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수요 시위1633차 수요시위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1633차 정기 수요시위 주관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하였고 사회는 민혈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님이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이 <바위처럼>에 맞추어 힘찬 율동을 하였습니다.

 

민혈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님의 주관단체 인사말에 이어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양병승 반제국주의 학습모임 반격 회원님, 지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 님의 힘찬 연대발언이 있었습니다.

 

문화공연에서는 양동민 님이 <우린 굴복하지 않으리>라는 노래를 멋진 목소리로 불어 주었습니다.

 

이어 자아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했습니다.

 

참가단체 소개 후 소피아, 소방도로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님의 성명서 낭독을 마지막으로 1633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사랑의 씨튼 수녀회, 반제국주의 학습모임 반격,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온라인으로는 정미정, 이원석, 자인, 임계재, 황정수, Goo Lee, Hi, 제니맘, Sung Park, 데레사, Christine, 주권자 등 여러분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연대발언_양병승 반제국주의 학습모임 반격 회원

안녕하세요.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반역사적 판결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굉장히 반갑습니다. 저는 반제국주의 학습모임 반격의 양병승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 1월 28일은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분인 김복동 할머니의 5주기였습니다. 김복동 5주기를 맞이하며 저번 주 24일, 수요일에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한 ‘제1632차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열렸습니다. 또한, 이날은 류석춘 씨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이 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며, 전부 거짓말이다’ ‘일본 정부가 가해자가 아니다’라는 류석춘 씨의 망언에, 저는 울화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류석춘의 위안부 피해자 모독행위를 합법적이고 정당한 발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학문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고, 심지어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으므로 해당 발언들에 대해 명예훼손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괴망측하고 반역사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4년 동안의 법적 투쟁 끝에 나온 이 판결을 접하고 많은 분들이 분노하고 슬퍼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류 교수의 역사 왜곡과 재판부의 방관은 오늘날 한국에서 성행하는 역사 부정의 단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번으로 1633회, 30년 동안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온 수요시위는 운동의 결실로 세운 평화의 소녀상 주변을 떠돌 수밖에 없습니다. 알맹이 없고 틀린 주장만 뇌까리는 수구파 반동들이 인근에 알박기를 하고, 정부 기관은 “국가가 특정 집회를 우선할 수 없다”는 궤변을 들어 이를 비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몰염치한 작자들은 지금까지의 실증적 증거들을 통해 올바른 역사관을 세우자는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그 실상은, 피해자들이 겪은 경험을 상대화하며 묵살하고, 자신이 사용할 수 없는 사실과 증거들은 왜곡하며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것뿐입니다. “실증”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반박에는 “반일 종족주의”다, “종북 빨갱이”다라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망상만 드러낼 뿐입니다.

 

이러한 역사 부정은 새삼 새로운 것도, 한국에 독특한 것도 아닙니다. 일본 극우의 노골적인 역사 부정 운동은 1997년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가 언급된 것에 반대하며 결집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식민지배와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극우 파시스트들은 과거에 대한 비판과 반성들을 “자학 역사관”, 즉 자학사관으로 규정하며 자신들의 부정의한 세계관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부흥한 한국의 뉴라이트가 이를 따라하는 것은 새삼 새롭지 않습니다. 그 꽁무니를 쫓아 한국에선 교학사 교과서나 국정교과서 편찬과 같은 운동을 펼쳤고, 일본 우파들은 이를 대서특필하는 나름의 상생 구조도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류석춘 씨가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라는 직함을 가지고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 대한 부정이, 또한 이 버젓이 존재하는 진실에 대한 훼손이 얼마나 길게 이어져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듯 저급한 선전에 휘말리지 말고, 할머니들이 열어주신 지평 속에서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저들의 말대로 일본군 위안부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소모적으로 따지며 했던 말을 반복하기보다는, 할머니들의 증언으로 밝혀진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린 이것이 다름 아니라 여성의 성과 생식 능력에 대한 착취가, 근대 자본주의 국가의 형성과 제국주의적 기획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어디서 왔습니까? 일본은 제국주의적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조선을 착취하였습니다. 조선 여성에게 이 과정은 안정적인 성 착취의 장소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 수반되며, 피지배 민족을 향한 인권 유린, 성적 착취라는 이중 억압을 가하는 구체적 장치로서 기능했습니다. 이는 우습게도 가해자인 일본의 역사에서 이미 나타난 일이기도 합니다. 일본에 개항을 강요한 서구 열강 역시 식민지를 개척하는 제국주의 질서의 확립을 위해 국경 안팎의 여성들에게 이등 시민에 준하는 통제를 발휘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추동된 일본의 근대화는 마찬가지로 자국의 소수민족 및 빈곤여성에게 자유로운 매매를 빙자해 성적 착취를 강요했고, 각지 지방관들은 이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수탈하여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렇듯 일본군 위안부는 자본주의적 근대화라는 더욱 긴 전통의 단면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통은 일제의 패전과 조선 독립으로 끝났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일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법을 뒤집어 미군 상대의 위안소를 적극적으로 확충했습니다. 이승만 정부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상위법을 어기고 미군의 허가를 받아 행정명령으로 유엔군 위안소를 설치했고, 이 과정에는 일본군 경력이 있음에도 중용된 간부들이 앞장섰습니다. 이들은 위안부를 ‘5종 보급품’으로 규정해 ‘조달’했고, 그 방식에는 여성을 ‘빨갱이’로 몰아 강간하고 납치하는 것 역시 포함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위안소는 휴전 후 기지촌으로 이름만 바꿔 뿌리 내렸습니다. 현대 사회에는 더욱 집중적이고 금융화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결국 이렇듯 국가의 통제 속에서 여성의 성과 신체를 상품화한 산업의 구조는 여성에 대한 제국주의적 수탈 기획 속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이렇듯 장구한 기획의 현장에서 주조된 역사적 지식입니다.

