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정의연, 주최·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회는 최광기 이사가 보았습니다. 오는 1월 28일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3년이 되는 날입니다. 김복동 할머니 3주기를 맞아 조금 특별한 수요시위를 진행했습니다.
가장 먼저 청년광장 활동가들의 율동과 함께 여는 노래 <바위처럼>을 함께 불렀습니다.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 삶과 김숨 작가가 김복동 할머니를 만나뵙고 취재하여 완성한 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낭독을 정의연 호랑과 지우 활동가가 하였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생전 수요시위에 참가하셔서 발언하시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며 기억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독일 코리아협의회에서 만들어 보내주신 김복동 할머니 추모 영상을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내가 기억하는 김복동 할머니’에 대해 할머니와 함께했던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전 생존자복지위원장으로서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신 정태효 님, 할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활동하고 있는 ‘김복동의 희망’ 공동대표이며, 평화비 작가이신 김서경 님, 오랜 시간 수요시위와 할머니들의 활동에 자원활동으로 함께하고 계신 임계재 님,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 대학생 프로젝트 동아리 평화나비네트워크 전 대표인 김샘 님이 발언을 하였고, 제주 곶자왈작은학교에 다니면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을 하는 동안 할머니와 인연을 맺은 허선영 님과 일본에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많은 활동을 하시며 할머니들과 함께하신 일본 희망씨앗기름 대표이사 양징자 님의 글을 정의연 활동가가 읽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연대의 손을 잡고 많은 기억과 희망을 심어 주신 김복동 할머니에 대해 돌아보고 다시금 기억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독일 코리아협의회에서 보내주신 김복동 할머니 3주기 추모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평화 만들기> 율동공연을 청년광장 회원들과 정의연 포카, 기린 활동가가 연합으로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의기억연대 한경희 사무총장의 성명서 낭독을 끝으로 152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마무리되었습니다.
현장에는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청년광장, 인보성체수도회, 겨레하나, 원죄없으신 마리아 교육선교 수녀회, 한국성폭력상담소,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수원관구, 그리고 여러 단체와 개인 들이 참가하셨습니다.
온라인 댓글로는 Olivia L, 진시현, phonsik, GY, 오로지팔정도, Woohee Kim, 장혜영, 조안구달, Goo Lee, 아콩알, 진마음, 김은채, 김공래(뉴질랜드), Soona Cho(호주 시드니), Ruth Sangree, Sung Sohn(미국 샌프란시스코), 이혜진, Jun Hee Seo, Sewol Hambi Houston(미국 휴스턴 함께 맞는비), Friends of 'Comfort Women' in Sydney – 시소연, 이원석, Moses J Hahn(호주 시드니), 한덕규, I푸른콩, 한장표, 우순덕, 윤지민, 한성원, Spring Tree Spring Tree, 김보민, Christine, Hyuong Jeon 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현장과 온라인으로 함께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수요시위
#수요시위_30년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
#일본정부_공식사죄_법적배상하라
#여성인권운동가_김복동_3주기
#내가_김복동이다
#역사부정_중단하고_수요시위에_대한_공격을_멈춰라
발언_김샘(평화나비네트워크 전 대표)
안녕하세요, 평화나비 전 대표 김샘입니다.
