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 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회는 평화나비 네트워크 한국외국어대학교 지부 신채연 대표님이 보았습니다.
평화나비 네트워크 서울지역 회원들의 신나는 율동과 함께 여는 공연 <바위처럼> 후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모예진(안동 성창여자고등학교 2학년), 최연교(안동 성창여자고등학교 1학년), 박은선(광주 평동중학교), 전선정(연합지부 하랑나비 서포터즈), 김소연(서울여대 슈터플라이 지부 회원), 우준하(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 대학원생), 장은아(이화여대 이화나비지부 지부장) 학생들의 연대발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의연 이나영 이사장의 주간보고 후 평화나비 네트워크 서울운영위원회의 <스마일리> 율동 공연이 있었습니다.
연세대 연대나비지부 채예지 지부장님의 성명서 낭독 후 마무리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155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마무리 퍼포먼스에서는 참가자들이 수요시위 또는 일본군성노예제의 정의로운 문제해결에 앞장설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문화 콘텐츠, 책, 음악, 영호 등을 적어 보고 그중 한 분이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울평화나비와 함께 <나는 나비>를 함께 불렀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툿찡포교 성 베네딕토 수도회, 진보내학생넷, 서울대학생겨레하나, (일본) 민족교육 네트워크 사무국, 여성평우회, 역사동아리연합, 양서고등학교 동아리 햇담, 광주 평동중학교, 진보대학생넷 동국대지회, 안동 성청여자고등학교 동아리 ‘에듀벌룬’, 서울여성노동자회, 전남 강진 성요셉상호문화고등학교 외 여러 단체, 개인이 참가하였습니다.
온라인으로는 알마즈, 영환, 하늘보라, Woohee Kim, 조안구달, 김춘식(용인), 이원석, Jacques, Friends of ‘Comfort Women’ in Sydney – 시소연, 공정한사회, 박은덕(호주 시드니), 겐다르스키 님이 참가하였습니다. 인터넷이 불안정하여 온라인 생중계가 원활하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수요시위
#수요시위_30년
#일본정부_공식사죄_법적배상하라
#역사부정_중단하고_수요시위에_대한_공격을_멈춰라
#서울_평화나비네트워크
제1557차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간보고
지난 8월 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 김학순 님의 첫 번째 공개 증언일이었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한주를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주간으로 정해 다양한 기억기림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8개국 87개 단체와 세계연대집회로 수요시위를 진행했고, 11일 목요일에는 김순악 할머니의 삶을 다룬 영화 <보드랍게> 무료 상영회를 가졌습니다. 8월 14일에는 제10차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 맞이 나비문화제를 개최했습니다. 권해효 정의기억연대 홍보대사의 사회로 다양한 문화공연을 진행했고, 박필근, 이옥선, 이용수 피해생존자의 인사말과 미래세대에게 바라는 말씀을 영상으로 공유했습니다. 부대 행사로 평화나비네트워크, 역사동아리연합과 함께 20개의 시민참여부스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잦은 폭우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궂은 날씨만큼이나 힘든 상황을 뚫고 하늘로 뻗어간 힘찬 함성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번 기림일 주간의 주제는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라!, 피해자들의 용기를 기억하라!”였습니다. 우리의 힘은 피해생존자들의 용기와 역사의 진실을 마주해온 전 세계 시민 연대로부터 나옵니다. 갖은 탄압과 음해, 무시와 외면, 왜곡과 부정에도 굴하지 않고 30여년이 넘게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샘솟는 지지와 연대의 힘 덕분이었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더 큰 연대, 더 단단한 연대를 위해 제 시민단체들과 <역사정의와평화로운한일관계를위한 공동행동>, 가칭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을 구축했습니다. 평화, 정의, 인권, 생명안전이라는 의제로 모인 616개 단체들과 발족식을 갖고 공동행동을 모색하기로 결의했습니다. 8.15 자주평화통일대회에 주도적으로 참석하고 8월 16일에는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군사협력과 한반도 평화를 중심으로 한일 간 현안을 짚고 대안을 모색하는 국회토론회도 개최했습니다.
