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수요 시위1591차 수요시위 -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1591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나흘 앞두고 진행되었습니다. 주관은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전국연합회가 하였고, 사회는 정인숙 사회위원장님이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그리고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을 위한 묵념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수 허영택 님이 노래 <April Come She Will>, <슬픈 인연> 두 곡을 불러 주었습니다.

그리고 김현숙 회장님의 주관단체 인사말 후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대회협력부서장이며 4.16합창단 단장이신 이창현 어머니 최순화 님,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박가영 어머니 최선미 님, 성공회대학원 국제문화연구 석사 우준하 님,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후쿠야마 연락회 전 대표 스즈키 스미에 님,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대표 백휘선 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2회 전국 청소년 일본군‘위안부’ 시화작품 공모전 대상 수상작 <다시 봄>을 이정임 추진위원님이 낭독해 주었습니다.

이후 가수 허영택 님의 <나무> 노래 공연 후 참가자, 참가단체 소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혜자 사회부위원장의 성명서 낭독 후 <바위처럼>에 맞춰 평화나비 네트워크 회원들이 신나는 율동을 하며 1591차 정기 수요시위를 마무리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사랑의 씨튼 수녀회, 평화나비 네트워크,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서울), 명지대학교 강경대열사추모사업회, 기장여신도회 전국연합회, 기장 서울제일교회, 호주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연대, 여성긴급전화 1366 인천센터, 4.16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드니 행동 ‘세시동’, 겨레하나, 이미경 님 외 여러 단체와 개인이 참가하였습니다.

수요시위에 현장에서, 온라인으로 함께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주관단체 인사말_김현숙 회장(기장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안녕하십니까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현숙입니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정기수요시위에 참석하신 여러분께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1591차 수요시위를 주관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전국연합회를 잠시 소개 하겠습니다.

우리 단체는 기독교 교단 중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속한 여신도들의 자율적인 모임으로써 생명⦁정의⦁평화를 선교의 목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에큐메니칼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연합선교 운동에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70년에서 80년대의 독재권력과 자본주의, 군사주의, 분단구조, 가부장적문화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체제는 인간을 억압하고 죽음의 길로 내모는 구조 악으로 작용한다고 보고 우리 기장여신도회는 인권회복운동과 여성인간화운동 그리고 평화운동을 오랜 기간 전개 해왔습니다. 또한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정신대문제 논의와 대책수립 활동에도 초기부터 운동을 했고 정의기억연대와 함께 해 온 단체입니다.

1992년 1월 8일 일본군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30년이 넘는 지금까지 평생 고통 속에서 살다간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과 절규로 한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은 참담한 현실이 우리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기억 될 것이며 잊어서도 안 되고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소중한 역사입니다.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정부의 위안부 범죄에 대한 일본의 범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으로 배상하는 그날까지 우리 단체는 생명⦁평화⦁정의를 만들어가는 일에 연대하며 함께 나아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제2회 전국 청소년 일본군 ‘위안부’ 시화작품 공모전 대상 수상작

<다시 봄>

김경원

봄이었어.

눈 부신 햇살과 불어오는 산뜻한 바람에
꽃봉오리를 품은 나뭇가지가 기지개를 켜던

하이얀 꽃잎이 청명한 하늘 위에서 흩날리고
어린 잎들이 돋아 여린 풀내음이 가득하던

별 것 아닌 일에도 별일인 것처럼 설레던

그래서 순수하고 말갛던, 나의 봄이 있었어.

꽃이 만개하고 나비가 팔랑거렸던 나의 봄은

어쩌면 그 누구의 봄보다 찬란했을지도 몰라.

그랬던 나의 봄에 먹구름이 몰려와 세상을 흔들었어.

잿빛 먹구름은 큰 회오리를 만들더니 내 모든 것을 삼켜버렸어.

그때, 나의 봄이 짓밟혔어.

꽃잎은 밟히고 뿌리까지 뽑혀 나의 꽃은 허공을 흩어졌어.

나비의 날개는 젖었고, 찢겼고, 나비는 끝내 죽었어.

큰 파도가 치더니 내 세상을 무너뜨렸어.

나의 몸도 마음도 다 망가졌어.

모든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어.

나쁜 꿈을 꾼 기분이었어.

숨쉬고 있는 매일이 꿈이길 기도했어.

이 악몽은 끝날 생각이 없어, 계속 내 숨통을 조여와.

끝나지 않는 그때의 봄을 기억해.

사라지지 않는 그날들을 기억해.

