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연구·교육·장학9/3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탐방 및 현장 연대 방문 보고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이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현장에 연대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동두천 성병관리소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1973년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성병을 관리하기 위해 세워졌고, 1996년 3월 폐쇄되어 지금은 건물만 남아있습니다. 소요산 속에 2300평 부지, 2층 규모로 세워진 이 관리소는 ‘낙검자수용소’, ‘몽키하우스’, ‘언덕위의 하얀 집’으로 불렸습니다. 성병 검진에서 낙검된다는 것은 성병보균자로 진단을 받았다는 뜻이라, 낙검자들을 수용하는 시설이라는 뜻으로 ‘낙검자수용소’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몽키하우스라는 이름은 폄하의 뜻을 담고 있었는데요. 미군들이 아시아인을 옐로우 몽키로 비하하던 단어라고 합니다. 독한 페니실린에 고통스러워하던 여성들을 멸칭한 것입니다.










외화벌이를 위해 당시 정부는 미군부대 인근 기지촌에서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도록 장려했고, 기지촌 내 여성폭력과 학대에는 묵인했습니다. 게다가 80년대부터는 기지촌 내 클럽에 여성들을 고용해 보건증을 발급하는 방식으로 ‘관리’방식을 바꿨다고 합니다. 당시 기지촌 여성들은 이런 무작위 관리를 ‘토벌’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관리’와 ‘토벌’이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 여성을 환자가 아닌 도구로 봤다는 사실이 너무나 여실히 드러납니다.


 보산동 일대

1992년 10월, 케네스 마클 주한미군이 윤금이씨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보산동 일대도 함께 걸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미군 범죄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인식 전환을 이뤘고 시민들의 힘으로 미군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사례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기지촌 생활에서 계속된 구타와 폭력, 강제 임신, 임신중절 속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생을 마감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상패동 무연고 묘지










상패동의 무연고 묘지터는 이런 상황들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1,050개의 묘지가 있다고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묻혀 2천~3천 개의 묘지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합니다. 3년째 분묘 작업을 하는 중이지만, 아직도 많은 묘들이 이름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주한미군공여지 반환운동 기념비와 동두천 평화의 소녀상










주한미군공여지 반환운동 기념비와 동두천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에도 다녀왔습니다. 시민들이 만든 연대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공여지라는 개념도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었는데요. 소정 활동가는 이번 활동을 통해 공여지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미군이 쓰는 직접 공여지뿐만 아니라 전기, 수도, 기름, 철도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사는 땅도 간접공여지로 포함이 되어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모르던 내용이었습니다. 농사를 짓고 있던 어느날 갑자기 밭에 들어온 장갑차가 당황스러워 시청에 연락을 하니, 폭격 훈련을 하려 했다는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다 함께 모여 이 훈련을 막아내고, 공여지까지 반환받았다는 사실은 굉장한 울림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동두천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도, 설립에 정말 많은 시민들이 함께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동두천 시청 앞 천막농성 현장 연대

 








동두천을, 성병관리소를, 이 모든 공간들을 왜 보존해야 하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하루였습니다.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시간들이 역사였음을 실감하기도 헀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는 존재했던 역사를 ‘부끄럽다’고 지워버리려 합니다. 지우려 할수록 더욱 단단하게 모여 이 곳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평화가 밥 먹여주는 세상’을 위해 오늘도 동두천 성병관리소 보존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현장에 깊은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정의기억연대도동두천옛성병관리소철거저지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와 계속 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