77년 전 오늘, 우리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지만 온전한 해방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냉전의 파고 속에 한반도는 두 동강이 났고 민족은 갈라졌으며 일제 강점 36년 식민지의 뿌리를 잘라내지 못했습니다. 제국주의 확장과 전쟁의 역사 속에 억압과 착취, 인간 존엄성의 말살과 생명의 절멸을 경험했고, 민족자주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음에도 인권과 평화의 중요성을 보편적 가치로 확립하지 못했습니다. 신냉전 체제를 방불케 하는 군사적 긴장감과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에 내적 분열과 갈등도 지속되고 있으며, 역사적 정의는 지연되고 있습니다.
식민지 불법 강점과 전쟁 범죄의 가해자는 역사를 직시하기는커녕 왜곡과 부정으로 일관하며 스스로의 잘못을 가리고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 한일합의'로 강제동원과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며 조롱하고,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들을 ‘한일관계 파탄의 주범,’ ‘관계개선의 걸림돌’ 취급하고 있습니다.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익으로 똘똘 뭉친 부화뇌동 행동대장들은 수요시위 주변은 물론 국내외 곳곳에 포진해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이에 당당히 대응하기는커녕 굴욕외교로 일관하더니 광복절에는 ‘양국이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며 반성 없는 자들에게 스스로 머리를 조아립니다. 민족해방과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대한민국 선조들의 정신을 입에 발린 자유라는 단어로 희석시키며 일본정부가 듣기 좋은 말로 일관했습니다.
전쟁범죄를 온전히 반성할 때 평화로운 미래가 가능합니다.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인정할 때만이 대등한 한일관계가 가능합니다. 한 번의 말이나 겉치레 행사가 아니라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실천의 진정성을 보일 때,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원합니다. 동아시아 평화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한일 두 나라가 손잡고 함께 노력할 날을. 과거를 교훈삼아 미래의 문을 활짝 열 그 날을. 그때서야 비로소 생존자는 물론 하늘에 계신 피해자들도 활짝 웃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는 여전히 어둡고 막막하고 험난한 역사 정의의 길에 평화의 횃불 밝혀 앞장 설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2022년 8월 17일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
연대발언_박은선(광주 평동중학교)
안녕하십니까?
저는 광주광역시에 있는 평동중학교 3학년 박은선입니다.
학교에서 역사 시간등을 통해 일제시대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배워서 어렴풋이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 수요집회 참석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 알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힘이 없는 어린 소녀들과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인권을 유린하였던 가해자인 일본은 그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인정하지도 않고, 우리 정부도 이를 정치, 외교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에 안타깝고, 또 화가 났습니다!
영화 '김복동'의 감독인 송원근감독님의 에세이 '그 이름을 부를 때' 를 읽고 자신도 몸이 아픈 어려운 상황에서도 영화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고 기억에 남기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에 감동하였습니다. 그리고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요집회를 통해 뜻을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어 여러 사람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역사 책의 한페이지의 사건에 불과하고 많은 관심을 갖지 못했던 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이에 저는 앞으로 이 가슴아픈 역사가 가해자 일본으로 부터 공식적으로 사죄받고, 배상 받는 날까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또한 별 관심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이를 알리고 함께 기억하며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우준하(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 대학원생)
안녕하세요. 현재 성공회대 대학원에서 배봉기 선생님 연구하고 있는 우준하입니다. 저도 평화나비 출신인데 오랜만에 평화나비가 주관하는 수요집회에서 발언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며칠 전 광복절이었는데요, 하지만 대부분의 성노예 피해자분들이 종전 후에도 냉전-분단체제로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셨습니다. 특히 제가 대학원에서 연구하는 배봉기 선생님은 “전쟁 때 총알 한 발로 죽었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자주 말씀하시면서 전후 공간에 대한 두려움을 자주 표출하셨습니다. 다양한 복합적인 원인이 있지만, 오키나와 조선인의 법적 지위와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한 박정희 정권의 차별적 배제가 존재합니다.
