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안김정애, 김은진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공동대표님의 성명서 낭독을 끝으로 1623차 수요시위를 마무리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이용수 할머니,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사)성매매근절을위한 한소리회, 평화나비 네트워크, 민족통일애국청년회, 자립지지 공동체, 여성교회, 난민안전연구소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온라인 댓글로는 조안구달, 이원석, Sung Park(미국 시애틀), 원탑, Friends of 'Comfort Women' in Sydney – 시소연 님께서 함께해 주셨습니다.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제1623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간보고
오는 11월 2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입니다. 여성폭력 없는 사회를 위해 매년 11월 25일부터 ‘세계 인권의 날’인 12월 1일까지 일주일간 ‘여성폭력 추방주간’으로 지정해 그 의미를 되새기고 각국의 실천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처참하기만 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많은 여성과 아동이 처참한 폭력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전시가 아닌 곳의 상황도 녹록치 않습니다. 2021년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 3명 중 1명(약 7억 3,600만 명)이 일생에 한 번 이상 성폭력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이 중 상당수가 전배우자, 현배우자, 전파트너, 현파트너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했습니다.
대한민국 여성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22년도 대한민국 여성폭력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여성 약 30%는 강간, 강간미수, 성추행, 음란전화, 불법촬영, 불법촬영물 유포, 성기노출 등 각종 성폭력을 경험했으며, 결혼한 여성 10명 중 1명은 배우자로부터 성적, 신체적 폭력을 당한다고 합니다.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폭력 등 각종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과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여성도 35%에 달한다고 합니다. 경찰 통계가 없어 언론보도만으로 분석한 한국여성의전화 자료에 따르면, 지난 14년간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1,241명, 미수를 포함하면 2,609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과 성착취 또한 만연한 실정입니다. 여성은 어디에서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망언으로 시작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성평등 정책과 여성 지우기를 노골적으로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내년도 ‘여성 폭력 방지 및 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120억 원가량이 삭감되었다고 합니다. 장애청소년성인권교육, 젠더폭력 피해 예방 및 인식 개선, 성매매 피해자 구조 지원 사업, 성폭력 피해자 의료비 지원, 가정폭력 피해자 치료 회복 프로그램·의료비,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운영, 폭력 피해 여성 주거 지원 운영 등 젠더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관련 예산입니다. 직장 내 성차별·성희롱 상담을 24년간 이어온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예산과 이주여성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상담해 온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 역시 전액 삭감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국의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상담소와 피해자 보호시설, 고용평등상담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등의 운영을 사실상 중단하라는 도발임에 분명합니다.
이런 참담한 상황에도 우리 여성들은 삭제되거나 주저앉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성평등과 여성인권, 젠더폭력에 대한 저열한 인식으로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낙인찍으며 배제할 때, 여성들은 피해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국가에 전면 도전하며 법과 제도를 만들고 공적 시스템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왔습니다. 성폭력이라는 법적 용어조차 없을 때,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제 문제를 당당히 제기했고, 연대의 힘으로 국제 인권규범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거대한 권력이 강제해 온 망각의 늪에서 꿋꿋하게 살아나 역사를 다시 써 왔습니다.
지금의 우리들 또한 그 어떤 탄압과 무시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 길에 먼저 서계셨던 모든 선배 활동가들과 피해자들의 용기와 의지를 이어 다음에 올 미래세대에게 보다 넓은 길을 내어 줄 것입니다. 성평등한 세상을 위해, 여성폭력이 사라질 그날까지 함께 손잡고 걸어갑시다!
2012년 8월에 출범식을 한 기지촌여성인권연대는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회복을 주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2014년 6월25일에는 기지촌 여성들, 변호인단과 활동가들, 연구자들,유관 단체들과 함께 <한국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제기 하였습니다.
