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4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의 주관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팔연대)에서 하였고 사회는 누르 활동가님이 보았습니다.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의 <바위처럼>에 맞춘 힘찬 율동으로 수요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사회자님의 주관단체 인사말 후 연대발언으로 수요시위를 이어갔습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윤 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아프간 Arash Azizzada 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하였습니다.
이어 <Women’s Song For Gaza>이라는 노래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님들이 합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자아 님이 팔레스타인 시인 모하메드 엘-쿠르드의 시집 <리프카>에 있는 시를 낭독해 주셨습니다.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여성위원회 위원장 김은정 목사님과 홋카이도 가이키렌(Hokkaido Gaikiren) / 일본그리스도교단(UCCJ) SHIMIZU Kazue(清水和恵) 목사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해주셨습니다.
이어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참가단체 소개 후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미음, 소방도로 님이 성명서 낭독을 하며 1704차 정기 수요시위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주관단체인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외에 이화여대 노학연대모임 바위, 윤철우, 4.16 가족협의회 2학년 4반 임경빈(강승묵 엄마), 천주의성요한수도회 JPIC 정병철, 제11회 한일NCC양국협의회 대표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여성위원장, 일본그리스도교협의회(NCCJ), 와따나베 떼루오,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김선태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제1704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간보고
이재명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선 지 이제 일주일입니다. 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독재체제로 회귀하려던 극우·내란 세력의 획책도 봉쇄되었습니다. 온갖 역정보와 허위조작정보를 통해 대중의 불안과 불만을 조직해왔던 자들의 내전도 일단락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 시민들 덕분입니다. 지난 6개월 간 ‘빛의 광장’의 구심점,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여정도 어제 6월 10일 공식적인 막을 내렸습니다. 남은 과제를 각자의 삶과 운동의 장에서 더 적극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입니다.
1300여개 단체로 시작해 전국 1739개 단체로 확대된 비상행동은 서울에서만 70차례의 집회를 열었고, 140여 차례의 기자회견 등 긴급대응을 진행했으며, 118개 사회대개혁 과제를 모아냈습니다. 그 가운데 1000여 개의 시민발언이 광장을 가득 메웠으며, 서울을 넘어 전국 각지에서 10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함께 했습니다. Kpop의 민중가요화, 민중가요의 대중화를 통해 즐겁고 지치지 않는 집회, 혐오와 차별 없는 안전한 집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다양한 정체성을 횡단하는 연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상호돌봄과 상호이해로 매일매일 보다 성장하고 확장되는 시민 연대를 일구었습니다.
비상행동의 공동의장단 단체인 정의기억연대도 때로는 응원봉으로, 때로는 깃발로, 때로는 키세스로, 국회와 광화문, 남태령과 한남동, 안국동 헌재 앞에서 윤석열 탄핵과 극우·내란세력 청산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그토록 바라던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외치고 요구했습니다. 무너진 인권과 역사정의 복원을 위해 목소리 높였습니다.
비록 비상행동의 공식 활동은 막을 내리지만 극우·내란세력 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위한 우리의 발걸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제 식민지 친일·반민족·가부장 세력은 여전히 그 뿌리를 단단히 한 채 대한민국 정치, 사법, 경제, 행정, 언론, 학계의 ‘파워 엘리트’ 집단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네오파시스트 세력을 재정비하고 윤석열 같은 꼭두각시를 또 다시 내세워 실패한 내란을 교훈 삼아 재집권을 노릴 것입니다. 숭미·친일·반공주의로 무장한 이들은 미국 및 일본 극우와 연결해 민주주의와 평화를 수호하고자 하는 시민들 간의 연대를 무너뜨리려 할 것입니다. 세대 간, 성별 간, 지역 간, 이념 간 갈등의 골을 더욱 심화시키려 할 것입니다. 시민사회의 책임이 더욱 무겁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과제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비상행동과 6개 정당은 윤석열 즉각 파면과 내란청산, 차별과 혐오 정치의 배격, 다양성을 존중하고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 시민 참여가 보장된 민주주의 회복과 평화 실현, 사회대개혁을 위한 협력방안을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사회대개혁을 위한 광장시민의 목소리를 국정과제에 반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조와 절차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공약으로 제시된 ‘과거사 문제 등 민감한 현안 해결 노력’,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와 명예훼손 행위 금지 명시 및 처벌 근거 마련 등의 과제를 반드시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 정부 간 약속을 깨지 않겠다.’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혹여 식민지·전쟁범죄의 면죄부 발부로 착각한 일본 정부가 또 다른 망상을 품지 않게 해야 합니다. 국가 간 합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일본군성노예제와 같은 반인도적 범죄행위가 정치적 합의로 지워지거나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이를 부인하거나 피해자를 모독하는 행위는 또 다른 범죄 행위임을 힘주어 일관되게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반성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일본 정부가 세계사에 영원한 수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피해자들의 염원인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해야 한다고 당당히 요구해야 합니다.
지금 세계는 극우의 주류화, 주류의 극우화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분쟁과 전쟁, 내란과 내전이 끊이지 않고,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베트남, 팔레스타인, 미얀마 등 세계 곳곳의 전쟁과 분쟁 지역 피해자들을 지원해 온 정의기억연대는 앞으로도 피해자 보호와 존엄회복은 물론, 여성폭력과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극우 파시스트 세력의 발호를 저지하고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와 역사 정의를 지키는 길에 전 세계 시민들과 연대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습니다.
2025년 6월 11일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
연대발언_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Hello, my name is Yoon. It’s an honor to speak before you today.
I was born in the United States and have worked alongside migrant massage workers who suffer from police and state violence. Now, I’ve been living in Korea for over a year. Today, for the first time, I’m speaking in front of many of you in my imperfect Korean.
My grandfather was born in Japan, in the 1930s, my parents moved to the U.S. in the 1980s, and I was born there in 1992. And you have been protesting since the very year I was born, continuing the fight to this day!
The story of my family has always been one of migration between Japan, the U.S., and Korea. As a result, themes of war, migration, and imperialism have always been personal and important to us. Growing up watching family members join the U.S. military to gain papers or avoid deportation, I couldn’t help but question the loyalty we were supposed to feel toward the government.