배봉기 선생님은 1943년에 일본군 성노예로 강제동원되어 일본 본토가 아닌 미군정의 오키나와에서 1945년 8월 15일 전후를 맞이하십니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에 재일조선인의 법적 지위가 논의되지만, 당시 오키나와는 미군정인 관계로 오키나와 조선인들은 논의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이후 1972년에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복귀되자 배봉기 선생님을 비롯한 오키나와 조선인들은 불법체류자가 됩니다. 그래서 조선총련을 중심으로 ‘조선적’ 국적 취득을 위한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오키나와 조선인들은 남측, 북측 정부 수립 이전에 조선시대에 출생하였기에 ‘조선적’ 국적 취득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하지만 이때 박정희 정권은 조선총련을 북한의 선동하는 반공단체로 규정하고 철저히 배제하고 탄압합니다. 조선총련을 감시하고자 주나하영사관을 설치합니다. 오키나와 조선인 문제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1975년 배봉기 선생님이 영주권을 얻기 위해 강제적 자기 증명을 했음에도 한국정부는 조선총련과 활동했다는 이유로 선생님을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한국정부는 오로지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지위가 저하되지 않도록 신신당부만 했습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배봉기 선생님이 겪은 미군정, 디아스포라, 냉전-분단체제 등 중층적 억압과 배제의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런 자료를 4천 페이지 넘게 갖고 있는데요, 저는 앞으로 연구한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연대의 힘을 통해 문제해결에 함께 기여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제 강연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일본군 성노예제 해결과 평화 번영을 위해 전국 어디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모예진(안동 성창여자고등학교)
안녕하십니까. 저는 안동 성창여자고등학교 2학년 모예진입니다.
우선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켜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저는 오늘 과거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는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이 제도적으로 군 위안소를 설치하여 점령지와 식민지 여성들을 동원해 성노예로 만든 범죄를 말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할머니들을 성노예로 범한 사실을 부정하고 오히려 할머니들을 모욕하는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정의기억연대에서는 일본 정부에게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진상규명을 하여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받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역사교과서에 진실로 기록하고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무나도 합당하고 당연한 요구입니다. 하지만 이 7가지밖에 안 되는 요구사항 중에 단 하나라도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과거의 자신들이 잘못한 역사의 책임은 지지 않고 부정하며 계속해서 책임전가를 하고 있는 이 사실은 너무나도 화가 나고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들입니다. 세계 곳곳에서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전범국이며 가해자인 일본은 일본군성노예제에 대한 모든 것을 부인하고 전 세계적으로 거짓된 내용을 퍼뜨리며 배상은커녕 공식 사죄조차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는 범죄의 역사를 왜곡하는 기만적인 행위로서 저는 다시 한 번 일본군성노예제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요구합니다. 진실은 언젠간 밝혀집니다. 모두가 하나 되고 노력하여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이상 성창여자고등학교 2학년 모예진이었습니다.
연대발언_최연교(안동 성창여자고등학교)
연대발언_전선정(연합지부 하랑나비 서포터즈)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한달 간 평화나비 네트워크 회원분들과 함께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에 보탬이 되고자 활동했던 발언자 전선정입니다. (저는 NOW PEACE 페스티벌 서포터즈였습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를 공식적으로 증언했던 김학순 인권운동가를 기리기 위한 축제를 다른 서포터즈분들과 함께 준비했고, 해당 문제에 대해서 약 3주간 공부하며 활동했습니다.) 2022년 상반기는 저에게 유독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써 필연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모순적인 구조를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모순적인 구조의 수혜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다란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대학 강의를 들으면서도, 우리 사회의 모순점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도, 그 모순점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혹은 해결가능하기나 한지 끊임없이 의심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저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래도 세상에는 사회의 모순점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몸소 나서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럼으로 언젠가는 이러한 모순점들이 개선되어 더 나은 세상으로 한 발자국 나서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확신이었습니다. 팍팍해진 세상살이로 한층 강화된 각자도생의 사회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싶었으며, 저 역시 그 중 한명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NOW PEACE 페스티벌 서포터즈 활동은 저에게 한 줄기 희망을 내려줬습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고, 정의로운 해결에 보탬이 되고자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함께 활동도 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지금만이 아니라,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장기적으로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공부하며 지속적으로 활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애써주시고 활동하신 피해당사자이자 인권운동가분들을 알게 되면서 가슴이 저몄지만 동시에 그분들의 용기를 향한 깊은 존경심과 애정이 들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다른 서포터즈분들과 함께 일본군‘위안부’ 피해당사자 김순악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보드랍게」를 관람했습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이해하고, 문제해결의 필요성에 절실히 공감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은 물론 전후 피해당사자의 생애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배상이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전시성폭력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처음 반전이라는 개념은 저에게 무척이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내면에 전쟁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당위가 분명히 있었지만, 동시에 외면적으로는 제가 태어난 순간부터 전쟁 역시 늘 있어왔으니까요. 한 때는 전쟁이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인 걸까, 회의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거의 모든 일에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따지던 저는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세상일에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나누는 것 또한 인간 아니겠냐고.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바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전쟁 없는 세상 역시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그러한 우리의 지향점을 거리낌 없이, 소리 높여 주장해야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외치며 발언 마무리 하겠습니다. 일본정부는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 공식으로 사죄하십시오. 법적으로 배상하십시오. 교과서에 일본군‘위안부’문제를 게재하여 재발방지 노력을 하십시오. 저 역시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굳게 약속하겠습니다. 함께합시다. 고맙습니다.