그 결과 2022년 9월29일에 대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아 낸 바 있습니다. ‘국가의 기지촌 운영과 관리과정에서 기지촌 위안부였던 원고들을 상대로 성매매 정당한 조장행위와 위법한 강제수용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며 국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했으니 국가가 원고들에게, 기지촌 여성들에게 배상하라며 기지촌 여성들의 손을 들어 준 것입니다. 그 날 MBC와의 인터뷰시 숙자 할머니는 ‘나도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며 두 손을 들고 좋아하며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기지촌 여성들은 연극도 하고 뮤지컬도 하며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큐_< 나와 부엉이>, 연극_<숙자 이야기>, < 문밖에서>, <오프리밋> 그리고 뮤직컬_<You are my Sunshine.>,<그대 있는 곳까지> 등의 무대에서 직접 기지촌의 이슈에 대해 알렸습니다. 그리고 경기여성연대분들과 함께한 <경기도 기지촌 여성지원 등을 위한 조례> 제정활동에도 기지촌 여성들도 함께 하며 직접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또한 2021년에 개관한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_일곱집매>에서 기지촌 여성들이 해설사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통해 기지촌 여성들의 삶과 기지촌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며 다음 세대들을 비롯한 시민사회,국제사회와 소통하는 평화인권교육의 장이 될 것입니다.
다만, 2020년 5월에 <경기도 기지촌 여성지원 등을 위한 조례>가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소망하기로는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경기도 조례 실행과 국회 법안 제정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지촌의 그늘아래 많은 기지촌 여성들이 ‘애국자’ 이름으로 관리받고 인권을 유린당했던 동두천의 성병진료소(낙검자 수용소)가 평화적으로 보존되고 활용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9년 어버이날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저희 햇살사회복지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 이후 한동안 어버이날이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우리 안정리 기지촌 할머니들이 함께 지냈습니다 우리 기지촌 할머니들이 수요시위에 참석해서 발언도 했습니다.
오늘은 1623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날입니다.
1992년에 1월에 시작된 수요시위는 만 31년이나 지났습니다. 3년이 아니고 10년, 20년도 아니고 31년!
얼마나 수요시위를 더 해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이 풀릴까요?
고 황금주 할머니는 “진정으로 (일본은) 사죄하고 내 청춘을 돌려놓아라. 사죄하고 내 청춘 돌려놓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수요시위를 더해야 일본이 진정으로 사죄를 할까요?
고 김복동 할머니는 어느 날 수요시위에 일본 대사관을 쳐다보며 “이 늙은이들이 다 죽기 전에, 우리가 다 죽기 전에, 하루빨리 사죄하라. 하루빨리 사죄하라. 알겠는가 (일본)대사! 알겠는가 (일본)대사!” 라고 외치셨습니다.
17세에 베이징에서 일본군에게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하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14일 대한민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실을 최초로 증언했었지요. 그리고 일본을 상대로 “내가 살아있는 증거다” 라고 말씀하시며 소송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증거인데... 내가 살아있는 증거인데...” 라고요.
얼마나 수요시위를 더해야 일본군 성노예제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문제해결 그리고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이 회복될까요?
이곳은 여성인권과 평화를 외치는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입니다. 오래전부터 국경을 넘어선 세계연대의 장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어서 속히 일본군 성노예제문제가 해결되어 수요시위가 사라지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연대발언_오영미(경기여성연대 상임대표)
1945년 우리는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아 모두가 기뻐하였습니다. 1945년 9월 미군정이 실시되고 미군이 대한민국에 주둔하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후 주한미군이 계속 한국에 주둔하게 되었고 미군의 요청에 의해 미군기지촌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한국정부는 주한미군기지촌을 조성하고 성매매를 조장했습니다. 주한미군기지촌 여성들은 강제 검진, 강제 구금, 구타 및 인신매매와 착취를 당하며 살았습니다. ‘달러벌이’라는 이름과 달리 미군위안부들은 더많이 일할수록 더욱더 빚을 지게 되고 착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지금 대부분 생활보호대상자입니다.
병자호란때 중국에 포로로 끌려갔던 여인들은 오랑캐에 몸을 더럽힌 환향녀라고 몸을 더럽혔다고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환향녀들에게 자살을 하게 했습니다. 가문을 욕보이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오히려 죽음을 강요당했습니다. 일본군정신대로 끌려간 할머니들도 마찬가지로 고향에 돌아와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은 미군위안부 할머니들께 말했다지요. 아우들이라고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이 미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동생들, 아우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미군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형님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미군위안부를 ‘양공주, 양색시, 양갈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아주 무시하는 말입니다.
