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 행, 새싹 활동가가 박필근 할머니를 뵈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대구에 계신 아드님 댁에 계셨습니다. ‘정대협이’ 언제 오나 계속 시계를 보며 기다리셨다는 할머니. 생각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정대협이’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와서 인사를 나누고 사 온 한우 고기를 드리면서 몸은 좀 어떠신지 여쭈었습니다. 허리에 붙인 파스를 보여주시면서 ‘여도 아프고 저도 아프고 안 아픈 데가 없다’고 하셔서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해도 길고 밤도 길고…’ 할머니는 하루의 적적함을 털어놓으시는 동시에 ‘한평생 금세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활동가들이 모르는 할머니의 하루는 어땠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니,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다음에는 하루를 꽉 채워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점심때 도착해서 함께 식사했습니다. 며느님께서 경상도식으로 진수성찬을 내어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아직 몸이 성치 않으셔서 그런지 호박죽을 드셨습니다. 그마저도 평소 식사하시는 것보다 적게 드셔서 걱정되었지만, 평소처럼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많이 무라~’ 하시는 모습을 보니 밥을 먹다가도 계속 웃음이 났습니다. 너무도 맛있는 음식에 잘 먹는 활동가들이 흐뭇하셨는지 행 활동가에게는 밥 한 공기를 더 주셨습니다. ‘할머니 배불러요~!’라는 말도 할머니 앞에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할머니의 사투리 때문에 잘 알아듣지 못했던 말씀도 아드님께서 함께 계시니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서블(서울)이 머서(멀어서) 무거버(무거워서) 눈썹도 빼불고(빼고) 갔다’는 말씀을 처음에 알아듣지 못한 두 활동가. 한참 지나 아드님의 통역(?)을 거치고 나서야 그게 옛날 표현이었다는 걸 알아채고 박장대소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할머니의 입담을 몇 번이고 놓쳤을 걸 생각하니 사투리를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서울 올라가느라 저녁 먹을 새도 없으니까’라고 하신 할머니의 풍성한 마음에 두 활동가의 턱까지 밥알과 김치가 들어차고야 식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자 며느님께서 다과상을 준비해주셨습니다. 과일은 또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활동가들의 입이 멈출 새가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옛날 생각이 나셨는지, ‘고생도 많이 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며 긴 일생의 한 페이지를 읽어주셨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지신 할머니와 아드님. 그 모습에 활동가들의 마음도 시큰거렸습니다. 그러면서 ‘어머이(어머니) 계실 때 잘해라’는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보고 싶으세요?’ 여쭙자 ‘그래, 보고 싶지’하며 울먹이시는 모습에 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가족들도 많고 서울에도 할머니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라고 전하자 ‘그래, 고맙지’ 하셨습니다.
‘요만한 데에 이름 박필근 써서 정대협이가 해달라’고 묫자리에 대해 말씀을 하시던 할머니. ‘그래도 그건 한참 나중 이야기예요, 100살 넘어서 까지 사셔야죠, 할머니’라고 말하자 순간 ‘그래’라고 답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처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서 맛있는 식사도 계속 함께하고, 화투도 치고, 고생스럽고 슬픈 기억보다 행복했던 순간들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대협이는 손녀 같다’며 애정을 숨기지 않으시던 할머니는 기분이 좋으셨는지 <파랑새요>를 흥얼거리셨습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 할머니는 “어디까지 울고 가나 서울까지 울고 간다”고 추가하셨습니다. 서울에서 온 활동가들에 대한 마음이 담긴 소절이었을까요? 이날도 어김없이 금방 해가 진다며 활동가들의 귀경을 서두르셨습니다.
아드님, 며느님께서 집에 갈 때가 다가오니 밀감을 한가득 안겨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도 밀감과 사과를 봉투에 넣어주시면서 ‘가져가서 먹어라’라시며, 바닥에 떨어진 밀감 하나까지도 알뜰살뜰 챙겨주셨습니다. ‘추워요 나오지 마세요~’해도 나오시려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다음에 또 올게요~’라며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할머니와 다음 만남을 약속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스러운 일인지를 새싹 활동가는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할머니의 일상에 작은 설렘이 되고 즐거움이 될 수 있다니 마음이 뭉클해져 옵니다.
이렇게 2022년도 끝이 다가왔습니다.