연대발언_김소연(서울여대 슈터플라이 지부 회원)
안녕하세요 저는 평화나비네트워크 서울여대지부 김소연입니다
저는 솔직히 말하면 평화나비네트워크에 들어오기전까지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무관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할머님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폭력을,사회를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고 반성합니다 가끔 제가 알지 못하였던 역사를, 사회적 약자가 겪어야 했던 현실을 평화나비네트워크 활동을 통해 배웠을때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렇게도 모르는 제가 할머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일 여지껏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많이 한심해지기도 하고 더 빨리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이렇게 모두들과 연대하고 함께 활동을 하게 되어 정말 뜻깊고 활동을 하는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활동을 하면 할수록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고 방법을 찾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것에 매우 슬펐으며 평화나비네트워크에 대부분의 회원이 여성이라는 것에도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일본군 성노예제문제를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깊어져가게되었고 그것을 일요일에 열렸던 now pece festa에서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멀리에서 많은 분들이 오시고 참여를 해주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뭉친다면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고 많이 덥기도 하였고 비도왔지만 모두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festa에 참여를 해주는 모습을 보고 지쳐있던 제 마음에도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저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할 때 말문이 막히는 것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계속해서 싸워나가고 싶고 배우고 싶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큰 힘이 되듯이 저도 거기에 조그만한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과거의 일이라고,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니면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 자신의 일이 아니라서 외면하는 사람도 많고 어렵다고 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는 처음 평화나비에 들어와 세미나를 진행하였을 때 맨 마지막에 반일이 아닌 반전이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전 처음에 이러한 말 조차도 반전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조차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자리에 나와 발언을 합니다 이 문제는 외면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저희의 노력은 끝날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여러분들과 함께 계속해서 할머님들의 곁을 지키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장은아(이화여대 이화나비지부 지부장)
안녕하세요 평화나비 이화여대지부장 장은아입니다
평화나비와 함께하기 전 저는 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평화나비와 다른 여러 단체들의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관련 활동을 많이 봤지만 역사적 문제가 인권과 어떻게 관련이 있고 지금 우리 삶과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는 사실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올해 3월, 수요시위를 지키기 위한 대학생 농성에 참여하면서 혐오세력들의 망언과 역사왜곡 발언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반도의 청년 대학생으로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더럽히는 저 행태를 두고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대학에서 평화나비 활동가가 사라진다는 소식에 매우 아쉬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일본군 성노예제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이 문제에 함께 고민하고 기억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였습니다.
그래서, 그럼 내 삶의 현장인 우리 이화여대에서 평화나비 활동을 해야겠다, 라고 결심을 했고 이번 평화나비 페스타 서포터즈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서포터즈 활동을 하면서 인식이 가장 많이 바뀌었던 부분은 일본군 '위안부' 역사가 그동안 인류 역사에서 가부장제와 군사주의와 여성혐오라는 부조리한 사회구조와 혐오가 축적되면서 발생한 일이고 세계 각지의 모든 전시성폭력이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소수자를 향해 차별을 가하고 있습니다.
정상성을 정하고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여성, 장애인, 비인간동물, 성소수자 등의 약자들에게는 너가 능력이 부족해서, 노력이 부족해서 차별을 받는다라며 부조리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전시성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너가 군대를 못가서, 피난을 못가서, 싸울 수 없어서, 여성이니까 그런 일을 당한거라고 혐오세력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평화와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한반도의 주인이자, 민족을 넘어 전세계의 평화를 바라는 세계시민입니다. 어떠한 왜곡과 망언도 뚫고 우리는 1557번 동안 이 자리에 모였고 앞으로도 1557번 넘게 또 모일 것입니다.
인권과 역사는 결코 무관하지 않고, 차별받는 모든 소수자의 해방을 위해서는 이 땅에, 세계에 평화와 평등이 찾아와야합니다.
우리 이화나비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우리의 현장에서 더 많은 학생대중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발로 뛰며 행동하겠습니다.
