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이효재 전 공동대표 약력
이이효재 선생님은 1924년 11월 14일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화여대 문과를 수료하고 1947년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한국사회를 민주화시키고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을 과제로 삼고 사회학, 기독교교육신학, 민화인류학 등을 공부합니다.
1958년부터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개설하고 이후 1990년까지 이화여대 사회학과, 서울여대 사회학과, 이화여대 여성자원개발연구소 창설, 한국사회학회 회장, 이화여대 환경교육연구회 조직, 미국 휘스크 대학 객원교수, 이화여대 여성학 준비위원회 위원, 한국가족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1980년부터 1984년에는 광주민주화항쟁에 연루되어 이화여대 교수 해직 및 복직을 하였으며 1990년에 이화여대 교수 정년퇴임하면서 교수로서, 학자로서의 삶을 마치셨습니다.
1975년 제1차 UN 세계여성회의 한국대표단에 참여하고 1982년에는 해직교수협의회 회장, 1983년부터 1997년까지 여성한국사회연구회 초대 회장, 1987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여성민우회 초대 회장, 1988년부터 1994년 한겨레신문 이사, 1990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1992년 유엔인권소위원회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제기, 1993년 북한 전후보상대책위원회 주최 평양국제토론회 참석, 1998년부터 2020년 창원여성의전화 고문, 2003년부터 2008년 진해기적의 도서관 운영위원장 등 많은 단체에서 여성인권과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1986년 <분단시대의 사회학>으로 제26회 한국출판문화상, 1993년 여성단체협의회, 올해의 여성상(윤정옥 선생님과 공동수상), 2002년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평화공로상, 2012년 YWCA, 제10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1968년<가족과 사회>, 1973년 <여성은 지역사회 주인이다> 이대여성자원개발연구소, 1976년 <한국 여성의 지위>(공저), 1978년 <여성의 사회의식>, 1979년 <여성해방의 이론과 현실>, <여성 해방의 이론과 현실>, 1983년 <제3세계의 도시화와 빈곤>, 1985년 <분단시대의 사회학>, 1989년 <한국의 여성운동-어제와 오늘> 등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2020년 10월 4일 별세하셨습니다.
故 이이효재 전 공동대표 추모글
2020년 10월 4일 우리는 큰 별을 잃었습니다. 이 땅의 여성인권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셨던 이이효재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1924년 11월에 태어나신 선생님은 1958년 신설된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사회 민주화가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인식에서 여성의 인식 변화와 사회 참여를 주장하고 그를 위한 연구와 교육 등 여성학 대중화에 기여하셨습니다.
또 분단 극복을 통한 통일 사회로의 발전에 여성이 참여하는 역사의식을 강조해온 선생님은 1991년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하여 처음 남북 여성들이 육로를 통한 만나도록 한 것을 시작으로 남북 여성교류를 활성화하는 여러 활동들을 하셨습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모성보호’, ‘비례대표 50% 여성 할당’, ‘호주제 폐지’, ‘부모성함 함께쓰기’ 등 여성 인권 함양을 위한 많은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이이효재 선생님은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설립에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공동대표이자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평화통일위원이었던 이이효재 선생님이 독자적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연구하고 있었던 윤정옥 선생님과 당시 기생관광 문제 등 여성운동을 이끌었던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만남을 주선하셨고 이들을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990년 8월 37개 여성단체들이 모여 일본 국회의원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망언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문제해결을 위한 협의체 구성이 들어가 1990년 11월 16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선생님은 1990년 설립부터 1998년까지 정대협 공동대표로서 활동하며 문제해결을 위한 수많은 활동들을 이끌었습니다. 30년 동안 끈질기게 이어져 오고 있는 일본군성노예제의 해결운동의 주춧돌을 놓으셨습니다.
“우리 여성들을 위해서 뭔가 해야 되겠구나,
그땐 뭔지도 모르지만 내가 충분하게 교육을 받으면 그땐 우리 여성들을 위해서 산다는 게 나한테 깊이 박혔던 거야.”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선생님은 배워서 알게 된 것들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어주셨고, 많은 이들이 선생님의 삶을 보고 뒤를 이어, 또 다른 이이효재가 되어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회학자로서, 실천가로서, 운동가로서 선생님이 이루고자 하셨던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성평등, 통일, 평화. 이 소중한 것들을 이제 우리가 이루어 나가겠습니다.
이이효재 선생님을 보내 드리며 기억하고 다짐합니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편안히 잠드시기 바랍니다.
