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수요 시위1518차 수요시위 - 한국여성민우회

151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주관하였습니다. 사회는 한국여성민우회 나래 활동가가 하셨습니다.

가장 먼저 여는 노래 <바위처럼>을 같이 불렀고 율동은 정의연 활동가들이 하였습니다.

이어 주관단체 인사말 후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창연(가명) 할머니의 삶을 함께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참가단체 소개와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주관단체인 한국여성민우회, 청년진보당, 성바오로딸수도회, 평화나비네트워크에서 와 주셨고, 그 외 단체와 개인들도 참가하셨습니다.

온라인 댓글로는 김보민, atlacpi, John Shin, Woohee Kim, 이훈렬, 알마즈, 조안구달, 안김정애, 갤럭시팍, 이원석, 장혜영, Sewol Hambi Houston(함께맞는비), Sangwoo Lee, Moses J Hahn(호주 시드니), Soona Cho, 투어이브박미정, GY K.Y., 한덕규, 박수칠때 떠났냐?, 솔방울,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한 장표, 뿍, Christine, Jacques Y. Jeon, Friends of ‘Comfort Women’ in Sydney – 시소연, Narra Lee 님 고맙습니다.

현장과 온라인으로 함께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연대발언 시간에는 눈사람(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 구름(한국여성민우회 회원) 님, 평화나비네트워크 김민주 대표님이 연대발언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여성민우회 영지 활동가의 성명서 낭독을 끝으로 151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요시위

#한국여성민우회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

#일본정부_공식사죄_법적배상

#일본정부는_일본군성노예제_피해자들의_목소리를_들어라

#역사부정세력들은_피해자들의_목소리를_제대로_들어라

주간보고_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

1990년 11월 16일, 37개 여성·인권·종교·학생 단체가 모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가족과 사회, 민족의 수치라고 손가락질받던 여성들의 경험을 조명하고,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역사를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여성의 관점으로 제국주의, 식민주의, 군국주의, 가부장제 질서에 균열을 내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로 국제질서에 도전하고자 했습니다. 여성의 목소리와 여성의 연대로, 견고하기만 했던 벽을 무너뜨리고 불가능해 보이기만 했던 두터운 문을 힘껏 열어젖혔습니다. 그 세월이 31년이 되었습니다.

작년 한 해 정의기억연대는 너무도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비이성적 불신과 불안으로 난도질당하고, 부정과 혐오의 칼날로 쉼 없는 공격을 당했습니다. 반동의 시계로 역사를 거스르고, 일본 제국주의의 신민으로 스스로 박제되고자 하는 자들이 그 틈을 노리고 우후죽순 난립했습니다.

뿌리째 뽑혀 당장 쓰러질 것만 같을 때, 온몸을 던져 꼭 붙들어 주던 작은 풀잎들을 기억합니다. 태풍에 흔들려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을 때, 양옆을 호위하던 수많은 조각배들을 기억합니다. 옆에서 뒤에서, 보이게 보이지 않게, 함께 비 맞거나 우산 씌워주며 같이 걸어준 분들을 기억합니다. 손 내밀고 안아주며 다독여 주신 여러분들을 기억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제 정의연은 그런 마음으로 후원의 밤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참여해 주시고 애써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는 온라인이 아니라 직접 뵙고 한 분 한 분 고개 숙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암초에 부딪히고 천 길 낭떠러지를 만나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던 선배 활동가들의 정신과 피해생존자들의 염원을 잊지 않고 다시 죽을힘을 다해 노 저어 나아가겠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지지하고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들을 마음에 품고 끝끝내 정의의 언덕에 다다르겠습니다. 벼락처럼 다가올 내일을 희망하며, 내가 아니어도 네가, 네가 아니어도 또 다른 여러분들이 힘내어 그곳에 도착하리라 믿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함께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2021년 11월 17일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

연대발언_눈사람(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

안녕하세요.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눈사람입니다.