155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 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회는 평화나비 네트워크 한국외국어대학교 지부 신채연 대표님이 보았습니다.
평화나비 네트워크 서울지역 회원들의 신나는 율동과 함께 여는 공연 <바위처럼> 후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모예진(안동 성창여자고등학교 2학년), 최연교(안동 성창여자고등학교 1학년), 박은선(광주 평동중학교), 전선정(연합지부 하랑나비 서포터즈), 김소연(서울여대 슈터플라이 지부 회원), 우준하(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 대학원생), 장은아(이화여대 이화나비지부 지부장) 학생들의 연대발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의연 이나영 이사장의 주간보고 후 평화나비 네트워크 서울운영위원회의 <스마일리> 율동 공연이 있었습니다.
연세대 연대나비지부 채예지 지부장님의 성명서 낭독 후 마무리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155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마무리 퍼포먼스에서는 참가자들이 수요시위 또는 일본군성노예제의 정의로운 문제해결에 앞장설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문화 콘텐츠, 책, 음악, 영호 등을 적어 보고 그중 한 분이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울평화나비와 함께 <나는 나비>를 함께 불렀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툿찡포교 성 베네딕토 수도회, 진보내학생넷, 서울대학생겨레하나, (일본) 민족교육 네트워크 사무국, 여성평우회, 역사동아리연합, 양서고등학교 동아리 햇담, 광주 평동중학교, 진보대학생넷 동국대지회, 안동 성청여자고등학교 동아리 ‘에듀벌룬’, 서울여성노동자회, 전남 강진 성요셉상호문화고등학교 외 여러 단체, 개인이 참가하였습니다.
온라인으로는 알마즈, 영환, 하늘보라, Woohee Kim, 조안구달, 김춘식(용인), 이원석, Jacques, Friends of ‘Comfort Women’ in Sydney – 시소연, 공정한사회, 박은덕(호주 시드니), 겐다르스키 님이 참가하였습니다. 인터넷이 불안정하여 온라인 생중계가 원활하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수요시위
#수요시위_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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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부정_중단하고_수요시위에_대한_공격을_멈춰라
#서울_평화나비네트워크
제1557차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간보고
지난 8월 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 김학순 님의 첫 번째 공개 증언일이었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한주를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주간으로 정해 다양한 기억기림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8개국 87개 단체와 세계연대집회로 수요시위를 진행했고, 11일 목요일에는 김순악 할머니의 삶을 다룬 영화 <보드랍게> 무료 상영회를 가졌습니다. 8월 14일에는 제10차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 맞이 나비문화제를 개최했습니다. 권해효 정의기억연대 홍보대사의 사회로 다양한 문화공연을 진행했고, 박필근, 이옥선, 이용수 피해생존자의 인사말과 미래세대에게 바라는 말씀을 영상으로 공유했습니다. 부대 행사로 평화나비네트워크, 역사동아리연합과 함께 20개의 시민참여부스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잦은 폭우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궂은 날씨만큼이나 힘든 상황을 뚫고 하늘로 뻗어간 힘찬 함성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번 기림일 주간의 주제는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라!, 피해자들의 용기를 기억하라!”였습니다. 우리의 힘은 피해생존자들의 용기와 역사의 진실을 마주해온 전 세계 시민 연대로부터 나옵니다. 갖은 탄압과 음해, 무시와 외면, 왜곡과 부정에도 굴하지 않고 30여년이 넘게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샘솟는 지지와 연대의 힘 덕분이었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더 큰 연대, 더 단단한 연대를 위해 제 시민단체들과 <역사정의와평화로운한일관계를위한 공동행동>, 가칭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을 구축했습니다. 평화, 정의, 인권, 생명안전이라는 의제로 모인 616개 단체들과 발족식을 갖고 공동행동을 모색하기로 결의했습니다. 8.15 자주평화통일대회에 주도적으로 참석하고 8월 16일에는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군사협력과 한반도 평화를 중심으로 한일 간 현안을 짚고 대안을 모색하는 국회토론회도 개최했습니다.
77년 전 오늘, 우리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지만 온전한 해방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냉전의 파고 속에 한반도는 두 동강이 났고 민족은 갈라졌으며 일제 강점 36년 식민지의 뿌리를 잘라내지 못했습니다. 제국주의 확장과 전쟁의 역사 속에 억압과 착취, 인간 존엄성의 말살과 생명의 절멸을 경험했고, 민족자주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음에도 인권과 평화의 중요성을 보편적 가치로 확립하지 못했습니다. 신냉전 체제를 방불케 하는 군사적 긴장감과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에 내적 분열과 갈등도 지속되고 있으며, 역사적 정의는 지연되고 있습니다.