Whether it’s the Japanese, Korean, or American government, none of them have given our people or our grandmothers the apologies and justice they deserve. But I’ve come to understand a deeper truth—that governments are born and they fall, and that happens within the span of our grandmothers’ lives.
Just as Palestinian grandmothers have lived longer than the Israeli state, so too have our Korean grandmothers lived longer than the Republic of Korea.
Our dignity, our loyalty, is not with the state, but within our grandmothers. The demands of our grandmothers are the true demands of the people.
An authoritarian, centralized state that does not respect the dignity of grandmothers will not respect the dignity of children, the land, or the people. High suicide rates and the forced displacement of women around U.S. military bases show us this truth. A state that ignores the demands of grandmothers will not hesitate to invade other countries to seize their resources. Just like the South Korean government.
Gendered state violence constantly tells us to lower our dignity and accept our place.
I didn’t grow up in a culture where all men were expected to join the military. Seeing militarism being justified based on gender here in Korea still feels strange to me, even after living here for a year. It’s something I continue to reflect on daily.
The movements led by our grandmothers allow Koreans, especially men, to imagine a future where they remember their inherent dignity. A future where the normalization of men enlisting in an army that supports the Israeli genocide of Gaza should never be allowed.
Mandatory military conscription is a clear form of gendered state violence. It places the bodies of non-men under the so-called “protection” of men, and that “protection” ultimately does not protect anyone. The military does not protect the people. It protects the state. The military does not protect the land. It protects the borders.
But I feel protected because of our grandmothers. Their presence still teaches me how to maintain true self-protection and dignity. I am deeply grateful for the lifetime of struggle my grandmothers went through,never bending in a world that seeks to normalize gendered state violence.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윤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태어나 경찰과 국가 폭력에 시달리는 이주 마사지 노동자들과 함께 활동해 왔고, 지금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1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족한 한국어로 많은 분들 앞에서 발언을 합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1930년대 일본에서 태어나셨고, 저희 부모님은 80년대 미국으로 가셨고, 저는 1992년 뉴저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제가 태어난 해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시위를 이어오고 계시죠.
저희 가족의 이야기는 늘 일본과 미국, 한국을 오가는 이주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전쟁, 이주, 제국주의는 항상 저희 가족에게 개인적이고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가족들은 서류를 얻기 위해, 혹은 강제추방을 피하기 위해 미군에 입대했습니다. 이런 가족들을 보고 자라면서 저는 정부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것을 당연히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이건 한국이건, 혹은 미국이건, 모든 정부들은 우리 민중과 할머니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사죄와 정의를 아직까지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정부는 탄생하고 또 무너진다는 것이죠. 그것은 종종 할머니들의 한 생애 안에도 일어납니다.
팔레스타인 할머니들이 이스라엘 국가보다 더 오래 살아왔듯이,
우리 한국의 할머니들도 대한민국 국가보다 오래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존엄성과 충성심은 국가가 아닌, 바로 우리의 할머니들 안에 있습니다.
할머니들의 요구가 진정한 민중들의 요구입니다.
할머니들의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는 권위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국가라면 아이들과, 땅과 민중들의 존엄도 존중하지 않을 겁니다. 높은 자살률이나, 미군 기지촌 주변에서 강제 이주되는 여성들의 모습이 이를 말해줍니다. 할머니들의 요구를 듣지 않는 국가는, 다른 나라들의 자원을 빼앗기 위한 침략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바로 한국 정부처럼요.
젠더에 따른 국가 폭력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합니다. 존엄성을 낮추라고, 주어진 위치를 받아들이라고 말입니다.
미국에서 자란 저는 남자들이 모두 군대에 가야하는 문화 속에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군사주의가 성별에 따라 정당화되는 걸 볼 때마다 여전히 기시감을 느낍니다.
반면 할머니들이 이끄는 이런 운동은 한국인들이, 특히 남성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존엄성을 상기시킬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게 해줍니다. 남성의 몸이, 이스라엘의 가자 집단학살에 무기를 지원하는 군대에 입대하는 것이 절대로 정상화돼서는 안 됩니다.
의무 군복무는 명백히 젠더에 따른 국가 폭력입니다.그것은 비남성들의 신체를 남성들의 이른바 ‘보호’에 맡기게 만들고, 그 ‘보호’는 실질적으로 아무도 보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군대는 민중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국가만 보호합니다. 군대는 땅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국경만 보호합니다.
다행히도 저는 할머니들 덕분에 보호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할머니들의 존재는 여전히 제게 진정한 자기 보호와 존엄성을 지키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할머님들의 한 평생을, 젠더에 따른 국가 폭력 정상화하려는 세상에서 절대로 굽히지 않고 싸워주셔서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투쟁.
연대발언_Arash Azizzada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아프간)
i’m so honored to be here alongside you today.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my name is arash azizzada, im an afghan-american, a proud feminist and a community organizer who lives in new york city. I lead an organization called afghans for a better tomorrow, a response to decades of failed american foreign policy that brought indignity to afghans.
제 이름은 아라시 아지자다 이며, 저는 아프간계 미국인으로, 자랑스러운 페미니스트이자 뉴욕에서 we 커뮤니티 조직가입니다. 저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아프간인(Afghans for a Better Tomorrow)'이라는 조직을 이끌며 수십 년에 걸친 실패한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아프간인들에게 불명예를 안겨준 그 정책들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I am myself am product of the cold war, a fight that started when the US produced millions of textbooks in our native language that taught young afghan children to count using bullets and taught the alphabet by saying the letter J stands for jihad.
저는 냉전의 산물입니다. 그 전쟁은 미국이 아프간의 언어인 파르시farsi로 된 수백만 권의 교과서를 제작해, 아프간 아이들에게 총알로 셈을 가르치고, 'J'가 '지하드(Jihad)'를 의미한다고 가르치기 시작한 전쟁의 일환이었습니다.
As Afghans, we’ve, like Koreans, resisted imperialism from multiple great powers. As I stand here I feel and honor the deep scars of Japan’s and America’s foreign policies and militarism.
