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수요 시위1419차 수요시위 - 정의기억연대_2019 돌아가신 할머니 추모제

올해 마지막 수요시위인 1419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2019년 돌아가신 할머니 추모제로 진행되었습니다. 할머니들을 추모하고 손잡기 위해 8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하였습니다.

올해 돌아가신 이OO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곽예남 할머니, 고OO 할머니, 양OO 할머니, 이렇게 다섯 분 할머니 앞에 헌화하는 시간을 시작으로 수요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할머니의 얼굴과 삶 앞에 묵념하고 꽃을 바치며 추모하였습니다.

이어 다섯 할머니의 삶을 소개한 후 묵념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모사가 이어졌습니다.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 계시던 김복동 할머니와 인연을 맺고 연대하고 마음을 나누었으며 ‘김복동의 희망’의 운영위원인 연세의료노조 권미경 위원장님, 수요시위에 참석해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하겠다고 다짐한 연희중학교 황인혁 학생, 일본에서 늘 일본군성노예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앞장서는 간사이네트워크 방청자 공동대표의 추모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충은 대금, 소금 연주자의 <좋은 나라> 연주가 있었습니다. 이어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의 경과보고가 이어졌습니다.

“죽는다고 죽는 게 아니다. 죽는다고 목소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죽는다고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할머니들은 그것을 아셨다고 생각한다. 특히 김복동 할머니는 마지막 당신의 삶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 그 시간에 ‘내가 이겼어. 뭐니 뭐니 해도 아베가 졌어.’라고 하셨다. 그것은 내가 죽지만 나는 진 것이 아니다, 죽음조차도 나를 굴복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확신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자리에 함께 앉아계신, 평화를 사랑하고 할머니들의 목소리와 기억이 되고자 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직접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이미 할머니는 깨달았고, 내가 죽는다고 해도 내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내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내가 잊히지 않겠구나 하는 확신을 깊게 깨달으셨구나 하는 생각에 큰 위로가 되는 수요일이다.

할머니들은 아픔을 극복해내고 수많은 겁박을 이겨내고 이 평화로에서 한 주도 포기하지도 주저하지도 않은 삶을 사셨다. 90대 나이에 먼 나라에 가서 언어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가해국이 부정하고 있어요, 우리 탓이라 하고 있어요, 이런 목소리르 내는 것은 너무 힘겹고 고독하고 어려운 여정이었을 것이나 할머니들은 쉬지 않으셨고 포기하지 않으셨다.

길원옥 할머니는 2019년이 지나가고 2020년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여쭤보니 ‘회개해야지, 회개해야 사람이지.’ 하시며 당신이 힘만 된다면 먼 나라 갈 수 있다, 가야겠다 하셨다. 가지 않으셔도 된다, 할머니 힘들다고 말씀하셔도 된다,라고 말씀드리니 ‘내가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은 잘못이지.’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지금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지우려는 시도뿐 아니라 피해자들이 30여 년 동안 걸어왔던 평화의, 인권의 상징들, 역사들, 성과들을 무너뜨리고 와해시키려는 시도들이 극심하게 일어나고 있다. 금권력, 국력을 앞세워 연대를 끊으려고 하고 목소리를 지우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저들은 멈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다. 그럴 것이었으면 1995년 일본에서 준 아시아여성평화기금으로, 1965년 한일협정으로, 2015년 한일합의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정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대로, 돈으로 권력으로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30여 년 동안 우리는 이 거리에서 할머니들로부터 배웠고 함께 WITH YOU를 외쳤던 수많은 세계 시민에게서 배웠다. 그래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난 11월 25일 김복동 할머니의 정신을 담은 우간다 김복동센터를 세우기 위해 착공식에 다녀왔다. 내전 전시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김복동 할머니 얼굴이 새겨진 노란 티셔츠를 입고 감사하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런데 일본정부가 우간다정부를 협박하고 우간다정부는 우리가 함께 있는 그 자리에서 그 생존자들을 협박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왜 JAPAN이라는 말이 새겨진 옷을 입고 모임을 하느냐, 우리가 너를 죽일 수 있다’라는 협박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정했다. 우간다 생존자들도 논의를 통해 결정했다. 더 이상 우간다 땅에서 김복동이라는 이름이 더렵혀지면 안 되겠다, 정의연 활동의 명예를 더럽히면 안 된다. 우리는 생존자들이 누구보다 중요하다, 생존자들이 하겠다면 끝까지 지원하고 WITH YOU 할 것이다, 생존자들이 위협을 받으며 그 어떤 좋은 활동이라도 잠시 걸음을 멈추기로 했다. 그래서 우간다에 김복동 센터 건립을 보류했다.