식민지 불법 강점과 전쟁 범죄의 가해자는 역사를 직시하기는커녕 왜곡과 부정으로 일관하며 스스로의 잘못을 가리고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 한일합의'로 강제동원과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며 조롱하고,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들을 ‘한일관계 파탄의 주범,’ ‘관계개선의 걸림돌’ 취급하고 있습니다.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익으로 똘똘 뭉친 부화뇌동 행동대장들은 수요시위 주변은 물론 국내외 곳곳에 포진해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이에 당당히 대응하기는커녕 굴욕외교로 일관하더니 광복절에는 ‘양국이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며 반성 없는 자들에게 스스로 머리를 조아립니다. 민족해방과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대한민국 선조들의 정신을 입에 발린 자유라는 단어로 희석시키며 일본정부가 듣기 좋은 말로 일관했습니다.
전쟁범죄를 온전히 반성할 때 평화로운 미래가 가능합니다.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인정할 때만이 대등한 한일관계가 가능합니다. 한 번의 말이나 겉치레 행사가 아니라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실천의 진정성을 보일 때,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원합니다. 동아시아 평화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한일 두 나라가 손잡고 함께 노력할 날을. 과거를 교훈삼아 미래의 문을 활짝 열 그 날을. 그때서야 비로소 생존자는 물론 하늘에 계신 피해자들도 활짝 웃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는 여전히 어둡고 막막하고 험난한 역사 정의의 길에 평화의 횃불 밝혀 앞장 설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2022년 8월 17일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
연대발언_박은선(광주 평동중학교)
안녕하십니까?
저는 광주광역시에 있는 평동중학교 3학년 박은선입니다.
학교에서 역사 시간등을 통해
일제시대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배워서 어렴풋이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 수요집회 참석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 알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힘이 없는 어린 소녀들과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인권을 유린하였던
가해자인 일본은 그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인정하지도 않고, 우리 정부도 이를
정치, 외교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에 안타깝고, 또 화가 났습니다!
영화 '김복동'의 감독인 송원근감독님의 에세이 '그 이름을 부를 때' 를 읽고
자신도 몸이 아픈 어려운 상황에서도 영화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고 기억에 남기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에 감동하였습니다.
그리고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요집회를 통해 뜻을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어 여러 사람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역사 책의 한페이지의 사건에 불과하고 많은 관심을 갖지 못했던 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이에 저는 앞으로 이 가슴아픈 역사가 가해자 일본으로 부터 공식적으로 사죄받고, 배상 받는 날까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또한 별 관심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이를 알리고 함께 기억하며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우준하(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 대학원생)
안녕하세요. 현재 성공회대 대학원에서 배봉기 선생님 연구하고 있는 우준하입니다. 저도 평화나비 출신인데 오랜만에 평화나비가 주관하는 수요집회에서 발언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며칠 전 광복절이었는데요, 하지만 대부분의 성노예 피해자분들이 종전 후에도 냉전-분단체제로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셨습니다. 특히 제가 대학원에서 연구하는 배봉기 선생님은 “전쟁 때 총알 한 발로 죽었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자주 말씀하시면서 전후 공간에 대한 두려움을 자주 표출하셨습니다. 다양한 복합적인 원인이 있지만, 오키나와 조선인의 법적 지위와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한 박정희 정권의 차별적 배제가 존재합니다.
