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주 오랜만에 행 활동가, 새싹 활동가와 함께 포항 박필근 할머니 댁에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할머니 댁에 먼저 들렀다 가게 되어 할머니 댁에 평소보다 늦게 도착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늘 평상에 앉아 저희를 기다리시기에 걱정이 되어 저희는 저녁에 도착 예정이다, 나와서 기다리시지 마라, 신신당부를 하고 갔답니다.
요즘 할머니께서 입맛이 없는 것 같아 저희는 시장에서 미역국, 단호박죽, 그리고 여러 반찬을 샀습니다. 역시 미역국, 단호박죽을 큰 팩으로 3개를 사고 나니 아주 많이 무거웠는데, 할머니께서 맛있게 드실 생각에 ‘새지만 마라’ 하고 이고 지고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행 활동가가 열심히 운전을 하여 할머니께 말씀드린 도착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을 하니, 다행히도 할머니가 댁 안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외식을 하려 했는데 할머니는 댁에서 식사를 하고 싶으신 것 같았습니다. “집에 밥이 많은데 반찬이 없다” 하시기에 “저희가 반찬 많이 사왔다” 말씀드리고, 바로 반찬을 준비해 식사를 했습니다. 저희가 사간 반찬들과 할머니 따님이 주고 가셨다는 마늘쫑, 김치까지 있으니 두 그릇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잘 먹고 있는 와중에 할머니는 정말 입맛이 없으신지, 잘 드시지를 않았습니다. 부쩍 외로우신지, 우울하신지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어 착잡하기만 했습니다.
밥을 다 먹고도 할머니께서 귤과 홍시를 마구 꺼내주셨고, 저희는 너무 배부르다며 귤만 겨우 몇 개 까먹을 뿐이었습니다. 밤이 더 깊어지자 할머니는 마음속에 있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할머니가 힘들게 살아 오신 이야기와 부쩍 몸이 편찮으셔서 무기력해 있는 할머니의 일상 이야기에 더피, 행, 새싹 활동가도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저희가 더 가까이 있었더라면, 더 시간이 많았더라면 한 번이라도 더 방문하고, 전화 드려서 적적하시지 않게 노력하겠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저희에게 주어진 1박 동안 최선을 다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여쭈었습니다. “할머니, 저희 민화투 칠까요?”
할머니께 “아직 화투도 못 배우고, 외국 살다 왔나”라는 말을 들었던 저는 다행히 예전보다는 나아진 실력을 보였고, 행 활동가도 늘 하던 대로 선방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가장 어린 새싹 활동가는 신흥 강자였습니다. 새싹 활동가는 할머니의 내공에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상대였습니다. 여러 판을 치니 할머니는 만족하셨는지 이제 그만 치고 자자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이불을 깔고 좌청룡 우백호처럼 할머니 주변에 진을 치고 잠들었습니다.
밤 11시쯤, 할머니는 제가 자고 있는 방에 슬그머니 들어오시더니 눈을 꿈뻑꿈뻑 하시며 제가 잘 있는지를 확인하셨습니다. “할머니, 저 잘 있어요! 잘 자고 있어요” 하니 그제야 안심하시는지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는 저희가 불편하진 않을까, 춥진 않을까 계속 걱정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오히려 저희 때문에 할머니께서 불편하지는 않으실까 걱정을 했는데 말입니다.
다음날 아침, 주방이 분주한 것 같아 서둘러 나가보니 밥은 이미 다 되어 있었고, 행 활동가와 새싹 활동가도 이미 이불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빨리 이불을 정리하고, 함께 밥을 차렸습니다. 할머니는 하루가 지나도 여전히 입맛이 없어서 저희가 가져간 단호박죽을 드셨습니다. 몇 술 뜨시더니 정말 맛있다고 하시며, 어디서 샀는지를 재차 물어보셨습니다. 다음에 또 사오라 하시기에 그땐 한 통을 더 사오겠다 말씀드렸습니다. 가져갈 땐 너무 무거웠지만 할머니께서 너무 잘 드시니 정말 뿌듯했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필수 코스인 마트에 들렀습니다. 할머니와 장을 보러 가면 늘 국거리 소고기, 요거트, 믹스 커피, 두유 등을 삽니다. 이번에도 사던 물건들을 똑같이 샀는데 새해를 맞아서인지 마트에서 아주 큰 대야를 사은품으로 줬습니다. 할머니는 뒤늦게 그것을 보시고서는 대야가 아주 크고 좋다며 연신 기뻐하셨습니다. 저희와 할머니가 고심 끝에 고른 소고기, 요거트, 두유 등 물건이 많았는데 할머니는 댁으로 이동하는 동안, 댁으로 이동해서도 계속 대야 좋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됐든 할머니가 좋아하시니 저희도 기뻤습니다.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 장 본 것들을 정리해드리고, 떠나기 전 마지막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다음에 또 호박죽을 사오겠다, 늘 식사 잘 하시고 건강하게 계시라, 등등 할머니께 말씀드렸고, 할머니는 아쉬워 하시면서도 “서울이 천릿길인데 퍼뜩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아쉽지만 할머니와 셀카 몇 장을 찍은 뒤,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젊었을 때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셔서 여전히 휘어 있는 할머니의 손가락 발가락을 볼 때면 지금 제가 너무 편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하루빨리 일본의 사죄를 받으실 수 있도록 내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부디 할머니께서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셔서 저희가 더 힘내어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더피 활동가의 할머니 방문기
저는 아주 오랜만에 행 활동가, 새싹 활동가와 함께 포항 박필근 할머니 댁에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할머니 댁에 먼저 들렀다 가게 되어 할머니 댁에 평소보다 늦게 도착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늘 평상에 앉아 저희를 기다리시기에 걱정이 되어 저희는 저녁에 도착 예정이다, 나와서 기다리시지 마라, 신신당부를 하고 갔답니다.
