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7월11일 제천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 다른내일캠프에서 전국 각지에서 온 대학생들과 만났습니다.
제주에서, 경남에서, 충청에서, 서울에서, 경기에서, 강원도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제천에 와 있었습니다. 대학생진보넷 주최로 2박 3일동안 강좌도 듣고, 토론도 하며 "다른 내일"이라는 제목의 캠프 제목과 같이 대학생들이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전날 세 강의가 있었고, 윤미향 대표 강의가 마지막 강의였습니다. '윤미향'이라는 이름에 대한 해석부터, 그 이름에 담은 부모님들의 삶, 살아오며 사람들과 만나온 과정을 머금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강의했습니다.
내가 만난 농촌의 삶, 가난했던 나의 부모의 첫째딸로 태어난 삶,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 운동속에 마을끼리의 퇴비경쟁을 애국이라 부르던 시절.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딸을 위해 도시빈민이 되어 삶을 개척하며 딸 아들 차별없이 키우고 성실하게 일하시던 부모님 모습, 대학생들이 데모하는 곳에 내 손을 잡고 나가셨던 아버지, 데모하다 도망치는 대학생들을 숨겨주던 모습들도 회상했습니다.
목사의 꿈을 가졌지만, 기생관광 문제를 접하고 더 적극적으로 한국여성의 현실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일본군'위안부'문제로 연결되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또 다른 한국사회와 베트남 문제, 남편을 통해 만난 '국가보안법' '남북분단의 역사', 재일동포들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 김복동할머니와 함께 걸었던 세상... 그 속에서 만났던 선생님들, 친구, 선배님들... 지난 30여년의 활동 속에서 가장 윤미향 개인의 이야기를 공적인 자리에서 많이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질문도 한시간 동안이나 진행되었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를 여성인권 관점에서 풀지 않고 한일간의 구도, 민족주의적인 문제로 몰고 가려고 하는 인식이 있는데, 어떻게 바른 길로 해결해 갈 수 있는지, 담대하고 씩씩해 보이지만 사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을텐데, 어떻게 이겨냈는지, 학내 활동에서 여성인권문제,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적고 호응이 없어서 무기력해질때, 어떻게 다른 학우들의 연대를 이끌어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문을 구하는 질문, 강사님이 멋지고 굳센것 같은데, 감성적이어서 울기도 잘 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늘 눈물이 많아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대표님도 감성적인것 같아서 기쁘다며, 감성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이성적으로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지 팁을 달라는 질문, 10억엔의 화해치유재단 돈 중에서 1억원을 받으신 피해자들이 있는데, 왜 싸움을 계속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될 지... 베트남 한국군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사죄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등등... 많은 질문이 경쟁적으로 나와 참 기뻤고 성심껏 답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단체 사진 촬영 후 사인해달라고 줄서는 친구들이 많아 또 한시간 이상 캠프 티셔츠 등이나 공책에 사인을 해주느라 땀에 흠뻑 젖었지만, 마음만은 기쁜 날이었다고 윤미향 대표는 전했습니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7월11일 제천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 다른내일캠프에서 전국 각지에서 온 대학생들과 만났습니다.
제주에서, 경남에서, 충청에서, 서울에서, 경기에서, 강원도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제천에 와 있었습니다. 대학생진보넷 주최로 2박 3일동안 강좌도 듣고, 토론도 하며 "다른 내일"이라는 제목의 캠프 제목과 같이 대학생들이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전날 세 강의가 있었고, 윤미향 대표 강의가 마지막 강의였습니다. '윤미향'이라는 이름에 대한 해석부터, 그 이름에 담은 부모님들의 삶, 살아오며 사람들과 만나온 과정을 머금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강의했습니다.
내가 만난 농촌의 삶, 가난했던 나의 부모의 첫째딸로 태어난 삶,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 운동속에 마을끼리의 퇴비경쟁을 애국이라 부르던 시절.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딸을 위해 도시빈민이 되어 삶을 개척하며 딸 아들 차별없이 키우고 성실하게 일하시던 부모님 모습, 대학생들이 데모하는 곳에 내 손을 잡고 나가셨던 아버지, 데모하다 도망치는 대학생들을 숨겨주던 모습들도 회상했습니다.
목사의 꿈을 가졌지만, 기생관광 문제를 접하고 더 적극적으로 한국여성의 현실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일본군'위안부'문제로 연결되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또 다른 한국사회와 베트남 문제, 남편을 통해 만난 '국가보안법' '남북분단의 역사', 재일동포들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 김복동할머니와 함께 걸었던 세상... 그 속에서 만났던 선생님들, 친구, 선배님들... 지난 30여년의 활동 속에서 가장 윤미향 개인의 이야기를 공적인 자리에서 많이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질문도 한시간 동안이나 진행되었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를 여성인권 관점에서 풀지 않고 한일간의 구도, 민족주의적인 문제로 몰고 가려고 하는 인식이 있는데, 어떻게 바른 길로 해결해 갈 수 있는지, 담대하고 씩씩해 보이지만 사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을텐데, 어떻게 이겨냈는지, 학내 활동에서 여성인권문제,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적고 호응이 없어서 무기력해질때, 어떻게 다른 학우들의 연대를 이끌어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자문을 구하는 질문, 강사님이 멋지고 굳센것 같은데, 감성적이어서 울기도 잘 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늘 눈물이 많아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대표님도 감성적인것 같아서 기쁘다며, 감성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이성적으로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지 팁을 달라는 질문, 10억엔의 화해치유재단 돈 중에서 1억원을 받으신 피해자들이 있는데, 왜 싸움을 계속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될 지... 베트남 한국군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사죄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등등... 많은 질문이 경쟁적으로 나와 참 기뻤고 성심껏 답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단체 사진 촬영 후 사인해달라고 줄서는 친구들이 많아 또 한시간 이상 캠프 티셔츠 등이나 공책에 사인을 해주느라 땀에 흠뻑 젖었지만, 마음만은 기쁜 날이었다고 윤미향 대표는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