배봉기 선생님은 1943년에 일본군 성노예로 강제동원되어 일본 본토가 아닌 미군정의 오키나와에서 1945년 8월 15일 전후를 맞이하십니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에 재일조선인의 법적 지위가 논의되지만, 당시 오키나와는 미군정인 관계로 오키나와 조선인들은 논의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이후 1972년에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복귀되자 배봉기 선생님을 비롯한 오키나와 조선인들은 불법체류자가 됩니다. 그래서 조선총련을 중심으로 ‘조선적’ 국적 취득을 위한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오키나와 조선인들은 남측, 북측 정부 수립 이전에 조선시대에 출생하였기에 ‘조선적’ 국적 취득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하지만 이때 박정희 정권은 조선총련을 북한의 선동하는 반공단체로 규정하고 철저히 배제하고 탄압합니다. 조선총련을 감시하고자 주나하영사관을 설치합니다. 오키나와 조선인 문제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1975년 배봉기 선생님이 영주권을 얻기 위해 강제적 자기 증명을 했음에도 한국정부는 조선총련과 활동했다는 이유로 선생님을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한국정부는 오로지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지위가 저하되지 않도록 신신당부만 했습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배봉기 선생님이 겪은 미군정, 디아스포라, 냉전-분단체제 등 중층적 억압과 배제의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런 자료를 4천 페이지 넘게 갖고 있는데요, 저는 앞으로 연구한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연대의 힘을 통해 문제해결에 함께 기여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제 강연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일본군 성노예제 해결과 평화 번영을 위해 전국 어디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모예진(안동 성창여자고등학교)
안녕하십니까. 저는 안동 성창여자고등학교 2학년 모예진입니다.
우선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켜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저는 오늘 과거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는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이 제도적으로 군 위안소를 설치하여 점령지와 식민지 여성들을 동원해 성노예로 만든 범죄를 말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할머니들을 성노예로 범한 사실을 부정하고 오히려 할머니들을 모욕하는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정의기억연대에서는 일본 정부에게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진상규명을 하여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받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역사교과서에 진실로 기록하고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무나도 합당하고 당연한 요구입니다. 하지만 이 7가지밖에 안 되는 요구사항 중에 단 하나라도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과거의 자신들이 잘못한 역사의 책임은 지지 않고 부정하며 계속해서 책임전가를 하고 있는 이 사실은 너무나도 화가 나고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들입니다. 세계 곳곳에서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전범국이며 가해자인 일본은 일본군성노예제에 대한 모든 것을 부인하고 전 세계적으로 거짓된 내용을 퍼뜨리며 배상은커녕 공식 사죄조차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는 범죄의 역사를 왜곡하는 기만적인 행위로서 저는 다시 한 번 일본군성노예제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요구합니다. 진실은 언젠간 밝혀집니다. 모두가 하나 되고 노력하여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이상 성창여자고등학교 2학년 모예진이었습니다.
연대발언_최연교(안동 성창여자고등학교)
연대발언_전선정(연합지부 하랑나비 서포터즈)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한달 간 평화나비 네트워크 회원분들과 함께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에 보탬이 되고자 활동했던 발언자 전선정입니다. (저는 NOW PEACE 페스티벌 서포터즈였습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를 공식적으로 증언했던 김학순 인권운동가를 기리기 위한 축제를 다른 서포터즈분들과 함께 준비했고, 해당 문제에 대해서 약 3주간 공부하며 활동했습니다.) 2022년 상반기는 저에게 유독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써 필연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모순적인 구조를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 모순적인 구조의 수혜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다란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대학 강의를 들으면서도, 우리 사회의 모순점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도, 그 모순점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혹은 해결가능하기나 한지 끊임없이 의심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저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래도 세상에는 사회의 모순점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몸소 나서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럼으로 언젠가는 이러한 모순점들이 개선되어 더 나은 세상으로 한 발자국 나서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확신이었습니다. 팍팍해진 세상살이로 한층 강화된 각자도생의 사회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싶었으며, 저 역시 그 중 한명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NOW PEACE 페스티벌 서포터즈 활동은 저에게 한 줄기 희망을 내려줬습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고, 정의로운 해결에 보탬이 되고자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함께 활동도 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지금만이 아니라,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장기적으로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공부하며 지속적으로 활동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애써주시고 활동하신 피해당사자이자 인권운동가분들을 알게 되면서 가슴이 저몄지만 동시에 그분들의 용기를 향한 깊은 존경심과 애정이 들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다른 서포터즈분들과 함께 일본군‘위안부’ 피해당사자 김순악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보드랍게」를 관람했습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이해하고, 문제해결의 필요성에 절실히 공감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은 물론 전후 피해당사자의 생애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배상이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전시성폭력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처음 반전이라는 개념은 저에게 무척이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내면에 전쟁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당위가 분명히 있었지만, 동시에 외면적으로는 제가 태어난 순간부터 전쟁 역시 늘 있어왔으니까요. 한 때는 전쟁이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인 걸까, 회의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거의 모든 일에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따지던 저는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세상일에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나누는 것 또한 인간 아니겠냐고.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바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전쟁 없는 세상 역시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그러한 우리의 지향점을 거리낌 없이, 소리 높여 주장해야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외치며 발언 마무리 하겠습니다. 일본정부는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 공식으로 사죄하십시오. 법적으로 배상하십시오. 교과서에 일본군‘위안부’문제를 게재하여 재발방지 노력을 하십시오. 저 역시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굳게 약속하겠습니다. 함께합시다. 고맙습니다.
