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3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관은 기독여민회에서 하였고 사회는 배지은 기독여민회 회원님이 보았습니다.
먼저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의 <바위처럼> 율동으로 수요시위를 시작했습니다.
배지은 회원님의 주관단체 인사말 후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민아름 기독여민회 총무님,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정책변화팀 선임활동가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해주셨고, 피스보트 122 항차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 이유진 님의 발언문을 정의기억연대 도담 활동가가 대독했습니다.
문화공연이 이어졌습니다. 김옥연 기독여민회 회원님이 <내 나라 내 겨레>, <내가 찾는 아이> 노래를 기타 연주와 함께 불러주셨습니다.
참가단체 소개 후 이혜영 기독여민회 회원님이 성명서 낭독을 하며 1743차 수요시위를 마무리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주관단체인 기독여민회 외 파란숨과 가마꾼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일송 김동삼 기념사업회 김원일 이사,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 수녀회, 송경욱, 민족자주 안산통일 실천단, 환경운동연합(최경숙, 정은주), 착한목자수녀회, 최아름(기독여민회), 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 조국혁신당 성평등위원회, 이정아, 한겨레 독립TV, 불꽃뉴스TV, 투TV, 백제예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수어통역은 현서영 님이,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연대발언_민아름 총무(기독여민회)
안녕하세요.
저는 기독여민회 총무로 활동하고 있는 민아름입니다.
기독여민회는 ‘기독 여성 민중’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난 40년 동안 여성의 존엄과 평등한 세상을 위해 활동해 온 단체입니다. 우리는 신앙이 교회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역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이 자리에 함께 서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폭격 속에서 집과 학교가 무너지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의 가장 잔혹한 피해는 언제나 여성과 아이들에게 먼저 향합니다. 여성의 몸이 전쟁의 도구가 되고, 폭력과 성착취가 전쟁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현실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 왔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역시 바로 그런 전쟁 속에서 벌어진 범죄였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침략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해 성노예로 삼았고, 여성들의 삶과 존엄을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용기를 내어 증언해 오신 그 역사는, 전쟁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서 속 하나님은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억압받는 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출애굽의 이야기에서처럼 하나님은 고통 속에 있는 민중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해방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저는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오랜 싸움 역시 바로 그런 외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고통을 증언했고, 그 증언은 세상을 향한 정의의 외침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오늘도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 정부는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역사 왜곡과 책임 회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의가 외면당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이 세상은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우리의 신앙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힘 있는 자의 편이 아니라, 억눌린 이들의 편에 서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피해자들의 존엄이 회복되고 역사 정의가 바로 세워질 때까지 이 싸움을 멈출 수 없습니다.
기독여민회는 앞으로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그리고 다시는 전쟁이 여성의 몸을 전장으로 삼지 않는 세상을 위해 끝까지 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최경숙 정책변화팀 선임활동가(환경운동연합)
전쟁과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이 귀중한 자리에서 발언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1743차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 권력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파괴해 왔는지를 증언하며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다시 군사주의와 핵무기 경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핵’이 있습니다.
올해는 후쿠시마 핵사고 15년이 되는 해입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핵사고는 단 한 번의 사고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과 공동체, 그리고 미래 세대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핵발전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다시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 역시 핵발전을 기후위기 대응의 수단으로 내세우며 원전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핵발전은 결코 안전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에너지입니다. 핵발전은 사고의 위험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고, 핵폐기물이라는 영원한 짐을 남깁니다.
또한 핵발전은 핵무기와 분리될 수 없는 기술입니다. 핵발전과 핵무기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핵을 중심으로 한 군사주의와 국가주의는 언제나 전쟁과 폭력을 낳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폭력은 언제나 가장 약한 이들에게 먼저 향합니다.
전쟁 속에서 여성의 몸은 전장이 됩니다.
전쟁 속에서 여성의 인권은 가장 먼저 침해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역사가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전쟁 없는 세상, 핵 없는 세상 없이는 여성의 인권도 지켜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전쟁이 여성에게 무엇을 했는지, 핵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를.
그래서 우리는 요구합니다.
전쟁과 군사주의를 멈추십시오.
핵무기를 폐기하십시오.