우리는 아프간인으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여러 제국주의 강대국에 저항해 왔습니다. 제가 여기 서 있는 지금, 저는 일본과 미국의 외교 정책과 군사주의가 남긴 깊은 상처를 느끼고, 그 아픔을 함께 기립니다.
In Afghanistan, 20 years of war resulted in the stripping of rights of Afghan women and girls; girls above the 6th grade are barred from receiving an education. Like Koreans, we know that it’s women and girls that bear the brunt of Imperial states’ policies of war and militarism.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0년의 전쟁이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의 권리를 빼앗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6학년 이상 소녀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한국인들처럼, 우리는 여성과 소녀들이 미국의 전쟁과 군사주의 정책이 만들어낸 고통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Similarly, we see how blind material support has turned Palestinian children into orphans and young girls into martyrs.
마찬가지로, 우리는 무분별한 물질적 지원이 어떻게 팔레스타인 아동을 고아로 만들고, 어린 소녀들을 열사로 만드는지 보고 있습니다.
These past few weeks, I had the honor of traveling as part of a delegation of American organizers, visiting places from the DMZ to CCZ, Dongducheon to Pyeongtaek to Gangjeong in Jeju Island. I met courageous and inspiring Koreans fighting for peace and liberation, including for Palestine.
지난 몇 주 동안, 저는 미국에서 온 활동가들과 DMZ에서 파주 민간인출입통제구역(CCZ), 동두천에서 평택, 제주도 강정을 방문하며 평화와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는 용기있고 또 많은 영감을 주는 한국인들을 만났습니다. 이 중엔 팔레스타인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었고요.
as I spend time in seoul, i’ve been glued to my phone as I watch the organic resistance to fascist goons who try to snatch up our community members.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는 미국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행, 즉 지역사회 구성원들을 체포해 추방시키려는 파시스트 깡패들의 만행에 맞서 싸우는 자발적인 저항들을 지켜 보느라 계속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as I return to the US, the belly of the beast, I take with me the korean spirit of resistance, resilliance and courage against imperialism.
그리고 저는 이제 미국, 즉 그 '야수의 배'로 돌아가지만, 한국 곳곳에서 얻은 저항 정신과 회복력, 그리고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용기를 함께 가지고 돌아갈 것입니다.
시 낭독_자아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시인 모하메드가 자기 정신의 중심축이라 부른 할머니 리프카는 2020년 6월 16일 예루살렘에서 10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리프카 할머니는 ‘이스라엘보다 더 오래된 저항과 사랑’의 상징으로 연대자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7일 중국 후난성에서 돌아가신 샤오루이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님들의 안식을 기원하고, 그들의 투쟁을 기억하며, 한국의 리프카 할머니들께, 오늘 읽어드릴 시집 <리프카>의 에필로그, ‘팔레스타인의 자스민이여, 안녕’에서 몇 구절을 먼저 바칩니다.
솔직히, 나는 아직 할머니를 애도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 시제로 존재할 수 없다.
백 년 동안, 그녀는 자존심과 자존감 사이 외줄 위를 걸었다.
할머니는 내게 존엄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다.
문장을 미사일처럼 날리는 법을, 견디고 또 버티는 법을.
강제 이주와 벌금과 수십 건의 재판, 수감 위협에도 그녀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절대 죽지 않는다.
나는 예루살렘 올드시티 돌담의 균열 균열 마다에 새겨진 그녀의 주름진 얼굴을 본다. 내가 내딛는 걸음 걸음 아래 얽혀있는 그녀의 뿌리를 안다.
그녀는 평생 정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 ‘진보’는 할머니의 생애에 담기기에 멀고 더뎠다. 수십 년간의 인내가 맺어야할 결실을 우리는 아직 보지 못했다.
할머니가 해방된 팔레스타인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께 약속한다. 손주들은 아무것도 잊지 않았음을. 이 싸움은 승리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혁명임을.
오늘 시 낭송은 팔레스타인 젊은 시인 모하메드 엘쿠르드가 가자의 어린이들의 죽음에 대해 쓴 시 <봉쇄된 땅에 모세는 없다>입니다. 이 시는 2014년 7월 16일, 가자 시 해변에서 축구를 하던 아홉에서 열네 살 사이의 소년 네 명이 이스라엘 해군의 포격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을 상기하며 쓴 시인데요. 어제 구호품을 실은 매들린호가 결국 닿지못한 그 곳 가자 해변에서는 11년 전 여름에도 아이들이 살해 당하고 있었습니다.
시인 모하메드는 1998년생으로, 그 사건이 일어난 2014년에는 만 16세였어요. 친구들의 죽음을 접하고 성인이 되어 쓴 이 시를 저는 개인적으로 더욱 가슴 아프게 읽었습니다. 저도 2002년에 미군 장갑차에 의한 압사당한 중학생 미순이와 효순이와 같은 또래였거든요. 한국에서도 팔레스타인에서도 친구들이랑 놀던 십대 청소년들이 제국주의와 군사주의의 폭력 속에서 또래 친구들을 잃고 살아왔다는 점에 깊이 공감하고 분노하며 이 시를준비했어요. 낭독을 시작하겠습니다.
봉쇄된 땅에 모세는 없다
모하메드 엘쿠르드의 시집 <리프카> 중, 원제 : No Moses in Siege
가자엔 더 이상 묻을 무덤 조차 없어서
우릴 해변까지 데려가 죽인 건가요?
우리 집 안에서,
우리의 사촌들처럼, 미래처럼, 신들처럼
우리를 무너뜨리는 일은 너무 시시했나요?
묘지들이 묻힐 묘지가 필요하고,
비석마저 머물 집이 필요해서 였나요?
우리 아버지들에게 더 큰 슬픔이 필요했나요?
우리는 바람에 흩어진 팔다리였고.
우리의 기쁨은 해변에 부서졌어요.
발 끝에서 차던 축구공,
그들 발 끝에 짓밟힌 건 우리 였어요.
도망칠 곳은 없었고,
봉쇄됀 이 땅에는
바다를 갈라줄 모세도 없어요.