미군위안부 여성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태어난 이 나라에서 버려졌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개입하여 만들 미기지촌에서 우리는 폭력과 갈취, 이용을 당했습니다. 아무도 우리 입장을 생각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달러벌이라고 애국자라고 말해놓고 미군을 위하여 성병관리차원에서 강제로 가두고 위험한 주사를 놓고 폭력을 휘두르고 착취를 당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피해 당사자의 증언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어려서 동생과 같이 보육원에 들어가서 살다가 14살에 도망쳐 나와 식당에 들어가 6개월정도 일을 하다가 직업소개소에서 돈을 3배로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기지촌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21살 정도 되었을때 미군을 만나 1년정도 살다가 헤어지고 한국인 남성을 만나 딸을 하나 낳았다고 합니다. 그 딸은 매우 총명하고 글도 잘쓰고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중학교 다닐 무렵 한창 예민한 나이였을때 기지촌에서 일했던 엄마는 이웃집 아줌마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웃집 아줌마는 홧김에 ‘양색시인 주제에, 양갈보인 주제에’ 실수로 비밀을 폭로했습니다. 그 후로 똑똑하던 딸은 기가 죽어 학교에도 가지 않고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그토록 총명하던 딸은 초롱초롱함을 잃고 말았습니다. 미군위안부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한지 그 고통의 크기와 넓이,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 늪에서 헤어나오기 어렵습니다.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환향녀나 일본군위안부나, 미군위안부나 모두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괄시를 받고 천대받고 무시 받습니다.
저는 텔레비젼을 30년동안 안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연인’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는데 거기서 병자호란때 오랑캐에게 몸을 버린 여성들을 향하여 주인공이 개에게 물렸다고 그 자리가 더럽혀졌다고 할테냐, 맞았다고 맞은 자리가 더럽다고 할테냐?하고 말합니다. 오랑캐에게 욕을 보았다고 고백하자 ‘그럼 안아줘야지. 괴로웠을테니’하고 말합니다. ‘많이 아팠지? 많이 힘들었지?’ 하면서 위로합니다. 더러운 몸으로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느냐고 하는 사람들과 달리 말입니다.
일본군위안부들은 시대와 사회의 희생자였습니다. 우리 대신 고초를 겪었습니다. 참으로 미안합니다.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 손가락질과 괄시로 평생 지옥 속에서 살았습니다. 미군의 요청에 의해 미기지촌을 조성한 대한민국정부는 미군위안부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시대의 희생자들인 일본군 위안부들과 미군위안부들에게 국민을 대신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명예를 회복시켜 주어야 합니다. 일본은 당연히 일본군위안부들에게 사과하고 배상해야 합니다. 한국에 주둔하여 은근히 미기지촌을 형성하게 한 미국도 사과하고 배상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미군기지촌위안부 특별지원법을 어서 속히 입안하여 통과시켜야 합니다. 국회의원들은 우리의 누이들에게 “그동안 많이 아팠지요? 많이 힘들었지요? 말할수 없는 고초를 겪게 해서 너무 미안합니다.”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어서 속히 미군위안부특별지원법을 만들어 지원해야 합니다. 미군위안부들이 치유를 위한 자금, 생활안정지원금 등 지원으로 눈꼽만큼이라도 위로받기를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국가 폭력의 피해자인 미군위안부의 고통을 덜어주고 명예를 회복시킴으로써 한국 여성의 인권향상에 기여해야 합니다.
연대발언_김태정(두레방 활동가)
제가 활동하고 있는 두레방은 1986년부터 기지촌 안에 있으면서 기지촌여성들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지촌여성들은 미군과 한국 정부에 의해 조장된 기지촌에서 성착취 피해로 인권 침해를 받아왔습니다.
기지촌은 한국 전쟁 이후 미군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생기게 되었습니다. 미군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마을은 미용실, 식당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미군들의 유흥을 위해 많은 여성들이 필요했습니다. 미군은, 그리고 한국정부는 그들을 미군‘위안부’라고 불렀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위안부를 시작으로 국가는 군인들의 사기라는 목적으로 위안소를 설치 하였고 이는 일제의 군대문화와 제도들이 답습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정착하면서 위안부제도는 유지되었습니다. 국가는 안보라는 이름으로, 미군부대는 미군들의 사기를 목적으로, 일본이 기존 만들어 놓은 위안부 정책을 이어왔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편리하였고, 두려운 성병을 조금이나마 행정적으로 관리 할 수 있는 유리한 장치기도 했습다.