발언을 제안받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오랜만에 서는 평화로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김복동 할머니라면, 어떤 말을 해주실까 하는 생각해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할머니는 이렇게 평화로에 모인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희망을 잡고 살자,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라고 말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이 평화로를 만들어온 사람들에게 힘든 시기 함께 이겨내자는 응원의 말을 전하실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른 말이 아니라 여기 계신 여러분과 서로에 대한 응원을 나누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말해주실 것 같습니다. 지금 저들의 공격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운동이
시작했을 당시 할머니들께서는 더 큰 어려움을 이겨내며 여기까지 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다시의 우리의 연대의 힘으로 이겨낼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아는 김복동할머니라면, 조용하고 따끔하게 '똑바로 하라'고 하지 않으셨을까요? 저들의 공격에 주눅들지 말고 자부심을 가지라고 해주셨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외의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알리며, 여성 인권, 반전 평화를 만들어온 우리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운동을 만들어온 우리 모두 자부심을 갖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수요일, 평화로에 올때마다 항상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청소년, 청년들, 그리고 국내외 성폭력 생
존자들, 수녀님들, 시민 여러분께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오늘은 제 발언이 여러분께 작게나마 위로와 용기를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청년들이 이 어려운 시기에 더 많은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 드리겠습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축소시키려는 저들이지만, 국내외로 국제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할매나비를 따라 청년들이 더 열심히 날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발언_양징자(일본 희망씨앗기금 대표이사)
“희망을 잡고 살자.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
김복동 할머니 하면 역시 이 말씀이 떠오릅니다. 더군다나 저는 행복하게도 할머니 그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 날은 할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 쓰신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그 당시 남은 전 재산 5000만원을 기부하신 날이었고, 그 자리에서 할머니의 뜻을 이어‘김복동 장학금’사업을 계승해 나갈 ‘김복동의 희망’이 출범한 날이었습니다. 2018년 11월 22일, 두 달 후에는 이 세상을 떠나시게 될 할머니는 몸을 가누시기도 어려운 상태였지만 그 얼굴에는 정말 희망에 찬 환한 웃음 꽃이 피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도 또 희망이 찾아오는가?”하시면서 그 자리에 모인 ‘김복동의 희망’ 성원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 보신 할머니의 흐뭇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얀 저고리에 까만 동복치마를 입은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을 보면 그냥 눈물이 난다고 하신 할머니. “이국 땅에서도 기죽지 말고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고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몇번이고 당부하실 때 할머니는 자신께서 이국 땅에 끌려가 일본군에게 짓밟힌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계셨던 거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정성껏, 끝까지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을 온갖 힘을 다해 도와 주신 것이지요.
2018년 6월, 제2차 김복동장학금 전달식 때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직접 장학금을 수여하기 위해 일본 도쿄에 오신 할머니는 학생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언제나 당당하고 흐트러짐 없어 보인 할머니가 떨면서 흘리시는 눈물의 깊이를 저는 감히 헤아려 볼 수가 없었습니다.
2018년 9월, 태풍 피해를 입은 오사카 지역 조선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온 몸에 암이 퍼진 상태에서 다시 일본에 오신 할머니는 지붕이 날아가고 천장이 무너진 조선학교 교사를 돌아보시면서 “이걸 보수하려면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으셨습니다. 할머니는 머리 속에서 계산기를 마구 때리고 계신 듯했습니다. 그것이 할머니가 일본에 오신 마지막이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할머니가 사랑을 배풀어 주신 재일 조선인 학생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요. 제1차 김복동 장학금 수령자인 학생이 대학 졸업논문에 김복동 할머니와 일본군’위안부’운동에 대해서 쓰겠다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재일 조선인 학생들의 가슴 속에서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할머니는 이국 땅에 나서 자란 학생들에게 조국의 따뜻함과 겨레의 사랑을 몸소 알게 해 주셨고, 무엇보다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감사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삶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삶이 그저 기다리면 오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 싸워야 할 대상과는 철저하게 싸우고, 사랑을 베풀어야 할 대상에게는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할머니는 그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할머니에게 감사하면서 저도 희망을 잡고 살겠습니다.
2022년 1월 26일
일본 희망씨앗기금 대표이사 양징자
발언_허선영(20세, 곶자왈작은학교 청년 천리길)
김복동 할머니의 아픔, 뜻, 사랑을 기억하고 함께 할 것이다
김복동 할머니를 처음 뵌 해는 2014년도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그해에는 처음으로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을 탐사하고 할머니들의 쉼터 ‘평화의 우리 집’에서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를 뵈었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에서 할머니들의 사진과 직접 그리신 당시의 그림들, 물질적인 증거들을 보며 전쟁의 실상과 무서움을 몸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 피해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피해자들의 심정, 그 고통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셨는지 알 수 있었다. 아픔을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천천히 기록들을 살펴보며 할머니들에게 공감하고 할머니들의 용기에 나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평화의 우리 집’에서 할머니들의 얘기를 들으며 나와 비슷한 나이에 잊지 못할 상처를 입고 아직도 정당한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했단 점에서 울분이 올라왔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나의 모습과 할머니들의 사라진 청춘이 대조되며 아픔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를 바라보시는 김복동 할머니의 따스한 눈빛과 말은 할머니들에게 힘이 되고자 갔던 나에게 더욱 큰 힘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에 참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직접 느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민 나의 첫 발자국이었다. 솔직히 당시에는 나의 크지 않은 목소리와 오카리나 연주가 문제 해결과 할머니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자신하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린 나의 노력이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며 할머니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 같다.