파도는 꿰매지고, 수놓아지고, 엮여 있어요.
걸을 수 없고, 나눌 수도 없는, 믿기 어려운 통로.
대부분의 날 우리는 미리 눈물을 흘려요.
우리는 구름을 올려다보다, 구름 위로 올라섰어요.
여기서는 두 개의 태양을 알아요
지구의 친구인 햇빛과 백린탄의 빛.
그리고 두 가지만 알아요.
죽음과 그 앞의 몇 번의 숨.
홍해가 갈라지지 않는 아이들에게
당신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나요?
연대발언_김은정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여성위원회 위원장)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여성위원회 위원장 김은정 목사입니다. NCCK 여성위원회는 한국 개신교 내 여러 교단과 기관을 대표하는 기독여성들이 모여, 교회 안팎에서 성평등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연대하고 행동하는 조직입니다.
저희 여성위원회는 1981년 NCCK의 상임위원회로 조직된 이후,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초기 활동부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에 함께해왔습니다.
이 운동은 단지 과거의 한 비극을 기억하는 데 머무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식민지배의 유산이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가 경제성장이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동원하고,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는 현실과 깊이 맞닿아 있음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외화를 벌겠다는 명목으로 ‘기생관광’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했던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여성들을 ‘산업의 역군’으로 포장하며 성매매를 부추기던 그 이중적 모습 속에서, 우리 선배들은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의해 동원된 여성들의 고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윤정옥, 이효재, 이우정 선생님—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처음 제기하고 확산시킨 이분들은 모두 기독여성이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살아남은 자로서, 끌려간 여성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품고, 정의 실현을 위한 사명을 다하셨습니다.
1984년부터 이들은 한국 정부가 피해자 문제를 한일 외교에서 제대로 다루도록 촉구했고, 그 뒤를 이어 수많은 기독여성들이 함께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일본기독교교회협의회(NCCJ)의 대표 여러분,
여러분의 존재와 연대는 우리가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주었습니다. 일본 내에서 증거와 증언을 발굴하고, 피해 생존자들의 일본 증언 순회에 동행하며, 2000년 도쿄 여성국제법정에 함께 해주셨던 여러분의 발자취는 이 정의의 여정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연대였습니다.
특히 저는 2020년 오키나와에서 열린 한-재일-일 여성신학포럼에서, 오키나와 여성들이 만든 일본군 위안소 지도를 처음 접했을 때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키나와 섬에서만 146곳의 위안소를 밝혀낸 그 작업은 기억과 정의를 위한 또 하나의 행동이었습니다.
수요시위는 바로 그런 정의를 촉구하는 행동이자 예언입니다.
1992년 1월 8일,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성 함락 이야기에서 착안해, 일본대사관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시작된 이 시위는 오늘까지 1800회를 넘겼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단일 주제의 시위이기도 합니다.
수요시위는 단지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이 역사가 반복될 위험이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과 군사주의, 여성과 아동에 대한 폭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이 시위는 동북아의 평화를 지키는 신앙적 실천입니다.
우리는 일본 정부가 평화헌법을 수호하고, 군국주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억을 보존하며, 이를 정확히 역사교과서에 기록할 것을 촉구합니다.
NCCK 여성위원회는 앞으로도 이 길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곁을 맴도는 군사주의의 망령을 물리치고, 여성과 아동이 온전한 존재로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생명의 그물을 엮어가는 길에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정의와 평화, 기억과 연대의 힘으로 우리는 함께 걷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SHIMIZU Kazue(清水和恵) 목사 (홋카이도 가이키렌(Hokkaido Gaikiren) / 일본그리스도교단(UCCJ))
우리는 한-일 NCC 협의회에 참가하고 있는 멤버들입니다.
일본측 참가자로서 연대의 뜻을 담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의 평화를 위한 행동에 큰 힘을 얻고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왔는데, 매월 넷째 주 수요일에 삿포로에서도 여러분과 연대하는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으며, 일본 각지에서도 비슷한 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평화인권운동가로 활동하셨던 고 김복동할머니, 고 길원옥할머니의 말씀을 떠오릅니다.
“다시는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같은 피해자가 생긴다. 성폭력은 용서할 수 없다!”
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구 일본군의 침략으로 성노예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의 공통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현재 97세로 김할머니, 길할머니와 동갑내기입니다. 만약 저의 어머니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할머님들과 같은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릅니다.
2017년 2월, 저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할머님들을 만나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그러자 김복동 할머님은 부드럽게 “당신이 잘못한게 아니에요. 일본이 잘못한 거야"라고 일본어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분은 한동안 손을 맞잡고 포옹을 했는데, 지금도 그 모습이 잊혀지지않습니다.
일본 정부는 할머님들, 그리고 할머님들과 함께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사람들과는 역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쟁 가해의 기록과 기억을 지우려 하고, 진솔한 반성이 없습니다. 군사비를 늘리고 일본 각지에 군비 증강을 하며 전쟁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김복동 할머님, 길원옥 할머님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할머님들의 평화를 위한 기도와 의지와 실천을 우리가 이어받을 때, 할머님들은 우리들 사이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금, 지금부터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 기도하며 여러분과 함께 행동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Women’s Song For Gaza> 가자 봉쇄 해제를 요구하며 배에 올랐던 스페인 여성 활동가들이 2016년에 만들어 배에서 불렀던 노래
[1절]
We anchored up and sailed out from the shore of Spain
Our boat Zaytouna-Olive that’s our name
And olive is the symbol of a faraway place
To which we steer our course across the waves
We are 13 women here to sail with peace in our hand
Towards our sisters in this foreign land
From many different corners of this world we have come
To bring to you the freedom of our song
[후렴구]
We will sail for your freedom
Our sisters in Palestine
We will never be silent
Until you are free
[2절]
We are guided by the light of the stars at night
And the power of the sea so very bright
As the world is watching us
We bring our women’s voice
With the message that we all should have our choice
Your grandmothers they planted olive trees
Upon this land where you should live in peace
Those trees of thousand years they have been dug away
May your daughters plant new seeds and watch them stay
[후렴구]
1704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의 주관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팔연대)에서 하였고 사회는 누르 활동가님이 보았습니다.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의 <바위처럼>에 맞춘 힘찬 율동으로 수요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사회자님의 주관단체 인사말 후 연대발언으로 수요시위를 이어갔습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윤 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아프간 Arash Azizzada 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하였습니다.
