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관은 시민모임 독립에서 하였고 사회는 김도원 시민모임 독립 회원님이 보았습니다.
시민모임 독립 회원님들이 <바위처럼> 율동을 하며 수요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이어 박덕진 시민모임 독립 대표님의 주관단체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정치 인플루언서이자 극우추적 활동가 정민철 님, 시민모임 독립 2030답사단원 홍송화 님, 조국혁신당 대변인 박병언 님, 박동찬 경계인의 몫소리연구소 소장 박동찬 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해주셨습니다.
이어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성명서 낭독을 한 뒤 참가단체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문화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이지녀 님이 평화의 소녀상을 바라보며 축원의 노래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화 〈김복동〉 OST – 꽃(윤미래)에 맞춰 모든 참가자가 손을 잡고 써클댄스를 췄습니다.
이렇게 1747차 수요시위를 마무리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주관단체인 시민모임 독립 외 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 이명수(수원, 오산, 화성 촛불행동), 파란숨과 가마꾼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윤철우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박지영, 김지혜, 자주통일평화연대, 미국 장로교 청년자원봉사단, 조국혁신당 성평등위원회, 민주노총 함재규 통일위원장,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와 총원, 일송김동삼기념사업회, 김나은, 불꽃뉴으스TV, 한겨레 독립TV, 김순희, 성가소비녀회 수녀원, 한국진보연대, 구유리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수어통역은 현서영 님이,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제174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간보고
전쟁의 어둠이 짙어지는 엄중한 시기, 저는 오늘 지난 6여 년간의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임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수요시위 주간보고 겸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2020년 5월, 취임과 동시에 제가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소위 ‘정의연 사태’라는 미명 아래 정의기억연대는 검찰의 무자비한 압수수색과 먼지털이식 수사, 언론의 악의적인 가짜뉴스, 마녀사냥의 집중포화를 한꺼번에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한 시민단체를 향한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 운동의 정당성을 흔들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며, 오랜 시간 쌓아온 시민사회의 신뢰와 연대를 무너뜨리려는 전면적인 공격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활동가 한 분이 목숨을 잃었으며 많은 이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저였기에 억울함과 두려움, 슬픔과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피해생존자들과 선배 활동가들이 30년간 쌓아 올린 진실의 공든 탑이 거짓의 파도에 휩쓸려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쏟아지는 의혹과 왜곡에 사실로 대응하고, 무너진 조직을 추슬러 세우며 활동가들을 지키고, 후원회원과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려 고군분투했습니다. 벼랑 끝에서 뼈를 깎는 혁신을 단행했고, 흔들리지 않는 투명함으로 정의기억연대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더욱 공세적인 운동도 펼쳤습니다.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뚫고 독일의 심장 베를린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으며, 현지 시민들과 연대해 이를 끝까지 사수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독일 카셀과 이탈리아 스틴티노의 소녀상 건립 역시 같은 맥락의 성과였습니다. 이제 소녀상은 더 이상 한 지역의 기념물이 아니라, 전시 성폭력과 역사 부정에 맞서는 보편적 여성 인권과 초국적 기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책임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상황에서 쟁취한 피해자 승소 판결은 국가면제 논리를 깨부순 쾌거였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가 일본국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반인도적인 범죄이며, 피해자들의 법적 권리가 결코 지워질 수 없음을 확인한 세계사적인 성과였습니다. 또한 운동의 역사와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공개하기 위해 개설한 디지털 아카이브는 역사 부정 세력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진실의 성벽이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료 정리를 넘어, 피해생존자들의 증언과 운동의 기록을 다음 세대와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일이었습니다.
극우·역사부정 세력과의 싸움도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2019년부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역사를 부정하며, 수요시위 방해와 소녀상 철거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세력이 조직적으로 확장되어 왔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그 최전선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전국을 돌며 소녀상 테러를 감행하고 수요시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김병헌의 구속 확정을 이끌어냈고, 일본 우익 자금과 결탁한 역사부정 카르텔의 실체를 유엔과 국제사회에 낱낱이 폭로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을 쟁취해냈습니다. 이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부정과 모욕, 명예훼손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사회적 기준을 세우고, 글로벌 극우·역사부정 세력에 대항할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국내 연대의 폭도 한층 넓어졌습니다. 61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을 결성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뿐만 아니라 강제동원, 평화, 생태, 인권, 민주주의를 횡단하는 더 큰 연대의 장을 열어왔습니다. 수요시위는 학생, 종교계, 여성계, 노동계, 문화예술계, 국제연대 단체들이 함께하는 살아 있는 시민광장으로 이어졌습니다. 과거의 아픔만을 호소하는 자리가 아니라, 오늘의 부정의와 내일의 평화를 함께 논하는 생생한 공론장이 되었습니다.
