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돌아가신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 추모제 및 162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최, 주관은 정의기억연대에서 하였고 사회는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이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올해 돌아가신 한국 할머니 한 분, 필리핀 힐라리아 빌레이 부스타만테 할머니, 페덴시아 데이비드 할머니, 그리고 비공개이신 대만 할머니를 기억하며 묵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의 ‘활동가가 만난 할머니’ 이야기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한국의 할머니를 생전에 찾아뵈었던 정의연 방학과 새싹 활동가가 할머니를 추억하며 느끼는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추모사가 이어졌습니다. 전 정대협 생존자복지위원회 위원장이신 정태효 목사님, 평화나비 네트워크 백휘선 전국대표님, 호주 퀸즈랜드주 노동당 청년위원회 윤지우 님이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죄, 법적 배상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모든 피해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추모사를 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추모 공연이 있었습니다. <도라지꽃>에 맞추어 청주 민족춤패 너울 오세란 님이 감동적인 춤을 보여 주셨습니다. 춤을 추실 때는 한국의 할머니 유품인 손수건을 몸에 지니고 춤을 추셨고 중간에는 소중하게 꼭 안아주시기도 했습니다.
참가단체 소개 후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의 성명서 낭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화나비 네트워크 회원들이 <바위처럼>에 맞추어 율동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들께 헌화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모든 참가자들이 할머니 영정 앞에 꽃을 놓아 드리며 추모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성령선교수녀회, 평화나비 네트워크, 성공회대 우준하, 일본 간사이네트워크, 겨레하나, 호주 퀸즈랜드 주 노동당 청년위원회, 호주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연대, 진보대학생넷, 민족통일애국청년회, 워싱턴 평화나비 홍덕진 목사님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온라인으로는 Sung Hyun Ryu(미국 시애틀늘푸른연대), Friends of 'Comfort Women' in Sydney – 시소연, Goo Lee, Rebekah Jaung(뉴질랜드), Jae-Eun Noh(호주 브리즈번), 제니맘 등 여러분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활동가가 만난 할머니_방학 정의연 활동가
늦은 오후 햇살이 내리는 조용한 동네에 도착해 선물을 한 아름 들고 할머니를 뵈러 가는 그 길이 참 설렜습니다. 한 달 동안 잘 계셨는지, 밀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몇 시간이 어느새 사라질 정도로 할머니와 가족분께서는 저희를 편안하게 맞아주셨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집 냄새와 고요히 곱게 앉아 계시는 할머니가 떠오릅니다. 할머니께서는 항상 저희가 도착하기 전 머리를 단정히 빗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말씀이 어려우신 상황에도 조용히 저희의 손을 잡고 손등을 오랫동안 쓰다듬어주셨습니다.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물짓는 때도 계셨지만, 또 아무리 몸이 아프셔도 오랜만에 온 활동가의 눈을 크게 뜨시고 반갑게 맞이해주셨습니다. 힘드신 날에는 화도, 짜증도 내시다가도 거울에 비친 표정을 보시고는 금세 표정을 푸셨습니다. 어떤 날은 활동가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보여드리며 “잘생겼지요?” 하면 같이 웃어주시기도 했습니다. 할머니의 좋은 날과 힘든 날에 함께 일상을 나누던 때가 그립습니다.
할머니께서 저를 기억하고 계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할머니의 시선과 목소리, 온도가 아직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운동을 하시느라 혈색이 발갛게 올라 힘들어하시는 할머니께 “할머니, 저희 여기 앞에 나가서 꽃구경도 가고 해야지요.”라고 말씀드리다 힘들다며 할머니께 된통 혼이 난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요~” 하고 졸랐지만, 역효과만 났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께서는 곁을 내어주셨습니다. 식사하시는 할머니 입술을 꼭꼭 닦아드리고 멀리 밖을 구경하는 할머니의 시선을 가만히 따라 보던 것도 기억납니다. 저는 할머니의 시간이 느리고 조용히 흐를 때 만났지만 집안 곳곳에 할머니의 몇 년 전 건강한 모습, 그리고 생전 ‘맵시, 솜씨, 말씨’를 두루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던 말씀, 할머니께서 접어가며 읽으시던 책들을 보며 치열한 세월 속에서도 멋지게 달려오신 할머니의 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크게 핀 목련을 함께 보며 더 따뜻해지는 날에 외출을 약속드렸지만 결국 할머니와 화원에 가 꽃구경을 하진 못했습니다. 훗날 꼭 할머니를 다시 만나 못 지켜드린 약속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저에게 따뜻함을 나눠주신 할머니와 가족분들에게 잊지 않고 앞으로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가 해결되는 그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할머니께서 고통 없이 편히 쉬시는 동안 귀중한 기억으로 열심히 나아가겠습니다.