이어 <Women’s Song For Gaza>이라는 노래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님들이 합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자아 님이 팔레스타인 시인 모하메드 엘-쿠르드의 시집 <리프카>에 있는 시를 낭독해 주셨습니다.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여성위원회 위원장 김은정 목사님과 홋카이도 가이키렌(Hokkaido Gaikiren) / 일본그리스도교단(UCCJ) SHIMIZU Kazue(清水和恵) 목사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해주셨습니다.
이어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참가단체 소개 후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미음, 소방도로 님이 성명서 낭독을 하며 1704차 정기 수요시위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주관단체인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외에 이화여대 노학연대모임 바위, 윤철우, 4.16 가족협의회 2학년 4반 임경빈(강승묵 엄마), 천주의성요한수도회 JPIC 정병철, 제11회 한일NCC양국협의회 대표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여성위원장, 일본그리스도교협의회(NCCJ), 와따나베 떼루오,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김선태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제1704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간보고
이재명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선 지 이제 일주일입니다. 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독재체제로 회귀하려던 극우·내란 세력의 획책도 봉쇄되었습니다. 온갖 역정보와 허위조작정보를 통해 대중의 불안과 불만을 조직해왔던 자들의 내전도 일단락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 시민들 덕분입니다. 지난 6개월 간 ‘빛의 광장’의 구심점,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여정도 어제 6월 10일 공식적인 막을 내렸습니다. 남은 과제를 각자의 삶과 운동의 장에서 더 적극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입니다.
1300여개 단체로 시작해 전국 1739개 단체로 확대된 비상행동은 서울에서만 70차례의 집회를 열었고, 140여 차례의 기자회견 등 긴급대응을 진행했으며, 118개 사회대개혁 과제를 모아냈습니다. 그 가운데 1000여 개의 시민발언이 광장을 가득 메웠으며, 서울을 넘어 전국 각지에서 10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함께 했습니다. Kpop의 민중가요화, 민중가요의 대중화를 통해 즐겁고 지치지 않는 집회, 혐오와 차별 없는 안전한 집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다양한 정체성을 횡단하는 연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상호돌봄과 상호이해로 매일매일 보다 성장하고 확장되는 시민 연대를 일구었습니다.
비상행동의 공동의장단 단체인 정의기억연대도 때로는 응원봉으로, 때로는 깃발로, 때로는 키세스로, 국회와 광화문, 남태령과 한남동, 안국동 헌재 앞에서 윤석열 탄핵과 극우·내란세력 청산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그토록 바라던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외치고 요구했습니다. 무너진 인권과 역사정의 복원을 위해 목소리 높였습니다.
비록 비상행동의 공식 활동은 막을 내리지만 극우·내란세력 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위한 우리의 발걸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제 식민지 친일·반민족·가부장 세력은 여전히 그 뿌리를 단단히 한 채 대한민국 정치, 사법, 경제, 행정, 언론, 학계의 ‘파워 엘리트’ 집단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네오파시스트 세력을 재정비하고 윤석열 같은 꼭두각시를 또 다시 내세워 실패한 내란을 교훈 삼아 재집권을 노릴 것입니다. 숭미·친일·반공주의로 무장한 이들은 미국 및 일본 극우와 연결해 민주주의와 평화를 수호하고자 하는 시민들 간의 연대를 무너뜨리려 할 것입니다. 세대 간, 성별 간, 지역 간, 이념 간 갈등의 골을 더욱 심화시키려 할 것입니다. 시민사회의 책임이 더욱 무겁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과제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비상행동과 6개 정당은 윤석열 즉각 파면과 내란청산, 차별과 혐오 정치의 배격, 다양성을 존중하고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 시민 참여가 보장된 민주주의 회복과 평화 실현, 사회대개혁을 위한 협력방안을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사회대개혁을 위한 광장시민의 목소리를 국정과제에 반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조와 절차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공약으로 제시된 ‘과거사 문제 등 민감한 현안 해결 노력’,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와 명예훼손 행위 금지 명시 및 처벌 근거 마련 등의 과제를 반드시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 정부 간 약속을 깨지 않겠다.’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혹여 식민지·전쟁범죄의 면죄부 발부로 착각한 일본 정부가 또 다른 망상을 품지 않게 해야 합니다. 국가 간 합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일본군성노예제와 같은 반인도적 범죄행위가 정치적 합의로 지워지거나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이를 부인하거나 피해자를 모독하는 행위는 또 다른 범죄 행위임을 힘주어 일관되게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반성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일본 정부가 세계사에 영원한 수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피해자들의 염원인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해야 한다고 당당히 요구해야 합니다.
지금 세계는 극우의 주류화, 주류의 극우화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분쟁과 전쟁, 내란과 내전이 끊이지 않고,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베트남, 팔레스타인, 미얀마 등 세계 곳곳의 전쟁과 분쟁 지역 피해자들을 지원해 온 정의기억연대는 앞으로도 피해자 보호와 존엄회복은 물론, 여성폭력과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극우 파시스트 세력의 발호를 저지하고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와 역사 정의를 지키는 길에 전 세계 시민들과 연대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습니다.
2025년 6월 11일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
연대발언_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Hello, my name is Yoon. It’s an honor to speak before you today.
I was born in the United States and have worked alongside migrant massage workers who suffer from police and state violence. Now, I’ve been living in Korea for over a year. Today, for the first time, I’m speaking in front of many of you in my imperfect Korean.
My grandfather was born in Japan, in the 1930s, my parents moved to the U.S. in the 1980s, and I was born there in 1992. And you have been protesting since the very year I was born, continuing the fight to this day!
The story of my family has always been one of migration between Japan, the U.S., and Korea. As a result, themes of war, migration, and imperialism have always been personal and important to us. Growing up watching family members join the U.S. military to gain papers or avoid deportation, I couldn’t help but question the loyalty we were supposed to feel toward the government.