나비기금 역시 더 멀리 날아갔습니다. 콩고, 우간다, 베트남을 넘어 팔레스타인과 로힝야 난민촌 여성들에게까지 연대의 손길을 뻗었습니다. 고통의 기억이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연대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실천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식민주의와 전쟁 범죄의 최대 피해자였던 우리가 이제는 전 세계 전쟁 범죄와 학살에 대항하는 강력한 평화 연대의 주체가 된 것입니다.
윤석열 내란과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공동의장으로 광장의 최전선에도 섰습니다. 역사 부정은 민주주의의 후퇴와 직결되어 있으며, 피해자의 존엄을 부정하는 사회는 시민의 권리 역시 쉽게 짓밟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 운동이 한일 과거사 운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가 폭력과 전쟁 범죄가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민주주의 운동임을 온몸으로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돌아보면 지난 6여 년은 위기의 연속이었고, 제 개인적으로도 시련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 속에서 저는 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단순한 시민단체가 아니라, 피해 생존자들의 용기와 국내외 시민사회의 연대가 축적된 역사 그 자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센 공격의 파고 속에서 운동의 의미를 다시 다듬고 조직을 재정비하며 국내외 연대를 확장해 새로운 성과를 일구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결코 저 혼자 감당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활동가들, 어려운 시기에 기꺼이 함께해 준 후원회원들, 손 내밀어 준 연대단체들과 이사님 및 위원님들, 매주 수요일 이 자리를 지켜준 시민들이 계셨기에 가능했습니다. 무엇보다 참혹한 고통을 딛고 정의의 길을 열기 위해 목소리 내셨던 피해자들의 용기가 등불처럼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이사장직을 내려놓지만, 연구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활동가로서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이 온전히 회복될 때까지, 일본 정부의 진정 어린 사죄와 법적 배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역사정의가 흔들림 없는 상식이 될 때까지, 역사 부정과 혐오에 맞선 저의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지난 6여 년 동안 함께 버텨주시고, 싸워주시고, 지켜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26년 4월 8일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
연대발언_정민철(정치 인플루언서, 극우추적 활동가)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어 영광입니다.
할머니들의 용기가 우리를 여기 서 있게 했습니다.
---
오늘 저는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하려고 합니다.
김병헌.
수십 년간 할머니들 앞에서 반복해 온 말이 있어요.
"강제동원은 없었다."
"자발적으로 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분노할 일입니다.
근데 저는 한 가지 더 물었어요.
이 사람,
도대체 활동 자금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최근 5년간
10개가 넘는 일본 우익 채널과 단체에서
이 사람을 위한 후원 모금이 이루어졌습니다.
심지어 일본 구의원 유튜브 채널에 직접 출연해서
"소송 비용이 없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다"
일본 시청자들한테 돈을 구걸했어요.
정리하면 이겁니다.
일본 극우가 돈을 댔고,
김병헌은 그 돈으로
한국에서 피해자 할머니들을 부정했습니다.
이건 역사관 차이가 아닙니다.
매국입니다.
---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김병헌에 세뇌되고, 뉴라이트 친일 매국노들에게
세뇌되어 일본군을 옹호하는
이런 사람들이 유튜브에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있습니다.
우리 10대, 20대 청년들이
매일 보는 그 화면 속에.
"위안부는 거짓말이다."
"강제동원은 없었다."
"할머니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알고리즘이 이 영상을
아무것도 모르는 10대에게 추천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유튜브 영상 하나에 흔들리는 시대입니다.
할머니들이 수십 년간 지켜온 진실이
30초짜리 쇼츠 하나로 뒤집히는 시대입니다.
이게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전장입니다.
---
경찰이 지금 김씨 계좌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국내법상 천만 원 이상 기부금품은 사전 등록이 필수입니다.
외국인 명의로, 해외에서 모금해 법을 피했지만—
전문가들은 최종 수령자가 본인이라면
법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수사 결과를 지켜볼 것입니다.
