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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소식6월 포항 할머니 방문기

서울역에서 포항행 기차를 타고, 역에서 다시 차를 운전해 할머니 댁에 도착하면 어느덧 11시 30분이 조금 넘습니다. 집에서 나온 시간까지 합하면 꼬박 다섯 시간. 그렇게 도착한 할머니 댁입니다.
지난달보다 허리는 조금 더 굽으셨고, 한 손만 잡아드려도 걸으시던 할머니는 이제 두 손을 다 잡아드려야 겨우 한 걸음씩 옮기십니다.
간병인과 아드님께는 미리 오늘 방문한다고 말씀드렸지만, 할머니는 다음 주에 오는 줄 아셨다고 합니다. 벌써 점심도 한술 뜨셨다면서도 우리를 보자마자 말씀하십니다.
“니들은 밥 안 묵었제. 서울이 어데 천리여, 백리여. 배고플 텐데 한술 먹으러 가자.”
식사를 하셨다는데도 잠시 쉴 틈도 주지 않으시고 밥부터 먹으러 가자고 재촉하십니다.
그러고는 방으로 들어가 새 옷을 꺼내 입으십니다. 기온이 32도에 육박하는 날씨인데도 초봄에나 입을 법한 연보라색 두꺼운 니트에 조끼까지 곱게 차려입으십니다.
할머니와 늘 가는 단골식당으로 향하는 차 안.
“성이 뭐여?”
“김가요. 할머니, 정대협이는 성이 뭔지 아세요.?”
“정대협이니께 정가겠지.”
그러시더니 이내 말씀하십니다.
“정대협이는 내 딸이다. 딸보다 내를 더 아껴준다. 아무도 안 챙기는 나를 이리 사주고 멕여주는 사람이 읎다.”
할머니께는 정대협이가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를 기억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한 푼 두 푼 모아주신 후원으로 우리가 이렇게 찾아와 필요한 것들을 전해드리는 것이라고 백 번도 넘게 설명드리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딸 같은 정대협이가 챙겨주는 것이라 여기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언제나처럼 같은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반복되는 질문에는 익숙하게 답할 수 있지만, 아직도 할머니의 경북 산골 사투리는 다 알아듣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다가도 무슨 뜻인지 몰라 “할머니, 그게 뭐예요?” 하고 되묻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도 할머니 말씀이 더 어렵게 들립니다.
점심을 드셨다면서도 밥 한 공기를 금세 비우시는 할머니.
평생 거친 노동을 하며 살아오신 할머니에게는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우셨던 걸까요. 몸에 밴 습관은 내년이면 백세가 되시는 지금까지도 그대로여서, 할머니는 저희보다도 훨씬 빨리 식사를 마치십니다.
식사를 마치고 마트에 들러 필요한 물건들을 산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는 사 온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시며 빠진 것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십니다.
이제는 화투를 칠 기력도 없으신지 예전처럼 화투 치자는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예전에는 늦었다며 얼른 가라고 재촉하시곤 했는데, 오늘은 그러지도 않으십니다.
대신 물으십니다.
“니들은 또 언제 오냐?”
“다음 달이요. 다음 달에 만날 때까지 건강하셔야 해요.”
“오냐. 오니라. 다음에 꼭 만나자.”
“네, 할머니. 다음에 꼭 만나요.”
오늘따라 헤어짐이 더 아쉬우셨던 걸까요. 할머니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거동이 힘드신 몸인데도 가는 길을 보겠다고 애써 현관 앞까지 나오신 할머니.
우리가 탄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현관 앞에 서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우리가 천리 먼 서울길을 무사히 가기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랐습니다.
이번 방문이 마지막 방문이 아니기를.
다음 방문에도 할머니가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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