Whether it’s the Japanese, Korean, or American government, none of them have given our people or our grandmothers the apologies and justice they deserve. But I’ve come to understand a deeper truth—that governments are born and they fall, and that happens within the span of our grandmothers’ lives.
Just as Palestinian grandmothers have lived longer than the Israeli state, so too have our Korean grandmothers lived longer than the Republic of Korea.
Our dignity, our loyalty, is not with the state, but within our grandmothers. The demands of our grandmothers are the true demands of the people.
An authoritarian, centralized state that does not respect the dignity of grandmothers will not respect the dignity of children, the land, or the people. High suicide rates and the forced displacement of women around U.S. military bases show us this truth. A state that ignores the demands of grandmothers will not hesitate to invade other countries to seize their resources. Just like the South Korean government.
Gendered state violence constantly tells us to lower our dignity and accept our place.
I didn’t grow up in a culture where all men were expected to join the military. Seeing militarism being justified based on gender here in Korea still feels strange to me, even after living here for a year. It’s something I continue to reflect on daily.
The movements led by our grandmothers allow Koreans, especially men, to imagine a future where they remember their inherent dignity. A future where the normalization of men enlisting in an army that supports the Israeli genocide of Gaza should never be allowed.
Mandatory military conscription is a clear form of gendered state violence. It places the bodies of non-men under the so-called “protection” of men, and that “protection” ultimately does not protect anyone. The military does not protect the people. It protects the state. The military does not protect the land. It protects the borders.
But I feel protected because of our grandmothers. Their presence still teaches me how to maintain true self-protection and dignity. I am deeply grateful for the lifetime of struggle my grandmothers went through,never bending in a world that seeks to normalize gendered state violence.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윤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태어나 경찰과 국가 폭력에 시달리는 이주 마사지 노동자들과 함께 활동해 왔고, 지금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1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족한 한국어로 많은 분들 앞에서 발언을 합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1930년대 일본에서 태어나셨고, 저희 부모님은 80년대 미국으로 가셨고, 저는 1992년 뉴저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제가 태어난 해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시위를 이어오고 계시죠.
저희 가족의 이야기는 늘 일본과 미국, 한국을 오가는 이주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전쟁, 이주, 제국주의는 항상 저희 가족에게 개인적이고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가족들은 서류를 얻기 위해, 혹은 강제추방을 피하기 위해 미군에 입대했습니다. 이런 가족들을 보고 자라면서 저는 정부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것을 당연히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이건 한국이건, 혹은 미국이건, 모든 정부들은 우리 민중과 할머니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사죄와 정의를 아직까지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정부는 탄생하고 또 무너진다는 것이죠. 그것은 종종 할머니들의 한 생애 안에도 일어납니다.
팔레스타인 할머니들이 이스라엘 국가보다 더 오래 살아왔듯이,
우리 한국의 할머니들도 대한민국 국가보다 오래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존엄성과 충성심은 국가가 아닌, 바로 우리의 할머니들 안에 있습니다.
할머니들의 요구가 진정한 민중들의 요구입니다.
할머니들의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는 권위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국가라면 아이들과, 땅과 민중들의 존엄도 존중하지 않을 겁니다. 높은 자살률이나, 미군 기지촌 주변에서 강제 이주되는 여성들의 모습이 이를 말해줍니다. 할머니들의 요구를 듣지 않는 국가는, 다른 나라들의 자원을 빼앗기 위한 침략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바로 한국 정부처럼요.
젠더에 따른 국가 폭력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합니다. 존엄성을 낮추라고, 주어진 위치를 받아들이라고 말입니다.
미국에서 자란 저는 남자들이 모두 군대에 가야하는 문화 속에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군사주의가 성별에 따라 정당화되는 걸 볼 때마다 여전히 기시감을 느낍니다.
반면 할머니들이 이끄는 이런 운동은 한국인들이, 특히 남성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존엄성을 상기시킬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게 해줍니다. 남성의 몸이, 이스라엘의 가자 집단학살에 무기를 지원하는 군대에 입대하는 것이 절대로 정상화돼서는 안 됩니다.
의무 군복무는 명백히 젠더에 따른 국가 폭력입니다.그것은 비남성들의 신체를 남성들의 이른바 ‘보호’에 맡기게 만들고, 그 ‘보호’는 실질적으로 아무도 보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군대는 민중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국가만 보호합니다. 군대는 땅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국경만 보호합니다.
다행히도 저는 할머니들 덕분에 보호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할머니들의 존재는 여전히 제게 진정한 자기 보호와 존엄성을 지키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할머님들의 한 평생을, 젠더에 따른 국가 폭력 정상화하려는 세상에서 절대로 굽히지 않고 싸워주셔서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투쟁.
연대발언_Arash Azizzada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아프간)
i’m so honored to be here alongside you today.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my name is arash azizzada, im an afghan-american, a proud feminist and a community organizer who lives in new york city. I lead an organization called afghans for a better tomorrow, a response to decades of failed american foreign policy that brought indignity to afghans.
제 이름은 아라시 아지자다 이며, 저는 아프간계 미국인으로, 자랑스러운 페미니스트이자 뉴욕에서 we 커뮤니티 조직가입니다. 저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아프간인(Afghans for a Better Tomorrow)'이라는 조직을 이끌며 수십 년에 걸친 실패한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아프간인들에게 불명예를 안겨준 그 정책들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I am myself am product of the cold war, a fight that started when the US produced millions of textbooks in our native language that taught young afghan children to count using bullets and taught the alphabet by saying the letter J stands for jihad.
저는 냉전의 산물입니다. 그 전쟁은 미국이 아프간의 언어인 파르시farsi로 된 수백만 권의 교과서를 제작해, 아프간 아이들에게 총알로 셈을 가르치고, 'J'가 '지하드(Jihad)'를 의미한다고 가르치기 시작한 전쟁의 일환이었습니다.
As Afghans, we’ve, like Koreans, resisted imperialism from multiple great powers. As I stand here I feel and honor the deep scars of Japan’s and America’s foreign policies and militarism.
