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할머니 소식부산 이막달 할머니 뵈었습니다.

(20) 정의기억연대 Justice for the 'Comfort Women' - 홈

“나 다음주에 부산 교육 있는데 아침 10시야. 새벽부터 움직여야 하는데 이젠 좀 겁이 나네.”

윤미향 대표의 이야기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걱정을 하며, “하루 일찍 가셔서 주무세요.”

“새벽부터 움직이시기 어려운데.” “혼자 운전해서 가는 것도 이젠 무리에요. 기자 타고 가셔요.” 이런 우려의 목소리 가운데 오랫동안 정의연 자원활동을 해 오던 조모군이 “대표님. 하루 일찍 가서 이막달 할머니도 뵈어요. 제가 운전해서 동행 할게요.”...

이런 마음들이 모여 오늘 이막달 할머니를 만나뵈러 부산에 하루 일찍 왔습니다.

어르신 유치원에 다니시는 이막달 할머니가 집에 도착하시는 시간에 맞쳐 지하 주자장에서 할머니를 만나뵈었습니다. 할머니와 윤미향 대표, 조모군과는 오랜만에 만남이였습니다.

차에서 내리신 할머니는 우리를 보자마자 “어이구 이렇게 멀리서 나 보러 왔어요.” 하시며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살던 동네를 떠나 새로 이사한 곳에 아직 적응하시기 어려우텐데 혼자서 척척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집 까지 안내를 해 주십니다.

이사한 지 얼마 안된 집이지만 할머니 방은 할머니 성격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윤미향 대표의 손을 꼭 잡고 “이리 먼 곳까지 나를 만나러 와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연신 말씀하십니다. 이전에는 윤미향 대표를 선상님이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사모님이라 하시네요.

97세의 고령의 나이에 귀가 잘 안 들리시고 무릎 관절로 걷기 힘드시지만 그것을 빼고는 정정하신 할머니. 그러나 할머니도 세월의 무심함 속에 기억이 옅어지고 계신 듯 합니다.

함께 서울살이를 했던 손영미 소장님도 처음엔 잘 기억하질 못하시고, 윤미향 대표와 함꼐 한 미국증언집회도 이젠 저 너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계십니다. 조금이라도 할머니의 기억을 찾아드리고 싶어 가져간 노트북을 통해 이전 할머니의 활동과 함께 평화의 우리집에서 함꼐 거주했던 원옥할머니 복동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다른 기억은 다 잊더라도 함께했던 원옥, 복동 할머니는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특히 원옥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잊지 않고 계시며 할머니의 안부를 물어보십니다.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사라지고 있었지만 할머니의 한 모습 한 모습을 남기고자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할머닌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런 것 남기는게 별로여 하시면서도 예전처럼 함박웃음을 지워주십니다.

언제나처럼 할머닌 다시 돌아가야 할 우리를 걱정하십니다. “이 밤에 어디로 가서 어찌 서울로 간답니까.” 걱정걱정 하시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조금 힘 내서 우리 다음번에는 서울에서 만나뵈요. 그리고 할머니 건강으론 백살을 까지 사실거에요. 조금 더 힘내셔요. 그리고 건강하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짧지만 깊은 만남은 이렇게 정리되고 다시 할머니와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할머니댁을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