활동가가 만난 할머니_새싹 정의연 활동가
할머니를 처음 뵌 건 올해가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큰 일교차에 오늘처럼 두터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낮에는 슬며시 한 손에 외투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날도 딱 그런 날씨였는데요, 유독 햇빛이 온화롭고 포근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댁으로 가는 길이 따사로워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기억되지 못할 것을 전제로 늘 처음과 같이 소개를 드리는데요,
할머니께서는 왜인지 저를 어디선가 봤다는 표정을 하셨지요.
단순히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내심 기뻤습니다. 착각이라도 좋으니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건 이렇게도 오래 가슴에 남는 일이니까요.
머리에 돌돌 말린 헤어롤, 새하얀 뺨, 조금은 차가운 손, 사르르 접히는 눈꼬리.
우아하고 고상하신 말씨, 굽을 신고도 꼿꼿하셨다던 할머니의 등. 제가 기억하는 건 너무나도 작은 것들이지만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있는 할머니를 퍼즐처럼 맞춰보면 어느새 힐머니 손을 잡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물론 그것도 정말 일부겠지요.
할머니의 95년 간의 긴 여정이 어떠했는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할머니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각자가 지닌 할머니와의 추억은 제가 뵌 할머니의 환한 미소에 오롯이 담겨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의 아름다운 미소는 할머니의 곁을 항상 지켜주셨던 따님의 미소와도 쏙 닮았지요. 당연한 일이 아님에도 당연하게 늘 그자리에서 모든 순간 함께하신 따님이 계셨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할머니를 기억하고 또 앞으로도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 일생의 동반자였던 따님을 존경합니다. 저도 따님처럼 묵묵히 삶의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건 아마 할머니의 삶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제게 2023년은 냉혹하고도 서럽고 분노로 가득하고도 무모한 한 해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와의 만남은 제가 지금 이순간 바로 여기에 있는 이유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고 나아갈 길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를 뵈었을 때 말씀드렸습니다. ‘곧 봄이 올 것 같아요, 봄이 오면 같이 나가요 할머니.’하고 손을 꼭 잡아드렸습니다. 비록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를 처음 뵈었던 날짜가 가까워지면 어디가 되었든 할머니를 떠올릴 것만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할머니와 또 함께하고 있는 거라고 믿습니다.
댁을 나서는 길에서 제 뺨을 차차 어루만지시던 할머니의 손의 온기를 기억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이 자리에는 없지만 할머니를 기억하는 모두의 마음에 할머니라는 온기가, 할머니라는 한 분의 숭고한 삶이 잊혀지지만 않는다면 계속해서 함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할머니께 배운 평범하고도 특별한 다정함과 인간다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할머니, 훗날 다시 뵌다면 그때도 처음과 같이 인사드릴게요. 그때는 제가 먼저 할머니를 알아볼게요. 할머니 존경합니다. 편안히 쉬세요.
추모사_백휘선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대표
안녕하세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전국대학생연합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대표 백휘선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수요시위가 되었습니다. 작년에 추운 겨울날, 이 곳에 회원들과 모여 추모사를 들었던게 불과 어제일 같은데 벌써 한해의 마지막이 되었네요.
올해는 금방 지나갔지만 사실 올해만큼 하루하루가 길었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3월부터 끊임없이 한일관계 및 역사문제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그 때 그 때 때에 맞는 대응을 하기 위해 하루를 꼬박 샌 적이 참 많았습니다.