그렇게 닮을 수밖에 없었던 일본군‘위안부’와 미군‘위안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두 가지 이슈에 대한 해석은 여러 곳에서 달랐으며 이 같은 연유로‘위안부’를 단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질타를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2014년 기지촌여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 당시 여성들은 기지촌여성이라는 이름이 아닌 미군‘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제기하였습니다. 한국정부가 미국군인을 위한 시설관리와 기지촌여성들의 성병을 관리하면서 여러 행정서류에서 기지촌여성들을 ‘위안부’라 지칭했습니다.
이러한 문서가 남아 있음에도 ‘위안부’ 단어를 쓰는데 불편을 드러내는 곳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미군이 정착하게 되는 시기는 한국정부가 세워진 때로 기지촌여성들은 자발로 돈을 벌기 위해 기지촌으로 들어간 여성들로 낙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위안부’는 일제가 남겨놓은 산물로 그 고통은 한국군‘위안부’를 거쳐 미군‘위안부’가 된 것입니다. 조국이 있고 없음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닌 전쟁 안에서 그리고 안보라는 이름으로 제일 취약한 여성이 착취된 근거로 ’위안부‘를 봐야 할 것 입니다
많은 연구학자들과 단체들,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생각은 저희와 같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는 기지촌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만나시먄거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고개를 들라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군’위안부‘ 미군’위안부‘ 는 비교 대상이 아닌, 위안부 정책은 군사폭력과 여성 인권침해인
정책임을알아야합니다. . 다시 말해, 군사주의 폐해 아래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증거로서 우리는서로 연대해야 됨을 말하고 싶슴니다.
그리고 그 연대는 군사 폭력의 피해와 국가 폭력 피해안에 여성인권침해사례를 조사하고 그 피해를 드러내서 더 이상 또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두레방은 기지촌 안에 있으면서 기지촌여성들, 성착취 피해 이주여성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러다 2021년 성매매피해상담소 품을 개소하면 기존의 활동에서 확대되어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7년부터 두레방에서 활동 하면서 기지촌여성, 이주여성 그리고 집결지 여성들을 지원하는 활동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 여성들을 착취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정부는 무력하게 이 범죄를 묵인하고 있는 모습에 매일같이 화가 납니다. 설상가상으로 내년부터 여성들을 지원하는 예산이 반토막까지 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여전히 정부는 이 범죄의 고리를 끊고자 하는 의지가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일본군인을 위해 위안부로 동원되고 , 미군을 위해 성병검진을 정기적으로하고 검진증을 신분증처럼 들고 다녀야 하며, 욕구 해소라는 이상한 말로 성산업에 여성이 착취되고 있습미다.
즉 여성의 몸이 사고파는 개념이 되어 물건처럼 취급되는 성착취 현장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일본으로부터 사과받지 못하고, 기지촌을 조장하면서 행해진 국가폭력 사실을 반성하지 않은 작금의 현실은, 한국의 여성인권은 여전히 바닥에 자리잡고 있음의 반증입니다다.
두레방은 계속해서 여성인권문제를 다루며 기지촌여성이야기를 알리고 있습니다. 기지촌 안에서 벌어지는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침해를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한 국제 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있으며 다큐멘터리 <나와부엉이>와 같은 다양한 매체와 여러 사례집 출판으로 국내외로 기지촌 내 성착취 구조와 기지촌여성들이 받은 피해 사례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모든 활동은 기지촌 미군’위안부‘ 당사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지촌 여성들은 대부분 고령이 되었고 생애 마지막 순간에 용기를 내어 사회에 본인들을 드러냈습니다. 2014년 시작했던 국가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은 8년 이후인 2022년 국가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당사자분들의 외롭고 힘겹게 사회의 낙인과 싸운 나날을 재판을 통해 공식화 하였고, 기지촌의 성착취 구조와 정부의 기지촌 조장, 관리 등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기지촌여성들이 용기를 내고 모습을 드러낸것은 이미 당사자 활동을 하고 계시는 일본군’위안부‘ 당사자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레방에 오시는 기지촌여성들은 일본군‘위안부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때 언니들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과 본인의 처지가 같기도 하면서 다르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복잡한 말에는 정부가 조장한 기지촌 안에서 미군의 관리대상에 있는 본인들과 같다고 생각하시면서, 사회에 본인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야기 하지 못하는 위치가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2014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에서 기지촌여성들도 일본군’위안부‘ 당사자분들처럼 스스로 피해의 삶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지촌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기지촌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주여성들이 그 안에서 성착취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에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는 무능한 정부, 국가책임 묻는 판결에도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는 정부가 있어 아픈 역사는 계속 되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기지촌여성들을 이제 고령이 되었습니다. 쩌렁쩌렁 말씀하셨던 여성은 어느샌가 소리를 내는 것마저 어려워졌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수락산으로 오르락내리락 하신 또 한 여성은 어느샌가 방에서 티비를 통해 산을 보고 계셨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정부는 일본에 공식적으로 사죄를 이끌어 내는 외교를 펼쳐야 하며, 기지촌 조장에 국가 책임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여성들에게 사과하고 관련 지원을 적극 실시 해야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지촌여성 당사자분들의 활동에 관심가져주시고 평화의 연대로 함께 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후지타 치사코(평화나비 네트워크 서울연합지부)
