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2019 나비기금과 함께 떠나는 베트남 평화기행 참가자 김지한, 강현우, 김광철
- 푸옌성 위령탑 방문
지한: 베트남전쟁 네이팜탄 피해자인 낌 푹(Kim Phuc)씨가 UN평화대사로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제일 먼저 현충원에 있는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묘역에 헌화를 하였다. 30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푸옌성 위령탑을 방문하게 되었다.
푸옌성에는 두 가지 평화의 상징이 있는데, 과거를 상징하는 첨탑과 그리고 현재를 상징하는 이 위령탑이다. 이곳엔 푸옌성 출신 열사 13,000여 명이 모셔져있다. 이 중 90% 이상이 한국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아직 열사로 등록되지 않은 분들과 푸옌성 밖에서 묻힌 분들을 더하면 약 15,000명의 열사 분들이 계신다고 한다.
이 위령탑에는 계급,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평등하게 이름이 실려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열사를 기억하는 방법이 우리와 다르다고 느꼈다. 우리는 정부, 국가의 군인, 권력자들을 더 높은 곳에 더 좋은 곳에 예우한다면, 베트남은 평범한 마을의 유격대원도 전쟁영웅과 다름없이 같은 줄에 이름이 올라있었다. 단지 이들의 기록 된 순서는 그저 알파벳 순서에 지나지 않았다.
현우: 나는 제주의 4.3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똑같이 학살이 일어났고 몇만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강대국에 의해 학살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비슷했다. 제주 사람인 내가 4.3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푸옌성의 마을 주민들도 베트남전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2. 호아히엡남사 초등학교 방문과 자전거 수여식
지한: 우리는 호아히엡남사 팜반동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팜반동 초등학교와 응우옌비엣쑤언 초등학교 학생 100명에게 베트남 평화기행단이 준비한 100대의 자전거를 전달하기로 되어있었다. 내가 처음 이곳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은 어른들이 나를 달갑지 않게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나쁘지만은 않은 것도 같았다. 달갑게 맞아주신 분들도 있었고 아이들은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어서 어색했던 것 같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곳에서 베트남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베친선연합회와 푸옌성 인민위원회, 그리고 베트남 평화기행 윤미향 단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이렇게 자전거를 전달하고, 환영받을 수 있는 것은 그 전에 수많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현우: 나는 아이들도 귀여웠고, 그곳에 계신 어른분들이 우리를 밝게 맞이해주신 것 같았다. 그런데, 자전거 수여식 때 고장 난 자전거가 나와서 걱정이 되었다. 한 명이 자전거를 받지 못하게 될까, 많이 걱정되었다.
지한: 자전거 수여식 다음에는 학교를 둘러보았다. 천장에서 물도 새고 의자나 책상도 낡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태였고 교실조차 무너져가는 모습에 한국정부가 지원해서 만든 학교인 만큼 계속해서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우: 맞아. 다음에는 이 학교의 건물, 그리고 의자나 책상 같은 교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 앞으로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른 학교에서 이곳으로 또 올 것이라고 하는데, 많이 걱정된다.
지한: 지금 아이들은 배움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3. 한베평화공원 방문, 빈 아저씨와 만남.
지한: 이 공원은 한겨례 신문의 구수정 박사님이 올리신 기사로부터 우리 시민들의 많은 자발적 성금 모금으로 만들어진 곳이라고 한다. 이 성금이 끊이질 않아서 원래는 병원이나 학교를 세울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업들이 전혀 참여하지 않는 자발적 성금 모금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평화공원을 세우게 짓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원은 계속 유지되기가 어려웠다. 처음 공원이 들어섰을 때, 주민들은 한국인이 세운 공원이라며 공원을 파괴해버리기도 했다. 또, 홍수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서 대대적으로 나무를 심어도 곧바로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푸옌성의 인민위원회가 부서진 공원을 다시 복원하였고, 이 평화공원의 관심이 있는 개인들이 모금을 해서 이곳을 유지하고 보수하기 위한 장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이 지금까지 유지 될 수 있었던 것은 인민위원회에서 고용한 공원관리인 빈 아저씨 덕분이었다.
현우: 나는 아저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 방문객은 낡은 공원을 둘러보고는, ’내가 한국 군대에 이야기해서 다 고쳐줄게’라고 말한 한 참전군인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지한: 내가 기억에 남는 것은 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이다. 동네 주민들은 물론이고 미국인과 일본인과 같은 외국인들도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매년 방문하는 수가 줄어든다고 한다. 더 많은 한국인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곳을 관리하기 위한 예산이 갈수록 줄어들어서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공원이 계속 유지가 되려면 더 많은 한국인들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문제를 알고 이를 기억하기 위해 찾아오고,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 무엇보다 관심이 중요하다.
지한: 나는 오늘 베트남 주민들과 완전히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다. 이분들이 우리를 환영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변화가 있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그러한 노력에 감사하다. 이러한 민간인학살, 전쟁범죄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한국인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자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현우: 오늘의 기행을 통해서 여러 가지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하면 제주 사람인 나는 4.3이 떠오른다. 베트남전에서도 우리처럼 미국 같은 강대국에 의한 학살이 일어났다. 우리가 ‘제주4.3’을 기억하는 것처럼 이러한 우리 자신의 가해의 역사도 기억하고 알리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기록: 2019 나비기금과 함께 떠나는 베트남 평화기행 참가자 김지한, 강현우, 김광철
지한: 베트남전쟁 네이팜탄 피해자인 낌 푹(Kim Phuc)씨가 UN평화대사로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제일 먼저 현충원에 있는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묘역에 헌화를 하였다. 30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푸옌성 위령탑을 방문하게 되었다.
