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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소식7월 할머니 방문기: 할머니의 마법 감주

매달 기다려지는 박필근 할머니를 뵈러 포항에 가는 길, 오늘도 들뜬 마음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지난달 할머니 방문기 클릭!) 기차 안에서 정신없이 다가오는 8.14 기림일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포항역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 댁은 포항역에서 차로 꽤 들어가는 시골에 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가기에 어려운 지역이라 차를 빌려서 가는데요. 빌린 차를 타고 5분 정도 달려 고속도로에 진입할 무렵, 속도를 내니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고장 난 차를 다시 반납하고 새 차를 빌리느라 가는 길이 지체되었습니다.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 얼른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속상한 마음으로 얼른 할머니 댁에 달려가니, 할머니는 평상에 앉아 목이 빠지게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저희가 전화 드린 이후에도 걱정이 되어 열두 번 넘게 더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애가 탔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께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없었던 사무실로 전화하셨던 모양입니다. 항상 활동가들이 서울서 먼 길 내려오는 것을 걱정하시며 도착할 때까지 사무실로 여러 번 전화하시는 할머니. 할머니의 걱정 속에 꼬박꼬박 할머니를 찾아뵙는 활동가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 얼른 읍내로 출발해 할머니와 식사를 했습니다. 늘 같은 할머니와의 루틴, 다음은 장을 보는 차례입니다.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마트를 누비며 필요하신 쌀 10kg과 찹쌀 4kg 포대, 소고기, 김, 국수, 간장, 맛소금, 설탕, 요구르트, 신발, 화장지와 로션 등을 카트에 담았습니다.

늦게 도착한 활동가들이 행여 기차 시간 못 맞추진 않을까 싶어 마음이 급해지신 할머니는 이것저것 챙겨주시며 바쁘게 손을 놀리기 시작하셨습니다. 텃밭에 달린 토마토를 따주시겠다며 잰걸음으로 집 뒤편으로 향하셨습니다. 조금 걸어가니 등장하는 할머니의 텃밭에는 고구마와 콩이 한가득 심겨 있었습니다. 성한 토마토를 고르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썩은 토마토들은 휙~ 휙! 던져버리시는 할머니. 금세 한 아름 토마토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가 멋지게 가꾸신 텃밭! 정말 멋지죠?

거실에 앉자마자 할머니는 감주(식혜)를 꺼내 오십니다. 감주 “한 모금씩 하고 가~”하시더니 국그릇에 큰 국자로 한가득- 담아주셨습니다. 꿀꺽꿀꺽 열심히 마셔보지만, 마법의 감주인지 양이 영 줄지 않습니다. 한참을 마시다가 눈이 마주친 활동가들과 웃으면서 할머니의 사랑은 역시 넓고 크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길을 나서야 할 시간이 다가와 급한 마음에 빨리 마시니, "더 줄까?" 하십니다. 할머니, 빨리 "한 모금"하고 서울 올라가라고 하셨는걸요!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며 남은 마법 감주를 후딱후딱 마셨습니다.

‘전화하는 정대협이’는 왜 안 왔냐며 찾으시는 할머니께 8월에 서울에서 크게 행사를 한다고,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함께 뜻을 이어가기 위해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기림일 행사를 하는데 준비하느라 바빠 같이 못 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도 행사를 가보고 싶은데, 다리가 아파서 못 간다며 아쉬워하셨습니다. 직접 함께하시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행사에 오는 젊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을 들려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다가도, 짧지만 애정 넘치는 한 마디를 남겨주셨습니다. 할머니의 말씀 영상은 8월 14일 나비문화제에서 개봉박두! 절찬리 상영 예정이랍니다. (8.14. 10차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주간 행사 안내 보러가기)

할머니를 위해 ‘전화하는 정대협이’에게 영상통화를 걸었습니다. 활짝 웃으며 인사하시다가, 마음이 급하신 할머니는 어느 새 등을 돌려 마당에 둔 토마토를 가지러 가십니다. ‘전화하는 정대협이’ 포카 활동가가 할머니의 등에 대고 안부를 여쭤보지만, 할머니께서 이미 저~ 멀리 가버리신 후 입니다. 

평소보다 짧게 뵈어 아쉬웠지만, 오늘도 할머니가 주신 애정으로 듬뿍 에너지를 채우고 갑니다. 먹어도 줄지 않는 마법의 감주부터 돌아가는 길 조심히 가라며 손 흔들어주시는 모습까지, 할머니의 사랑 속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그려봅니다. 혐오와 왜곡을 넘어 평화와 사랑의 힘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소수자가 차별·억압받지 않고 모두가 공존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향해 작지만 소중한 실천을 이어가리라 다짐해봅니다. 할머니의 사랑을 이어가며,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함께하겠습니다. 우리를 움직이는 힘을 혐오가 아닌 사랑, 부정이 아닌 희망으로 만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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