안녕하세요. 평화나비 서울 연합지부 회원 후지타 치사코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온 교환학생이고 올해 2월부터 12월까지 한국에서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대학교에서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저는 일본군 성노예제를 정치적, 외교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했는지 상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대학교에서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고 일본군 성노예제가 정치적, 외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인권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시중에 여성의 인권을 심하게 침해하는 폭력적인 제도가 공식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은 물론 일본 정부가 지금도 제대로 된 사실인정이나 배상을 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할머니들이 걸어 온 힘들고 험한 길을 앞으로는 저도 같이 걸고 싶어서 평화나비에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본에 귀국하면 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평화나비 도쿄 지부를 세우는 것입니다. 7월부터 평화나비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에서도 이렇게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해 배우고 같이 행동할 수 있는 동아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살아 계시는 할머니들이 줄어드는 가운데 하루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본에서는 역사 왜곡 세력 때문에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서술이 교과서에서 사라진 상황입니다. 이렇게 일본에서도 역사 왜곡 세력의 목소리가 큰 상황이지만 그에 지지 않고 연대해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임연희((사)성매매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성매매근절을 위한 한소리회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연대의 마음을 담아 함께 하겠습니다.
전쟁과 폭력, 빈곤 등 다양한 이유로 여성에 대한 성착취가, 과거부터 오늘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성착취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1992년 1차 수요시위부터 2023년 11월 22일 1623차 수요시위까지
우리의 외침은 피해자와 시민의 연대외침이며 여성인권과 평화의 외침입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은 피해에 대한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은 제대로,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또한 인권과 평화라는 이름으로 해결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이 회복됩니다.
그것은 곧 여성들의 명예와 인권의 회복이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외침이 벌써 천육백스물세번째입니다.
우리는 피해보상이 이뤄질 때까지 함께 외칠 것입니다.
어떠한 꼼수도 훼방도 우리의 외침을 막을 수 없고 진상규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피해배상을 요구합니다.
일본정부는 전쟁범죄 인정하고 법적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외침에 응답할 때입니다.
오늘의 외침이 역사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착취 없는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수요시위에 함께 합니다.
연대발언_조이스(두레방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두레방 활동가 조이스 입니다.
두레방은 기지촌 미군 위안부 뿐만 아니라 국내 성매매산업에 있는 이주여성들과 함께하고있습니다. 한국 예술흥행 비자를 가지고 인신매매되어, 미군위안부 여성들이 과거에 있던 현장인 기지촌 성산업에서 일하게 된 이주여성들, 그리고 그 외 국내 성매매 산업에 피해를 경험한 이주여성들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현장에서 만나는 이주여성들은 기지촌 성 산업에서 성착취, 폭행, 협박과 통제, 경제적 감금, 노동착취 등 다양한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여성들이 피해를 신고해도 경찰은 자발성을 따지면서 피해 내용을 깊이 살펴보지 않거나, 증거 불충분으로 피해자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기지촌 외 국내 성산업 단속에 걸린 이주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성착취 피해가 있었어도 출입국 관리법, 성매매처벌법을 위반한 범죄자로 조사 받고 강제출국 당합니다. 현장 단체들은 성매매여성 불처벌을 외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성매매처벌법은 아직도 성매매여성을 처벌하는 법입니다.
올해 인신매매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여성가족부는 인신매매피해자식별지표를 만들었습니다. 두레방이 만나는 이주여성들은 실제로 피해자 식별지표의 많은 항목에 체크합니다. 이주여성들은 인신매매방지법에서는 보호 받을 피해자로 식별되지만, 성매매처벌법에서는 처벌대상인 피의자가 됩니다.