끝까지.
---
할머니들.
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는 싸웁니다.
우리는 이 이름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홍송화(시민모임 독립 2030답사단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시민 홍송화입니다.
오늘 이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연대 발언으로 함께하게 되어 무척 뜻깊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다룬 연극에 초대받아 본 적이 있습니다. 교과서에서는 단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참혹함에, 연극이 끝난 후에도 어찌할 바를 몰라 얼어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연극이 끝나고 실제 피해 할머니께서 휠체어를 타고 직접 들어오셨고, 할머니께서는 그 자리에서 직접 증언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본 이 연극에는 50%도 담지 못했어요. 너무 끔찍하거든요."
당시 어두운 시대 속 할머니들께서 겪으셔야 했던 고통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참혹했습니다. 진정한 봄은 아직 오지 않았구나, 그날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그 말씀이 여전히 충격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사를 받아 주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작년 8월 15일 하루 전, 14일에 이곳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 마주한 소녀상의 모습에 먹먹해졌던 것이 기억납니다. 소녀상 주변으로 두세 겹 둘러쳐진 펜스를 보며, 이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구나 싶었습니다. 부당한 철거 위협과 역사를 부정하는 이들의 공격으로부터 소녀상을 지켜내야만 했던 상황 자체가, 여전히 진정한 해방이 오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자리에 모이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일본 정부에 맞서,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함입니다.
일본 정부에 다시 한번 강력히 요구합니다. 첫째,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십시오. 둘째, 피해자분들께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정당한 법적 배상을 이행하십시오. 셋째, 이 역사를 교과서에 올바르게 기록하여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하십시오. 이것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인류 보편의 평화와 인권을 세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배상이 이루어지고,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이 완전히 회복되는 그날,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광복'을 맞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생존해 계신 피해자분들께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하여, 일본 정부의 책임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그날 휠체어에 앉아 끝까지 저희의 인사를 받아주셨던 할머니처럼, 저도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할머니들께서 3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외치셨던 그 용기 있는 목소리를, 굳건히 이어받겠습니다. 진정한 사죄와 배상이 이루어져 마침내 '온전한 광복'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저 역시 잊지 않고 행동하며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끝까지 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박병언(조국혁신당 대변인)
[주변국을 침략한 과거의 방식으로는 일본의 미래를 풍요롭게 할 수 없습니다]
매주 수요일, 이곳 평화로에서 정의를 외치는 시민 여러분, 그리고 아직 사죄받지 못한 채 역사가 되고 계신 할머니들께 인사드립니다.
일본 대사관 관계자가 이 발언을 취재하고 있다면, 일본 정부에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에게 묻습니다. 총리께서는 지난 선거 내내 '다시 일본을 강하고 풍요롭게' 만들겠다고 외치며 표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총리님, 당신이 말하는 그 '강함'은 대체 어디서 나옵니까?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우고, 명백한 전쟁 범죄의 역사를 부정하며 세우는 성벽이 정말로 일본을 강하게 합니까?
우리는 다카이치 총리가 과거부터 쏟아낸 오만한 발언들을 똑똑히 기억하며, 이를 세 가지 차원에서 강력히 비판합니다.
첫째, 다카이치 총리는 '위안부 강제 연행은 날조'라고 합니다. 당신의 발언은 전 세계에 대한 기만입니다.
총리께서는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 연행의 증거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계셨던 할머니들의 살아있는 증언과 국제사회가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조사 기록은 당신의 '날조' 주장이 오히려 '역사적 날조'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둘째, 다카이치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명예를 더럽히는 불명예'라고 치부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오만을 규탄합니다.
진정한 일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은 과거의 할머니들이 아니라, 과거의 범죄를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현재의 당신들입니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불명예'라는 단어로 덮으려 할수록,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모르는 나라'라는 더 큰 불명예를 안게 될 것입니다.
셋째, 다카이치 총리는 사죄의 기록을 '자학 사관'이라 부르며 과거의 담화들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반성은 자기 학대가 아니라 성숙한 국가로 나아가는 용기입니다.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자학이라 칭하며 지우려 드는 지도자에게서 우리는 어떤 평화의 의지도 읽을 수 없습니다. 주변국과의 평화로운 관계 정립 없이는 당신이 꿈꾸는 '풍요로운 일본' 또한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신기루일 뿐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정치인들은, 메이지유신으로부터 시작한 일본의 발전이 왜 실패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한국과 중국, 동아시아 국가를 침략함으로서 ‘강하고 풍요로운 일본‘을 만들겠다는 꿈은 지난 시기 처절히 실패 했습니다.