 

하지만 이 역사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 재무장을 지원하고, 한미일동맹 구축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습니다. 다시금 패권과 이윤을 위해 수많은 인민을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는 제국주의자들의 망집 속에서, 할머니들이 겪은 아픔은 다시 일어나고 있고,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이 굴레를 틀어막기 위해서라도, 일본 정부는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살아계신 아홉 분의 할머니 앞에서 지금이라도 자국의 전쟁 범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엄중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통해 사죄해야만 합니다. 더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한국 시민사회의 우리들은 전쟁에 대한 반대와 성 착취 반대를 외치고 실천함으로써, 국제적으로 횡행하는, 전시 성폭력을 바로잡는 역사적 준거점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 역시 졸속 외교식의 공허한 ‘강제동원 제3자 변제’가 아니라 확실한 진상규명 요구로 응답해야만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 분들과 우리 연대의 목소리가 부르짖어온 진실이, 진실로서 공언될 때라야, 국제적으로 횡행하는 이 전시 성폭력이 근절되는 역사적 준거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걸 위해서라도, 우리는 모두 할머니들의 증언을 통해 역사를 다시 이해하고, 뭉쳐, 싸워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류석춘 씨의 망언에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입니다.

 

저 또한 이 자리에 함께한 다른 이들과 함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저희가 기억하는 한 결코 잊히지지 않을 것이기에, 그들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또 다른 이들이 상처를 가지지 않을 때까지 반제국주의 학습모임 반격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구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지막 부분만 세 번 외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법원은 허위사실 명예훼손 인정하고 가해자처벌 실시하라!’

일본 정부는 전쟁범죄 인정하고 법적책임을 다하라’

전시 성폭력 뿌리뽑자 위안부문제 완전 해결하자!’


연대발언_지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

안녕하세요. 저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유지연 캠페이너입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지난 11월, 서울고등법원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 항소심에서 일본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기념비적인 판결을 선고한 것을 환영하며 발언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지난 2021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국가면제를 이유로 피해자들의 소송을 각하한 실망스러운 판결 이래 3년 만에 일본의 법적책임이 인정된 것입니다. 이 모두는 오늘 제1633차 수요시위까지 30년 이상 진상 규명을 위해 활동하신 모든 할머니,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 시민사회의 값진 투쟁의 결과입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은 국제 인권법과 국제인도법에 따라 일본 정부에 직접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권리가 있습니다. 일본은 범죄가 발생했던 당시에는 이런 규범이 없었다고 주장하며 배상을 거절하고 있지만 1907년부터 효력을 보인 헤이그 규칙 제3조는 대상을 국가에 국한하지 않고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의 의무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범죄에 대해서 배상할 도덕적 의무뿐만 아니라 법적의무를 갖습니다. 


일본은 또한 2015년 한일합의에서 ‘위안부’ 문제가 종결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제네바 협약 추가의정서 제 91조는 국가가 조약과 협정을 통해 국민 개인의 배상 받을 권리를 대신 포기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근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존자들의 정의는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빠르게 일본군 성노예 잔학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확립하고 정의를 회복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국제법의 명확한 근거와 그에 따른 의무에 기반하여 국제앰네스티는 다음과 같이 촉구합니다. 


  • 일본 정부는 전쟁에 대한 일본의 전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노예제, 강간 등이 국제법상 범죄임을 인정하며, 생존자들이 겪은 고통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이 겪은 범죄에 대한 진실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하라. 


  • 일본 정부는 배상을 요구하는 개인의 권리를 자국법으로 명백히 인정하고, 배상 청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지체된 기간과 생존자의 나이를 참작하여 배상의 의무를 최우선 하라.  


  • 일본 정부는 성노예제의 모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각 ‘위안소’의 위치, ‘위안소’에서 성노예가 된 여성들의 숫자, 여성과 소녀들의 국적과 나이, 그 외 다른 실태를 포함한 포괄적 실태 보고서를 공개, 발행하라.

  • 한국 정부는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의 위반이 있을 경우 모든 국가면제를 금지하도록 보장하라. 또한 정부의 정치적 재량권을 통한 정치적 개입 없이 생존자들을 위한 배상 명령이 이행될 수 있게 보장하라. 