치료회복, 경제적회복, 법률 사건 진행 없이도 안전한 체류의 보장 등, 피해자 권리구제와 가해자 처벌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보다, 대한민국은 당사자를 탓하고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주여성 당사자를 성매매 범죄자로 처벌하고 추방까지 시켜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군위안부 당사자들은 국가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승리하였지만 한국정부의 사죄, 당사자의 진정한 명예회복, 앞으로 살아 갈 수 있기 위한 지원이나 충분한 조치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당사자들의 상황도 역시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정부의 사죄와 책임 추궁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일본과의 우방관계와 친선을 주장하며 역사 왜곡을 시도하고 일본군 위안부 이슈의 본질을 왜곡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위와 같은 피해를 겪은 이주여성 뿐만아니라 전쟁과 군사주의, 그리고 여성 혐오로 피해를 겪게 되는 모든 당사자들의 삶이 온전히 본인들이 바라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같은 피해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한국 사회, 그리고 국제사회가 구조적으로 보장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1월 25일 세계여성폭력추방의날을 앞두고 진행된 1623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주관은 기지촌여성인권연대에서 하였고 사회는 두레방 페페 활동가님이 보았습니다.
이어 기지촌여성인권연대 활동가들이 여는 노래 <바위처럼>에 맞춰 신나는 율동을 하였습니다.
우순덕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상임대표님의 주관단체 인사말에 이어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연대발언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두레방 활동가 김태정 님, 한소리회 상임대표 임연희 님, 경기여성연대 상임대표 오영미 님, 두레방 활동가 조이스 님, 평화나비 네트워크 서울연합지부 후지타 치사코 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안김정애, 김은진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공동대표님의 성명서 낭독을 끝으로 1623차 수요시위를 마무리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는 이용수 할머니,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사)성매매근절을위한 한소리회, 평화나비 네트워크, 민족통일애국청년회, 자립지지 공동체, 여성교회, 난민안전연구소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온라인 댓글로는 조안구달, 이원석, Sung Park(미국 시애틀), 원탑, Friends of 'Comfort Women' in Sydney – 시소연 님께서 함께해 주셨습니다.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제1623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간보고
오는 11월 2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입니다. 여성폭력 없는 사회를 위해 매년 11월 25일부터 ‘세계 인권의 날’인 12월 1일까지 일주일간 ‘여성폭력 추방주간’으로 지정해 그 의미를 되새기고 각국의 실천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처참하기만 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많은 여성과 아동이 처참한 폭력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전시가 아닌 곳의 상황도 녹록치 않습니다. 2021년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 3명 중 1명(약 7억 3,600만 명)이 일생에 한 번 이상 성폭력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이 중 상당수가 전배우자, 현배우자, 전파트너, 현파트너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했습니다.
대한민국 여성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22년도 대한민국 여성폭력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여성 약 30%는 강간, 강간미수, 성추행, 음란전화, 불법촬영, 불법촬영물 유포, 성기노출 등 각종 성폭력을 경험했으며, 결혼한 여성 10명 중 1명은 배우자로부터 성적, 신체적 폭력을 당한다고 합니다.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폭력 등 각종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과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여성도 35%에 달한다고 합니다. 경찰 통계가 없어 언론보도만으로 분석한 한국여성의전화 자료에 따르면, 지난 14년간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1,241명, 미수를 포함하면 2,609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과 성착취 또한 만연한 실정입니다. 여성은 어디에서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망언으로 시작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성평등 정책과 여성 지우기를 노골적으로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내년도 ‘여성 폭력 방지 및 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120억 원가량이 삭감되었다고 합니다. 장애청소년성인권교육, 젠더폭력 피해 예방 및 인식 개선, 성매매 피해자 구조 지원 사업, 성폭력 피해자 의료비 지원, 가정폭력 피해자 치료 회복 프로그램·의료비,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운영, 폭력 피해 여성 주거 지원 운영 등 젠더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관련 예산입니다. 직장 내 성차별·성희롱 상담을 24년간 이어온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예산과 이주여성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상담해 온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 역시 전액 삭감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국의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상담소와 피해자 보호시설, 고용평등상담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등의 운영을 사실상 중단하라는 도발임에 분명합니다.