혐오세력의 혐오발언들은 점점 더 기세등등해지니 우리도 더 목소리를 높이며 행동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내에서도 거리에서도 혐오의 소리를 듣고, 이런 발언들로 나비들이 상처 입을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힘들고 지칠때면 할머님들을 떠올립니다. 수요시위를 처음 시작할 때, 사람들의 매서운 눈초리에 상처입고, 누군가가 던진 돌에 맞으면서도 거리에 나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외쳤던 할머님들을 생각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민족의 수치라는 폭력적인 말들을 일상적으로 들어야했던 그 때, 할머님들이 포기하지 않으셨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 순간을 기억할 때면, 길었던 올해의 하루하루가 비단 저만의 하루만이 아닌 할머님들의 하루들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그 하루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하루를 이어서 살아가고 있었구나를 올해의 끝자락이 되어 느낍니다.
올해가 되어 할머님들이 이제 9분 남으셨습니다. 사실 이 문제해결을 할머님들과 함께 맞이할 수 있는 기회들일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곁을 물리적으로 떠나시더라도 할머님들의 의지는 언제나 저희 곁에 남아있습니다.
정부는 결코 피해자의 부재를 틈타 2015 한일합의를 이행한다는 등의 역사문제를 졸속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은 피해자들의 법적배상과 공식사죄 및 재발방지를 통한 명예 회복까지 이루어져야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할매 나비가 날테니 젊은 나비들도 날아달라"
고 김복동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평화나지는 할매나비들을 따라 훨훨 날아가고자 합니다.
우리들의 날갯짓은 할머님들의 날갯짓입니다. 우리의 작은 날갯짓이 나비효과가 되어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평화나비는 계속해서 행동할 것입니다.
나비가 되신 할머님들의 평안을 빕니다.
그리고 현재 평화나비는 2024년을 준비하는 동계워크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국 회원들이 수원에서 모여 진행하고 잇는데요! 남은 1박2일도 건강하게 마무리할 수 잇도록 응원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추모사_윤지우 호주 퀸즈랜드주 노동당 청년위원회
I’d like to begin by acknowledging the Traditional Owners of the Australian land on which I come from today. I would also like to pay my respects to Elders past, present and emerging.
제가 방금 한 이 말은 제가 활동하는 호주에서 호주땅의 원주민들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며 그들의 나라와 땅이 강제로 재국주의 세력의 의하여 빼았긴 역사를 기억하며 인지하기 위해 하는 인사말 입니다.
안녕하세요, 지구 저 아래 down under 호주 브리즈번에서 활동하는 윤지우라고 합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민들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열정넘치게 활동하는 수요 시위에 제가 설수 있게 되어서 정말로 감개무량 합니다. 오늘 이렇게 브리즈번과 호주에서 보내는 연대의 메세지를 여러분과 나누고 매주 이곳에 나오셔서 이 자리를 지켜주시는 여러분게 힘과 응원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호주에는, 백인들이 정착형 식민지 사회를 만들기 전 5만년 넘게 호주땅에서 살고 있던 원주민 에버리진 그리고 토레스 해협인들이 계십니다. 호주에선 1900년도 초부터 1970년까지 정부와 교회기관 들이 혼혈 원주민 아이들을 “문명화” 한다는 명분 하에 강재로 부모에게서 빼았고 백인 기관 또는 수용소에 배치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 정책 때문에 아무 죄없는 원주민 아이들이 부모와 생이별을 마주하였고 결과 적으론 이 많은 아이들이 백인 수용소에서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2007년이 되서야 Kevin Rudd 노동당 총리가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정부의 책임을 사죄하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10월달엔 이 원주민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자기 자신들이 자주민주적으로 원주민 정책을 만들수 있는 the voice (목소리) 라는 정부 기관을 설립하고 헌법에 원주민이 호주 사람 이라는 것을 추가할수있는 게정안을 국민투표 했습니다. 하지만 극우의 선동과 거짓말로 호주국민 60%가 원주민을 헌법안에 인간으로서 인정 하는것을 거부 하였습니다.
이 아무 죄없는 원주민 피해자들은 자기들의 재대로된 사과도, 보상도 그리고 더 낳은 미래에 대한 약속도 받지 못하게되었습니다.
