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할머니 소식3월 포항 할머니 방문기

3월 14일 활동가 보리와 복아, 행이 박필근 할머니를 뵙기 위해 이른 아침 나란히 KTX에 올랐습니다. 신입 활동가인 복아는 할머니를 방문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요, 낯선 얼굴을 할머니께서 불편해하시지 않을까 걱정 반, 새로운 얼굴도 있다며 좋아하실까 기대 반의 마음으로 다소 긴장한 채 이동길에 올랐습니다.

 

할머니 댁은 포항역에서도 차를 타고 한참을 이동해야 하는 곳에 있었습니다. 할머니 댁에 도착해 차를 주차하는 동안 평소와 달리 할머니께서 나와보시지 않자, 할머니를 매달 찾아뵙던 행은 “이상하다, 어디를 가셨나...”라며 서둘러 대문을 두드립니다. 다행히 할머니께서는 집 안에서 저희에게 전화를 거시는 중이었습니다. 평소보다 도착 시간이 늦었는지, 저희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싸게싸게(빨리빨리) 안 왔다며 귀여운 투정으로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댁에 들어가 짧은 인사를 나누곤 점심 식사를 위해 다 같이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무얼 드시고 싶냐 여쭙는 질문에 “아무거나 먹으면 된다. 아무거나.”는 말만 반복하십니다. 할머니의 입맛을 잘 아는 행은 자신은 고디(다슬기)국과 짜장면이 먹고 싶었다며 운을 뗍니다. “할머니, 짜장면 먹으러 갈까요?” “할머니, 고디국 먹으러 갈까요?” 여러 번의 질문을 던진 결과 할머니의 세밀히 다른 반응을 활동가들이 파악합니다. 그렇게 오늘의 메뉴는 고디국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식당으로 가는 동안 할머니께서는 보리와 복아를 향해 어느 가(家)인지 물어보십니다. 이어 활동가들의 얼굴을 슬쩍 보시고는 한창때라며 시집은 갔냐 물으십니다. 복아는 안 갔다고 하자 “시집가서 복 받고 잘 살으래이.”라며 복을 빌어주십니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복아가 “할머니, 저는 시집 안 가면 안 될까요?”라고 하니 요새는 안 가는 사람도 많다고 안 가도 된다고 하십니다. 할머니가 허락한 비혼, 든든하다!

 

식사 메뉴로 고디국을 고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중 제일 먼저 할머니가 밥과 국을 싹 비우셨습니다. 반찬으로 나온 코다리찜도 좋아하시길래 복아는 할머니께 점수를 따고 싶어 가장 큰 놈을 골라 가시를 바르곤 할머니의 밥그릇에 놓아드렸습니다. 그러나 복아의 플러팅은 실패합니다. 복아가 할머니의 그릇에 코다리찜을 놓자마자 할머니가 홱 다시 갖다 놓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보리와 행이 할머니께 드리는 코다리찜을 다시 보니 작게 조각을 내서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크고 좋은 것을 드리려고 한 것인데 너무 큰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한 수 배웠습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곤 근처 마트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이것저것 생필품을 구매하다 할머니께 드시고 싶은 건 없으신지 묻자 야시시한 과자를 사자고 하십니다. 야시시한 과자가 무엇일지 알아내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자 바스락바스락하는 거라고 하십니다. “이거다!” 싶어 과자 하나를 보여드리자 고개를 홱 돌려버리십니다. 마트를 한 바퀴 돌아 드디어 찾아낸 야시시하고 바스락거리는 과자는 바로 전병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전병을 좋아하십니다! 장을 보며 할머니께서는 활동가들에게 자꾸만 고맙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아니라 시민들이 사드리는 것이라 하니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알차게 장까지 보고는 다시 할머니 댁으로 돌아왔습니다. 장 본 것을 정리해 드리려 하자 할머니는 마음이 급하신지 당신이 나중에 하겠다며 건드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해가 중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서불(서울)이 천리라는데 어두워지기 전에 가야 한다고 조급해하십니다. 할머니랑 놀다가 갈 것이라 말씀드려도 지금 가도 서불(서울)이 멀다던데 어두워지면 당신의 마음이 안 좋다고 빨리 가라는 말씀만 반복하십니다.

 

할머니를 조르고 졸라 화투를 한 판만 치고 출발하는 것으로 타협을 봤습니다. 화투를 치며 대화를 많이 나누고 싶어 천천히 칠라치면 할머니는 곧장 “누구 차례냐! 싸게싸게 쳐라!”라며 속도감을 유지하셨습니다. 그러나 화투에 누구보다 진심인 할머니, 당신 패를 받고는 마음에 안 들면 은근슬쩍 까는 패였던 양 가운데에 뒤집어 내놓곤, 당신의 패를 달라며 다시 손을 내미십니다. 한 판이 끝나면 자연스레 다음 판을 준비하며, 할머니가 이제 가라고 하실 때까지 다행히 꽤 오래 화투를 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이동이 어려우시니 홀로 적적하시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활동가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야만 했습니다. 할머니, 자주 찾아뵐게요. 다음에 또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