핵발전 확대 정책을 중단하십시오.
우리는 후쿠시마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과 핵,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 연대해야 합니다.
오늘 오후 1시 광화문에서는 강우일 주교님이 주관하는 탈핵 미사가 열리고, 이어 2시에는 후쿠시마 15년 탈핵 집회가 열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서 시간이 되신다면, 후쿠시마 15년 탈핵 집회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이유진 피스보트 122 항차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
안녕하세요. 유진입니다. 정의기억연대 전 활동가이자 현재 피스보트 122번째 항해 통역사로 탑승하고 있습니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꿋꿋히 자리를 지키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목소리 높이는 여러분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현재 마다가스카르에서 모리셔스로 넘어가는 항로에서 연대발언문을 쓰고 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는 지난 2월, 10일 간격으로 연달아 발생한 사이클론으로 인해 약 45만 명이 수해 피해를 입었으며 제가 방문한 항구 토이마시나는 도시가 약 75퍼센트가 파괴되었습니다. 마다가스카르가 조속히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피스보트는 '과거의 전쟁을 직시하고 미래의 평화를 만든다'는 이념 아래 1982년 일본 교과서 문제를 계기로 첫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한국과 중국, 대만 현지에 직접 발을 옮겨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는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 이념에 걸맞게 이번 항해는 '대화로 엮는 평화의 여행'을 주제로 남반구를 항해하며 다양한 분야의 선상 안내인과 서로 배움의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고, 또 언어를 이어붙이며 대화의 연결자로 현재 함께 하고 있습니다.
대만해협에서 침몰하는 배 위에서 일본 군속이 눈앞에서 바다로 떨어져 죽어가는 조선인 여성들을 보면서도 상사의 “조센삐는 어디서나 구할 수 있다”는 말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증언을 우연히 선내 강연의 참고 자료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평생 그 죄책감을 안고 살았고, 2008년 피스보트는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그가 평생 지니고 있던 한복을 입은 인형을 바다에 흘려보내는 애도식을 열었습니다.
저는 지금 바로 그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남태평양을 건너 남미로, 대서양을 지나 아프리카로, 그리고 곧 대만해협으로 향합니다. 제가 떠도는 이 바다는 죽음의 바다이자 증언의 바다입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격침된 수송선과 함께 가라앉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 오키나와에서 소개되던 배가 미군에 의해 격침되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던 어린이들, 제주 4.3으로 바다에 흘러간 유해들.
이 바다는 시대와 대륙을 달리한 폭력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삼켜온 장소였습니다. 제가 지나온 칠레 발파라이소에서는 피노체트 독재 정권에 항의한다는 이유만으로 시민들을 납치하여 다시는 떠오르지 않도록 기찻길 레일과 함께 가라앉혔습니다. 또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강제로 시민들을 구금하여 마약으로 혼미하게 만들어 앞바다에 산채로 수장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수많은 목숨들 위에서 매우 안전하게 이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바다 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지구 곳곳마다 남겨진 남성적인 제국주의 폭력을 몸으로 경험하며 때로는 무력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끝끝내 남미의 해안에 떠오른 몸이 같은 패턴의 골절 흔적으로 말해주듯이, 침묵을 강요하던 어둠 속에서 빛을 뿜어낸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은 우리에게 진실은 결코 가라앉지 않음을 강력하게 호소합니다. 그리고 그 용기 있는 증언이 다시는 가라앉지 않도록 붙잡은 것은 시민들의 연대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목소리가 30년 넘게 평화로를 울린 것처럼, 제가 지금 건너고 있는 바다 밑 잠든 영혼들의 목소리 또한 우리를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둠 속으로 끝끝내 수장시키려 했던 그 진실을 우리는 오늘 이 평화로에서 다시 인양하고 있습니다.