이제 다카이치 총리가 다시 일본을 강하고 풍요롭게 하겠다면, 주변국가를 침략하였기에 실패했던 과거의 노선을 버려야 합니다. 주변국가와 함께 발전해야 일본도 성장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본에 전파해야 합니다.
이는 일본이 자학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범죄를 인정하고 법적으로 배상하라!
다카이치 총리는 망언을 철회하고 피해자 앞에 사죄하라!
역사를 부정하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일본은 진실을 직시하라!
연대발언_박동찬(박동찬 경계인의 몫소리연구소 소장)
안녕하십니까? 오늘 1747차 수요집회를 주관하는 <시민모임 독립>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박동찬입니다.
저는 오늘 조금 사적인 이야기로 발언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1920년의 일입니다. 일제 치하에서 식민지 조선의 민중들이 고초를 겪고 있던 1920년입니다. 저기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던 박우동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향 땅을 등진 채 식솔들을 거느리고 홀연히 만주로 향했습니다. 집도, 땅도, 인척도 없는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괴나리붓짐을 풀고,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으며 억척스레 살아남았습니다.
1945년 갑자기 찾아온 조국의 광복에 이제 귀향길이 열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입니다. 유럽에서는 나치독일이 전범국의 책임을 지고 동서로 분단됐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전범국 일본 대신 애꿎은 조선이 남북으로 분단돼야만 했습니다.
남북의 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박우동 일가의 귀향은 기약 없는 기다림이 됐습니다. 역사의 농간입니다. 결국 그의 자손은 어쩔 수 없이 중국에 눌러앉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그 경북 의성 안평면 하령리에 살던 박우동 어르신의 5세손입니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 일본이 책임져야 할 일은 생각보다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고통에 비하면 어쩜 새발의 피일 수도 있겠지만,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는 조선 민중의 이산과 조선인 디아스포라를 만들어냈습니다. 고려인, 조선족, 재일조선인 등 각기 다른 이름으로 호명되고 있지만, 이들의 비극적 탄생에는 군국주의 일본의 원죄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얼마 전, 3월 28일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한 분이 또 소천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생존자는 5명뿐입니다. 일본 정부는 증언자들이 한두 명 부재하는 현실을 보며 속으로 안도하거나 쾌재를 부르고 있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똑똑히 보십시오.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와 책임 인정이 없는 한, 우리들의 문제 제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고조부의 만주 망명을 기억하는 저와 같은 후손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그 말하기를 씩씩하게 이어나갈 것입니다. 기억은 단순한 애도에 머물지 않고, 행동이 되어 더 거세게 일본 정부를 쏘아붙일 것입니다.
저는 최근 중국에서 머물다가 어제 막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중국 현지의 소위 ‘반일 감정’과 여론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반일, 반한, 반중 등등 무언가에 반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방법론에 수긍 못 할 때도 더러 있습니다. 기왕이면 반하는 대신 서로 친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애초에 중국 민중의 반일 감정이란 건 그렇게 골수에서 사무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72년 중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할 때 중국은 끝내 정부 차원의 대일 전쟁배상 청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반성과 사죄는커녕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는, 거꾸로 가는 지금의 일본을 보면서 중국 민중들이 느낄 배신감은 불 보듯 뻔합니다.
중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은 선린으로서 미래로 함께 나아갈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걷어찬 쪽이, 말아먹은 쪽이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 관계 파탄의 장본인 - 다카이치 내각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소거한 채, 한국과 중국의 정당한 문제 제기를 지지층을 선동하고 규합하는 정치적 도구이자 선거 전략으로 십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는 한국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주인권운동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투쟁에 빚지고 있습니다.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서 이주여성의 위치는 여전히 수많은 폭력에 노출되어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성희롱, 가정에서의 폭력과 착취, 그리고 이주여성의 인신매매 피해는 2026년 한국에서 여전히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주여성들도 주체적인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빚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이캔스피크와 같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행동이 한국 사회의 성평등을 앞당겼습니다. 오늘의 인권, 평화, 여성의 존엄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 정신 이어받아 더 힘차게 싸우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말하고, 함께 기억하며, 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74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관은 시민모임 독립에서 하였고 사회는 김도원 시민모임 독립 회원님이 보았습니다.