이런 참담한 상황에도 우리 여성들은 삭제되거나 주저앉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성평등과 여성인권, 젠더폭력에 대한 저열한 인식으로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낙인찍으며 배제할 때, 여성들은 피해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국가에 전면 도전하며 법과 제도를 만들고 공적 시스템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왔습니다. 성폭력이라는 법적 용어조차 없을 때,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제 문제를 당당히 제기했고, 연대의 힘으로 국제 인권규범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거대한 권력이 강제해 온 망각의 늪에서 꿋꿋하게 살아나 역사를 다시 써 왔습니다.
지금의 우리들 또한 그 어떤 탄압과 무시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 길에 먼저 서계셨던 모든 선배 활동가들과 피해자들의 용기와 의지를 이어 다음에 올 미래세대에게 보다 넓은 길을 내어 줄 것입니다. 성평등한 세상을 위해, 여성폭력이 사라질 그날까지 함께 손잡고 걸어갑시다!
2023년 11월 22일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
주관단체 인사말_우순덕(기지촌여성인권연대 상임대표)
안녕하세요.
저는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상임대표이자 21년간 평택 안정리 기지촌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사)햇살사회복지회 우순덕 대표입니다.
2012년 8월에 출범식을 한 기지촌여성인권연대는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회복을 주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2014년 6월25일에는 기지촌 여성들, 변호인단과 활동가들, 연구자들,유관 단체들과 함께 <한국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제기 하였습니다.
그 결과 2022년 9월29일에 대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아 낸 바 있습니다. ‘국가의 기지촌 운영과 관리과정에서 기지촌 위안부였던 원고들을 상대로 성매매 정당한 조장행위와 위법한 강제수용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며 국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했으니 국가가 원고들에게, 기지촌 여성들에게 배상하라며 기지촌 여성들의 손을 들어 준 것입니다. 그 날 MBC와의 인터뷰시 숙자 할머니는 ‘나도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며 두 손을 들고 좋아하며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기지촌 여성들은 연극도 하고 뮤지컬도 하며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큐_< 나와 부엉이>, 연극_<숙자 이야기>, < 문밖에서>, <오프리밋> 그리고 뮤직컬_<You are my Sunshine.>,<그대 있는 곳까지> 등의 무대에서 직접 기지촌의 이슈에 대해 알렸습니다. 그리고 경기여성연대분들과 함께한 <경기도 기지촌 여성지원 등을 위한 조례> 제정활동에도 기지촌 여성들도 함께 하며 직접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또한 2021년에 개관한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_일곱집매>에서 기지촌 여성들이 해설사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통해 기지촌 여성들의 삶과 기지촌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며 다음 세대들을 비롯한 시민사회,국제사회와 소통하는 평화인권교육의 장이 될 것입니다.
다만, 2020년 5월에 <경기도 기지촌 여성지원 등을 위한 조례>가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소망하기로는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경기도 조례 실행과 국회 법안 제정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지촌의 그늘아래 많은 기지촌 여성들이 ‘애국자’ 이름으로 관리받고 인권을 유린당했던 동두천의 성병진료소(낙검자 수용소)가 평화적으로 보존되고 활용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9년 어버이날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저희 햇살사회복지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 이후 한동안 어버이날이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우리 안정리 기지촌 할머니들이 함께 지냈습니다 우리 기지촌 할머니들이 수요시위에 참석해서 발언도 했습니다.
오늘은 1623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날입니다.
1992년에 1월에 시작된 수요시위는 만 31년이나 지났습니다. 3년이 아니고 10년, 20년도 아니고 31년!
얼마나 수요시위를 더 해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이 풀릴까요?
고 황금주 할머니는 “진정으로 (일본은) 사죄하고 내 청춘을 돌려놓아라. 사죄하고 내 청춘 돌려놓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수요시위를 더해야 일본이 진정으로 사죄를 할까요?
고 김복동 할머니는 어느 날 수요시위에 일본 대사관을 쳐다보며 “이 늙은이들이 다 죽기 전에, 우리가 다 죽기 전에, 하루빨리 사죄하라. 하루빨리 사죄하라. 알겠는가 (일본)대사! 알겠는가 (일본)대사!” 라고 외치셨습니다.
17세에 베이징에서 일본군에게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하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14일 대한민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실을 최초로 증언했었지요. 그리고 일본을 상대로 “내가 살아있는 증거다” 라고 말씀하시며 소송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증거인데... 내가 살아있는 증거인데...” 라고요.
얼마나 수요시위를 더해야 일본군 성노예제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문제해결 그리고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이 회복될까요?
