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활동가 더피입니다! 8월 29일 월요일, 활동가 행과 함께 포항 필근 할머니 댁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방문 때는 사정상 짧게 뵈어서 할머니께서 많이 서운해 하셨는데 이번에는 할머니의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인지 할머니가 “싸게 싸게 왔네” 하시며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할머니 댁에 도착하면 거의 12시입니다. 그래서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가곤 하는데요, 이번에는 할머니께서 ‘한 모금 감주’를 식전에 주셨고, 저희는 그걸 다 마신 후에야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고디탕을 먹으러 갔지만 이날따라 유난히 맛이 없게 나온 고디탕과 구성이 영 좋지 않았던 반찬들 때문에 할머니는 많이 뜨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나오시면서도 ‘오늘은 영 아니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니다’ 등등 혹평을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드려야겠습니다.
식사 후에는 늘 하나로마트에 들러 소고기, 요거트, 설탕, 김 등을 사서 할머니 댁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한 모금 감주’를 마시고, ‘내 얼굴보다 크다’고 강조하시던 복숭아도 함께 먹고, 평상으로 가 할머니께서 좋아하는 민화투를 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일이 터져버렸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화투에 관심이 없어서 30대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화투를 쳐본 적이 없습니다. 민화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림만 맞추면 된다고 하지만 그림이 뭐가 뭔지를 모르니 맞춰도 따지를 못하고, 할머니는 너무 답답해 하셨습니다. “뭐를 알아야 치지! 그 나이 되도록 화투도 안 배우고 뭐 했는교! 외국 사람인교” 이 말씀을 계속해서 하시며 저를 꾸짖으셨습니다. 할머니 눈에 어떻게 잘 보일까 고민만 하던 저에게... 저 말들은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정말 제가 이해 안 되시는지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처음 쳐본 사람이 잘한다는 말도 여러 번 들었지만 저에게는 해당이 안 되었습니다. “뭘 알아야 치지!”라는 말씀을 여러 번 들으며 저는 계속 꼴찌만 했습니다. 민화투를 처음 쳐서 못하는 것도, 할머니께 혼나는 것도 모두 괜찮았지만 저 때문에 할머니가 재미 없으실까, 기분이 안 좋으실까 그것만 걱정되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뒤끝이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화투를 다 접고 나니 원래의 할머니 모습으로 돌아와 인생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할머니는 늘 힘들게 사셨던 것 같습니다. 매번 들어도 질리기는커녕 할머니의 이야기에 감정이 이입돼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날아댕겼다고 하시지만 할머니의 손은 뼈가 상할 대로 상했고, 이제는 거동도 많이 불편한 모습에 할머니가 고생하셨을 그간의 세월이 눈에 선합니다. 이제라도 일본의 공식사죄를 받고 마음이 편하기를, 그걸로 할머니의 한이 다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녹아내리기를 바라며, 할머니가 앞으로도 오래 건강하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다음 방문 때에는 할머니가 재미있기를 바라며 민화투를 조금 더 공부하고 가야겠습니다.
"그 나이까지 화투도 안 배우고 뭐 했는교! 외국 사람인교!"
안녕하세요, 활동가 더피입니다! 8월 29일 월요일, 활동가 행과 함께 포항 필근 할머니 댁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방문 때는 사정상 짧게 뵈어서 할머니께서 많이 서운해 하셨는데 이번에는 할머니의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인지 할머니가 “싸게 싸게 왔네” 하시며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할머니 댁에 도착하면 거의 12시입니다. 그래서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가곤 하는데요, 이번에는 할머니께서 ‘한 모금 감주’를 식전에 주셨고, 저희는 그걸 다 마신 후에야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고디탕을 먹으러 갔지만 이날따라 유난히 맛이 없게 나온 고디탕과 구성이 영 좋지 않았던 반찬들 때문에 할머니는 많이 뜨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나오시면서도 ‘오늘은 영 아니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니다’ 등등 혹평을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드려야겠습니다.
식사 후에는 늘 하나로마트에 들러 소고기, 요거트, 설탕, 김 등을 사서 할머니 댁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한 모금 감주’를 마시고, ‘내 얼굴보다 크다’고 강조하시던 복숭아도 함께 먹고, 평상으로 가 할머니께서 좋아하는 민화투를 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일이 터져버렸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화투에 관심이 없어서 30대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화투를 쳐본 적이 없습니다. 민화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림만 맞추면 된다고 하지만 그림이 뭐가 뭔지를 모르니 맞춰도 따지를 못하고, 할머니는 너무 답답해 하셨습니다. “뭐를 알아야 치지! 그 나이 되도록 화투도 안 배우고 뭐 했는교! 외국 사람인교” 이 말씀을 계속해서 하시며 저를 꾸짖으셨습니다. 할머니 눈에 어떻게 잘 보일까 고민만 하던 저에게... 저 말들은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정말 제가 이해 안 되시는지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처음 쳐본 사람이 잘한다는 말도 여러 번 들었지만 저에게는 해당이 안 되었습니다. “뭘 알아야 치지!”라는 말씀을 여러 번 들으며 저는 계속 꼴찌만 했습니다. 민화투를 처음 쳐서 못하는 것도, 할머니께 혼나는 것도 모두 괜찮았지만 저 때문에 할머니가 재미 없으실까, 기분이 안 좋으실까 그것만 걱정되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뒤끝이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화투를 다 접고 나니 원래의 할머니 모습으로 돌아와 인생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할머니는 늘 힘들게 사셨던 것 같습니다. 매번 들어도 질리기는커녕 할머니의 이야기에 감정이 이입돼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날아댕겼다고 하시지만 할머니의 손은 뼈가 상할 대로 상했고, 이제는 거동도 많이 불편한 모습에 할머니가 고생하셨을 그간의 세월이 눈에 선합니다. 이제라도 일본의 공식사죄를 받고 마음이 편하기를, 그걸로 할머니의 한이 다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녹아내리기를 바라며, 할머니가 앞으로도 오래 건강하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다음 방문 때에는 할머니가 재미있기를 바라며 민화투를 조금 더 공부하고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