카메라들 앞에서 누구보다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노래하시는 할머니께서
거의 매일 같이 보던 캠코더와 쉽게 눈을 맞추지 못하시던 모습이
슬프지, 보고 싶지, 라고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시는 모습에
그날은 조금 더 속으로 울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모습이 어떠셨는지.
그 뒤로 5년 정도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셨는지.
나눠주신 만큼의 용기와 사랑은 되돌려 받으셨는지.
답답한 세상 속에서 웃음거리를 찾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떨어져 있는 시간만큼, 그 거리만큼
멀리 느껴져야 할 할머니의 소식이
왜 이리 가깝게 느껴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따뜻한 곳에서 나비처럼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봄이 오면 더 좋은 곳에서 뵈어요.
추모사_일본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
“전쟁 없는 나라, 평화의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길원옥 할머니가 처음 일본에 오셨을 때 일본 국회의원과 일본시민들 앞에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들려옵니다. 일본시민들이 할머니를 처음 뵌 것은 2002년이었습니다. 선한 성품과 평화를 지향하는 확고한 신념이 우러나오는 할머니의 말씀은 일본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그 후 우리들은 할머니의 말씀을 더 듣고 싶어서 여러번 할머니를 초청했습니다. 특히 2010년 2월에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전국행동이 결성되자, 그 해 11월에 할머니는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한국시민 50만명의 서명과 함께 몸소 일본 국회로 와 주셨고, 2013년 5월에는 히로시마, 후쿠야마, 오사카 등 일본 각지 시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과 평화 구축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노래할 때 행복해 하신 할머니, 정대협 식구들과 농담하시면서 배꼽 잡으며 웃으신 할머니, 온 힘을 다 해 평화를 호소하신 할머니, 모든 사람들에게 자상하신 할머니, ‘착하다’는 말을 귀하게 여기신 할머니를.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할머니가 그렇게 원하신 평화의 나라,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야 할 우리들의 과제를.
할머니, 할머니의 뜻을 우리가 꼭 이어갈테니, 이제 고단하셨던 이 세상의 일들 내려놓고 편히 쉬세요. 일본에서 역사인식을 바로 세우고 일본정부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명백하게 인정하도록 전국행동은 앞으로도 계속 투쟁해 나가겠습니다.
2025년 2월 19일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전국행동
제168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간보고
지난 16일, 우리 곁에서 또 한분의 피해생존자가 세상을 뜨셨습니다. 끔찍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노래를 즐겨 부르는 다정한 여성으로, 강인한 인권운동가로 살아가신 길원옥 할머니, 끝끝내 일본 정부의 진정어린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지 못하신 채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비통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991년 8월, 고 김학순 할머니의 일성으로 시작된 피해생존자들의 요구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넘어 전 세계를 뒤흔들고 국제 인권규범에 커다란 진전을 가져왔지만 여전히 일본 정부는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고노담화에서 스스로가 한 작은 약속마저 뒤집으며 역사부정과 왜곡에 몰두해 왔습니다. 피해자들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법원에 호소해 승소판결을 받아냈지만 이마저도 무시하고 있습니다.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성노예는 없었다’, ‘강제동원이 아니’라는 식의 거짓말을 거침없이 쏟아내 왔습니다. 일본 극우의 심장을 가진 한국인들은 참담하게도 대한민국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들을 모욕하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또한 일방적으로 일본 정부의 편을 들어 자국 피해자들의 권리를 빼앗으며 극우 역사부정론에 편승해 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길원옥 할머니. 어렵게 용기 내어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고 세계 곳곳을 돌며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주셨건만, 그 모든 민망하고 서글픈 상황을 보시게 해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그립습니다, 할머니. 우리를 달래 주고 웃게 했던 그 다정한 목소리, 노랫가락... 2020년 그 잔인하던 봄에 손영미 소장님을 망연자실 떠나보내고 돌아온 날, 갑작스럽게 쉼터를 떠나시면서 잡아주던 따듯한 손... 무엇보다 평생 품었던 평화에 대한 간절한 마음....모두 잊지 않겠습니다.
길원옥의 시간, 길원옥의 소망, 길원옥의 사랑, 길원옥의 용기 있는 실천, 이제는 우리가 이어나가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고통도 슬픔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그토록 가고 싶던 고향 땅도 훨훨 날아가시고 보고 싶었던 부모님도 만나세요.
그 어느 때보다 국내정치와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있지만 정의기억연대는 흔들리지 않고 길원옥의 정신을 이어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2025년 2월 19일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
연대발언_전혜림 역동연 소속 서울여대 사다리 회장
오늘은 윤석열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뒤 시민들이 매일같이 거리로 나와 광장을 지켜온지 벌써 76일째(2/19기준)입니다. 12월은 도대체 어떻게 지나갔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운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내란수괴 윤석열을 위해서 서부지법을 불법점거한 폭동사태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이었습니다. 공권력에 대항하는 것은 헌법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그들의 뒤엔 윤석열이 있습니다. 현재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재판을 받는 중이지만, 여전히 국정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극우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발언과 거짓뉴스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시간을 끄는 그의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의 악행은 집권 당시에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내일을 이야기하는데에 중요한 근간이 되는 ‘우리의 역사’를 위협했습니다. 뉴라이트가 집필한 검정교과서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독재정권, 그리고 수많은 학살을 정당화하는 역사왜곡 투성이었습니다.