저는 주로 성폭력피해자상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상담을 통해 만난 피해생존자들은 여전히 공개적으로 말하고 대응하기를 두려워하지만 한편으로 '다음 피해자'가 없기를, '다른 피해자'의 용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고를 하고, 대자보를 붙이고, 처벌과 사과를 요구합니다.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는 세계적으로 최소 5만에서 20만, 그 중 절반이상이 한국여성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1991년 김학순님의 최초 증언 이후 남한에서 240명, 북한에서 219명의 피해자가 신고했습니다. 10만명 대 459명, 이 숫자의 대비가 전시성폭력의 현실과 남한과 북한사회가 성폭력 피해자를 어떻게 대해왔는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450여명의 여성들은 현재진행형인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용기와 연대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저의 할머니는 15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는 평생을 동생의 이름과 호적으로 살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할머니는 종종 저에게 시간이 되면, 본인의 자서전을 써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말이라는 것을 늦게 알았습니다. 할머니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여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내가 열일곱, 동생이 열다섯일 때 일본에 있는 공장에 취직한다고 갔다.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어른들이 '일본놈들이 처녀를 잡아간다'며 나를 급하게 시집 보냈다. 남편은 일본에서 사업을 했다. 나도 따라갔다. 동생이 떠날 때 적어준 주소를 찾아갔다. 공장은 없었다. 먼 친적에게 동생이 만주에 갔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남편에게 비밀로 하라고 했다. 그게 끝이었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때, 동생 이름을 말했다. 같은 호적을 두명이 쓸 수는 없으니, 여동생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젠 동생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 진짜 이름은 OOO이다."

지금에 와서 할머니가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혹은 끝까지 몰랐는지, 추측할 뿐이지만, 분명한 건 자신과 동생의 이야기가 비밀이 아닌, 기록으로 남겨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안다는 것, 그리고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우리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할머니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나마 말하고, 누군가에게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1월 17일 오늘 1518번째 수요일을 우리는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가 처음인 분들, 익숙한 분들, 또 각자가 서있는 위치까지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원하고 바라고 꿈꾸는 세상은 비슷할 것입니다. 피해자가 수치스럽지 않은,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요구하지 않는 사회, 피해가 비밀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책임지고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아야 하는 역사로서 존재하는 국가, 피해자가 평안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세상.

구호 다같이 외쳐 보겠습니다.

제가 구호를 외치면 마지막 문장만 따라 3번 함께 외쳐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잊지 않았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공식 사죄하라!

우리는 공식 요구한다/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법적 배상하라!

우리는 강력 촉구한다/ 한국정부는 지금 당장 책임지고 해결하라!

제가 정말 좋아하는 문장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인이 된 수많은 분들과 13명의 생존자분들에 이어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증인이 되길 멈추지 않는 한, "이 싸움의 끝은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닮아있을 것입니다."

연대발언_구름(한국여성민우회 회원)

저는 1995년 북경 여성대회에서, 당시 중국과 필리핀등, 일본군 성노예제를 증언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존엄한 인간이 무대에 올라와, 만인 앞에서 자신의 들추고 싶지 않은 상처를 토해내는, 용기 있는 자리였어요. 로비에는 한 예술가의 조각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허공에서 몸을 비튼 채, 여기저기 바늘을 꽂고 있는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부서진 육체와 처참한 영혼을 부여잡고, 함께 탄식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치유는 이렇게 용기와 증언으로 시작됐고, 그분들의 한도, 역사의 오욕에서 벗어나, 언젠가는 증명되고 바로잡히리라 생각했습니다.

2년 전 8월 “사월의 꿈”이라는 합창단을 만든 친구들로부터, 세계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못다 핀 꽃’ 공연을 올렸습니다. 고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에서 제목을 따서 만든 합창 소리가, 이국의 땅에 울려 퍼지는 너무도 가슴 아프고 뭉클한 영상이었어요. 왜일까요? 국민의 관심과 기억만으로 일그러진 과거가 바로 잡히지는 않습니다. 정부는,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도, 숨기고 왜곡하기에 여념 없는 일본 정부를 향해 묵비권을 행사할 것이 아니라, 주장해야 합니다! 그들이 역사 앞에 사죄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고, 끝까지 거짓말로 일관하는 한, 여전히 전쟁 중 강간 범죄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과거사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소녀의 평화를 기원할까요?

한주, 한해가 쌓여서 수요집회 1518차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함께 연대하여 못다핀 꽃을 피워가고 있습니다. 숫자가 쌓여 갈수록, 또 어려움이 있을수록, 우리의 뿌리는 더 단단해지고 제 길을 찾아가겠지요. “과거의 그늘을 밝히는 것은, 지금 여기 현재의 등불이다”라는 말로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