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수요 시위1717차 수요시위_이화여자대학교 민주동우회

171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의 주관은 이화여자대학교 민주동우회에서 하였고 사회는 최혜정 님이 보았습니다.

 

정의연 활동가들과 수어통역을 해주신 현서영 님의 <바위처럼>에 맞춘 힘찬 율동으로 수요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민주동우회 김태순 회장님의 주관단체 인사말에 이어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연대발언으로 수요시위를 이어갔습니다. 평화나비네트워크 이화여대 이시은 지부장님, 민족통일애국청년회 김태중 사무국장님, 경기평화나비 변가원 대표 직무대행님, 명자맘 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했습니다.

 

이어 이화여자대학교 민주동우회 노래동아리 김희정, 김태순, 구선희, 최혜정 님이 <독립군가>, <세상에 지지 말아요> 노래를 신나는 목소리로 불러 주셨습니다.

 

참가단체 소개 후 마지막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민주동우회 유하영 님이 성명서 낭독을 하며 1717차 정기 수요시위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서는 주관단체인 이화민주동우회, 박의선, 이성혜(이민동), 천주섭리수녀회, 이명수(수원, 오산, 화성 촛불행동), 미국장로교 청년자봉단, 민족통일애국청년회, 조국혁신당 여성위원회, 변가원,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이은정(서울대 민주동문회), 김성금(이화민주동우회), 김현태(이화민주동우회), 이명옥, 유리 야나시타-리, 아키코 야나시타, 수요시위미식회, 일본 희망씨앗기금 가을기행단, 평화나비, 여성교회, 난민안전연구소, 자립지지공동체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수어통역은 현서영 님이,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연대발언_평화나비네트워크 이화여대 지부장 이시은

안녕하세요, 평화나비 네트워크 이화여대지부 이화나비 지부장 이시은입니다. 몇 주 전 첫 발언을 했을 때는 어떤 직책도 없는 그저 일반 회원이었는데, 금새 지부장이라는 중책을 맞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리의 무게를 뼈저리게 느끼며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화나비는 2012년 <이화나비 콘서트>에서 시작되어 현재 13기째 교내에서 또 교외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동아리 이름은 이대생 누구라면 알 만큼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연대 활동을 하고, 교내 캠페인을 하고, 축제에도 참여했기에, 또 파면광장에도 꾸준히 나갔기에 그랬습니다. 전부 앞서 활동했던 선배들 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2년 이화나비 콘서트에서 시작된 변화가 평화나비네트워크의 초석이 되었고 오늘도 대학가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13년째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습니다. 


 이대역에서 정문으로 가는 길 왼편 공원에는 파란 날개를 단 ‘평화의 소녀상‘이 있습니다. 저에게 이 소녀상은 이화나비에 가입하는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잊고 있었던 위안부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대학생들이 손수 세운 이 소녀상을, 저를 이 자리까지 이끈 소녀상을 볼 때마다 저는 이화나비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여자 대학에 다니며 가장 크게 느낀 장점은 사회에서 쉽게 다루지 못할 의제에 대해 마음껏 토론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페미니즘, 성소수자, 장애 인권, 비거니즘, 전쟁과 학살 등, 학교라는 공간은 이런 의제들을 토론하기에 충분히 안전한 공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안전한 공론장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몸소 느꼈습니다. 우리 평화나비는 대학 내 공론장을 만드는 데에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런 평화나비의 사업과 취지에 조금이라도 더 힘을 쏟고 싶었습니다. 


 아직 저 자신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 제가 활동을 열심히 했는지, 지부장이라는 호칭이 제게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하는 투쟁에 대한 확신, 그리고 나비에 대한 확신은 있습니다. 평화나비와 함께 계속 이 투쟁을 이어나가면, 내가 원하는 세상을 언젠가 만날 수 있겠구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입니다. 


 제 운동의 또 다른 원동력은 동지들에 대한 믿음입니다. 동지들이 있기에 많은 것을 도전해볼 수 있었습니다. 또 투쟁하면서 생긴 고민들을 터놓을 수 있습니다.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 우리가 해내지 못할 건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저의 투쟁을 동지들과 학교에서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영광입니다. 저는 학교에 첫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 이화는 동지들을 만날 수 있었던 영광스러운 곳이자, 제가 맘편히 투쟁할 수 있는 곳이고 앞으로 투쟁을 이어나갈 자랑스러운 곳입니다. 또 민주동문회 선배님들을 만나뵙게 되어서, 주관수요시위에 함께할 수 있어서, 이렇게 발언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입니다. 


 우리의 투쟁엔 분명 어려움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지켜와 주신 이 자리를 우리 대학생들이 이어나가겠습니다. 할머니들의 기억을 용기를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할머니들의 손 놓지 않겠습니다. 더 많은 대학생이 우리와 함께할 수 있도록 안팎으로 뛰어다니겠습니다. 


 다시 한번 발언 자리 마련해주신 이화 민주동문회 선배님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구호 외치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연대발언_민족통일애국청년회 사무국장 김태중

역사정의와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해 활동하고있습니다. 민애청 사무국장 김태중입니다. 투쟁으로 인사


한일정상회담이 있은지 보름정도가 지났습니다. 17년만에 발표됐다던 한일 공동성명문을 읽어보면서, 이거 너무 낯설지 않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챗 GPT에게 2023년 윤석열의 한일정상회담 기자회견문과 비교해달라고 하니 공통점이 많은 성명이라고 답을 주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일제로부터 광복 80년을 맞은 815경축사에서부터 한일 과거사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시바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하는 등 군사대국화 흐름이 뚜렷한 일본에 대해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담기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815경축사가 맹탕이었던 것은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어서였습니다.