그러나 진 것이 아니다. 또다시 발돋움할 것이다. 세계 각지에 김복동센터를 세울 것이다. 세계 각지에 김복동센터를 세워 김복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세계 무력분쟁지역에 왜 희망이 되었는지, 미국에 독일에 일본에 전국 세계 각지에 김복동센터를 세울 것이다. 너희가 우리를 압박할수도록, 목소리를 차단하려면 할수록 우리의 날갯짓은 용수철처럼 힘을 받아 세계로 날아갈 것이다. 첫 번째 김복동센터는 미국으로 날아갈 것이다. 곧 더 멋진 계획을 발표하면서 할머니들이 죽음으로 부활했다는 것, 희망이 되었다는 것, 죽는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활동으로 2020년 정대협이, 정의연이 30주년 되는 해, 일제 강제병합 110년이 되는 해, 광복·분단 75주년이 되는 해. 또다시 희망의 역사,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역사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그 역사는 우리의 연대로 동행으로 함께 이루어질 수 있다, 옆에서 수요시위를 반대하는 반일종족주의라는 이름을 걸고 1인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 앞에 마주 서서 혼자 목소리를 내며 싸우는 또 다른 분들이 있기에 우리는 사람이 곧 희망이라는 김복동 할머니의 믿음으로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참가자들과 함께 김복동 할머니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

이어 평화의나무합창단의 합창 공연이 있었습니다. 40여 명 대규모 합창단원들이 <동요메들리>, <상록수>를 멋진 하모니로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장학금 전달식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에 대한 과심을 불러 일으켰던 대구가톨릭대 학생의 활동을 지지하며 마리몬드에서 장학금을 전달하였습니다. 관련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191217130800053?input=1179m

성명서 낭독 후 언제나 수요일에 울려퍼지는 <바위처럼>이 흘러나오며 평화나비네트워크의 율동과 퍼포먼스로 끝을 맺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보라색과 노란색 손피켓을 들며 할머니들이 30년 동안 외치신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 “교과서 기록” “사료관과 추모관 건립” “할머니들에게 명예와 인권을” 구호를 외쳤습니다. 올 한 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함께해 주신 모든 여러분 고맙습니다.

<추모사>

연세의료노조 권미경 위원장

할머니 오늘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의 인사도 주고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며 설레어하는 그리스마스예요.

복동 할머니는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하고 계셨고 어떠셨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 갑자기 크리스마스가 그리 기쁘지 않으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12월이면 추운 겨울이니 할머니께 어그부추, 장갑, 털모자 등을 선물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모든 게 수요일마다 이곳에 오실 때 춥지 말라고 선물한 것들이더라고요.

이제야 할머니를 춥디추운 수요시위 현장으로 내몬 게 아닌가 하는 자책도 듭니다.

젊은 사람들도 추워서 제대로 앉아 있지 못하는 이곳에 할머니는 집회가 끝날 때까지 항상 자리를 지키시며 함께 싸워주고, 함께 외쳐주는 시민들에게 늘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지요.

<지금이라도 어디선가 “우야튼 감사합니다” 하시며 나타나실 것만 같고, 여전히 복동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윤미향 대표와 정의연 식구들, 김복동의 희망 식구들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와 다르지 않게 모든 일을 계획할 때마다 복동 할머니께 일일이 물어보고 있습니다. 마치 옆에 계신 것처럼 말이죠.

김복동 할머니는 어느새 영화배우가 되셔서 강원도를 비롯 전국을, 미국 LA 등지 등 전 세계를 다니시며 계시는 것 아시죠?

우간다는 김복동센터 착공식도 했답니다. 할머니가 계신 곳에서 저희들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실 거라 믿어요.

아직까지 눈을 감기 전까지 간절히 원하셨던 그 소원, 소녀 하나 지켜주지 못한 나라에 대한 원말을 씻어드리지 못해 죄송하네요.

할머니!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히 지켜봐주셔도 돼요.

일본의 사죄 받아내겠다는 그 약속 잊지 않고 성탄절인 오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시간이 걸릴 뿐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 할머니와의 약속 꼭 이뤄낼게요.

