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할머니 소식"다음은 화투다!" 필근 할머니의 루틴 따라잡기

202202017_포항 박필근 할머니 방문기

17일 목요일 새벽 여섯시, 동이 트지 않은 어둑한 시간에 눈을 떴습니다. 포항에 계시는 할머니를 뵈러가는 날이었기 때문인데요, 저로서는 처음 뵙는 것이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가방을 싸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언제나처럼 활동가 포카와 행이 함께했지요.

4시간 남짓 쉬지 않고 달려 할머니 댁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저희가 간다고 약속한 날이면 오매불망 언제오나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가는 길에도 추우니 들어가서 기다리시라고 여러 번 당부를 드려야 했습니다.

할머니는 저희가 도착하자마자문을 활짝열고 ‘온나온나!(들어와라)’ 며 양손을 휘휘 흔드셨습니다. 어떻게 아셨는가 하니 집 안에 커튼을 열어두고 보고 계셨다고 합니다. 창문 밖으로 저희가 올 때까지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계셨을 할머니가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오는 길 춥지 않았냐며, 따뜻한 커피 마실 수 있게 물 끓어두었다며 저희가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기도 전에 할머니는 참 분주하기도 하셨습니다.

할머니께 행과 포카는 성은 “정” 이름은 “대협”입니다. 행은 그냥 정대협이, 포카는 전화하는 정대협이로 구분된답니다. 이름이야 어쨌든 할머니 애정어린 눈에 담긴 저희의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습니다.


할머니와 활동가의 웃는 모습을 담아 준비한 액자를 드리니 활짝 웃으시며 ‘잘했다,잘했다’ 칭찬하셨습니다. 할머니 본인을 가리키며 ‘이게 나다,’고 꼭 집어 덧붙이셨습니다. 그리고선 액자가 모여있는 탁자 정 가운데에 턱 올려두셨답니다. 저도 찍어서 다음에 하나 꼭 여기 놓으리, 다짐했습니다.

점심시간이었기에 할머니를 모시고 나왔습니다. 고기를 사드리려 했으나 짜장면이 정말 드시고 싶으셨는지 차를 꺾으라는 할머니 말씀을 어길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 손짓 따라 도착한 짜장면집.. 정말 맛있었습니다. 맛집이었어요.(지금 쓰면서도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이 짧은 할머니께서도 한 그릇을 거의 다 드셨습니다. 드시는 내 연신 맛있다고 하셨습니다(고기탕은 맛대가리도 없다는 말씀과 함께요, 포카는 저에게만 들리도록 고기탕 먹으러 가지 않길 잘했다며 조용히 안도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맞은 편에 앉은 저를 보며 옅게 웃으셨습니다. 포카가 그 모습을 보고 저를 막내라 소개했습니다. 몇 살인지 물으시기에 이십대 중후반이라 대답하니 할머니께서는 눈이 왕방울만 해지시더니 시집을 가야겠다고 하셨습니다. 농담처럼 내일 시집 가겠다고 말씀드렸답니다.


“내(가) 엄마~ 하면 ‘어매(엄마) 화장실에 있다~’ 그랬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차에 오른 뒤, 할머니께서는 문득 어릴 적 기억을 꺼내셨습니다. 지금은 9남매 중 여덟째, 그리고 막내딸이었던 할머니를 빼고는 모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자꾸 당신도 죽을 때가 지났다는 말씀을 반복하시며 듣는 활동가들의 마음을 콕콕 아프게 찌르셨습니다.