호주에서 활동하는 저에겐 이 원주민 정의와 한국에 위안부 운동이 매우 흡사합니다. 호주의 빼앗긴 세대도 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정의를 위하여 우리가 싸울때 극우는 거짓과 선동을 통하여 우리의 싸움을 방해 했음니다. 한국의 위안부 운동도 많이 비슷하다 봅니다.
한국의 위안부 운동은, 한국과 일본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운동은 세상 곳곳에서 인권이 유린당한 그리고 지금도 피해받고 있을 그 샐 수 없을 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해서 싸우는 아주 상징적인 엑티비즘 입니다. 여러분들은 잘 모를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길고 열정넘치게 지속 되는 이 수요시위는 세상 곳곳에서 활동하는 많은 분들께 끝없는 희망과 응원이 됩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역사는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을 여러분들이 항상 힘차게 외치고 계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이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 모여주시니, 항상 여러분들이 이 세상의 희망이 됩니다.
여러분의 식지 않는 정의를 향한 열정이, 바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라는 믿음 증거입니다.
여러분 호주에서도 위안부 할머니가 계신거 아시나요? 호주 할머니 얀 루프 오헌 헐머니 께서도 여러분들 처럼 정의의 희망과 정의를 향한 소망을 절대 놓치 않으셨습니다. 얀 할머니가 그랬듯,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이 그렇듯 우리도 호주에서 포기하지 않고, 모두의 인권을 위해 계속하여 싸우겠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참된 사죄를 받는 그날 까지 그리고 제대로된 호주 원주민들의 국가화해가 성립되는 그날 까지 우리 계속 희망을 잡고 살아 가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치며 호주에서의 따뜻한 연대의 메세지를 보냅니다. 늘 그 자리에서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높여 주시는 수요시위 자리를 지켜주시는 과거와 현재의 정의기억연대활동가 분들께, 국내와 세계 시민들께, 지금은 저희와 함께 할수없지만 이 투쟁에 한생을 바치신 분들께, 그리고 우리들에게 늘 희망과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할머니들에게 감사와 연대의 마음 전합니다!!
2023 돌아가신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 추모제 및 162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최, 주관은 정의기억연대에서 하였고 사회는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이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올해 돌아가신 한국 할머니 한 분, 필리핀 힐라리아 빌레이 부스타만테 할머니, 페덴시아 데이비드 할머니, 그리고 비공개이신 대만 할머니를 기억하며 묵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의 ‘활동가가 만난 할머니’ 이야기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한국의 할머니를 생전에 찾아뵈었던 정의연 방학과 새싹 활동가가 할머니를 추억하며 느끼는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추모사가 이어졌습니다. 전 정대협 생존자복지위원회 위원장이신 정태효 목사님, 평화나비 네트워크 백휘선 전국대표님, 호주 퀸즈랜드주 노동당 청년위원회 윤지우 님이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죄, 법적 배상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모든 피해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추모사를 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추모 공연이 있었습니다. <도라지꽃>에 맞추어 청주 민족춤패 너울 오세란 님이 감동적인 춤을 보여 주셨습니다. 춤을 추실 때는 한국의 할머니 유품인 손수건을 몸에 지니고 춤을 추셨고 중간에는 소중하게 꼭 안아주시기도 했습니다.