우리는 아프간인으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여러 제국주의 강대국에 저항해 왔습니다. 제가 여기 서 있는 지금, 저는 일본과 미국의 외교 정책과 군사주의가 남긴 깊은 상처를 느끼고, 그 아픔을 함께 기립니다.
In Afghanistan, 20 years of war resulted in the stripping of rights of Afghan women and girls; girls above the 6th grade are barred from receiving an education. Like Koreans, we know that it’s women and girls that bear the brunt of Imperial states’ policies of war and militarism.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0년의 전쟁이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의 권리를 빼앗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6학년 이상 소녀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한국인들처럼, 우리는 여성과 소녀들이 미국의 전쟁과 군사주의 정책이 만들어낸 고통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Similarly, we see how blind material support has turned Palestinian children into orphans and young girls into martyrs.
마찬가지로, 우리는 무분별한 물질적 지원이 어떻게 팔레스타인 아동을 고아로 만들고, 어린 소녀들을 열사로 만드는지 보고 있습니다.
These past few weeks, I had the honor of traveling as part of a delegation of American organizers, visiting places from the DMZ to CCZ, Dongducheon to Pyeongtaek to Gangjeong in Jeju Island. I met courageous and inspiring Koreans fighting for peace and liberation, including for Palestine.
지난 몇 주 동안, 저는 미국에서 온 활동가들과 DMZ에서 파주 민간인출입통제구역(CCZ), 동두천에서 평택, 제주도 강정을 방문하며 평화와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는 용기있고 또 많은 영감을 주는 한국인들을 만났습니다. 이 중엔 팔레스타인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었고요.
as I spend time in seoul, i’ve been glued to my phone as I watch the organic resistance to fascist goons who try to snatch up our community members.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는 미국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행, 즉 지역사회 구성원들을 체포해 추방시키려는 파시스트 깡패들의 만행에 맞서 싸우는 자발적인 저항들을 지켜 보느라 계속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as I return to the US, the belly of the beast, I take with me the korean spirit of resistance, resilliance and courage against imperialism.
그리고 저는 이제 미국, 즉 그 '야수의 배'로 돌아가지만, 한국 곳곳에서 얻은 저항 정신과 회복력, 그리고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용기를 함께 가지고 돌아갈 것입니다.
시 낭독_자아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시인 모하메드가 자기 정신의 중심축이라 부른 할머니 리프카는 2020년 6월 16일 예루살렘에서 10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리프카 할머니는 ‘이스라엘보다 더 오래된 저항과 사랑’의 상징으로 연대자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7일 중국 후난성에서 돌아가신 샤오루이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님들의 안식을 기원하고, 그들의 투쟁을 기억하며, 한국의 리프카 할머니들께, 오늘 읽어드릴 시집 <리프카>의 에필로그, ‘팔레스타인의 자스민이여, 안녕’에서 몇 구절을 먼저 바칩니다.
솔직히, 나는 아직 할머니를 애도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 시제로 존재할 수 없다.
백 년 동안, 그녀는 자존심과 자존감 사이 외줄 위를 걸었다.
할머니는 내게 존엄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다.
문장을 미사일처럼 날리는 법을, 견디고 또 버티는 법을.
강제 이주와 벌금과 수십 건의 재판, 수감 위협에도 그녀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절대 죽지 않는다.
나는 예루살렘 올드시티 돌담의 균열 균열 마다에 새겨진 그녀의 주름진 얼굴을 본다. 내가 내딛는 걸음 걸음 아래 얽혀있는 그녀의 뿌리를 안다.
그녀는 평생 정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 ‘진보’는 할머니의 생애에 담기기에 멀고 더뎠다. 수십 년간의 인내가 맺어야할 결실을 우리는 아직 보지 못했다.
할머니가 해방된 팔레스타인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께 약속한다. 손주들은 아무것도 잊지 않았음을. 이 싸움은 승리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혁명임을.
오늘 시 낭송은 팔레스타인 젊은 시인 모하메드 엘쿠르드가 가자의 어린이들의 죽음에 대해 쓴 시 <봉쇄된 땅에 모세는 없다>입니다. 이 시는 2014년 7월 16일, 가자 시 해변에서 축구를 하던 아홉에서 열네 살 사이의 소년 네 명이 이스라엘 해군의 포격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을 상기하며 쓴 시인데요. 어제 구호품을 실은 매들린호가 결국 닿지못한 그 곳 가자 해변에서는 11년 전 여름에도 아이들이 살해 당하고 있었습니다.
시인 모하메드는 1998년생으로, 그 사건이 일어난 2014년에는 만 16세였어요. 친구들의 죽음을 접하고 성인이 되어 쓴 이 시를 저는 개인적으로 더욱 가슴 아프게 읽었습니다. 저도 2002년에 미군 장갑차에 의한 압사당한 중학생 미순이와 효순이와 같은 또래였거든요. 한국에서도 팔레스타인에서도 친구들이랑 놀던 십대 청소년들이 제국주의와 군사주의의 폭력 속에서 또래 친구들을 잃고 살아왔다는 점에 깊이 공감하고 분노하며 이 시를준비했어요. 낭독을 시작하겠습니다.
봉쇄된 땅에 모세는 없다
모하메드 엘쿠르드의 시집 <리프카> 중, 원제 : No Moses in Siege
가자엔 더 이상 묻을 무덤 조차 없어서
우릴 해변까지 데려가 죽인 건가요?
우리 집 안에서,
우리의 사촌들처럼, 미래처럼, 신들처럼
우리를 무너뜨리는 일은 너무 시시했나요?
묘지들이 묻힐 묘지가 필요하고,
비석마저 머물 집이 필요해서 였나요?
우리 아버지들에게 더 큰 슬픔이 필요했나요?
우리는 바람에 흩어진 팔다리였고.
우리의 기쁨은 해변에 부서졌어요.
발 끝에서 차던 축구공,
그들 발 끝에 짓밟힌 건 우리 였어요.
도망칠 곳은 없었고,
봉쇄됀 이 땅에는
바다를 갈라줄 모세도 없어요.