배 위에서 읽은 미크로네시아 연방 헌법 전문에는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바다는 우리를 갈라놓지 않는다. 바다는 우리를 하나로 이어준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나라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을 내민다. 평화와 우정, 협력, 그리고 공통된 인간성 속에서의 사랑을.” 열강의 핵실험으로 인해 삶의 터전인 바다와 땅, 그리고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을 포함한 생명들이 초토화되었음에도 그들은 조화와 협력을 국가의 이정표로 삼고 있습니다. 바다는 국경이 아니라 기억과 증언, 사랑과 연대가 오가는 통로임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그리고 이 수요시위 역시 과거에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의 사람들이 연결되는 장소이며, 우리가 바라볼 것은 오로지 평화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세상의 끝'이라는 별명과 함께 사랑받는 남극으로 가는 아르헨티나 최남단의 도시 우슈아이아에도 저항과 연대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단 한 명의 여성도 잃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와 함께 피부색이 다른 여성들이 손을 맞잡은 페미니스트 벽화는 말합니다. 땅 끝까지 여성들은 폭력에 노출되지만 동시에 거대한 불의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서로를 놓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땅 끝까지 제국주의는 선주민을 비롯한 취약한 존재들을 밀어버렸지만, 동시에 더이상 밀릴 곳이 없는 땅 끝에서조차, 아니 어쩌면 더 밀릴 곳이 없기 때문에 취약한 존재들은 강력하게 저항합니다. 수요시위는 분명하게 이 벽화와 공명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다정함과 돌봄이 이 거대한 폭력을 평화로 바꿀 힘이라고. 매주 이 자리를 지켜온 끈질긴 시간, 작은 일을 포기하지 않고 쌓아온 지혜와 작업이, 전쟁과 같은 큰 충격을 받을 때 함께 서로를 돌보고 연대하는 힘이며, 30년 넘게 지켜온 이 자리야말로 평화를 함께 만드는 현장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바다를 건너며 배운 인사말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폴리네시아 지역에서는 서로를 만날 때 이렇게 인사한다고 합니다.
Ia ora na. (이아오라나) 직역하면 “생명이 너에게 있기를”이라는 뜻입니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서로의 생명을 축복하며 인사를 건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리고 우리를 함께 이어주는 바다를 건너며 저는 그 인사를 여러분께 전하고 싶습니다. Ia ora na. 당신에게 생명이 있기를. 끝까지 서로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기를.
감사합니다.
1743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관은 기독여민회에서 하였고 사회는 배지은 기독여민회 회원님이 보았습니다.
먼저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의 <바위처럼> 율동으로 수요시위를 시작했습니다.
배지은 회원님의 주관단체 인사말 후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연대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민아름 기독여민회 총무님,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정책변화팀 선임활동가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해주셨고, 피스보트 122 항차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 이유진 님의 발언문을 정의기억연대 도담 활동가가 대독했습니다.
문화공연이 이어졌습니다. 김옥연 기독여민회 회원님이 <내 나라 내 겨레>, <내가 찾는 아이> 노래를 기타 연주와 함께 불러주셨습니다.
참가단체 소개 후 이혜영 기독여민회 회원님이 성명서 낭독을 하며 1743차 수요시위를 마무리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주관단체인 기독여민회 외 파란숨과 가마꾼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일송 김동삼 기념사업회 김원일 이사,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 수녀회, 송경욱, 민족자주 안산통일 실천단, 환경운동연합(최경숙, 정은주), 착한목자수녀회, 최아름(기독여민회), 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 조국혁신당 성평등위원회, 이정아, 한겨레 독립TV, 불꽃뉴스TV, 투TV, 백제예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수어통역은 현서영 님이,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연대발언_민아름 총무(기독여민회)
안녕하세요.
저는 기독여민회 총무로 활동하고 있는 민아름입니다.
기독여민회는 ‘기독 여성 민중’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난 40년 동안 여성의 존엄과 평등한 세상을 위해 활동해 온 단체입니다. 우리는 신앙이 교회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역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이 자리에 함께 서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폭격 속에서 집과 학교가 무너지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의 가장 잔혹한 피해는 언제나 여성과 아이들에게 먼저 향합니다. 여성의 몸이 전쟁의 도구가 되고, 폭력과 성착취가 전쟁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현실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 왔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역시 바로 그런 전쟁 속에서 벌어진 범죄였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침략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해 성노예로 삼았고, 여성들의 삶과 존엄을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용기를 내어 증언해 오신 그 역사는, 전쟁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서 속 하나님은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억압받는 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출애굽의 이야기에서처럼 하나님은 고통 속에 있는 민중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해방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저는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오랜 싸움 역시 바로 그런 외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고통을 증언했고, 그 증언은 세상을 향한 정의의 외침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오늘도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 정부는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역사 왜곡과 책임 회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의가 외면당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이 세상은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우리의 신앙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힘 있는 자의 편이 아니라, 억눌린 이들의 편에 서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피해자들의 존엄이 회복되고 역사 정의가 바로 세워질 때까지 이 싸움을 멈출 수 없습니다.