참가단체 소개 후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의 성명서 낭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화나비 네트워크 회원들이 <바위처럼>에 맞추어 율동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들께 헌화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모든 참가자들이 할머니 영정 앞에 꽃을 놓아 드리며 추모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성령선교수녀회, 평화나비 네트워크, 성공회대 우준하, 일본 간사이네트워크, 겨레하나, 호주 퀸즈랜드 주 노동당 청년위원회, 호주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연대, 진보대학생넷, 민족통일애국청년회, 워싱턴 평화나비 홍덕진 목사님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온라인으로는 Sung Hyun Ryu(미국 시애틀늘푸른연대), Friends of 'Comfort Women' in Sydney – 시소연, Goo Lee, Rebekah Jaung(뉴질랜드), Jae-Eun Noh(호주 브리즈번), 제니맘 등 여러분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활동가가 만난 할머니_방학 정의연 활동가
늦은 오후 햇살이 내리는 조용한 동네에 도착해 선물을 한 아름 들고 할머니를 뵈러 가는 그 길이 참 설렜습니다. 한 달 동안 잘 계셨는지, 밀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몇 시간이 어느새 사라질 정도로 할머니와 가족분께서는 저희를 편안하게 맞아주셨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집 냄새와 고요히 곱게 앉아 계시는 할머니가 떠오릅니다. 할머니께서는 항상 저희가 도착하기 전 머리를 단정히 빗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말씀이 어려우신 상황에도 조용히 저희의 손을 잡고 손등을 오랫동안 쓰다듬어주셨습니다. 지난날을 떠올리며 눈물짓는 때도 계셨지만, 또 아무리 몸이 아프셔도 오랜만에 온 활동가의 눈을 크게 뜨시고 반갑게 맞이해주셨습니다. 힘드신 날에는 화도, 짜증도 내시다가도 거울에 비친 표정을 보시고는 금세 표정을 푸셨습니다. 어떤 날은 활동가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보여드리며 “잘생겼지요?” 하면 같이 웃어주시기도 했습니다. 할머니의 좋은 날과 힘든 날에 함께 일상을 나누던 때가 그립습니다.
할머니께서 저를 기억하고 계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할머니의 시선과 목소리, 온도가 아직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운동을 하시느라 혈색이 발갛게 올라 힘들어하시는 할머니께 “할머니, 저희 여기 앞에 나가서 꽃구경도 가고 해야지요.”라고 말씀드리다 힘들다며 할머니께 된통 혼이 난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요~” 하고 졸랐지만, 역효과만 났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께서는 곁을 내어주셨습니다. 식사하시는 할머니 입술을 꼭꼭 닦아드리고 멀리 밖을 구경하는 할머니의 시선을 가만히 따라 보던 것도 기억납니다. 저는 할머니의 시간이 느리고 조용히 흐를 때 만났지만 집안 곳곳에 할머니의 몇 년 전 건강한 모습, 그리고 생전 ‘맵시, 솜씨, 말씨’를 두루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던 말씀, 할머니께서 접어가며 읽으시던 책들을 보며 치열한 세월 속에서도 멋지게 달려오신 할머니의 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크게 핀 목련을 함께 보며 더 따뜻해지는 날에 외출을 약속드렸지만 결국 할머니와 화원에 가 꽃구경을 하진 못했습니다. 훗날 꼭 할머니를 다시 만나 못 지켜드린 약속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저에게 따뜻함을 나눠주신 할머니와 가족분들에게 잊지 않고 앞으로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가 해결되는 그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할머니께서 고통 없이 편히 쉬시는 동안 귀중한 기억으로 열심히 나아가겠습니다.
활동가가 만난 할머니_새싹 정의연 활동가
할머니를 처음 뵌 건 올해가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큰 일교차에 오늘처럼 두터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낮에는 슬며시 한 손에 외투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날도 딱 그런 날씨였는데요, 유독 햇빛이 온화롭고 포근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댁으로 가는 길이 따사로워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기억되지 못할 것을 전제로 늘 처음과 같이 소개를 드리는데요,
할머니께서는 왜인지 저를 어디선가 봤다는 표정을 하셨지요.
단순히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내심 기뻤습니다. 착각이라도 좋으니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건 이렇게도 오래 가슴에 남는 일이니까요.
머리에 돌돌 말린 헤어롤, 새하얀 뺨, 조금은 차가운 손, 사르르 접히는 눈꼬리.
우아하고 고상하신 말씨, 굽을 신고도 꼿꼿하셨다던 할머니의 등. 제가 기억하는 건 너무나도 작은 것들이지만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있는 할머니를 퍼즐처럼 맞춰보면 어느새 힐머니 손을 잡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물론 그것도 정말 일부겠지요.