시민모임 독립 회원님들이 <바위처럼> 율동을 하며 수요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이어 박덕진 시민모임 독립 대표님의 주관단체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정치 인플루언서이자 극우추적 활동가 정민철 님, 시민모임 독립 2030답사단원 홍송화 님, 조국혁신당 대변인 박병언 님, 박동찬 경계인의 몫소리연구소 소장 박동찬 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해주셨습니다.
이어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성명서 낭독을 한 뒤 참가단체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문화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이지녀 님이 평화의 소녀상을 바라보며 축원의 노래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화 〈김복동〉 OST – 꽃(윤미래)에 맞춰 모든 참가자가 손을 잡고 써클댄스를 췄습니다.
이렇게 1747차 수요시위를 마무리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주관단체인 시민모임 독립 외 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 이명수(수원, 오산, 화성 촛불행동), 파란숨과 가마꾼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윤철우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박지영, 김지혜, 자주통일평화연대, 미국 장로교 청년자원봉사단, 조국혁신당 성평등위원회, 민주노총 함재규 통일위원장,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와 총원, 일송김동삼기념사업회, 김나은, 불꽃뉴으스TV, 한겨레 독립TV, 김순희, 성가소비녀회 수녀원, 한국진보연대, 구유리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수어통역은 현서영 님이,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제174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간보고
전쟁의 어둠이 짙어지는 엄중한 시기, 저는 오늘 지난 6여 년간의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임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수요시위 주간보고 겸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2020년 5월, 취임과 동시에 제가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소위 ‘정의연 사태’라는 미명 아래 정의기억연대는 검찰의 무자비한 압수수색과 먼지털이식 수사, 언론의 악의적인 가짜뉴스, 마녀사냥의 집중포화를 한꺼번에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한 시민단체를 향한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 운동의 정당성을 흔들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며, 오랜 시간 쌓아온 시민사회의 신뢰와 연대를 무너뜨리려는 전면적인 공격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활동가 한 분이 목숨을 잃었으며 많은 이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저였기에 억울함과 두려움, 슬픔과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피해생존자들과 선배 활동가들이 30년간 쌓아 올린 진실의 공든 탑이 거짓의 파도에 휩쓸려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쏟아지는 의혹과 왜곡에 사실로 대응하고, 무너진 조직을 추슬러 세우며 활동가들을 지키고, 후원회원과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려 고군분투했습니다. 벼랑 끝에서 뼈를 깎는 혁신을 단행했고, 흔들리지 않는 투명함으로 정의기억연대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더욱 공세적인 운동도 펼쳤습니다.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뚫고 독일의 심장 베를린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으며, 현지 시민들과 연대해 이를 끝까지 사수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독일 카셀과 이탈리아 스틴티노의 소녀상 건립 역시 같은 맥락의 성과였습니다. 이제 소녀상은 더 이상 한 지역의 기념물이 아니라, 전시 성폭력과 역사 부정에 맞서는 보편적 여성 인권과 초국적 기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책임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상황에서 쟁취한 피해자 승소 판결은 국가면제 논리를 깨부순 쾌거였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가 일본국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반인도적인 범죄이며, 피해자들의 법적 권리가 결코 지워질 수 없음을 확인한 세계사적인 성과였습니다. 또한 운동의 역사와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공개하기 위해 개설한 디지털 아카이브는 역사 부정 세력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진실의 성벽이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료 정리를 넘어, 피해생존자들의 증언과 운동의 기록을 다음 세대와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일이었습니다.
극우·역사부정 세력과의 싸움도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2019년부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역사를 부정하며, 수요시위 방해와 소녀상 철거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세력이 조직적으로 확장되어 왔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그 최전선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전국을 돌며 소녀상 테러를 감행하고 수요시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김병헌의 구속 확정을 이끌어냈고, 일본 우익 자금과 결탁한 역사부정 카르텔의 실체를 유엔과 국제사회에 낱낱이 폭로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을 쟁취해냈습니다. 이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부정과 모욕, 명예훼손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사회적 기준을 세우고, 글로벌 극우·역사부정 세력에 대항할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국내 연대의 폭도 한층 넓어졌습니다. 61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을 결성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뿐만 아니라 강제동원, 평화, 생태, 인권, 민주주의를 횡단하는 더 큰 연대의 장을 열어왔습니다. 수요시위는 학생, 종교계, 여성계, 노동계, 문화예술계, 국제연대 단체들이 함께하는 살아 있는 시민광장으로 이어졌습니다. 과거의 아픔만을 호소하는 자리가 아니라, 오늘의 부정의와 내일의 평화를 함께 논하는 생생한 공론장이 되었습니다.