요즘 할머니께서 입맛이 없는 것 같아 저희는 시장에서 미역국, 단호박죽, 그리고 여러 반찬을 샀습니다. 역시 미역국, 단호박죽을 큰 팩으로 3개를 사고 나니 아주 많이 무거웠는데, 할머니께서 맛있게 드실 생각에 ‘새지만 마라’ 하고 이고 지고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행 활동가가 열심히 운전을 하여 할머니께 말씀드린 도착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을 하니, 다행히도 할머니가 댁 안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외식을 하려 했는데 할머니는 댁에서 식사를 하고 싶으신 것 같았습니다. “집에 밥이 많은데 반찬이 없다” 하시기에 “저희가 반찬 많이 사왔다” 말씀드리고, 바로 반찬을 준비해 식사를 했습니다. 저희가 사간 반찬들과 할머니 따님이 주고 가셨다는 마늘쫑, 김치까지 있으니 두 그릇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잘 먹고 있는 와중에 할머니는 정말 입맛이 없으신지, 잘 드시지를 않았습니다. 부쩍 외로우신지, 우울하신지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어 착잡하기만 했습니다.
밥을 다 먹고도 할머니께서 귤과 홍시를 마구 꺼내주셨고, 저희는 너무 배부르다며 귤만 겨우 몇 개 까먹을 뿐이었습니다. 밤이 더 깊어지자 할머니는 마음속에 있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할머니가 힘들게 살아 오신 이야기와 부쩍 몸이 편찮으셔서 무기력해 있는 할머니의 일상 이야기에 더피, 행, 새싹 활동가도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저희가 더 가까이 있었더라면, 더 시간이 많았더라면 한 번이라도 더 방문하고, 전화 드려서 적적하시지 않게 노력하겠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저희에게 주어진 1박 동안 최선을 다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여쭈었습니다. “할머니, 저희 민화투 칠까요?”
할머니께 “아직 화투도 못 배우고, 외국 살다 왔나”라는 말을 들었던 저는 다행히 예전보다는 나아진 실력을 보였고, 행 활동가도 늘 하던 대로 선방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가장 어린 새싹 활동가는 신흥 강자였습니다. 새싹 활동가는 할머니의 내공에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상대였습니다. 여러 판을 치니 할머니는 만족하셨는지 이제 그만 치고 자자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이불을 깔고 좌청룡 우백호처럼 할머니 주변에 진을 치고 잠들었습니다.
밤 11시쯤, 할머니는 제가 자고 있는 방에 슬그머니 들어오시더니 눈을 꿈뻑꿈뻑 하시며 제가 잘 있는지를 확인하셨습니다. “할머니, 저 잘 있어요! 잘 자고 있어요” 하니 그제야 안심하시는지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는 저희가 불편하진 않을까, 춥진 않을까 계속 걱정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오히려 저희 때문에 할머니께서 불편하지는 않으실까 걱정을 했는데 말입니다.
다음날 아침, 주방이 분주한 것 같아 서둘러 나가보니 밥은 이미 다 되어 있었고, 행 활동가와 새싹 활동가도 이미 이불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빨리 이불을 정리하고, 함께 밥을 차렸습니다. 할머니는 하루가 지나도 여전히 입맛이 없어서 저희가 가져간 단호박죽을 드셨습니다. 몇 술 뜨시더니 정말 맛있다고 하시며, 어디서 샀는지를 재차 물어보셨습니다. 다음에 또 사오라 하시기에 그땐 한 통을 더 사오겠다 말씀드렸습니다. 가져갈 땐 너무 무거웠지만 할머니께서 너무 잘 드시니 정말 뿌듯했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필수 코스인 마트에 들렀습니다. 할머니와 장을 보러 가면 늘 국거리 소고기, 요거트, 믹스 커피, 두유 등을 삽니다. 이번에도 사던 물건들을 똑같이 샀는데 새해를 맞아서인지 마트에서 아주 큰 대야를 사은품으로 줬습니다. 할머니는 뒤늦게 그것을 보시고서는 대야가 아주 크고 좋다며 연신 기뻐하셨습니다. 저희와 할머니가 고심 끝에 고른 소고기, 요거트, 두유 등 물건이 많았는데 할머니는 댁으로 이동하는 동안, 댁으로 이동해서도 계속 대야 좋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됐든 할머니가 좋아하시니 저희도 기뻤습니다.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 장 본 것들을 정리해드리고, 떠나기 전 마지막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다음에 또 호박죽을 사오겠다, 늘 식사 잘 하시고 건강하게 계시라, 등등 할머니께 말씀드렸고, 할머니는 아쉬워 하시면서도 “서울이 천릿길인데 퍼뜩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아쉽지만 할머니와 셀카 몇 장을 찍은 뒤,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젊었을 때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셔서 여전히 휘어 있는 할머니의 손가락 발가락을 볼 때면 지금 제가 너무 편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하루빨리 일본의 사죄를 받으실 수 있도록 내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부디 할머니께서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셔서 저희가 더 힘내어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