기독여민회는 앞으로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그리고 다시는 전쟁이 여성의 몸을 전장으로 삼지 않는 세상을 위해 끝까지 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최경숙 정책변화팀 선임활동가(환경운동연합)
전쟁과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이 귀중한 자리에서 발언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1743차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 권력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파괴해 왔는지를 증언하며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다시 군사주의와 핵무기 경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핵’이 있습니다.
올해는 후쿠시마 핵사고 15년이 되는 해입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핵사고는 단 한 번의 사고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과 공동체, 그리고 미래 세대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핵발전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다시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 역시 핵발전을 기후위기 대응의 수단으로 내세우며 원전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핵발전은 결코 안전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에너지입니다. 핵발전은 사고의 위험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고, 핵폐기물이라는 영원한 짐을 남깁니다.
또한 핵발전은 핵무기와 분리될 수 없는 기술입니다. 핵발전과 핵무기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핵을 중심으로 한 군사주의와 국가주의는 언제나 전쟁과 폭력을 낳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폭력은 언제나 가장 약한 이들에게 먼저 향합니다.
전쟁 속에서 여성의 몸은 전장이 됩니다.
전쟁 속에서 여성의 인권은 가장 먼저 침해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역사가 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전쟁 없는 세상, 핵 없는 세상 없이는 여성의 인권도 지켜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전쟁이 여성에게 무엇을 했는지, 핵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를.
그래서 우리는 요구합니다.
전쟁과 군사주의를 멈추십시오.
핵무기를 폐기하십시오.
핵발전 확대 정책을 중단하십시오.
우리는 후쿠시마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과 핵,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함께 연대해야 합니다.
오늘 오후 1시 광화문에서는 강우일 주교님이 주관하는 탈핵 미사가 열리고, 이어 2시에는 후쿠시마 15년 탈핵 집회가 열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서 시간이 되신다면, 후쿠시마 15년 탈핵 집회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이유진 피스보트 122 항차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
안녕하세요. 유진입니다. 정의기억연대 전 활동가이자 현재 피스보트 122번째 항해 통역사로 탑승하고 있습니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꿋꿋히 자리를 지키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목소리 높이는 여러분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현재 마다가스카르에서 모리셔스로 넘어가는 항로에서 연대발언문을 쓰고 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는 지난 2월, 10일 간격으로 연달아 발생한 사이클론으로 인해 약 45만 명이 수해 피해를 입었으며 제가 방문한 항구 토이마시나는 도시가 약 75퍼센트가 파괴되었습니다. 마다가스카르가 조속히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피스보트는 '과거의 전쟁을 직시하고 미래의 평화를 만든다'는 이념 아래 1982년 일본 교과서 문제를 계기로 첫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한국과 중국, 대만 현지에 직접 발을 옮겨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는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 이념에 걸맞게 이번 항해는 '대화로 엮는 평화의 여행'을 주제로 남반구를 항해하며 다양한 분야의 선상 안내인과 서로 배움의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고, 또 언어를 이어붙이며 대화의 연결자로 현재 함께 하고 있습니다.
대만해협에서 침몰하는 배 위에서 일본 군속이 눈앞에서 바다로 떨어져 죽어가는 조선인 여성들을 보면서도 상사의 “조센삐는 어디서나 구할 수 있다”는 말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증언을 우연히 선내 강연의 참고 자료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평생 그 죄책감을 안고 살았고, 2008년 피스보트는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그가 평생 지니고 있던 한복을 입은 인형을 바다에 흘려보내는 애도식을 열었습니다.