나비기금 역시 더 멀리 날아갔습니다. 콩고, 우간다, 베트남을 넘어 팔레스타인과 로힝야 난민촌 여성들에게까지 연대의 손길을 뻗었습니다. 고통의 기억이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연대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실천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식민주의와 전쟁 범죄의 최대 피해자였던 우리가 이제는 전 세계 전쟁 범죄와 학살에 대항하는 강력한 평화 연대의 주체가 된 것입니다.
윤석열 내란과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공동의장으로 광장의 최전선에도 섰습니다. 역사 부정은 민주주의의 후퇴와 직결되어 있으며, 피해자의 존엄을 부정하는 사회는 시민의 권리 역시 쉽게 짓밟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 운동이 한일 과거사 운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가 폭력과 전쟁 범죄가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민주주의 운동임을 온몸으로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돌아보면 지난 6여 년은 위기의 연속이었고, 제 개인적으로도 시련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 속에서 저는 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단순한 시민단체가 아니라, 피해 생존자들의 용기와 국내외 시민사회의 연대가 축적된 역사 그 자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센 공격의 파고 속에서 운동의 의미를 다시 다듬고 조직을 재정비하며 국내외 연대를 확장해 새로운 성과를 일구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결코 저 혼자 감당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활동가들, 어려운 시기에 기꺼이 함께해 준 후원회원들, 손 내밀어 준 연대단체들과 이사님 및 위원님들, 매주 수요일 이 자리를 지켜준 시민들이 계셨기에 가능했습니다. 무엇보다 참혹한 고통을 딛고 정의의 길을 열기 위해 목소리 내셨던 피해자들의 용기가 등불처럼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이사장직을 내려놓지만, 연구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활동가로서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이 온전히 회복될 때까지, 일본 정부의 진정 어린 사죄와 법적 배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역사정의가 흔들림 없는 상식이 될 때까지, 역사 부정과 혐오에 맞선 저의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지난 6여 년 동안 함께 버텨주시고, 싸워주시고, 지켜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26년 4월 8일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
연대발언_정민철(정치 인플루언서, 극우추적 활동가)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어 영광입니다.
할머니들의 용기가 우리를 여기 서 있게 했습니다.
---
오늘 저는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하려고 합니다.
김병헌.
수십 년간 할머니들 앞에서 반복해 온 말이 있어요.
"강제동원은 없었다."
"자발적으로 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분노할 일입니다.
근데 저는 한 가지 더 물었어요.
이 사람,
도대체 활동 자금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최근 5년간
10개가 넘는 일본 우익 채널과 단체에서
이 사람을 위한 후원 모금이 이루어졌습니다.
심지어 일본 구의원 유튜브 채널에 직접 출연해서
"소송 비용이 없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다"
일본 시청자들한테 돈을 구걸했어요.
정리하면 이겁니다.
일본 극우가 돈을 댔고,
김병헌은 그 돈으로
한국에서 피해자 할머니들을 부정했습니다.
이건 역사관 차이가 아닙니다.
매국입니다.
---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김병헌에 세뇌되고, 뉴라이트 친일 매국노들에게
세뇌되어 일본군을 옹호하는
이런 사람들이 유튜브에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있습니다.
우리 10대, 20대 청년들이
매일 보는 그 화면 속에.
"위안부는 거짓말이다."
"강제동원은 없었다."
"할머니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알고리즘이 이 영상을
아무것도 모르는 10대에게 추천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유튜브 영상 하나에 흔들리는 시대입니다.
할머니들이 수십 년간 지켜온 진실이
30초짜리 쇼츠 하나로 뒤집히는 시대입니다.
이게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전장입니다.
---
경찰이 지금 김씨 계좌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국내법상 천만 원 이상 기부금품은 사전 등록이 필수입니다.
외국인 명의로, 해외에서 모금해 법을 피했지만—
전문가들은 최종 수령자가 본인이라면
법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수사 결과를 지켜볼 것입니다.
