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9일, 활동가 방학, 신석기가 이용수 할머니를 뵙기 위해 대구를 방문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께서는 최근 손목과 허리가 좋지 않아 한의원에 다녀오시는 길이었습니다. 두 활동가는 돌아오시는 시간에 맞춰 딸기, 포도, 사과를 챙겨 댁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택시에서 내리시는 할머니께 반갑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얼굴을 보자마자 손을 덥석 잡으시고, 잘 왔다며 맞이해 주셨습니다. 식사를 하러 가기 전 잠깐 댁에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차를 내어주시며, 앉으시자마자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여가부 폐지한다던데 어떡하냐, 장관도 임명하지 않고 있다는데 어떡하냐, 그럼 안된다. (2023년 11월 23일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재판도 법적으로 이겼는데, 이긴 날 나는 방에 주저앉아 할머니들, 우리 이겼습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하고 목 놓아 울었는데, 이렇게 (해결을) 방해하고 집행을 안 하고 있으니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 말도 다 못 한다.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아 소화도 잘 안된다.”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활동가들은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리고 최근 3.8 여성대회와 같이 많은 시민들이 여가부 폐지 저지를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더 격렬히 저항하여 꼭 폐지하지 못하도록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안심의 긴 숨을 내뱉으시고 “사람이 그럼 안 된다. 벌 받을 거야.” 하시며 손을 더 단단히 그러쥐셨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댁 근처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할머니께 요즘은 무엇이 드시고 싶으신지, 앞으로 자주 찾아뵐 테니 가고 싶은 곳이 있으신지 여쭤보았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요양보호사님이 계시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활동가들은 요양보호사님이 계시지 않는 날 방문하고, 혼자 계실 때도 시간을 잘 보내실 수 있도록 좋아하시는 노래와 공연영상을 준비 해오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식사를 마친 할머니와 댁에 돌아가니 할머니께서는 두 활동가가 마음에 드셨는지, “좀 더 늦게 가면 안 되겠냐, 가지 말아라.” 하시며 손을 꼭 붙잡으셨습니다. 정을 준 사람들과 헤어짐이 마음 아프시다고 하셨습니다. 두 활동가는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늦춰 할머니와 시간을 좀 더 보내기로 하고, “꼭 다시 올 거예요. 할머니가 오지 말라고 해도 올 거예요.” 하고 당부드리니 할머니께서는 활짝 웃으시며 “정말이가?” 하곤 눈에 띄게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곤 두 미남 미녀가 와주어 참 좋고 고맙다며 폭풍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노래를 참 잘하시는데요. 몇십 년이 지나도 기억하는 노래와 ‘바위처럼’을 불러주셨고, ‘내 나이가 어때서’를 개사하여 “야이야~ 내 나이가 어때서,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인데~” 하며 멋지게 불러주셨습니다. 두 활동가가 박수갈채와 엄지를 들고 “할머니, 할머니 노래 너무 잘하셔요, 멋져요~!” 하니 환히 웃으셨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할머니께서는 사진첩을 보여주시며 위안소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던 일들을 말씀 해주셨습니다. 사진을 보며 “내가 데모 나갈 때마다 옆에서 ‘사기꾼 이용수’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 인간이 싫어지기도 해. 나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인간이 싫어지기도 해.”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께 그런 역사부정세력을 처벌할 수 있는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을 시민의 힘으로 21대 국회에 발의했고, 통과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씀드리며 꼭 안아드렸습니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갈까요. 어느덧 갈 시간이 되니 할머니께서 “시간과 세월이 가지 않는 곳에 있으면 좋겠어. 너희와 시간과 세월이 지나지 않게. 이렇게 같이 오래 있고 싶어.” 하시며 아쉬워하셨습니다. 활동가들도 아쉬운 표정을 지으니, “참 내가 불쌍하지요?” 하셨습니다. 저희는 얼른 손사래를 치며, “할머니. 저는 할머니가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용기 있게 증언하시고, 활동하시고. 할머니가 계셔서 법적으로도 이길 수 있었어요. 할머니가 아니면 누가 지금까지 할 수 있었겠어요. 할머니 참 대단하셔요.” 하니 부끄럽게 웃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참... 어떻게 시작 했을까...” 하며 지난날의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눠주셨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할머니께 다음에도 올 테니 걱정 마시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보자” 하는 말씀에 꼭 안아드렸습니다. “둘이 안는 느낌도 다르다.” 라는 할머니 말씀에 방학 활동가가 웃으며 “제가 안는 느낌이 더 좋지요?” 하니 “그래. 너는 폭 다 감싸면서 안아주고. 얘(신석기)는 요렇게 띄워서 안아주네. 근데 총각은 그래야지.” 하며 신석기 활동가의 매너(?)에 농담을 던지시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께 깊게 허리 숙여 인사드리니 하트와 손 키스를 날려주셨습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소중한 말씀을 듣기도 하고, 할머니와 웃음과 울음을 나누는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다음 방문까지 할머니께서도 건강히, 행복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를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3월 19일, 활동가 방학, 신석기가 이용수 할머니를 뵙기 위해 대구를 방문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께서는 최근 손목과 허리가 좋지 않아 한의원에 다녀오시는 길이었습니다. 