김복동 할머니와의 만남은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있었다. 2015년도 제주에서 열린 평화 나비 콘서트를 관람하러 갔을 때 할머니를 뵐 수 있었다. 많은 대학생이 모여 노란색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이 나비의 힘찬 날갯짓을 연상시켰고 큰 날개로 할머니들을 포근히 안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계속 기억하고 있고 할머니들의 곁을 지키겠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제주도에서 곶자왈작은학교를 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졌다. 피켓과 그림들을 그리며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해주시는 분들을 응원하고 할머니들에게 우리가 함께하고 있음을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또, 제주도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을 때 직접 찾아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다. 더욱 다양한 지역의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후세에 기억에도 오래 남아있길 소망한다.
김복동 할머니는 살아계실 때 늘 곶자왈작은학교를 격려하고 응원해주셨다. 제주에 직접 오셨을 때나, 윤미향 대표님이 제주에 내려올 때 따로 후원금을 챙겨주셨고, 곶자왈작은학교 친구들이 서울여행을 갈 때마다 자장면을 사주기도 하셨다.
초등학생 때부터 알았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현재 내가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고 있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되어 주춤거리는 분이 많으실 것 같다. 처음엔 나도 나 하나로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없을 거라 생각하였지만 다양한 활동을 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 시위에 참여하고 직접 나서는 것만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이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책이나 영화, 기사를 보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공부하는 것은 우리가 할머니들을 언제까지나 계속 기억하고 관심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드러낼 수 있다. 사람들의 끊임없는 관심은 할머니들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힘쓰시는 분들이 포기하지 않는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김복동 할머니의 용기 있는 고백과 행동들로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재의 문제는 우리에게 맡기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할머니들의 뜻을 이뤄나가는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셨으면 좋겠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쉽사리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고 앞으로도 할머니들의 아픔, 뜻, 사랑을 기억하고 함께 할 것이다.
152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정의연, 주최·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회는 최광기 이사가 보았습니다. 오는 1월 28일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3년이 되는 날입니다. 김복동 할머니 3주기를 맞아 조금 특별한 수요시위를 진행했습니다.
가장 먼저 청년광장 활동가들의 율동과 함께 여는 노래 <바위처럼>을 함께 불렀습니다.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 삶과 김숨 작가가 김복동 할머니를 만나뵙고 취재하여 완성한 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낭독을 정의연 호랑과 지우 활동가가 하였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생전 수요시위에 참가하셔서 발언하시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며 기억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독일 코리아협의회에서 만들어 보내주신 김복동 할머니 추모 영상을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내가 기억하는 김복동 할머니’에 대해 할머니와 함께했던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전 생존자복지위원장으로서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신 정태효 님, 할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활동하고 있는 ‘김복동의 희망’ 공동대표이며, 평화비 작가이신 김서경 님, 오랜 시간 수요시위와 할머니들의 활동에 자원활동으로 함께하고 계신 임계재 님,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 대학생 프로젝트 동아리 평화나비네트워크 전 대표인 김샘 님이 발언을 하였고, 제주 곶자왈작은학교에 다니면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을 하는 동안 할머니와 인연을 맺은 허선영 님과 일본에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많은 활동을 하시며 할머니들과 함께하신 일본 희망씨앗기름 대표이사 양징자 님의 글을 정의연 활동가가 읽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연대의 손을 잡고 많은 기억과 희망을 심어 주신 김복동 할머니에 대해 돌아보고 다시금 기억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독일 코리아협의회에서 보내주신 김복동 할머니 3주기 추모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평화 만들기> 율동공연을 청년광장 회원들과 정의연 포카, 기린 활동가가 연합으로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의기억연대 한경희 사무총장의 성명서 낭독을 끝으로 152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마무리되었습니다.
현장에는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청년광장, 인보성체수도회, 겨레하나, 원죄없으신 마리아 교육선교 수녀회, 한국성폭력상담소,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수원관구, 그리고 여러 단체와 개인 들이 참가하셨습니다.