그와 뜻을 함께하고 있는 정부 인사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안창호 위원장. 인권을 수호하고, 어느 기관보다 정의로운 목소리를 앞장서 내야 할 인권위에서 믿을 수 없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집회우선권이 있다며 수요시위 방해단체의 손을 들어 준 것입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 10일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강행한 <윤석열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 권고안>은 후대에게 기억될 인권위의 수치스러운 과거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가치를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거리낌 없이 훼손시키고, 일상을 빼앗은 윤석열과 이에 동조하는 모든 세력을 규탄하고 연대의 광장에서 함께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고있는 이 이 자리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매주 수요일, 이곳을 지켜오셨던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이자 여성운동가이신 故 길원옥 할머니의 삶과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 할머니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역사왜곡을 일삼는 정부를 대학생이 앞장서서 막고 할머니의 뜻을 따라 전쟁이 없는, 평화가 지켜지는, 인권이 가장 먼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연대발언_조현수 성공회대 25학번 (연DAY)
안녕하세요 저는 성공회대학교 25학번 조현수라고 합니다.
지난 16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이신 길원옥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생존자 할머니는 7분 남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존자 할머니께서 돌아가신다고 해서 우리의 저항의 역사가 끝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길원옥 할머니는 생전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우리들 다 죽어도 없어질 줄 알지만, 아니죠, 우리들이 다 죽고 없어져도 우리 후손 아이들이 없나요? 끝끝내 시위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것 받고 사과받을 것 받아야지 끝이 나지 우리가 다 죽는다고 끝이 나는 것이 아니거든요.” 기억은 힘이 셉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할머니분들의 의지를 기억으로서 이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제가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으로 연대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선 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국과 일본 간의 민족적인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앞으로도 않을려고 노력합니다. 중국의 ‘위안부’ 문제 연구자인 수 즈량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총 41만명으로 추측되며 그중 14만 2000여명이 조선인이라고 합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위안부’ 피해자에게만 사죄한다고 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밖에도 일본에게 사과 받아야하는 수 십만의 여성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족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들과 국제적인 연대가 필요합니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41만명의 여성들이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간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국가가 여성의 인권을 비참하게 유린한 41만개의 사건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41만명의 여성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 사건에 대해 한 번의 연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사건에 대해 수 많은 연대가 필요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정말 많은 지역에서 와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았던 지역인 산청에서는 김우명달 할머니와 김옥순 할머니가 계셨고 그분들을 기억할 수 있는 소녀상과 할매길 걷기가 있습니다. 매년 봄이 되면 선생님과 친구들, 마을 주민분들과 같이 소녀상부터 김우명달 할머니 묘소까지 걸으면서 우리 지역의 할머니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분명 여러분이 살고 계신 지역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께서 살아계셨을 것입니다. 이번 수요집회가 끝이 나고 집에 돌아가서는 꼭 지역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께서 누가 계셨는지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 기억해주십시오. 연대라는 것은 그리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커다란 연대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시마다 켄지, 아리타 히로키 일본 유스포럼 후쿠오카
안녕하세요. 우리는 후쿠오카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Youth Forum Fukuoka입니다. 저희는 2019년 2월 27일에도 '위안부' 문제를 배우기 위한 현장 학습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이 자리에 선 적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성범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차별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 착취를 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고 울며 잠드는 날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고발하면 SNS에서 2차 피해를 입는 일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은 인간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 소중한 성을 착취하고 모욕하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자'로서 살아가는 저에게는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성적 착취가 있을 것입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보고 못 본 척하는 것은 그 착취에 가담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성의 마음으로 성차별을 없애야 합니다.
어느 책에 쓰여 있던 내용인데요.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차별과 마주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부디 일본 정부와 성범죄자, 그리고 그 배경에 있는 우리들은 그 용기를 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하루빨리 그 용기를 가지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을 향해 나아가고, 사과와 그 책임을 지는 정부가 되어 주십시오.
성차별은 사회 전체가 함께 맞서야 할 문제입니다. 할머님과 성폭력 피해자가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 용기를 가지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みなさん、こんにちは。私たちは福岡を拠点にしているYouth Forum Fukuokaです。私たちは2019年2月27日にも、「慰安婦」問題を学ぶためのフィールドワークとして韓国を訪れ、この場にも登壇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あれから6年が経過しましたが、日本軍「慰安婦」問題は解決されませんでした。本当に申し訳ないです。
年々、世界的に性犯罪が続いています。性差別は明るみになってきてはいますが、それでも性的搾取にあい、多くの人が泣き寝入りしなければならない状況が続いています。また、告発するとSNSでセカンドレイプされてしまうこともおきています。
性は人間にとって大事なことです。その大切な性を搾取し、侮辱する行為がずっと続いています。「男」としていきている私には、気づけていない性的搾取があるはずです。私には、到底理解できない、理解できるはずもないことがずっと起こり続けています。そして、このことを見て見ぬふりをすることは、その搾取に加担しているとも言えるでしょう。ですので、自戒の念を込めて、性差別はなくし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とある本に書いていたことですが、自分のうちにある差別と向き合うには勇気が必要です。どうか日本政府と、性加害者、また、それらの背景にある私たちはその勇気をもつことを恐れないでください。一日も早くその勇気をもって日本軍「慰安婦」問題が解決へと向かい、謝罪とその責任を負う政府となってください。
性差別は、社会全体で向き合い続けていく必要があります。ハルモニと性被害者への癒しがありますように。私も、その勇気を持っていき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