푸옌성에는 두 가지 평화의 상징이 있는데, 과거를 상징하는 첨탑과 그리고 현재를 상징하는 이 위령탑이다. 이곳엔 푸옌성 출신 열사 13,000여 명이 모셔져있다. 이 중 90% 이상이 한국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아직 열사로 등록되지 않은 분들과 푸옌성 밖에서 묻힌 분들을 더하면 약 15,000명의 열사 분들이 계신다고 한다.
이 위령탑에는 계급,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평등하게 이름이 실려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열사를 기억하는 방법이 우리와 다르다고 느꼈다. 우리는 정부, 국가의 군인, 권력자들을 더 높은 곳에 더 좋은 곳에 예우한다면, 베트남은 평범한 마을의 유격대원도 전쟁영웅과 다름없이 같은 줄에 이름이 올라있었다. 단지 이들의 기록 된 순서는 그저 알파벳 순서에 지나지 않았다.
현우: 나는 제주의 4.3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똑같이 학살이 일어났고 몇만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강대국에 의해 학살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비슷했다. 제주 사람인 내가 4.3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푸옌성의 마을 주민들도 베트남전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2. 호아히엡남사 초등학교 방문과 자전거 수여식
지한: 우리는 호아히엡남사 팜반동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팜반동 초등학교와 응우옌비엣쑤언 초등학교 학생 100명에게 베트남 평화기행단이 준비한 100대의 자전거를 전달하기로 되어있었다. 내가 처음 이곳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은 어른들이 나를 달갑지 않게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나쁘지만은 않은 것도 같았다. 달갑게 맞아주신 분들도 있었고 아이들은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어서 어색했던 것 같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곳에서 베트남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베친선연합회와 푸옌성 인민위원회, 그리고 베트남 평화기행 윤미향 단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이렇게 자전거를 전달하고, 환영받을 수 있는 것은 그 전에 수많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현우: 나는 아이들도 귀여웠고, 그곳에 계신 어른분들이 우리를 밝게 맞이해주신 것 같았다. 그런데, 자전거 수여식 때 고장 난 자전거가 나와서 걱정이 되었다. 한 명이 자전거를 받지 못하게 될까, 많이 걱정되었다.
지한: 자전거 수여식 다음에는 학교를 둘러보았다. 천장에서 물도 새고 의자나 책상도 낡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태였고 교실조차 무너져가는 모습에 한국정부가 지원해서 만든 학교인 만큼 계속해서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우: 맞아. 다음에는 이 학교의 건물, 그리고 의자나 책상 같은 교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 앞으로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른 학교에서 이곳으로 또 올 것이라고 하는데, 많이 걱정된다.
지한: 지금 아이들은 배움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3. 한베평화공원 방문, 빈 아저씨와 만남.
지한: 이 공원은 한겨례 신문의 구수정 박사님이 올리신 기사로부터 우리 시민들의 많은 자발적 성금 모금으로 만들어진 곳이라고 한다. 이 성금이 끊이질 않아서 원래는 병원이나 학교를 세울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업들이 전혀 참여하지 않는 자발적 성금 모금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평화공원을 세우게 짓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원은 계속 유지되기가 어려웠다. 처음 공원이 들어섰을 때, 주민들은 한국인이 세운 공원이라며 공원을 파괴해버리기도 했다. 또, 홍수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서 대대적으로 나무를 심어도 곧바로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푸옌성의 인민위원회가 부서진 공원을 다시 복원하였고, 이 평화공원의 관심이 있는 개인들이 모금을 해서 이곳을 유지하고 보수하기 위한 장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이 지금까지 유지 될 수 있었던 것은 인민위원회에서 고용한 공원관리인 빈 아저씨 덕분이었다.
현우: 나는 아저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 방문객은 낡은 공원을 둘러보고는, ’내가 한국 군대에 이야기해서 다 고쳐줄게’라고 말한 한 참전군인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지한: 내가 기억에 남는 것은 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이다. 동네 주민들은 물론이고 미국인과 일본인과 같은 외국인들도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매년 방문하는 수가 줄어든다고 한다. 더 많은 한국인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곳을 관리하기 위한 예산이 갈수록 줄어들어서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공원이 계속 유지가 되려면 더 많은 한국인들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문제를 알고 이를 기억하기 위해 찾아오고,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 무엇보다 관심이 중요하다.
지한: 나는 오늘 베트남 주민들과 완전히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다. 이분들이 우리를 환영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변화가 있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그러한 노력에 감사하다. 이러한 민간인학살, 전쟁범죄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한국인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자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현우: 오늘의 기행을 통해서 여러 가지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하면 제주 사람인 나는 4.3이 떠오른다. 베트남전에서도 우리처럼 미국 같은 강대국에 의한 학살이 일어났다. 우리가 ‘제주4.3’을 기억하는 것처럼 이러한 우리 자신의 가해의 역사도 기억하고 알리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