온라인 댓글로는 Olivia L, 진시현, phonsik, GY, 오로지팔정도, Woohee Kim, 장혜영, 조안구달, Goo Lee, 아콩알, 진마음, 김은채, 김공래(뉴질랜드), Soona Cho(호주 시드니), Ruth Sangree, Sung Sohn(미국 샌프란시스코), 이혜진, Jun Hee Seo, Sewol Hambi Houston(미국 휴스턴 함께 맞는비), Friends of 'Comfort Women' in Sydney – 시소연, 이원석, Moses J Hahn(호주 시드니), 한덕규, I푸른콩, 한장표, 우순덕, 윤지민, 한성원, Spring Tree Spring Tree, 김보민, Christine, Hyuong Jeon 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현장과 온라인으로 함께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수요시위
#수요시위_30년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
#일본정부_공식사죄_법적배상하라
#여성인권운동가_김복동_3주기
#내가_김복동이다
#역사부정_중단하고_수요시위에_대한_공격을_멈춰라
발언_김샘(평화나비네트워크 전 대표)
안녕하세요, 평화나비 전 대표 김샘입니다.
발언을 제안받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오랜만에 서는 평화로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김복동 할머니라면, 어떤 말을 해주실까 하는 생각해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할머니는 이렇게 평화로에 모인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희망을 잡고 살자,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라고 말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이 평화로를 만들어온 사람들에게 힘든 시기 함께 이겨내자는 응원의 말을 전하실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른 말이 아니라 여기 계신 여러분과 서로에 대한 응원을 나누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말해주실 것 같습니다. 지금 저들의 공격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운동이
시작했을 당시 할머니들께서는 더 큰 어려움을 이겨내며 여기까지 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다시의 우리의 연대의 힘으로 이겨낼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아는 김복동할머니라면, 조용하고 따끔하게 '똑바로 하라'고 하지 않으셨을까요? 저들의 공격에 주눅들지 말고 자부심을 가지라고 해주셨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외의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알리며, 여성 인권, 반전 평화를 만들어온 우리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운동을 만들어온 우리 모두 자부심을 갖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수요일, 평화로에 올때마다 항상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청소년, 청년들, 그리고 국내외 성폭력 생
존자들, 수녀님들, 시민 여러분께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오늘은 제 발언이 여러분께 작게나마 위로와 용기를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청년들이 이 어려운 시기에 더 많은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 드리겠습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축소시키려는 저들이지만, 국내외로 국제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할매나비를 따라 청년들이 더 열심히 날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발언_양징자(일본 희망씨앗기금 대표이사)
“희망을 잡고 살자.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
김복동 할머니 하면 역시 이 말씀이 떠오릅니다. 더군다나 저는 행복하게도 할머니 그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 날은 할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 쓰신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그 당시 남은 전 재산 5000만원을 기부하신 날이었고, 그 자리에서 할머니의 뜻을 이어‘김복동 장학금’사업을 계승해 나갈 ‘김복동의 희망’이 출범한 날이었습니다. 2018년 11월 22일, 두 달 후에는 이 세상을 떠나시게 될 할머니는 몸을 가누시기도 어려운 상태였지만 그 얼굴에는 정말 희망에 찬 환한 웃음 꽃이 피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도 또 희망이 찾아오는가?”하시면서 그 자리에 모인 ‘김복동의 희망’ 성원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 보신 할머니의 흐뭇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얀 저고리에 까만 동복치마를 입은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을 보면 그냥 눈물이 난다고 하신 할머니. “이국 땅에서도 기죽지 말고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고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몇번이고 당부하실 때 할머니는 자신께서 이국 땅에 끌려가 일본군에게 짓밟힌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계셨던 거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정성껏, 끝까지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을 온갖 힘을 다해 도와 주신 것이지요.
2018년 6월, 제2차 김복동장학금 전달식 때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직접 장학금을 수여하기 위해 일본 도쿄에 오신 할머니는 학생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언제나 당당하고 흐트러짐 없어 보인 할머니가 떨면서 흘리시는 눈물의 깊이를 저는 감히 헤아려 볼 수가 없었습니다.