연대발언_최순화(이창현 어머니)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대외협력부서장, 4.16합창단 단장

안녕하세요. 저는 세월호 유가족 단원고 2학년 5반 이창현 엄마 최순화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수요집회를 이어 가고 계시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영웅이고 희망인 것 같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데, 여기는 희망이 있는 곳인 것 같습니다. 굴하지 않고 계속 수요집회를 이어가서 우리가 원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 일본의 사죄, 기타 등등 모든 것들을 이루어 낼 때까지 계속 투쟁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몇 년 전에 <곡성>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보신 분 계시겠죠? 굉장히 잔혹하고 무서운 영화였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를 왜 봤나 싶었는데, 스토리는 곡성이라는 마을에 전염병 같은 게 일어나 그 병에 걸린 사람이 계속 사람을 죽이고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자기 가족도 죽여가지고 온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얘기인데, 그 원인을 찾아내서 제거하려는 노력들이 담긴 영환데, 그중에 한 요인이 외지인이라고 하는 일본인이 있어요, 산에서 살아가는 일본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일본 무당이라고도 하고, 그 사람이 원인이다 이런 얘기들이 떠돌면서 그 사람을 제거하려는 내용도 나오고 그러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저한테 남는 것은 일제의 잔재 세력들이 그렇게 외지인, 일본인처럼 산에 숨어서 살면서 한 마을을 쑥대밭을 만든 것처럼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 청산하지 않은 일본의 잔재들, 일제 당시에 호의호식했던, 일제에 빌붙어서 살았던 사람들, 굉장히 강한 경제력과 많은 엘리트 층을 이루고 있다고 하죠. 그 사람들 그리고 그때 당시부터 계속 이어져 온 제도와 정책들 이런 것들을, 친일을 청산하지 않은 결과가 오늘 윤석열 대통령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을 얘기해 주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준비를 하지 못해서 국권을 잃어버렸다느니, 강제노동자들의 변상을 제3자가,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야 한다는 이런 아주 몰상식한 말로 국격을 떨어뜨리고 외부에 나가기만 하면 국민을 부끄럽게 하는 대통령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고 살고 있는데 이게 전부 다 일제를 청산하지 않은 결과인 것 같습니다.

몇 년 동안 몇십 년 동안, 해방된 지 75년이 지났는데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친일을 주장하면서 나라를 망가뜨리고 혼란스럽게 하는 세력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이때 지금까지 싸워온 우리들은 너무나 작아지는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희 세월호 참사도 다음 주면 만 9년이 되는데요. 9년 동안 진상규명을 위해서, 또 이후의 안전사회를 위해서 끊임없이 투쟁해 왔지만 아직 진상규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2014년 그때 당시 600만명의 서명을 받아서 1차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을 했는데 박근혜 정부의 아주 집요하고 지속적인 방해로 강제로 종료되어 버렸고, 그다음 어렵게 어렵게 세월호를 인양해서 선체조사위원회가 출범을 해서 침몰 원인을 조사했지만 선체조사위원회도 침몰 원인을 내인설, 세월호 자체의 문제다, 그 내인설이나 그 외의 외력설, 열린안, 자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열린안 두 가지로 결론이 나서 침몰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는데, 그 외 또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가 출범을 해서 3년 반 동안 조사를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도 조사 결과가 뭐냐면, 선조위 때 두 가지로 결론이 났잖아요, 내인설과 열린안, 왜 두 가지 결론이 났는지를 조사했어요, 사참위에서. 그런데 외력인 것 같아 조사해 보니, 외력이라는 말이 외력 외에 다른 요인을 배제할 만큼에는 그 증거가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잘 모르겠다. 이게 침몰 원인을 잘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리고 구하지 않은 것, 세월호에서 사망한 304명을 충분히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히 사참위에서 조사 결과로 발표했습니다. 구하지 않았으므로 국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사과하고 후속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사참위의 권고안을 내놓았거든요. 그런데 그 권고안에 대해서 어떤 정부 관계자도, 윤석열 대통령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참사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도, 역사 왜곡으로 이렇게 고통받는 수많은 국민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 있어서 이렇게 진상을 규명하고 진실을 밝히자고 이렇게 투쟁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많은데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제가는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많이 지쳐 있고 힘이 빠지고 그건 사실이지만 진상 규명하는 거 그리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렇게 많은 세력들과 연대하면서 앞으로도 저희와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힘을 모아서 계속 투쟁할 생각입니다. 이번 주가, 4월이 세월호 달이기도 하고 이번 주가 세월호 주간인데요. 군데군데 이렇게 리본도 달아 주시고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월호 잊지 말아 주시고 저희가 나름 현장에서 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 그리고 이 수요집회가 항상 잘 열리고 있다는 일, 서로서로 기억하면서, 또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도 남아 있으니까 함께 힘을 모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최선미(박가영 어머니)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박가영 엄마 최선미입니다.