파도는 꿰매지고, 수놓아지고, 엮여 있어요.
걸을 수 없고, 나눌 수도 없는, 믿기 어려운 통로.
대부분의 날 우리는 미리 눈물을 흘려요.
우리는 구름을 올려다보다, 구름 위로 올라섰어요.
여기서는 두 개의 태양을 알아요
지구의 친구인 햇빛과 백린탄의 빛.
그리고 두 가지만 알아요.
죽음과 그 앞의 몇 번의 숨.
홍해가 갈라지지 않는 아이들에게
당신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나요?
연대발언_김은정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여성위원회 위원장)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여성위원회 위원장 김은정 목사입니다. NCCK 여성위원회는 한국 개신교 내 여러 교단과 기관을 대표하는 기독여성들이 모여, 교회 안팎에서 성평등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연대하고 행동하는 조직입니다.
저희 여성위원회는 1981년 NCCK의 상임위원회로 조직된 이후,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초기 활동부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에 함께해왔습니다.
이 운동은 단지 과거의 한 비극을 기억하는 데 머무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식민지배의 유산이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가 경제성장이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동원하고,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는 현실과 깊이 맞닿아 있음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외화를 벌겠다는 명목으로 ‘기생관광’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했던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여성들을 ‘산업의 역군’으로 포장하며 성매매를 부추기던 그 이중적 모습 속에서, 우리 선배들은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의해 동원된 여성들의 고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윤정옥, 이효재, 이우정 선생님—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처음 제기하고 확산시킨 이분들은 모두 기독여성이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살아남은 자로서, 끌려간 여성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품고, 정의 실현을 위한 사명을 다하셨습니다.
1984년부터 이들은 한국 정부가 피해자 문제를 한일 외교에서 제대로 다루도록 촉구했고, 그 뒤를 이어 수많은 기독여성들이 함께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일본기독교교회협의회(NCCJ)의 대표 여러분,
여러분의 존재와 연대는 우리가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주었습니다. 일본 내에서 증거와 증언을 발굴하고, 피해 생존자들의 일본 증언 순회에 동행하며, 2000년 도쿄 여성국제법정에 함께 해주셨던 여러분의 발자취는 이 정의의 여정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연대였습니다.
특히 저는 2020년 오키나와에서 열린 한-재일-일 여성신학포럼에서, 오키나와 여성들이 만든 일본군 위안소 지도를 처음 접했을 때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키나와 섬에서만 146곳의 위안소를 밝혀낸 그 작업은 기억과 정의를 위한 또 하나의 행동이었습니다.
수요시위는 바로 그런 정의를 촉구하는 행동이자 예언입니다.
1992년 1월 8일,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성 함락 이야기에서 착안해, 일본대사관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시작된 이 시위는 오늘까지 1800회를 넘겼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단일 주제의 시위이기도 합니다.
수요시위는 단지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이 역사가 반복될 위험이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과 군사주의, 여성과 아동에 대한 폭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이 시위는 동북아의 평화를 지키는 신앙적 실천입니다.
우리는 일본 정부가 평화헌법을 수호하고, 군국주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억을 보존하며, 이를 정확히 역사교과서에 기록할 것을 촉구합니다.
NCCK 여성위원회는 앞으로도 이 길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곁을 맴도는 군사주의의 망령을 물리치고, 여성과 아동이 온전한 존재로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생명의 그물을 엮어가는 길에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정의와 평화, 기억과 연대의 힘으로 우리는 함께 걷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SHIMIZU Kazue(清水和恵) 목사 (홋카이도 가이키렌(Hokkaido Gaikiren) / 일본그리스도교단(UCCJ))
우리는 한-일 NCC 협의회에 참가하고 있는 멤버들입니다.
일본측 참가자로서 연대의 뜻을 담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의 평화를 위한 행동에 큰 힘을 얻고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왔는데, 매월 넷째 주 수요일에 삿포로에서도 여러분과 연대하는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으며, 일본 각지에서도 비슷한 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평화인권운동가로 활동하셨던 고 김복동할머니, 고 길원옥할머니의 말씀을 떠오릅니다.
“다시는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같은 피해자가 생긴다. 성폭력은 용서할 수 없다!”
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구 일본군의 침략으로 성노예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의 공통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현재 97세로 김할머니, 길할머니와 동갑내기입니다. 만약 저의 어머니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할머님들과 같은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릅니다.
2017년 2월, 저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할머님들을 만나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그러자 김복동 할머님은 부드럽게 “당신이 잘못한게 아니에요. 일본이 잘못한 거야"라고 일본어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분은 한동안 손을 맞잡고 포옹을 했는데, 지금도 그 모습이 잊혀지지않습니다.
일본 정부는 할머님들, 그리고 할머님들과 함께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사람들과는 역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쟁 가해의 기록과 기억을 지우려 하고, 진솔한 반성이 없습니다. 군사비를 늘리고 일본 각지에 군비 증강을 하며 전쟁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김복동 할머님, 길원옥 할머님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할머님들의 평화를 위한 기도와 의지와 실천을 우리가 이어받을 때, 할머님들은 우리들 사이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금, 지금부터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 기도하며 여러분과 함께 행동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Women’s Song For Gaza> 가자 봉쇄 해제를 요구하며 배에 올랐던 스페인 여성 활동가들이 2016년에 만들어 배에서 불렀던 노래
[1절]
We anchored up and sailed out from the shore of Spain
Our boat Zaytouna-Olive that’s our name
And olive is the symbol of a faraway place
To which we steer our course across the waves
We are 13 women here to sail with peace in our hand
Towards our sisters in this foreign land
From many different corners of this world we have come
To bring to you the freedom of our song
[후렴구]
We will sail for your freedom
Our sisters in Palestine
We will never be silent
Until you are free
[2절]
We are guided by the light of the stars at night
And the power of the sea so very bright
As the world is watching us
We bring our women’s voice
With the message that we all should have our choice
Your grandmothers they planted olive trees
Upon this land where you should live in peace
Those trees of thousand years they have been dug away
May your daughters plant new seeds and watch them stay
[후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