한일회담을 앞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은 일제강제동원 제3자변제안과 같은 역사부정합의에 대해 “국가간 약속이기 때문에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망언을 했습니다. 여러분, 제3자변제안은 양국 간 합의도 아닌 윤석열의 일방적인 구애였지 않습니까? 그럼 외교장관이 구두 합의한 2015한일위안부합의는 유지되어야합니까? 역사의 피해자들을 보듬고, 나아가 타국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정의로운 주권 국가의 모습입니다. 


공동성명문에는 한미일 협력이 여러차례 등장합니다. 정부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한미일협력의 상징이라고 눈을 가리우지만, 핵심은 군사협력이라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일본은 해묵은 북한이라는 핑계로 군사대국화로 나아가고 있고 여기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바로 한미일군사동맹입니다. 게다가 미국의 중국압박을 위해 한국이 동원되는, 그야말로 주권과 평화 훼손입니다. 


저는 내심 왜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굳이 일본까지가서 긁어부스럼의 한일회담을 할까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스스로 말했습니다. 과거사 문제가 한일협력을 어렵게 하냐는 트럼프의 질문에 이 대통령은 “일본에 먼저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께서 우려할 문제를 미리 다 해결하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너무나 아연실색입니다. 


그리고 오는 9월 15일부터 나흘간 제주도 남방에서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군사훈련 프리덤에지가 실시됩니다. 역대 세번째, 이재명 정부 들어서는 처음입니다. 우리의 역사문제는 또 걸림돌 취급입니까? 1965년이 그랬고, 2015년이 그랬고, 2023년이 그랬듯 한미전쟁동맹 아래, 한미일군사협력 아래 피해자들의 피눈물과 우리의 주권, 평화는 나중으로 밀리는 겁니까? 청년들은 규탄합니다.


발언을 마치려다보니 화만 낸것 같아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 아주 가끔 커다란 권력 앞에 무기력 해질때도 있습니다. 진짜 이길수있을까? 하는 마음말이에요.

제가 서대문 역사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항쟁에 나섰던 1882년 임오년의 군인들과 1894년 갑오년의 농민들의 자식들이 의병이되고 의병의 자식들이 만주의 독립군이되어 끝내 해방을 가져왔던게 우리겨레, 우리민족의 투쟁의 dna더라구요. 그리고 그런 투쟁의 dna가 사라진게 아니라 이곳 평화로에서 30년간 이어지고 있는것을 느끼며 반드시 진정한 해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어갑니다.


저희 청년들도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투쟁!


연대발언_경기평화나비 대표 직무대행 변가원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평화나비 대표 직무대행 하고 있고 한신대 윤교수 최초 고발자 변가원입니다.
윤교수는 작년 일본군'위안부'는 강제 징용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가족에 의해 팔린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는 돈을 받고 일했다라는 등의 망언을 한 것과, 그리고 그 학과의 학생이 바로 앞에 있었고 하지말아달라는 부탁을 듣고도 계속해서 그 학과에 대한 비하발언을 이어간 것에 대한 징계로 올해 초 파면 당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 7일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의해 윤교수의 파면이 취소되었고 28일 한신학원 이사회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재징계위를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교수를 복직 시키고 수업을 주었죠.

제가 윤교수의 망언을 들은 날이 2024년 9월 12일이었습니다. 윤교수가 학과에 대한 비하 발언을 한 것은 같은 해 3월이었습니다. 윤 교수가 갑자기 저 해에만 저런 발언들을 했을까요? 아닙니다. 윤 교수는 이미 몇 년 동안 어떤 선배는 10년 전에도 저랬다고 할 정도로 오래 저러한 발언들을 해왔습니다. 학과장이라서. 학생들에게 그나마 친근한 교수님이라서 이러는 이유들로 고발하는 학생만 없었을 뿐. 윤 교수는 이미 썩어들어가는 문제였습니다. 제가 처음 망언을 들은 날이 오늘로 정확히 363일입니다. 이미 썩은 문제를 고발한 1년이 다 돼감에도 한신대는 아직도 치우지 못하고 있는겁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파면 결정은 학교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에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파면이 취소됐으니 복직은 어쩔 수 없다는 말에도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수에게 다시 수업을 준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변명 삼아 학습권을 침해하여 파면된 교수를 교단에 다시 세우는 것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한신대가 하루빨리 윤교수를 직위해제하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맞은 방법으로 보장하길 바랍니다.

사실 윤교수의 발언이 왜 잘못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더 하고 싶은 말이 없습니다. 지치고 질립니다. 대체 언제까지 윤교수의 발언은 역사를 부정하고 피해자를 모독하는 것이며 그건 학문이 될 수 없다는 얘기를 해야하는 걸까요. 이런 교수가 교단에 서서는 안된다는 당연한 얘기를 왜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싸우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역사학과이자 나비로서 할머니들을 모욕하고 역사를 부정하는 자를 가만히 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구자를 꿈꾸는 학생으로서 학문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자를 가만히 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서 불의한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왜 윤교수가 직을 박탈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윤교수는 다시 교수직에서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제가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만들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