끝까지.
---
할머니들.
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는 싸웁니다.
우리는 이 이름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홍송화(시민모임 독립 2030답사단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시민 홍송화입니다.
오늘 이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연대 발언으로 함께하게 되어 무척 뜻깊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다룬 연극에 초대받아 본 적이 있습니다. 교과서에서는 단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참혹함에, 연극이 끝난 후에도 어찌할 바를 몰라 얼어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연극이 끝나고 실제 피해 할머니께서 휠체어를 타고 직접 들어오셨고, 할머니께서는 그 자리에서 직접 증언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본 이 연극에는 50%도 담지 못했어요. 너무 끔찍하거든요."
당시 어두운 시대 속 할머니들께서 겪으셔야 했던 고통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참혹했습니다. 진정한 봄은 아직 오지 않았구나, 그날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그 말씀이 여전히 충격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사를 받아 주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작년 8월 15일 하루 전, 14일에 이곳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 마주한 소녀상의 모습에 먹먹해졌던 것이 기억납니다. 소녀상 주변으로 두세 겹 둘러쳐진 펜스를 보며, 이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구나 싶었습니다. 부당한 철거 위협과 역사를 부정하는 이들의 공격으로부터 소녀상을 지켜내야만 했던 상황 자체가, 여전히 진정한 해방이 오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자리에 모이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일본 정부에 맞서,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함입니다.
일본 정부에 다시 한번 강력히 요구합니다. 첫째,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십시오. 둘째, 피해자분들께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정당한 법적 배상을 이행하십시오. 셋째, 이 역사를 교과서에 올바르게 기록하여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하십시오. 이것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인류 보편의 평화와 인권을 세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배상이 이루어지고,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이 완전히 회복되는 그날,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광복'을 맞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생존해 계신 피해자분들께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하여, 일본 정부의 책임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그날 휠체어에 앉아 끝까지 저희의 인사를 받아주셨던 할머니처럼, 저도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할머니들께서 3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외치셨던 그 용기 있는 목소리를, 굳건히 이어받겠습니다. 진정한 사죄와 배상이 이루어져 마침내 '온전한 광복'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저 역시 잊지 않고 행동하며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끝까지 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박병언(조국혁신당 대변인)
[주변국을 침략한 과거의 방식으로는 일본의 미래를 풍요롭게 할 수 없습니다]
매주 수요일, 이곳 평화로에서 정의를 외치는 시민 여러분, 그리고 아직 사죄받지 못한 채 역사가 되고 계신 할머니들께 인사드립니다.
일본 대사관 관계자가 이 발언을 취재하고 있다면, 일본 정부에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에게 묻습니다. 총리께서는 지난 선거 내내 '다시 일본을 강하고 풍요롭게' 만들겠다고 외치며 표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총리님, 당신이 말하는 그 '강함'은 대체 어디서 나옵니까?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우고, 명백한 전쟁 범죄의 역사를 부정하며 세우는 성벽이 정말로 일본을 강하게 합니까?
우리는 다카이치 총리가 과거부터 쏟아낸 오만한 발언들을 똑똑히 기억하며, 이를 세 가지 차원에서 강력히 비판합니다.
첫째, 다카이치 총리는 '위안부 강제 연행은 날조'라고 합니다. 당신의 발언은 전 세계에 대한 기만입니다.
총리께서는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 연행의 증거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계셨던 할머니들의 살아있는 증언과 국제사회가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조사 기록은 당신의 '날조' 주장이 오히려 '역사적 날조'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둘째, 다카이치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명예를 더럽히는 불명예'라고 치부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오만을 규탄합니다.
진정한 일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은 과거의 할머니들이 아니라, 과거의 범죄를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현재의 당신들입니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불명예'라는 단어로 덮으려 할수록,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모르는 나라'라는 더 큰 불명예를 안게 될 것입니다.
셋째, 다카이치 총리는 사죄의 기록을 '자학 사관'이라 부르며 과거의 담화들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반성은 자기 학대가 아니라 성숙한 국가로 나아가는 용기입니다.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자학이라 칭하며 지우려 드는 지도자에게서 우리는 어떤 평화의 의지도 읽을 수 없습니다. 주변국과의 평화로운 관계 정립 없이는 당신이 꿈꾸는 '풍요로운 일본' 또한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신기루일 뿐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정치인들은, 메이지유신으로부터 시작한 일본의 발전이 왜 실패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한국과 중국, 동아시아 국가를 침략함으로서 ‘강하고 풍요로운 일본‘을 만들겠다는 꿈은 지난 시기 처절히 실패 했습니다.
