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한경희 사무총장과 방학 활동가는 이용수 할머니를 뵙기 위해 대구에 다녀왔습니다. 평소 자주 산책을 나가시던 공원 근처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안부를 여쭤보았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요즘 잠을 잘 이루지 못하신다고 합니다. 여러 치료도 받고 계시지만, 많은 근심걱정과 생각들로 쉽게 잠들기 어려우시다고 합니다. 다행히 식사는 잘 하고 계시고, 연세에 비해 활동력도 좋으셨지만 이제는 서울까지 오가며 활동하는 일이 체력적으로 많이 힘에 부친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께 서울에서 해야 할 일은 저희가 더 열심히 할 테니, 몸을 보물처럼 아끼시며 조금이라도 편히 지내시기를 당부드렸습니다.
할머니께 무엇이 가장 마음에 걸리시는지 여쭤보았습니다. 우리들이 그렇듯, 할머니께서도 가족 걱정이 가장 앞서시고, 또한 남은 시간 안에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나는 죄 지은 것 하나 없이 살았다. 법으로 이겼는데, 도대체 왜 집행이 안 되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승소 판결 이후에도 법적 배상이 이뤄지지 않아 답답해하셨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께서는 최근 활동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각지에서 어떤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 정부와 시민사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날카롭게 질문하시곤 합니다. 당신의 의지는 여전히 굳건하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고, 그리고 최근 한 분의 피해생존자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으로 마음이 더 무거우신 듯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댁으로 돌아온 뒤에도 할머니께서는 한·일 양국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며 분노를 토로하셨습니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 같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오랜 세월 싸워 오시며 지치는 마음, 그리고 절박함이 꾹꾹 담겨 있었습니다.
함께 방문한 활동가들의 마음도 매우 무거워졌습니다. 기억하고, 기리고, 알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 곁에 계신 할머니들께 든든한 둑이 되어 당장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 역시 지금 우리의 가장 큰 책임임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저희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반드시 배상받으실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시며 “너희들이니까 이런 말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만나 이 문제를 꼭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힘든 이야기를 하시고 나신 탓인지 많이 지쳐 보이셨습니다. 저희는 할머니께 푹 쉬시라고 말씀드리며, 대통령 면담 요청과 할머니의 뜻을 정부에 강력히 전달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께서는 현재 국내에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목소리를 내고 계신 유일한 피해생존자이자 활동가이십니다. 시민사회가 할머니 곁에 함께하고 있지만, 다른 동지들이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계시는 지금, 할머니의 마음이 매우 무거우신 것 같습니다. 활동가들이 찾아뵐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저희 손을 꼭 잡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나는 힘들지만, 꼭 너희들이 배우고 잊지 말거라.”
이용수 할머니의 뜻을 잊지 않겠습니다. 하루빨리 일본군성노예제 문제가 정의롭게 해결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할머니께서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시고, 근심걱정 없이 편히 주무실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4월, 한경희 사무총장과 방학 활동가는 이용수 할머니를 뵙기 위해 대구에 다녀왔습니다. 평소 자주 산책을 나가시던 공원 근처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안부를 여쭤보았습니다.할머니께서는 요즘 잠을 잘 이루지 못하신다고 합니다. 여러 치료도 받고 계시지만, 많은 근심걱정과 생각들로 쉽게 잠들기 어려우시다고 합니다. 다행히 식사는 잘 하고 계시고, 연세에 비해 활동력도 좋으셨지만 이제는 서울까지 오가며 활동하는 일이 체력적으로 많이 힘에 부친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께 서울에서 해야 할 일은 저희가 더 열심히 할 테니, 몸을 보물처럼 아끼시며 조금이라도 편히 지내시기를 당부드렸습니다.
할머니께 무엇이 가장 마음에 걸리시는지 여쭤보았습니다. 우리들이 그렇듯, 할머니께서도 가족 걱정이 가장 앞서시고, 또한 남은 시간 안에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나는 죄 지은 것 하나 없이 살았다. 법으로 이겼는데, 도대체 왜 집행이 안 되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승소 판결 이후에도 법적 배상이 이뤄지지 않아 답답해하셨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께서는 최근 활동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각지에서 어떤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지, 정부와 시민사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날카롭게 질문하시곤 합니다. 당신의 의지는 여전히 굳건하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고, 그리고 최근 한 분의 피해생존자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으로 마음이 더 무거우신 듯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댁으로 돌아온 뒤에도 할머니께서는 한·일 양국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며 분노를 토로하셨습니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 같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오랜 세월 싸워 오시며 지치는 마음, 그리고 절박함이 꾹꾹 담겨 있었습니다.
함께 방문한 활동가들의 마음도 매우 무거워졌습니다. 기억하고, 기리고, 알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 곁에 계신 할머니들께 든든한 둑이 되어 당장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 역시 지금 우리의 가장 큰 책임임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저희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반드시 배상받으실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시며 “너희들이니까 이런 말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만나 이 문제를 꼭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힘든 이야기를 하시고 나신 탓인지 많이 지쳐 보이셨습니다. 저희는 할머니께 푹 쉬시라고 말씀드리며, 대통령 면담 요청과 할머니의 뜻을 정부에 강력히 전달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께서는 현재 국내에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목소리를 내고 계신 유일한 피해생존자이자 활동가이십니다. 시민사회가 할머니 곁에 함께하고 있지만, 다른 동지들이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계시는 지금, 할머니의 마음이 매우 무거우신 것 같습니다. 활동가들이 찾아뵐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저희 손을 꼭 잡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나는 힘들지만, 꼭 너희들이 배우고 잊지 말거라.”
이용수 할머니의 뜻을 잊지 않겠습니다. 하루빨리 일본군성노예제 문제가 정의롭게 해결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할머니께서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시고, 근심걱정 없이 편히 주무실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