우선 이곳에 저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서 우는 자와 함께 울 뿐아니라 함께 행동하시는 기장여신도회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요즘 사과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도대체 왜 잘못한 것들은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인지 오히려 똥낀 놈이 성낸다고 적반하장인지 생각 끝에 사과의 의미를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정부를 향해 대통령을 향해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혹자는 사과 받으면 뭘 얻게 되냐고 묻습니다.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되찾고자 합니다.

진심어린 사과는

참사를 예방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로부터

고인에 대한 악랄하고 저급한 수습과정으로부터

나의 아이의 존엄과 명예와 산산이 조각나버린 나와 유가족들의 가정을 되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원점이고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그런데 사과는 엉뚱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다시 이태원 유가족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합니다.

그때 제대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대책을 세웠더라면 또다시 참사를 겪지 않았을 거라며 미안하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챌린지도 아니고 우리는 벌써부터 누군가에게 미안해지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참사가 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이 단 한 건도 마련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진상규명이 되면 하겠답니다.

그럼 참사원인 조사부터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조사는커녕 은폐 조작하기 바쁘고 또 걸리면 해명도 제대로 못 하고 뭉개고만 있으니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대통령의 사과와 면담을 요청하였습니다.

159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무런 대응조차도 안 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우리 유가족을 불가촉 천민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혹자는 대통령이 아무나 만나고 싶다고 하면 만날 수 있는 존재냐며 유가족을 나무랍니다.

네~ 국민이면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는 따뜻하고 자애롭게 대해야 하고

관료들과는 치열하게 논의하고 토론해야 하며

밖으로는 엄중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왜 거꾸로 하십니까?

우리도 국민입니다.

그것도 아주 슬프고 비통하고 상처 입은 국민입니다.

왜 당신이 말하는 자유와 공정은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까?

민주주의의  자유와 공정은

권력이 있는 자들에게는  좀 더 엄격하게

약자에게는 사각지대가 없이 촘촘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곳에 계신 어머니들과 우리는 아주 정중한 사과를 받을 자격이 있고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들이 가진 권력과 명예는 우리 어머니들이 꽃 같은 청춘을 희생하여 빌려준 것들입니다.

당신들의 부모가 훔쳐 달아났던 걸 이곳에서 1591차 동안 끈질기게 목소리를 내고 저항했기 때문에 지켜졌던 것입니다.

그러니 제3자 변제 같은 소리를 하는 당신들은 당장 이곳에 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십시오.

그래야 인간이고 사람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의 존엄을 가지고 죽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편안하게 죽게 하십시오.

국민들이 한을 품게 하지 마십시오.

다시 한 번 엄중하게 명령합니다.

일본과 현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십시오.

연대발언_우준하 성공회대학원 국제문화연구 석사

안녕하세요. 성공회대학교에서 배봉기 선생님 연구하는 우준하입니다.

지난 4월 2일 일본에서 인권운동가이신 가와다 후미코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와다 후미코 선생님은 저널리스트이자 일본의 <전쟁책임자료센터>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저술 활동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과 재일조선인 차별 철폐 운동에 가장 앞장섰던 분이십니다. 특히 저술하신 『빨간 기와집』 책을 통해 그동안 역사에서 지워졌던 배봉기의 존재를 일본 사회에서 전후 30년 만에 역사적인 존재로 재현했습니다. 이렇듯 역사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이야기, 특히 배봉기의 구술 작업과 기록 분야에서 매우 큰 업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제가 평소에도 존경하는 선생님이며,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4월 4일에 도쿄에서 가와다 후미코 선생님을 직접 뵙고 인터뷰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출국하기 며칠 전에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황망하고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제가 공부를 조금 더 일찍 하여서 건강하실 때 찾아 뵈어야 했는데 너무 부족한 점이 많고 늦게 공부를 시작하여 너무 늦게 연락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도 “한국에서 연구자가 오는데 인터뷰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아쉽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슬픔에 빠졌지만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보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기록과 구술 작업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제가 이어받아 배봉기의 기억과 증언을 연구하는 학위 논문으로 보답 드리겠습니다. 이게 제가 마지막으로 드릴 수 있는 선물인 거 같습니다. 선생님, 많이 편찮으시고 제가 부족한 연구자인데 인터뷰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우리 다음 생에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배봉기 선생님과 함께 만나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연대발언_쓰즈키 스미에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후쿠야마 연락회 전 대표

저는 10년 전까지 피폭지이자 일본의 아시아 침략 거점이었던 히로시마의 교사로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이고 평화 활동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교재로 성교육을 했습니다. 그리고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관부 재판을 지원하는 활동도 해 왔습니다.  관부재판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3명과 여자 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이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제기한 소송입니다.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했지만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었습니다. 비록 재판은 졌지만 지원활동 과정에서 원고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한일 시민 연대가 생겼습니다.