할머니의 95년 간의 긴 여정이 어떠했는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할머니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각자가 지닌 할머니와의 추억은 제가 뵌 할머니의 환한 미소에 오롯이 담겨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의 아름다운 미소는 할머니의 곁을 항상 지켜주셨던 따님의 미소와도 쏙 닮았지요. 당연한 일이 아님에도 당연하게 늘 그자리에서 모든 순간 함께하신 따님이 계셨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할머니를 기억하고 또 앞으로도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 일생의 동반자였던 따님을 존경합니다. 저도 따님처럼 묵묵히 삶의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건 아마 할머니의 삶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제게 2023년은 냉혹하고도 서럽고 분노로 가득하고도 무모한 한 해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와의 만남은 제가 지금 이순간 바로 여기에 있는 이유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고 나아갈 길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를 뵈었을 때 말씀드렸습니다. ‘곧 봄이 올 것 같아요, 봄이 오면 같이 나가요 할머니.’하고 손을 꼭 잡아드렸습니다. 비록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를 처음 뵈었던 날짜가 가까워지면 어디가 되었든 할머니를 떠올릴 것만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할머니와 또 함께하고 있는 거라고 믿습니다.
댁을 나서는 길에서 제 뺨을 차차 어루만지시던 할머니의 손의 온기를 기억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이 자리에는 없지만 할머니를 기억하는 모두의 마음에 할머니라는 온기가, 할머니라는 한 분의 숭고한 삶이 잊혀지지만 않는다면 계속해서 함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할머니께 배운 평범하고도 특별한 다정함과 인간다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할머니, 훗날 다시 뵌다면 그때도 처음과 같이 인사드릴게요. 그때는 제가 먼저 할머니를 알아볼게요. 할머니 존경합니다. 편안히 쉬세요.
추모사_백휘선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대표
안녕하세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전국대학생연합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대표 백휘선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수요시위가 되었습니다. 작년에 추운 겨울날, 이 곳에 회원들과 모여 추모사를 들었던게 불과 어제일 같은데 벌써 한해의 마지막이 되었네요.
올해는 금방 지나갔지만 사실 올해만큼 하루하루가 길었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3월부터 끊임없이 한일관계 및 역사문제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그 때 그 때 때에 맞는 대응을 하기 위해 하루를 꼬박 샌 적이 참 많았습니다.
혐오세력의 혐오발언들은 점점 더 기세등등해지니 우리도 더 목소리를 높이며 행동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내에서도 거리에서도 혐오의 소리를 듣고, 이런 발언들로 나비들이 상처 입을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힘들고 지칠때면 할머님들을 떠올립니다. 수요시위를 처음 시작할 때, 사람들의 매서운 눈초리에 상처입고, 누군가가 던진 돌에 맞으면서도 거리에 나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외쳤던 할머님들을 생각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민족의 수치라는 폭력적인 말들을 일상적으로 들어야했던 그 때, 할머님들이 포기하지 않으셨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 순간을 기억할 때면, 길었던 올해의 하루하루가 비단 저만의 하루만이 아닌 할머님들의 하루들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그 하루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하루를 이어서 살아가고 있었구나를 올해의 끝자락이 되어 느낍니다.
올해가 되어 할머님들이 이제 9분 남으셨습니다. 사실 이 문제해결을 할머님들과 함께 맞이할 수 있는 기회들일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곁을 물리적으로 떠나시더라도 할머님들의 의지는 언제나 저희 곁에 남아있습니다.
정부는 결코 피해자의 부재를 틈타 2015 한일합의를 이행한다는 등의 역사문제를 졸속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은 피해자들의 법적배상과 공식사죄 및 재발방지를 통한 명예 회복까지 이루어져야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할매 나비가 날테니 젊은 나비들도 날아달라"
고 김복동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평화나지는 할매나비들을 따라 훨훨 날아가고자 합니다.
우리들의 날갯짓은 할머님들의 날갯짓입니다. 우리의 작은 날갯짓이 나비효과가 되어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평화나비는 계속해서 행동할 것입니다.
나비가 되신 할머님들의 평안을 빕니다.
그리고 현재 평화나비는 2024년을 준비하는 동계워크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국 회원들이 수원에서 모여 진행하고 잇는데요! 남은 1박2일도 건강하게 마무리할 수 잇도록 응원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추모사_윤지우 호주 퀸즈랜드주 노동당 청년위원회
I’d like to begin by acknowledging the Traditional Owners of the Australian land on which I come from today. I would also like to pay my respects to Elders past, present and emerging.