연대발언_자아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안녕하세요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자아입니다.  


지난해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 곳을 잃었고 2만 6천명이 넘게 집단학살 당했습니다. 


전쟁 중 젠더폭력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집단학살과 무차별 폭격이라는 물리적 폭력에 더해 재생산 폭력을 포함한 광범위한 젠더 폭력에도 맞서고 있습니다.  


지금 가자지구에서는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병원이 거의 없음에도, 매일 180여명의 아기가 태어나고 있습니다. 폭격 속에서 여성들은 돌멩이가 가득한 바닥에서 출산을 하고 마취도 진통제도 없이 제왕절개를 하고, 의약품 부족으로 출산 후 사망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에는 지금 충분한 식수와 음식, 몸을 뉘일 수 있는 거처가 없습니다. 어떤 화장실은 한곳당 600명 이상이 사용할 정도입니다. 이런 열악한 위생 환경에서, 여성들은 먹고 마시기를 멈추는 편을 택하고, 생리대가 없어 비위생적인 천을 사용하거나 아예 월경을 하지 않으려 피임약을 구하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집단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강간’마저 무기화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관련한 온갖 선정적인 뉴스 조작에 이어 하마스의 이스라엘 여성 강간 혐의도 제기했는데요, 


이스라엘의 엉성한 근거에 반박하는 이들에게는 젠더폭력을 외면하는 ‘안티 페미니스트’, 이스라엘 여성이 유대인이기에 강간 피해자임에도 문제를 제기하는 거라며 ‘반유대주의자’ 딱지를 붙입니다. 며칠 전에는 유엔의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 직원의 하마스 연루설을 들고 나왔습니다.  


모든 전쟁범죄, 학살과 강간 등의 혐의와 의혹은 독립적 기구에 의해 조사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사실은 이 ‘혐의’로 인해 이스라엘은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며 지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적극적으로 퍼트리고 있는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만으로도, 이미 16개 국가가 구호기구 자금 지원을 끊겠다고 선언해 당장 2월부터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온갖 젠더기반폭력은 10월 7일 이후 가속화되었을 지언정, 10월 7일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의 여성들은 76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군사점령과 팔레스타인 사회 내 가부장적 질서라는 이중의 억압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데, 점령국 이스라엘은 바로 이러한 이중 구조를 무기삼아 또다른 억압의 기제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720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되어 있고 이 중 약 30%에 해당하는 2000여 명은 정식 기소나 재판도 없이 안보상의 이유라는 명목 하나로, 행정구금 되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특히 팔레스타인 여성 수감자들을 무너뜨리고 영혼을 말살시키기 위해 성폭력이라는 고문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심문관들은 팔레스타인 여성 수감자에게 지속적인 성희롱 발언과 알몸 수색을 합니다. 특히 가족중심적 아랍 문화와 가부장적 사회규범을 이용해 심리적 고문을 가합니다.  심지어 약물로 의식을 잃게한 뒤 옷을 벗겨 사진을 찍어 자백을 하라고 협박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고문기술명이 따로 있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젠더기반폭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김복동 할머니와 만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활동가 라스미아 오데 또한 이스라엘군의 성폭력 및 고문 생존자입니다. 오데는 45일간 이뤄진 심문 내내 테러 미수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습니다. 그러자 심문관은 오데의 아버지를 데려와 자신들 앞에서 딸을 강간할 것을 명령했고 이를 거부한 아버지는 바로 심한 구타와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에 거짓 자백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오데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10년 후 그녀는 처음으로 이뤄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수감자 교환으로 석방이 되었고 같은 해 유엔에 출석해 자신이 ‘테러범’으로 조작되기까지의 과정을 증언한 바 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께서는 만남 당시, 전시 성폭력 피해여성들을 돕기 위한 나비기금을 전달하시며 오데의 투쟁에 크게 공감하셨습니다. 이에 오데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의가 곧 할머니들의 정의라며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라스미아 오데의 약속처럼,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저항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들은 이스라엘의 군사점령과 식민화와 가부장제 문화 모두에 언제나 저항해왔습니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언제나 해방운동의 주요 행위자로서 역사적 투쟁 때마다 비폭력 운동에 앞장서 왔습니다. 각종 위원회를 구성해 정치사회 의식화, 페미니스트 의식화를 논의하는 활동도 쉬지 않았습니다. 여성 수감자들 또한 단식투쟁과 항의로 열악한 수감 환경 개선, 십대 수감자들의 학업 지속 등의 요구를 관철시켜왔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존재가 저항이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끝까지 불의에 저항하고, 흔들림없이 버티고, 내가 있을 자리에 굳건히 존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고, 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는 무려 32년 간, 길 위에서 평화와 정의를 외쳐온 정의기억연대와 지지자분들의 투쟁과도 닮아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집단학살과 불법군사점령이 끝날 때까지, 요르단강부터 지중해에 이르는 그 땅 모든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들이 해방될 때까지, 팔레스타인의 정의와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자들의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저희도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