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 초 행 활동가와 한결 활동가, 그리고 감자 활동가가 새벽부터 모여 할머니를 뵈러 포항으로 내려갔습니다. 저(감자)는 지난번 방문 때 할머니가 다리에 침을 맞고는 영 기운을 차리질 못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걱정하며 포항역에 내렸는데요, 부지런히 달려가 문 앞에 앉아 기다리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니 거동이 괜찮으신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우리 할머니 또 목청 높여 “정대협이가?” 물으십니다. 행 활동가 이름을 그렇게 알고 계시거든요. 할머니의 열렬한 환영과 함께 “대협”이 주차를 하고 훌쩍 할머니께 뛰어갔습니다.
거실에 다 같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결 활동가와 감자 활동가가 할머니께 “저희를 기억하세요?” 물으니 “처음 본다.” 하셨어요. 전에 언제 언제 왔었다, 무슨 옷 입고 왔었다, 열변을 토하며 할머니의 기억을 일깨우던 중 행 활동가가 화장실에서 나왔습니다. “이 친구만 아시죠?” 한결 활동가가 행 활동가를 가리키며 물으니 할머니가 능청스럽게 “모르는 사람인데?” 하셔서 그제야 농담인 줄을 알고 한바탕 웃었답니다.
할머니는 부쩍 외로우신 것 같아요. 은근히 따님을 뵙고 싶은 것처럼 말씀하셔서 할머니와 오랜 시간을 보낸 행 활동가가 귀신같이 눈치챘습니다. 곧장 따님께 전화를 드리니 흔쾌히 오라고 하셨어요. 한창 따님이 일 때문에 바쁜 시기라 쉽게 보고 싶다 말씀도 못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많이 쓰였습니다. 따님댁에 가기 전에 트렁크 가득 선물을 싣자 할머니가 신이 나셨습니다. 혹여나 행 활동가가 따님댁을 못 찾을까 봐 뒷좌석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길을 맞게 가고 있는지 발도 동동 구르시고요. 그렇게 할머니의 감시 속에 도착한 따님댁은 초록이 만연한 풍경이었습니다.
따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바쁠 텐데 이제 가야겠다고 하시는 할머니 손을 잡고 겨우 소파에 앉혀 드렸습니다. 할머니 취향에 대해서 따님은 완전히 박사입니다. 요거트와 신선한 산딸기를 가져와 손에 쥐여 드리니 할머니가 엄청 잘 드셨습니다. 시원한 실내에 앉아서 여러 가지 사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모녀간의 대화 속에서 저는 할머니의 여러 가지 모습을 배웠습니다. 우리 할머니 이런 표정도 하시는구나, 싶기도 하고, 이런 걸 좋아하시는구나, 싶기도 하고. 활동가들 갈 길이 머니 빨리 보내야 한다는 채근에 모두가 입을 모아 괜찮다고 만류해도 할머니는 끝내 얼른 일어나셨어요.
할머니가 엉엉 우셨습니다. 지난 고생스러운 날들에 대한 미안함인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맺히신 것인지 감히 짐작도 할 수가 없습니다. (딸이) 이렇게 산중에 사느라 너무 고생을 한다는 할머니의 말에 따님은 “엄마 왜 울어! 난 여기 살아서 좋아. 엄마 가까이 사니까 얼마나 좋아.”라며 할머니를 위로하고 꼭 끌어안습니다. 저도 덩달아 울컥해서 괜히 창밖만 쳐다봤습니다. 돌아가는 길 내내 할머니는 “정대협이 아니었으면 못 왔다”며 고마워하셨는데, 저희도 할머니께 하나라도 더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같다는 걸 아실까요?
입맛이 없으시다는 할머니께 그래도 같이 꼭 식사하자고 졸라서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소중한 한 끼를 나누고 할머니 댁에 도착해 거실에 함께 앉아 잠시 화투를 쳤습니다. 오늘 여기저기 가느라 많이 피곤하신지 좋아하시던 화투도 금방 치우시기에 대신에 남은 시간을 대화로 채웠습니다. 서울 가는 차가 아직 있느냐며, 올라가는 길 고생할 텐데 얼른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매번 방문 때마다 듣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게는 이제 그 말이 꼭 사랑의 표현같이 느껴집니다. 할머니의 많은 모습을 엿보고, 말씀 그대로 “얼른” 갔다가 “얼른” 돌아오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들이 길게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 초 행 활동가와 한결 활동가, 그리고 감자 활동가가 새벽부터 모여 할머니를 뵈러 포항으로 내려갔습니다. 저(감자)는 지난번 방문 때 할머니가 다리에 침을 맞고는 영 기운을 차리질 못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걱정하며 포항역에 내렸는데요, 부지런히 달려가 문 앞에 앉아 기다리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니 거동이 괜찮으신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우리 할머니 또 목청 높여 “정대협이가?” 물으십니다. 행 활동가 이름을 그렇게 알고 계시거든요. 할머니의 열렬한 환영과 함께 “대협”이 주차를 하고 훌쩍 할머니께 뛰어갔습니다.