오늘은 제가 30년 동안 활동하며 가까이 지내온 할머니들의 추억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1한 할머니는, 산에서 딴 송이버섯을 일본인이 약간의 소금과 교환해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2  한 할머니는, 사진관을 나서자마자 납치 당했다고 하셨습니다.
3  한 할머니는, 위안소에서 저항하다가 전기고문을 당했다며 흉터를 보여주셨습니다.
4한 할머니는, 나와 함께 목욕을 했을 때 일본군에게 찔린 아랫배의 흉터를 보여주셨습니다.

5 한 할머니는, “일본 병사들을 상대하면서 머리맡에 있는 주먹밥을 먹었다”고 하셨습니다.
6  한 할머니는, “평소 상냥했던 병사는 높은 지위의 군인이 미국의 공격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 칼을 휘두르며 우리에게 덤벼들었다”고 하셨습니다.
7 한 할머니는, 일본군이 위안부제도에 관여한 것이 아니라 일본군이 스스로 위안부제도를 행했다” 라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8  한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병사들이 없어졌고 우리는 남겨졌다"고 하셨습니다.
9  한 할머니는,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유령을 본 것처럼 쓰러졌다고 하셨습니다.
10한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냉대 받기가 싫어서, 마지못해 결혼해서 집을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11한 할머니는, “나는 휴일이 싫다. 가족들이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12한 할머니는, “나쁜 건 우리가 아니다. 나쁜 것은 일본군이다, 일본 정부가 나쁜다”고 하셨습니다.

13한 할머니는, “일본인은 무서운 사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까지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냐. 나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하며 우셨습니다.
14한 할머니는, “홋카이도에서 처음 증언하는 것이 무서우니 함께 따라와 달라”고 하셨습니다.
15 한 할머니는, 한국에 돌아가 묵을 만든다고 정신없이 일본 도토리를 줍고 계셨습니다.
16한 할머니는, "나는 학교 선생님이나 간호사가 돼서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17한 할머니는, 우리가 나눔의집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면 항상 자신이 키운 옥수수와 커피 우유를 주며 "또 와요" 라고 손을 흔들곤 하셨습니다.

18한 할머니는, “솔직히 말하면 배상금을 받고 싶다. 그 돈으로 일본의 너희들에게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19 한 할머니는, 히로시마의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맞아 들여 “모두 귀엽다”며 기뻐하셨습니다.
20한 할머니는, "우리가 죽어도 한국 젊은이들이 반드시 원수를 갚아줄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21한 할머니는, 직접 만나 증언을 듣고 싶다는 일본 고등학생들을 위해 일부러 일본으로 날아와 증언을 하고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22한 할머니는, "우리가 열심히 활동해서 한일 젊은이들이 사이좋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들이 피 흘리며 낸 목소리는 한국과 일본 간에 연대의 다리를 놓았고 세계에 울려 퍼졌습니다. 할머니들의 뜻을 이어가고 연대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함께 갑시다!

연대발언_백휘선 평화나비 네트워크 대표

안녕하세요 평화나비 네트워크 전국대표 백휘선입니다. 제가 몇 번 대독을 하려고 이 곳에 올라온 적은 있었는데 올해가 되어 발언을 하러 올라온 건 처음이네요.

평화나비는 오늘까지 길었던 실천을 잠시 마무리 합니다. 지난 주, 중앙대를 시작으로 총 10곳의 학교에서, 그리고 오늘 한신대학교까지 11곳의 학교에서 학내 수요시위를 진행하고, 고려대에선 강제동원 해법안 철회를 위한 학내 연서명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이후 연서명과 학내 수요시위 결과를 정리하여 정부에 강제동원 해법안 철회를 위한 공문을 보낼 예정입니다.

저희는 대학 내에서 과거사 문제를 기억하고, 이 문제가 과거의 역사적 사건만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닌 다시는 일어나면 안될 전쟁범죄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재발방지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온국민이 반대하는 강제동원 해법안 철회는 물론 일본이 공개한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하지 않겠다‘라는 외교청서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일본의 역사 지우기를 지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평화나비의 기조를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기억하다, 행동하다, 함께하다. 우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대해 배우고 피해생존자이자 인권운동가로 활동하신 할머님들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피해의 경험을 딛고 세상에 나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투쟁하셨던 할머님들의 용기를 이어받았습니다.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던 그 용기를 기억하며 저희는 행동합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 와도 절망하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권력자들이 역사를 지우려고 해도, 우리는 그 역사를 지켜온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평화나비는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진상규명과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이 또다른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제는 저는 개인적으로 이태원 분향소 지킴이를 하러 다녀왔습니다. 그 곳에서 유가족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기억하고 발화하기를 멈추면 안된다는 것을요. 우리가 멈추면 또 다른 피해자들이 생길 것이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지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더욱 세상 밖으로 나와 외칠 것입니다. 우리 이 곳에 있다, 그러니 기억하라. 그러니 여러분, 함께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맙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