이제 다카이치 총리가 다시 일본을 강하고 풍요롭게 하겠다면, 주변국가를 침략하였기에 실패했던 과거의 노선을 버려야 합니다. 주변국가와 함께 발전해야 일본도 성장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본에 전파해야 합니다.
이는 일본이 자학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범죄를 인정하고 법적으로 배상하라!
다카이치 총리는 망언을 철회하고 피해자 앞에 사죄하라!
역사를 부정하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일본은 진실을 직시하라!
연대발언_박동찬(박동찬 경계인의 몫소리연구소 소장)
안녕하십니까? 오늘 1747차 수요집회를 주관하는 <시민모임 독립>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박동찬입니다.
저는 오늘 조금 사적인 이야기로 발언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1920년의 일입니다. 일제 치하에서 식민지 조선의 민중들이 고초를 겪고 있던 1920년입니다. 저기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던 박우동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향 땅을 등진 채 식솔들을 거느리고 홀연히 만주로 향했습니다. 집도, 땅도, 인척도 없는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괴나리붓짐을 풀고,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으며 억척스레 살아남았습니다.
1945년 갑자기 찾아온 조국의 광복에 이제 귀향길이 열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입니다. 유럽에서는 나치독일이 전범국의 책임을 지고 동서로 분단됐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전범국 일본 대신 애꿎은 조선이 남북으로 분단돼야만 했습니다.
남북의 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박우동 일가의 귀향은 기약 없는 기다림이 됐습니다. 역사의 농간입니다. 결국 그의 자손은 어쩔 수 없이 중국에 눌러앉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그 경북 의성 안평면 하령리에 살던 박우동 어르신의 5세손입니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 일본이 책임져야 할 일은 생각보다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고통에 비하면 어쩜 새발의 피일 수도 있겠지만,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는 조선 민중의 이산과 조선인 디아스포라를 만들어냈습니다. 고려인, 조선족, 재일조선인 등 각기 다른 이름으로 호명되고 있지만, 이들의 비극적 탄생에는 군국주의 일본의 원죄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얼마 전, 3월 28일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한 분이 또 소천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생존자는 5명뿐입니다. 일본 정부는 증언자들이 한두 명 부재하는 현실을 보며 속으로 안도하거나 쾌재를 부르고 있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똑똑히 보십시오.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와 책임 인정이 없는 한, 우리들의 문제 제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고조부의 만주 망명을 기억하는 저와 같은 후손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그 말하기를 씩씩하게 이어나갈 것입니다. 기억은 단순한 애도에 머물지 않고, 행동이 되어 더 거세게 일본 정부를 쏘아붙일 것입니다.
저는 최근 중국에서 머물다가 어제 막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중국 현지의 소위 ‘반일 감정’과 여론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반일, 반한, 반중 등등 무언가에 반대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방법론에 수긍 못 할 때도 더러 있습니다. 기왕이면 반하는 대신 서로 친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애초에 중국 민중의 반일 감정이란 건 그렇게 골수에서 사무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72년 중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할 때 중국은 끝내 정부 차원의 대일 전쟁배상 청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반성과 사죄는커녕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는, 거꾸로 가는 지금의 일본을 보면서 중국 민중들이 느낄 배신감은 불 보듯 뻔합니다.
중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은 선린으로서 미래로 함께 나아갈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걷어찬 쪽이, 말아먹은 쪽이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 관계 파탄의 장본인 - 다카이치 내각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소거한 채, 한국과 중국의 정당한 문제 제기를 지지층을 선동하고 규합하는 정치적 도구이자 선거 전략으로 십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는 한국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주인권운동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투쟁에 빚지고 있습니다.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서 이주여성의 위치는 여전히 수많은 폭력에 노출되어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성희롱, 가정에서의 폭력과 착취, 그리고 이주여성의 인신매매 피해는 2026년 한국에서 여전히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주여성들도 주체적인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빚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이캔스피크와 같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행동이 한국 사회의 성평등을 앞당겼습니다. 오늘의 인권, 평화, 여성의 존엄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그 정신 이어받아 더 힘차게 싸우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말하고, 함께 기억하며, 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