제가 방금 한 이 말은 제가 활동하는 호주에서 호주땅의 원주민들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며 그들의 나라와 땅이 강제로 재국주의 세력의 의하여 빼았긴 역사를 기억하며 인지하기 위해 하는 인사말 입니다.
누구에겐 형식적인 인사일뿐이지만, 저에겐 아주 뜻깊고 가슴을 울리는 참된 정중한 인사라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지구 저 아래 down under 호주 브리즈번에서 활동하는 윤지우라고 합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민들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열정넘치게 활동하는 수요 시위에 제가 설수 있게 되어서 정말로 감개무량 합니다. 오늘 이렇게 브리즈번과 호주에서 보내는 연대의 메세지를 여러분과 나누고 매주 이곳에 나오셔서 이 자리를 지켜주시는 여러분게 힘과 응원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호주에는, 백인들이 정착형 식민지 사회를 만들기 전 5만년 넘게 호주땅에서 살고 있던 원주민 에버리진 그리고 토레스 해협인들이 계십니다. 호주에선 1900년도 초부터 1970년까지 정부와 교회기관 들이 혼혈 원주민 아이들을 “문명화” 한다는 명분 하에 강재로 부모에게서 빼았고 백인 기관 또는 수용소에 배치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 정책 때문에 아무 죄없는 원주민 아이들이 부모와 생이별을 마주하였고 결과 적으론 이 많은 아이들이 백인 수용소에서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2007년이 되서야 Kevin Rudd 노동당 총리가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정부의 책임을 사죄하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10월달엔 이 원주민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자기 자신들이 자주민주적으로 원주민 정책을 만들수 있는 the voice (목소리) 라는 정부 기관을 설립하고 헌법에 원주민이 호주 사람 이라는 것을 추가할수있는 게정안을 국민투표 했습니다. 하지만 극우의 선동과 거짓말로 호주국민 60%가 원주민을 헌법안에 인간으로서 인정 하는것을 거부 하였습니다.
이 아무 죄없는 원주민 피해자들은 자기들의 재대로된 사과도, 보상도 그리고 더 낳은 미래에 대한 약속도 받지 못하게되었습니다.
호주에서 활동하는 저에겐 이 원주민 정의와 한국에 위안부 운동이 매우 흡사합니다. 호주의 빼앗긴 세대도 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정의를 위하여 우리가 싸울때 극우는 거짓과 선동을 통하여 우리의 싸움을 방해 했음니다. 한국의 위안부 운동도 많이 비슷하다 봅니다.
한국의 위안부 운동은, 한국과 일본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운동은 세상 곳곳에서 인권이 유린당한 그리고 지금도 피해받고 있을 그 샐 수 없을 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해서 싸우는 아주 상징적인 엑티비즘 입니다. 여러분들은 잘 모를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길고 열정넘치게 지속 되는 이 수요시위는 세상 곳곳에서 활동하는 많은 분들께 끝없는 희망과 응원이 됩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역사는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을 여러분들이 항상 힘차게 외치고 계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이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 모여주시니, 항상 여러분들이 이 세상의 희망이 됩니다.
여러분의 식지 않는 정의를 향한 열정이, 바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라는 믿음 증거입니다.
여러분 호주에서도 위안부 할머니가 계신거 아시나요? 호주 할머니 얀 루프 오헌 헐머니 께서도 여러분들 처럼 정의의 희망과 정의를 향한 소망을 절대 놓치 않으셨습니다. 얀 할머니가 그랬듯,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이 그렇듯 우리도 호주에서 포기하지 않고, 모두의 인권을 위해 계속하여 싸우겠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참된 사죄를 받는 그날 까지 그리고 제대로된 호주 원주민들의 국가화해가 성립되는 그날 까지 우리 계속 희망을 잡고 살아 가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치며 호주에서의 따뜻한 연대의 메세지를 보냅니다. 늘 그 자리에서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높여 주시는 수요시위 자리를 지켜주시는 과거와 현재의 정의기억연대활동가 분들께, 국내와 세계 시민들께, 지금은 저희와 함께 할수없지만 이 투쟁에 한생을 바치신 분들께, 그리고 우리들에게 늘 희망과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할머니들에게 감사와 연대의 마음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힘내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