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할머니 소식5월 포항 할머니 방문기


5월 23일 아직은 조금 쌀쌀한 아침 행 활동가와 감자 활동가가 포항에 계시는 할머니를 만나뵙기 위해 서울역에 모였습니다. 점점 날이 풀리는 요즘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한 마음을 품고 댁에 도착하니 글쎄 밖에 나와 계시는 거예요. 할머니 산책하셨어요? 여쭤보니 저희를 기다리셨다 합니다. 나오신 김에 점심부터 같이 드시고 들어가자는 제안을 하며 할머니와 차에 올라탔습니다.


필근 할머니는 무릎이 좋지 못하십니다. 거동이 어려워 차에 오르내리고, 바깥을 걷는 내내 꼭 손을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를 만날 때는 평소에 인지하지 못했던 길가의 돌이나 연석의 높이가 아주 신경이 쓰입니다. 위로 지나가실 수 있을까? 너무 높은가? 넘어지시면 어떡하지? 손아귀에 힘을 꼭 쥐고 할머니와 천천히 걷습니다. 온몸을 맡기시는 할머니가 그만큼 저희를 신뢰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한쪽이 묵직합니다.


이 날 할머니가 즐겨 드시는 고디탕을 먹었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할머니께 아는 척을 합니다. 행 활동가가 반찬으로 나온 황태 조림을 뜯어 할머니 앞으로 밀어둘 때마다 자꾸 저희더러 먹으라고 손사래 치세요. 할머니 잘 드시는 모습만 봐도 포만감이 느껴지는 저희의 마음을 아실까요? 


할머니는 유독 말씀이 많으셨습니다. 갑자기 사진 뭉치를 들고 와서 아들이 준 거라며 보여주시기도 하고요. 평소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예전 일들을 꺼내시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자주 하시던 말씀과 충돌(?)되는 의견을 피력하셔서 감자 활동가가 놀라 웃기도 했는데요, 무슨 얘기냐면 결혼에 관한 얘기입니다. 원래 우리 할머니 레퍼토리가 결혼했느냐고 묻고 난 뒤 안 했다고 하면 “에헤이~” 하시거든요. 그런데 이날은 결혼 안 했다고 대답하니 요즘 젊은 사람들 결혼 안 하려고 하지, 시댁 뒤치다꺼리 해야 되고 남편 밥 해줘야 되고 고생에 고생만 한다며 굳이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할머니 저 정말 결혼 안 해도 돼요? 여쭤보니 자기가 뭐라고 남의 결혼에 해라 마라 하느냐며 알아서 하라 하십니다. 놀랐어요. 할머니께 비혼 허락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려고요.


요즘 더 외로우신 걸까요? 갑자기 “자고 갈래?” 물어보십니다. 준비가 마땅치 않아 다음에 꼭 자고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이런저런 말씀 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에 극우세력이 갑자기 할머니 댁 앞에 집회신고를 하고 혐오시위를 하겠다는 정보가 있어서 속상하기도 했고, 저희가 이걸 어떻게 실질적으로 막아내고 할머니를 보호할 수 있을지 돌파구를 찾고 싶기도 합니다. 할머니와 오래오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할머니께 지금부터 오십 년만 더 사시면 안 되느냐 여쭤보니 귀신이 되란 소리냐고 웃으십니다. 건강하게 오래 뵈어요, 할머니. 저희 또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