“할머니 저 시집갈건데 오세요!!!! 결혼식에!!!!”
뜬금없이 제가 꺼낸 말에 할머니는 ‘잔치??(결혼식)’ 하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러고서는 오늘처럼 데리러 오면 꼭 가겠다 하십니다. 그래서 저도 약속!! 하고 외치면서 냅다 손가락을 내밀었더니 할머니께서 손가락을 걸어주셨습니다. 저는 이때다 싶어 할머니께 제 결혼식에 오시려면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필근 할머니와의 루틴은 언제나 정해져 있는데요, 밥을 먹은 뒤에는 언제나 할머니께 필요한 물건을 구비해드리기 위해 마트에 들립니다. 마트에 들르니 할머니께서는 ‘참지름(참기름) 꾸리미(로션), 요쿠르트 어에 있노’ 하시며 요리조리 저희를 데리고 분주히 돌아다니셨습니다. 카트가 가득 찰 정도가 되니 필요한 것은 거의 챙기신 듯했습니다. 장을 다 보시고는 “정대협이 고맙다” 인사도 잊지 않으십니다.

할머니는 돌아가는 길에도 옛 생각이 계속 나시는지 자식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부모 잘못 만나서 좋은 옷을 못 입혔다고 계속 눈물을 훔치시면서요. 잘해주지 못해서 불쌍하다고. 좋은 옷 하나 못 입혔다고. 그런데 너무 잘컸다고…. 계속 스스로를 탓하시며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의 손가락에 불거진 뼈마디가 눈에 띄게 울퉁불퉁했습니다(이전 방문기 '할머니 손은 울퉁불퉁' 읽으러 가기). 고생의 흔적이겠지요. 할머니께 가족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서로를 정말 많이 위한다고 느껴집니다. 모두 할머니의 애정 어린 손길 아래 뿌리내린 사랑이 아닐까요? 저는 할머니가 스스로를 그만 탓하고 자랑스러워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지만, 할머니 볼 위로 미끄러지는 눈물을 보며 저는 마음과 달리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감히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할머니가 겪은 고생 앞에 어떤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장을 본 뒤에는 언제나 화투를 치지요. 할머니께서는 언제나 마음이 급하십니다. 서울까지 가려면 오래 걸리는데 날 어둑해지기 전에 보내야 하는데.. 하시면서도 그 전에 화투를 빨리 치자고 하신답니다. 저도 이 화투에 관하여 참 많은 이야기를 듣고 갔는데요, 어떤 활동가는 전에 계속 이기는 바람에 할머니께서 시무룩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승부욕을 발휘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화투를 치는 나와 할머니, 활동가 행의 모습입니다(혹시 밑장 뺄까봐 지켜보는 중?)

화투를 치기 전 할머니께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졸랐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언제 그걸 다 가르치냐며 "고마 여서 내랑 같이 살아라" 하십니다. 하지만 웬걸 막상 펼쳐진 화투 판에서 저는 진심을 다했건만 꼴등을 했고 할머니께서는 연륜으로(?) 일등을 거머쥐셨습니다.
저는 '한판 더!'를 외치며 종전의 다짐을 잊고 승부욕의 화신이 되어 심기일전했습니다. 마지막 판을 이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니 할머니께서도 허허 웃으셨습니다. 다짐과 달리 진심을 다한 스스로가 우스웠지만 할머니께서 웃으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할머니는 화투를 치는 내내 조금의 고민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저희 귀갓길을 앞당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차례가 넘어가면 “치소!(빨리 네 패를 쳐!)”를 연신 외치시는 할머니 모습에 활동가 모두 웃음이 터졌습니다.

나가는 길에 할머니께서는 정대협이 먹으라며 한과와 과일을 한 봉 가득 싸주셨습니다. 할머니 애정이 제 손에 무겁게 들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요즘 추워서 방에서만 지낸다고 하셔놓곤 저희 나갈 때는 매서운 바람에도 현관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포카는 떠나며 다시 오겠다고 할머니께 약속하였습니다. 할머니의 바람 따라 다음 방문 때는 할머니의 따님 댁에 들릴까 합니다. 그날은 할머니 웃는 모습처럼 날씨도 맑았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 포카랑 행이랑 또 뵈러 갈게요!! 곧 만나요☺☺

2022.02.22. 활동가 지우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