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행, 새싹 활동가가 포항에 계신 박필근 할머니를 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할머니께서는 평상에 앉아 활동가들을 맞아주셨습니다. 할머니 댁에는 아드님께서 이전에 오셔서 말려둔 무청이 마치 커튼처럼 벽 한쪽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싸게 싸게 왔다~”며 반가운 마음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할머니를 처음 뵙는 새싹 활동가도 따뜻한 웃음으로 맞이해주셨습니다.
점심으로 고디국을 드시고 싶다는 할머니 말씀에 다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식당에서 할머니는 손을 보여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세월의 질곡이 여실히 드러나는 손과 새싹 활동가의 손을 비교하시면서 ‘나도 젊었을 땐 이랬는데 일을 많이 해서 이렇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새싹 활동가는 ‘할머니 손 멋져요’, ‘그래도 고와요’하고 진심을 전했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새싹 활동가는 음식이 나오고서야 ‘고디’가 다슬기, 올갱이를 지칭하는 경상도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할머니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먹고 너무 좋아요’라고 하자 웃어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밥 한 공기를 셋 중 가장 먼저 비우시고는 이쑤시개를 가져다 달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 사투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던 새싹 활동가는 신기하게도 그 말을 한 번에 알아듣고 가져다드렸습니다. 행 활동가는 할머니께서 식사 후 이쑤시개를 찾으신 게 처음이었고, 그걸 한 번에 알아들은 게 신기하다고 말했습니다.
식당을 나와 마트에 필요한 것들을 사러 갔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이것저것 생필품을 구매하시고는 ‘정대협이 제일 좋다’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활동가들에게 ‘젊을 때 많이 돌아다녀라’, ‘나도 젊었을 적에는 날아다녔다~’, ‘이 산 저 산 안 가본 데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다리가 아프신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귀담아듣고 많은 경험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 댁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할머니는 민화투를 꺼내셨습니다. 고스톱은 쳐봤지만, 민화투는 쳐 본 적 없는 새싹 활동가는 조금 긴장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새싹 활동가에게 ‘잘 친다~’고 해주셨습니다. 화투에 관해서는 칭찬에 인색하신 할머니께서 칭찬해주셔서 무척 기뻤습니다. 대여섯 판을 했지만, 행 활동가와 새싹 활동가는 한 판을 빼고는 할머니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계속 ‘해 떨어지기 전에 얼른 가라’고 하시면서도 ‘한 판 더 놀자’고 하셨습니다. ‘서울 가면 어둡겠다’고 계속 걱정하시면서도 다음 판을 권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주 뵙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와, ‘할머니 이길 때까지 안 가고 화투 칠래요!’, ‘다음에 올 때는 화투 공부 많이 해서 올게요’ 하자 웃으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사과와 감, 박카스를 쥐여주시면서 활동가들을 배웅하셨습니다. 차가 나가는 길까지 계속 손을 흔들어주셨습니다.
새싹 활동가는 이번이 박필근 할머니를 처음 뵙는 자리였고, 포항에 가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포항은 할머니의 고향,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기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할머니의 다리가 조금이라도 괜찮아지기를, 할머니께서 항상 평화롭고 안온한 일상을 보내시기를, 늘 건강하시고 웃을 일이 더 많아지시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할머니와의 만남을 기억하면서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11월 24일 행, 새싹 활동가가 포항에 계신 박필근 할머니를 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할머니께서는 평상에 앉아 활동가들을 맞아주셨습니다. 할머니 댁에는 아드님께서 이전에 오셔서 말려둔 무청이 마치 커튼처럼 벽 한쪽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싸게 싸게 왔다~”며 반가운 마음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할머니를 처음 뵙는 새싹 활동가도 따뜻한 웃음으로 맞이해주셨습니다.
점심으로 고디국을 드시고 싶다는 할머니 말씀에 다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식당에서 할머니는 손을 보여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세월의 질곡이 여실히 드러나는 손과 새싹 활동가의 손을 비교하시면서 ‘나도 젊었을 땐 이랬는데 일을 많이 해서 이렇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새싹 활동가는 ‘할머니 손 멋져요’, ‘그래도 고와요’하고 진심을 전했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새싹 활동가는 음식이 나오고서야 ‘고디’가 다슬기, 올갱이를 지칭하는 경상도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할머니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먹고 너무 좋아요’라고 하자 웃어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밥 한 공기를 셋 중 가장 먼저 비우시고는 이쑤시개를 가져다 달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 사투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던 새싹 활동가는 신기하게도 그 말을 한 번에 알아듣고 가져다드렸습니다. 행 활동가는 할머니께서 식사 후 이쑤시개를 찾으신 게 처음이었고, 그걸 한 번에 알아들은 게 신기하다고 말했습니다.
식당을 나와 마트에 필요한 것들을 사러 갔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이것저것 생필품을 구매하시고는 ‘정대협이 제일 좋다’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활동가들에게 ‘젊을 때 많이 돌아다녀라’, ‘나도 젊었을 적에는 날아다녔다~’, ‘이 산 저 산 안 가본 데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다리가 아프신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귀담아듣고 많은 경험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 댁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할머니는 민화투를 꺼내셨습니다. 고스톱은 쳐봤지만, 민화투는 쳐 본 적 없는 새싹 활동가는 조금 긴장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새싹 활동가에게 ‘잘 친다~’고 해주셨습니다. 화투에 관해서는 칭찬에 인색하신 할머니께서 칭찬해주셔서 무척 기뻤습니다. 대여섯 판을 했지만, 행 활동가와 새싹 활동가는 한 판을 빼고는 할머니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계속 ‘해 떨어지기 전에 얼른 가라’고 하시면서도 ‘한 판 더 놀자’고 하셨습니다. ‘서울 가면 어둡겠다’고 계속 걱정하시면서도 다음 판을 권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주 뵙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와, ‘할머니 이길 때까지 안 가고 화투 칠래요!’, ‘다음에 올 때는 화투 공부 많이 해서 올게요’ 하자 웃으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사과와 감, 박카스를 쥐여주시면서 활동가들을 배웅하셨습니다. 차가 나가는 길까지 계속 손을 흔들어주셨습니다.
새싹 활동가는 이번이 박필근 할머니를 처음 뵙는 자리였고, 포항에 가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포항은 할머니의 고향,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기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할머니의 다리가 조금이라도 괜찮아지기를, 할머니께서 항상 평화롭고 안온한 일상을 보내시기를, 늘 건강하시고 웃을 일이 더 많아지시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할머니와의 만남을 기억하면서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