2018년 9월, 태풍 피해를 입은 오사카 지역 조선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온 몸에 암이 퍼진 상태에서 다시 일본에 오신 할머니는 지붕이 날아가고 천장이 무너진 조선학교 교사를 돌아보시면서 “이걸 보수하려면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으셨습니다. 할머니는 머리 속에서 계산기를 마구 때리고 계신 듯했습니다. 그것이 할머니가 일본에 오신 마지막이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할머니가 사랑을 배풀어 주신 재일 조선인 학생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요. 제1차 김복동 장학금 수령자인 학생이 대학 졸업논문에 김복동 할머니와 일본군’위안부’운동에 대해서 쓰겠다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재일 조선인 학생들의 가슴 속에서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할머니는 이국 땅에 나서 자란 학생들에게 조국의 따뜻함과 겨레의 사랑을 몸소 알게 해 주셨고, 무엇보다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감사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삶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삶이 그저 기다리면 오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 싸워야 할 대상과는 철저하게 싸우고, 사랑을 베풀어야 할 대상에게는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할머니는 그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할머니에게 감사하면서 저도 희망을 잡고 살겠습니다.
2022년 1월 26일
일본 희망씨앗기금 대표이사 양징자
발언_허선영(20세, 곶자왈작은학교 청년 천리길)
김복동 할머니의 아픔, 뜻, 사랑을 기억하고 함께 할 것이다
김복동 할머니를 처음 뵌 해는 2014년도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그해에는 처음으로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을 탐사하고 할머니들의 쉼터 ‘평화의 우리 집’에서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를 뵈었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에서 할머니들의 사진과 직접 그리신 당시의 그림들, 물질적인 증거들을 보며 전쟁의 실상과 무서움을 몸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 피해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피해자들의 심정, 그 고통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셨는지 알 수 있었다. 아픔을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천천히 기록들을 살펴보며 할머니들에게 공감하고 할머니들의 용기에 나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평화의 우리 집’에서 할머니들의 얘기를 들으며 나와 비슷한 나이에 잊지 못할 상처를 입고 아직도 정당한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했단 점에서 울분이 올라왔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나의 모습과 할머니들의 사라진 청춘이 대조되며 아픔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를 바라보시는 김복동 할머니의 따스한 눈빛과 말은 할머니들에게 힘이 되고자 갔던 나에게 더욱 큰 힘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에 참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직접 느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민 나의 첫 발자국이었다. 솔직히 당시에는 나의 크지 않은 목소리와 오카리나 연주가 문제 해결과 할머니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자신하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린 나의 노력이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며 할머니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 같다.
김복동 할머니와의 만남은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있었다. 2015년도 제주에서 열린 평화 나비 콘서트를 관람하러 갔을 때 할머니를 뵐 수 있었다. 많은 대학생이 모여 노란색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이 나비의 힘찬 날갯짓을 연상시켰고 큰 날개로 할머니들을 포근히 안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계속 기억하고 있고 할머니들의 곁을 지키겠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제주도에서 곶자왈작은학교를 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졌다. 피켓과 그림들을 그리며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해주시는 분들을 응원하고 할머니들에게 우리가 함께하고 있음을 알리려고 노력하였다. 또, 제주도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을 때 직접 찾아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다. 더욱 다양한 지역의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후세에 기억에도 오래 남아있길 소망한다.
김복동 할머니는 살아계실 때 늘 곶자왈작은학교를 격려하고 응원해주셨다. 제주에 직접 오셨을 때나, 윤미향 대표님이 제주에 내려올 때 따로 후원금을 챙겨주셨고, 곶자왈작은학교 친구들이 서울여행을 갈 때마다 자장면을 사주기도 하셨다.
초등학생 때부터 알았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현재 내가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고 있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되어 주춤거리는 분이 많으실 것 같다. 처음엔 나도 나 하나로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없을 거라 생각하였지만 다양한 활동을 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 시위에 참여하고 직접 나서는 것만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이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책이나 영화, 기사를 보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공부하는 것은 우리가 할머니들을 언제까지나 계속 기억하고 관심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드러낼 수 있다. 사람들의 끊임없는 관심은 할머니들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힘쓰시는 분들이 포기하지 않는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김복동 할머니의 용기 있는 고백과 행동들로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재의 문제는 우리에게 맡기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할머니들의 뜻을 이뤄나가는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셨으면 좋겠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쉽사리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고 앞으로도 할머니들의 아픔, 뜻, 사랑을 기억하고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