거실에 다 같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결 활동가와 감자 활동가가 할머니께 “저희를 기억하세요?” 물으니 “처음 본다.” 하셨어요. 전에 언제 언제 왔었다, 무슨 옷 입고 왔었다, 열변을 토하며 할머니의 기억을 일깨우던 중 행 활동가가 화장실에서 나왔습니다. “이 친구만 아시죠?” 한결 활동가가 행 활동가를 가리키며 물으니 할머니가 능청스럽게 “모르는 사람인데?” 하셔서 그제야 농담인 줄을 알고 한바탕 웃었답니다.
할머니는 부쩍 외로우신 것 같아요. 은근히 따님을 뵙고 싶은 것처럼 말씀하셔서 할머니와 오랜 시간을 보낸 행 활동가가 귀신같이 눈치챘습니다. 곧장 따님께 전화를 드리니 흔쾌히 오라고 하셨어요. 한창 따님이 일 때문에 바쁜 시기라 쉽게 보고 싶다 말씀도 못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많이 쓰였습니다. 따님댁에 가기 전에 트렁크 가득 선물을 싣자 할머니가 신이 나셨습니다. 혹여나 행 활동가가 따님댁을 못 찾을까 봐 뒷좌석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길을 맞게 가고 있는지 발도 동동 구르시고요. 그렇게 할머니의 감시 속에 도착한 따님댁은 초록이 만연한 풍경이었습니다.
따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바쁠 텐데 이제 가야겠다고 하시는 할머니 손을 잡고 겨우 소파에 앉혀 드렸습니다. 할머니 취향에 대해서 따님은 완전히 박사입니다. 요거트와 신선한 산딸기를 가져와 손에 쥐여 드리니 할머니가 엄청 잘 드셨습니다. 시원한 실내에 앉아서 여러 가지 사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모녀간의 대화 속에서 저는 할머니의 여러 가지 모습을 배웠습니다. 우리 할머니 이런 표정도 하시는구나, 싶기도 하고, 이런 걸 좋아하시는구나, 싶기도 하고. 활동가들 갈 길이 머니 빨리 보내야 한다는 채근에 모두가 입을 모아 괜찮다고 만류해도 할머니는 끝내 얼른 일어나셨어요.
할머니가 엉엉 우셨습니다. 지난 고생스러운 날들에 대한 미안함인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맺히신 것인지 감히 짐작도 할 수가 없습니다. (딸이) 이렇게 산중에 사느라 너무 고생을 한다는 할머니의 말에 따님은 “엄마 왜 울어! 난 여기 살아서 좋아. 엄마 가까이 사니까 얼마나 좋아.”라며 할머니를 위로하고 꼭 끌어안습니다. 저도 덩달아 울컥해서 괜히 창밖만 쳐다봤습니다. 돌아가는 길 내내 할머니는 “정대협이 아니었으면 못 왔다”며 고마워하셨는데, 저희도 할머니께 하나라도 더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같다는 걸 아실까요?
입맛이 없으시다는 할머니께 그래도 같이 꼭 식사하자고 졸라서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소중한 한 끼를 나누고 할머니 댁에 도착해 거실에 함께 앉아 잠시 화투를 쳤습니다. 오늘 여기저기 가느라 많이 피곤하신지 좋아하시던 화투도 금방 치우시기에 대신에 남은 시간을 대화로 채웠습니다. 서울 가는 차가 아직 있느냐며, 올라가는 길 고생할 텐데 얼른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매번 방문 때마다 듣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게는 이제 그 말이 꼭 사랑의 표현같이 느껴집니다. 할머니의 많은 모습을 엿보고, 말씀 그대로 “얼른” 갔다가 “얼른” 돌아오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들이 길게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