어서빨리 그날이 올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연희중학교 황인혁

안녕하십니까, 할머님들의 혼, 얼, 그리고 할머님들께서 외치셨던 정의, 역사, 미래를 함께 나누어 보고자 추모사를 읽게된 연희중학교 3학년 황인혁입니다. 저는 늘 마이크를 잡으면 당당하게 제 이야기를 해나갔는데, 오늘은 그렇게 하질 못하겠습니다. 당당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저희로썬 다소 부끄러운 자리입니다. 제 이야기가 아닌 할머님들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입니다.

할머님, 얼마나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할머님, 얼마나 쓸쓸한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할머님, 얼마나 오래도록 기다리고 또 염원하셨습니까? 저는 할머님들께서 보내오셨던 세월의 고역을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그 헤아릴 수 없는 고역 앞에서 할머님들은 용기를 내셨습니다. 세상의 벽 앞에서 좌절과 시련을 반복하셨고, 반복할수록 발걸음은 더 당당해지셨으며, 그 당당함 옆에는 늘 더욱 큰 정의와 신념과 겸손이 따라붙었습니다.

그 정의는 이상적이었고, 그 신념은 확고했으며, 그 겸손은 모두의 본보기였습니다. 할머님, 할머님들께서는 늘 정의 앞에서 한발, 아니 두세 발은 더 앞서가셨습니다. 그 발걸음은 역사를 올바른 자리에 되돌려놓고 이상적 정의를 실현할 새싹이 되어 우리 앞에 피어났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직 할머님들의 신념을 품기엔 그릇이 너무나도 작았나 봅니다. 수많은 왜곡, 수많은 음해는 할머님들의 앞길을 막아섰습니다. 역사와 정의의 앞길을 막아섰습니다. 하지만 할머님들께서는 그저 폭풍을 지나는 나그네에게 불어온 맞바람이라 여기시고 발걸음을 재촉하셨습니다. 그저 안개 속에 가려진 이상을 좇아 걸어오셨을 뿐입니다.

폭풍 속을 외로이 헤쳐나가는 나그네의 바람을 하늘도 무시할 수 없었는지, 함께 손을 잡을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같은 이상을 향해 나아갈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져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할머님들의 여정을 이어나갈 사람들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혹은 마음을 보태고 있습니다.

저희는 부끄럽습니다. 할머님들께서 백날 말씀하셨던 ‘진정한 사과’의 기미조차 이끌어 내지 못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그 어떤 사과도 받지 못하셨습니다. 지금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할머님들의 미련이 이승에 남아 할머님들 발목에 족쇄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매주 이 자리에서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에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을 외쳐댔지만 제대로 이루어진 것은 찾기 힘들고, 할 수 있는게 이뿐이라는 사실이 원통하기만 합니다.

꺼진 촛불에도 연기가 아슬히 남듯, 저희는 할머님들께서 남기신 자취들을 따라, 할머님들의 꿈과 이상을 따라 여정을 이어나가려 합니다. 그래서 할머님들께서는 대한민국 온 국민 가슴 속에 남아 전쟁으로 고통받은 마지막 사람

이 될 것입니다. 할머님, 생전에 그러셨듯 평화와 정의의 불꽃으로 계속 타올라 주십시오. 그리고 또다시 전쟁 앞에서 억울한 민중이 되지 마십시오. 다신 운명의 재판대에 서지 마십시오. 마지막 가시는 길, 지금까지의 기억과 모든 것을 잊으시고 하늘로 훠이 날아가십시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아닌 그저 누군가로 살아주십시오.

저는 할머님들께 드릴 마지막 말을 항일시인 故 윤동주 님의 <별 헤는 밤>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할머님, 편안히 가십시오.

간사이네트워크 방청자 공동대표

올해도 또 일본 정부에 사죄 한마디 듣지 못한 채 돌아가신 피해자들 보내야 하는 마음은 미안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일본 아배 정권은 7년 사이에 역사 왜곡은 최악 상황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일본에서도 부정부패로 얼룩진 정권은 종지부를 찍으려고 하는 목소리가 크게 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성노예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거에 대해서 이토 시오리 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침목을 깨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28년 전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정부를 고발했을 때처럼 #metoo #with you 소리가 일본사회를 조금씩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소원이었던 전쟁이 없는 사회, 누구의 존엄도 빼앗기지 않는 세상을 우리가 더 한 층 노력해서 실현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부디 편히 잠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