저는 지금 바로 그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남태평양을 건너 남미로, 대서양을 지나 아프리카로, 그리고 곧 대만해협으로 향합니다. 제가 떠도는 이 바다는 죽음의 바다이자 증언의 바다입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격침된 수송선과 함께 가라앉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 오키나와에서 소개되던 배가 미군에 의해 격침되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던 어린이들, 제주 4.3으로 바다에 흘러간 유해들.
이 바다는 시대와 대륙을 달리한 폭력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삼켜온 장소였습니다. 제가 지나온 칠레 발파라이소에서는 피노체트 독재 정권에 항의한다는 이유만으로 시민들을 납치하여 다시는 떠오르지 않도록 기찻길 레일과 함께 가라앉혔습니다. 또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강제로 시민들을 구금하여 마약으로 혼미하게 만들어 앞바다에 산채로 수장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수많은 목숨들 위에서 매우 안전하게 이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바다 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지구 곳곳마다 남겨진 남성적인 제국주의 폭력을 몸으로 경험하며 때로는 무력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끝끝내 남미의 해안에 떠오른 몸이 같은 패턴의 골절 흔적으로 말해주듯이, 침묵을 강요하던 어둠 속에서 빛을 뿜어낸 일본군'위안부'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은 우리에게 진실은 결코 가라앉지 않음을 강력하게 호소합니다. 그리고 그 용기 있는 증언이 다시는 가라앉지 않도록 붙잡은 것은 시민들의 연대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목소리가 30년 넘게 평화로를 울린 것처럼, 제가 지금 건너고 있는 바다 밑 잠든 영혼들의 목소리 또한 우리를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둠 속으로 끝끝내 수장시키려 했던 그 진실을 우리는 오늘 이 평화로에서 다시 인양하고 있습니다.
배 위에서 읽은 미크로네시아 연방 헌법 전문에는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바다는 우리를 갈라놓지 않는다. 바다는 우리를 하나로 이어준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나라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을 내민다. 평화와 우정, 협력, 그리고 공통된 인간성 속에서의 사랑을.” 열강의 핵실험으로 인해 삶의 터전인 바다와 땅, 그리고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을 포함한 생명들이 초토화되었음에도 그들은 조화와 협력을 국가의 이정표로 삼고 있습니다. 바다는 국경이 아니라 기억과 증언, 사랑과 연대가 오가는 통로임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그리고 이 수요시위 역시 과거에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의 사람들이 연결되는 장소이며, 우리가 바라볼 것은 오로지 평화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세상의 끝'이라는 별명과 함께 사랑받는 남극으로 가는 아르헨티나 최남단의 도시 우슈아이아에도 저항과 연대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단 한 명의 여성도 잃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와 함께 피부색이 다른 여성들이 손을 맞잡은 페미니스트 벽화는 말합니다. 땅 끝까지 여성들은 폭력에 노출되지만 동시에 거대한 불의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서로를 놓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땅 끝까지 제국주의는 선주민을 비롯한 취약한 존재들을 밀어버렸지만, 동시에 더이상 밀릴 곳이 없는 땅 끝에서조차, 아니 어쩌면 더 밀릴 곳이 없기 때문에 취약한 존재들은 강력하게 저항합니다. 수요시위는 분명하게 이 벽화와 공명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다정함과 돌봄이 이 거대한 폭력을 평화로 바꿀 힘이라고. 매주 이 자리를 지켜온 끈질긴 시간, 작은 일을 포기하지 않고 쌓아온 지혜와 작업이, 전쟁과 같은 큰 충격을 받을 때 함께 서로를 돌보고 연대하는 힘이며, 30년 넘게 지켜온 이 자리야말로 평화를 함께 만드는 현장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바다를 건너며 배운 인사말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폴리네시아 지역에서는 서로를 만날 때 이렇게 인사한다고 합니다.
Ia ora na. (이아오라나) 직역하면 “생명이 너에게 있기를”이라는 뜻입니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서로의 생명을 축복하며 인사를 건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리고 우리를 함께 이어주는 바다를 건너며 저는 그 인사를 여러분께 전하고 싶습니다. Ia ora na. 당신에게 생명이 있기를. 끝까지 서로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기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