새싹 활동가는 올해 할머니를 만나 뵐 수 있어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고도 감사했습니다. 할머니를 만나 뵙는 게 특별한 일이 될 수 있는 건 할머니들 한 분 한 분께서 평범하지 않은 아픔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할머니들께서 오랜 세월 강인하게 자기 삶을 지키고 가꿔오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할머니, 다음에 만나 뵐 때까지 건강하게 계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2월 29일 행, 새싹 활동가가 박필근 할머니를 뵈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잠시 대구에 계신 아드님 댁에 계셨습니다. ‘정대협이’ 언제 오나 계속 시계를 보며 기다리셨다는 할머니. 생각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정대협이’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와서 인사를 나누고 사 온 한우 고기를 드리면서 몸은 좀 어떠신지 여쭈었습니다. 허리에 붙인 파스를 보여주시면서 ‘여도 아프고 저도 아프고 안 아픈 데가 없다’고 하셔서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해도 길고 밤도 길고…’ 할머니는 하루의 적적함을 털어놓으시는 동시에 ‘한평생 금세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활동가들이 모르는 할머니의 하루는 어땠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니,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다음에는 하루를 꽉 채워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점심때 도착해서 함께 식사했습니다. 며느님께서 경상도식으로 진수성찬을 내어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아직 몸이 성치 않으셔서 그런지 호박죽을 드셨습니다. 그마저도 평소 식사하시는 것보다 적게 드셔서 걱정되었지만, 평소처럼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많이 무라~’ 하시는 모습을 보니 밥을 먹다가도 계속 웃음이 났습니다. 너무도 맛있는 음식에 잘 먹는 활동가들이 흐뭇하셨는지 행 활동가에게는 밥 한 공기를 더 주셨습니다. ‘할머니 배불러요~!’라는 말도 할머니 앞에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할머니의 사투리 때문에 잘 알아듣지 못했던 말씀도 아드님께서 함께 계시니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서블(서울)이 머서(멀어서) 무거버(무거워서) 눈썹도 빼불고(빼고) 갔다’는 말씀을 처음에 알아듣지 못한 두 활동가. 한참 지나 아드님의 통역(?)을 거치고 나서야 그게 옛날 표현이었다는 걸 알아채고 박장대소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할머니의 입담을 몇 번이고 놓쳤을 걸 생각하니 사투리를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서울 올라가느라 저녁 먹을 새도 없으니까’라고 하신 할머니의 풍성한 마음에 두 활동가의 턱까지 밥알과 김치가 들어차고야 식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자 며느님께서 다과상을 준비해주셨습니다. 과일은 또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활동가들의 입이 멈출 새가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옛날 생각이 나셨는지, ‘고생도 많이 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며 긴 일생의 한 페이지를 읽어주셨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지신 할머니와 아드님. 그 모습에 활동가들의 마음도 시큰거렸습니다. 그러면서 ‘어머이(어머니) 계실 때 잘해라’는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할머니, 어머니 보고 싶으세요?’ 여쭙자 ‘그래, 보고 싶지’하며 울먹이시는 모습에 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가족들도 많고 서울에도 할머니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라고 전하자 ‘그래, 고맙지’ 하셨습니다.
‘요만한 데에 이름 박필근 써서 정대협이가 해달라’고 묫자리에 대해 말씀을 하시던 할머니. ‘그래도 그건 한참 나중 이야기예요, 100살 넘어서 까지 사셔야죠, 할머니’라고 말하자 순간 ‘그래’라고 답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처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서 맛있는 식사도 계속 함께하고, 화투도 치고, 고생스럽고 슬픈 기억보다 행복했던 순간들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대협이는 손녀 같다’며 애정을 숨기지 않으시던 할머니는 기분이 좋으셨는지 <파랑새요>를 흥얼거리셨습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 간다.” 할머니는 “어디까지 울고 가나 서울까지 울고 간다”고 추가하셨습니다. 서울에서 온 활동가들에 대한 마음이 담긴 소절이었을까요? 이날도 어김없이 금방 해가 진다며 활동가들의 귀경을 서두르셨습니다.
아드님, 며느님께서 집에 갈 때가 다가오니 밀감을 한가득 안겨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도 밀감과 사과를 봉투에 넣어주시면서 ‘가져가서 먹어라’라시며, 바닥에 떨어진 밀감 하나까지도 알뜰살뜰 챙겨주셨습니다. ‘추워요 나오지 마세요~’해도 나오시려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다음에 또 올게요~’라며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할머니와 다음 만남을 약속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스러운 일인지를 새싹 활동가는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할머니의 일상에 작은 설렘이 되고 즐거움이 될 수 있다니 마음이 뭉클해져 옵니다.
이렇게 2022년도 끝이 다가왔습니다.
새싹 활동가는 올해 할머니를 만나 뵐 수 있어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고도 감사했습니다. 할머니를 만나 뵙는 게 특별한 일이 될 수 있는 건 할머니들 한 분 한 분께서 평범하지 않은 아픔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할머니들께서 오랜 세월 강인하게 자기 삶을 지키고 가꿔오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할머니, 다음에 만나 뵐 때까지 건강하게 계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