故 이이효재 전 공동대표 약력
이이효재 선생님은 1924년 11월 14일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화여대 문과를 수료하고 1947년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한국사회를 민주화시키고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을 과제로 삼고 사회학, 기독교교육신학, 민화인류학 등을 공부합니다.
1958년부터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개설하고 이후 1990년까지 이화여대 사회학과, 서울여대 사회학과, 이화여대 여성자원개발연구소 창설, 한국사회학회 회장, 이화여대 환경교육연구회 조직, 미국 휘스크 대학 객원교수, 이화여대 여성학 준비위원회 위원, 한국가족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1980년부터 1984년에는 광주민주화항쟁에 연루되어 이화여대 교수 해직 및 복직을 하였으며 1990년에 이화여대 교수 정년퇴임하면서 교수로서, 학자로서의 삶을 마치셨습니다.
1975년 제1차 UN 세계여성회의 한국대표단에 참여하고 1982년에는 해직교수협의회 회장, 1983년부터 1997년까지 여성한국사회연구회 초대 회장, 1987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여성민우회 초대 회장, 1988년부터 1994년 한겨레신문 이사, 1990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1992년 유엔인권소위원회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제기, 1993년 북한 전후보상대책위원회 주최 평양국제토론회 참석, 1998년부터 2020년 창원여성의전화 고문, 2003년부터 2008년 진해기적의 도서관 운영위원장 등 많은 단체에서 여성인권과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1986년 <분단시대의 사회학>으로 제26회 한국출판문화상, 1993년 여성단체협의회, 올해의 여성상(윤정옥 선생님과 공동수상), 2002년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평화공로상, 2012년 YWCA, 제10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1968년<가족과 사회>, 1973년 <여성은 지역사회 주인이다> 이대여성자원개발연구소, 1976년 <한국 여성의 지위>(공저), 1978년 <여성의 사회의식>, 1979년 <여성해방의 이론과 현실>, <여성 해방의 이론과 현실>, 1983년 <제3세계의 도시화와 빈곤>, 1985년 <분단시대의 사회학>, 1989년 <한국의 여성운동-어제와 오늘> 등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2020년 10월 4일 별세하셨습니다.
故 이이효재 전 공동대표 추모글
2020년 10월 4일 우리는 큰 별을 잃었습니다. 이 땅의 여성인권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셨던 이이효재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1924년 11월에 태어나신 선생님은 1958년 신설된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사회 민주화가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인식에서 여성의 인식 변화와 사회 참여를 주장하고 그를 위한 연구와 교육 등 여성학 대중화에 기여하셨습니다.
또 분단 극복을 통한 통일 사회로의 발전에 여성이 참여하는 역사의식을 강조해온 선생님은 1991년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하여 처음 남북 여성들이 육로를 통한 만나도록 한 것을 시작으로 남북 여성교류를 활성화하는 여러 활동들을 하셨습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모성보호’, ‘비례대표 50% 여성 할당’, ‘호주제 폐지’, ‘부모성함 함께쓰기’ 등 여성 인권 함양을 위한 많은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이이효재 선생님은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설립에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공동대표이자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평화통일위원이었던 이이효재 선생님이 독자적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연구하고 있었던 윤정옥 선생님과 당시 기생관광 문제 등 여성운동을 이끌었던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만남을 주선하셨고 이들을 중심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990년 8월 37개 여성단체들이 모여 일본 국회의원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망언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문제해결을 위한 협의체 구성이 들어가 1990년 11월 16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선생님은 1990년 설립부터 1998년까지 정대협 공동대표로서 활동하며 문제해결을 위한 수많은 활동들을 이끌었습니다. 30년 동안 끈질기게 이어져 오고 있는 일본군성노예제의 해결운동의 주춧돌을 놓으셨습니다.
“우리 여성들을 위해서 뭔가 해야 되겠구나,
그땐 뭔지도 모르지만 내가 충분하게 교육을 받으면 그땐 우리 여성들을 위해서 산다는 게 나한테 깊이 박혔던 거야.”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선생님은 배워서 알게 된 것들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어주셨고, 많은 이들이 선생님의 삶을 보고 뒤를 이어, 또 다른 이이효재가 되어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회학자로서, 실천가로서, 운동가로서 선생님이 이루고자 하셨던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성평등, 통일, 평화. 이 소중한 것들을 이제 우리가 이루어 나가겠습니다.
이이효재 선생님을 보내 드리며 기억하고 다짐합니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편안히 잠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