연대발언_김소연(서울여대 슈터플라이 지부 회원)
안녕하세요 저는 평화나비네트워크 서울여대지부 김소연입니다
저는 솔직히 말하면 평화나비네트워크에 들어오기전까지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무관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할머님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폭력을,사회를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고 반성합니다 가끔 제가 알지 못하였던 역사를, 사회적 약자가 겪어야 했던 현실을 평화나비네트워크 활동을 통해 배웠을때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렇게도 모르는 제가 할머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일 여지껏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많이 한심해지기도 하고 더 빨리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이렇게 모두들과 연대하고 함께 활동을 하게 되어 정말 뜻깊고 활동을 하는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활동을 하면 할수록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고 방법을 찾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것에 매우 슬펐으며 평화나비네트워크에 대부분의 회원이 여성이라는 것에도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일본군 성노예제문제를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깊어져가게되었고 그것을 일요일에 열렸던 now pece festa에서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멀리에서 많은 분들이 오시고 참여를 해주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뭉친다면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고 많이 덥기도 하였고 비도왔지만 모두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festa에 참여를 해주는 모습을 보고 지쳐있던 제 마음에도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저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할 때 말문이 막히는 것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계속해서 싸워나가고 싶고 배우고 싶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큰 힘이 되듯이 저도 거기에 조그만한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과거의 일이라고,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니면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 자신의 일이 아니라서 외면하는 사람도 많고 어렵다고 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는 처음 평화나비에 들어와 세미나를 진행하였을 때 맨 마지막에 반일이 아닌 반전이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전 처음에 이러한 말 조차도 반전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조차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자리에 나와 발언을 합니다 이 문제는 외면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저희의 노력은 끝날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여러분들과 함께 계속해서 할머님들의 곁을 지키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장은아(이화여대 이화나비지부 지부장)
안녕하세요 평화나비 이화여대지부장 장은아입니다
평화나비와 함께하기 전 저는 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평화나비와 다른 여러 단체들의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관련 활동을 많이 봤지만 역사적 문제가 인권과 어떻게 관련이 있고 지금 우리 삶과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는 사실 크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올해 3월, 수요시위를 지키기 위한 대학생 농성에 참여하면서 혐오세력들의 망언과 역사왜곡 발언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반도의 청년 대학생으로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더럽히는 저 행태를 두고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대학에서 평화나비 활동가가 사라진다는 소식에 매우 아쉬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일본군 성노예제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이 문제에 함께 고민하고 기억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였습니다.
그래서, 그럼 내 삶의 현장인 우리 이화여대에서 평화나비 활동을 해야겠다, 라고 결심을 했고 이번 평화나비 페스타 서포터즈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서포터즈 활동을 하면서 인식이 가장 많이 바뀌었던 부분은 일본군 '위안부' 역사가 그동안 인류 역사에서 가부장제와 군사주의와 여성혐오라는 부조리한 사회구조와 혐오가 축적되면서 발생한 일이고 세계 각지의 모든 전시성폭력이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소수자를 향해 차별을 가하고 있습니다.
정상성을 정하고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여성, 장애인, 비인간동물, 성소수자 등의 약자들에게는 너가 능력이 부족해서, 노력이 부족해서 차별을 받는다라며 부조리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전시성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너가 군대를 못가서, 피난을 못가서, 싸울 수 없어서, 여성이니까 그런 일을 당한거라고 혐오세력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평화와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한반도의 주인이자, 민족을 넘어 전세계의 평화를 바라는 세계시민입니다. 어떠한 왜곡과 망언도 뚫고 우리는 1557번 동안 이 자리에 모였고 앞으로도 1557번 넘게 또 모일 것입니다.
인권과 역사는 결코 무관하지 않고, 차별받는 모든 소수자의 해방을 위해서는 이 땅에, 세계에 평화와 평등이 찾아와야합니다.
우리 이화나비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우리의 현장에서 더 많은 학생대중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발로 뛰며 행동하겠습니다.
우리가 주도해서 반전평화 이뤄내자!
윤석열 정부의 굴욕외교 규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