두 활동가는 돌아오시는 시간에 맞춰 딸기, 포도, 사과를 챙겨 댁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택시에서 내리시는 할머니께 반갑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얼굴을 보자마자 손을 덥석 잡으시고, 잘 왔다며 맞이해 주셨습니다. 식사를 하러 가기 전 잠깐 댁에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차를 내어주시며, 앉으시자마자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여가부 폐지한다던데 어떡하냐, 장관도 임명하지 않고 있다는데 어떡하냐, 그럼 안된다. (2023년 11월 23일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재판도 법적으로 이겼는데, 이긴 날 나는 방에 주저앉아 할머니들, 우리 이겼습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하고 목 놓아 울었는데, 이렇게 (해결을) 방해하고 집행을 안 하고 있으니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 말도 다 못 한다.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아 소화도 잘 안된다.”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활동가들은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리고 최근 3.8 여성대회와 같이 많은 시민들이 여가부 폐지 저지를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더 격렬히 저항하여 꼭 폐지하지 못하도록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안심의 긴 숨을 내뱉으시고 “사람이 그럼 안 된다. 벌 받을 거야.” 하시며 손을 더 단단히 그러쥐셨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댁 근처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할머니께 요즘은 무엇이 드시고 싶으신지, 앞으로 자주 찾아뵐 테니 가고 싶은 곳이 있으신지 여쭤보았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요양보호사님이 계시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활동가들은 요양보호사님이 계시지 않는 날 방문하고, 혼자 계실 때도 시간을 잘 보내실 수 있도록 좋아하시는 노래와 공연영상을 준비 해오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식사를 마친 할머니와 댁에 돌아가니 할머니께서는 두 활동가가 마음에 드셨는지, “좀 더 늦게 가면 안 되겠냐, 가지 말아라.” 하시며 손을 꼭 붙잡으셨습니다. 정을 준 사람들과 헤어짐이 마음 아프시다고 하셨습니다. 두 활동가는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늦춰 할머니와 시간을 좀 더 보내기로 하고, “꼭 다시 올 거예요. 할머니가 오지 말라고 해도 올 거예요.” 하고 당부드리니 할머니께서는 활짝 웃으시며 “정말이가?” 하곤 눈에 띄게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곤 두 미남 미녀가 와주어 참 좋고 고맙다며 폭풍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노래를 참 잘하시는데요. 몇십 년이 지나도 기억하는 노래와 ‘바위처럼’을 불러주셨고, ‘내 나이가 어때서’를 개사하여 “야이야~ 내 나이가 어때서,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인데~” 하며 멋지게 불러주셨습니다. 두 활동가가 박수갈채와 엄지를 들고 “할머니, 할머니 노래 너무 잘하셔요, 멋져요~!” 하니 환히 웃으셨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할머니께서는 사진첩을 보여주시며 위안소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던 일들을 말씀 해주셨습니다. 사진을 보며 “내가 데모 나갈 때마다 옆에서 ‘사기꾼 이용수’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 인간이 싫어지기도 해. 나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인간이 싫어지기도 해.”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께 그런 역사부정세력을 처벌할 수 있는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을 시민의 힘으로 21대 국회에 발의했고, 통과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씀드리며 꼭 안아드렸습니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갈까요. 어느덧 갈 시간이 되니 할머니께서 “시간과 세월이 가지 않는 곳에 있으면 좋겠어. 너희와 시간과 세월이 지나지 않게. 이렇게 같이 오래 있고 싶어.” 하시며 아쉬워하셨습니다. 활동가들도 아쉬운 표정을 지으니, “참 내가 불쌍하지요?” 하셨습니다. 저희는 얼른 손사래를 치며, “할머니. 저는 할머니가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용기 있게 증언하시고, 활동하시고. 할머니가 계셔서 법적으로도 이길 수 있었어요. 할머니가 아니면 누가 지금까지 할 수 있었겠어요. 할머니 참 대단하셔요.” 하니 부끄럽게 웃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참... 어떻게 시작 했을까...” 하며 지난날의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눠주셨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할머니께 다음에도 올 테니 걱정 마시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보자” 하는 말씀에 꼭 안아드렸습니다. “둘이 안는 느낌도 다르다.” 라는 할머니 말씀에 방학 활동가가 웃으며 “제가 안는 느낌이 더 좋지요?” 하니 “그래. 너는 폭 다 감싸면서 안아주고. 얘(신석기)는 요렇게 띄워서 안아주네. 근데 총각은 그래야지.” 하며 신석기 활동가의 매너(?)에 농담을 던지시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께 깊게 허리 숙여 인사드리니 하트와 손 키스를 날려주셨습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소중한 말씀을 듣기도 하고, 할머니와 웃음과 울음을 나누는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다음 방문까지 할머니께서도 건강히, 행복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를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