이곳은 여성인권과 평화를 외치는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입니다. 오래전부터 국경을 넘어선 세계연대의 장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어서 속히 일본군 성노예제문제가 해결되어 수요시위가 사라지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연대발언_오영미(경기여성연대 상임대표)
1945년 우리는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아 모두가 기뻐하였습니다. 1945년 9월 미군정이 실시되고 미군이 대한민국에 주둔하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후 주한미군이 계속 한국에 주둔하게 되었고 미군의 요청에 의해 미군기지촌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한국정부는 주한미군기지촌을 조성하고 성매매를 조장했습니다. 주한미군기지촌 여성들은 강제 검진, 강제 구금, 구타 및 인신매매와 착취를 당하며 살았습니다. ‘달러벌이’라는 이름과 달리 미군위안부들은 더많이 일할수록 더욱더 빚을 지게 되고 착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지금 대부분 생활보호대상자입니다.
병자호란때 중국에 포로로 끌려갔던 여인들은 오랑캐에 몸을 더럽힌 환향녀라고 몸을 더럽혔다고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환향녀들에게 자살을 하게 했습니다. 가문을 욕보이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오히려 죽음을 강요당했습니다. 일본군정신대로 끌려간 할머니들도 마찬가지로 고향에 돌아와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은 미군위안부 할머니들께 말했다지요. 아우들이라고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이 미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동생들, 아우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미군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형님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미군위안부를 ‘양공주, 양색시, 양갈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아주 무시하는 말입니다.
미군위안부 여성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태어난 이 나라에서 버려졌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개입하여 만들 미기지촌에서 우리는 폭력과 갈취, 이용을 당했습니다. 아무도 우리 입장을 생각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달러벌이라고 애국자라고 말해놓고 미군을 위하여 성병관리차원에서 강제로 가두고 위험한 주사를 놓고 폭력을 휘두르고 착취를 당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피해 당사자의 증언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어려서 동생과 같이 보육원에 들어가서 살다가 14살에 도망쳐 나와 식당에 들어가 6개월정도 일을 하다가 직업소개소에서 돈을 3배로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기지촌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21살 정도 되었을때 미군을 만나 1년정도 살다가 헤어지고 한국인 남성을 만나 딸을 하나 낳았다고 합니다. 그 딸은 매우 총명하고 글도 잘쓰고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중학교 다닐 무렵 한창 예민한 나이였을때 기지촌에서 일했던 엄마는 이웃집 아줌마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웃집 아줌마는 홧김에 ‘양색시인 주제에, 양갈보인 주제에’ 실수로 비밀을 폭로했습니다. 그 후로 똑똑하던 딸은 기가 죽어 학교에도 가지 않고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그토록 총명하던 딸은 초롱초롱함을 잃고 말았습니다. 미군위안부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한지 그 고통의 크기와 넓이,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 늪에서 헤어나오기 어렵습니다.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환향녀나 일본군위안부나, 미군위안부나 모두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괄시를 받고 천대받고 무시 받습니다.
저는 텔레비젼을 30년동안 안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연인’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는데 거기서 병자호란때 오랑캐에게 몸을 버린 여성들을 향하여 주인공이 개에게 물렸다고 그 자리가 더럽혀졌다고 할테냐, 맞았다고 맞은 자리가 더럽다고 할테냐?하고 말합니다. 오랑캐에게 욕을 보았다고 고백하자 ‘그럼 안아줘야지. 괴로웠을테니’하고 말합니다. ‘많이 아팠지? 많이 힘들었지?’ 하면서 위로합니다. 더러운 몸으로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느냐고 하는 사람들과 달리 말입니다.
일본군위안부들은 시대와 사회의 희생자였습니다. 우리 대신 고초를 겪었습니다. 참으로 미안합니다.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 손가락질과 괄시로 평생 지옥 속에서 살았습니다. 미군의 요청에 의해 미기지촌을 조성한 대한민국정부는 미군위안부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시대의 희생자들인 일본군 위안부들과 미군위안부들에게 국민을 대신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명예를 회복시켜 주어야 합니다. 일본은 당연히 일본군위안부들에게 사과하고 배상해야 합니다. 한국에 주둔하여 은근히 미기지촌을 형성하게 한 미국도 사과하고 배상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미군기지촌위안부 특별지원법을 어서 속히 입안하여 통과시켜야 합니다. 국회의원들은 우리의 누이들에게 “그동안 많이 아팠지요? 많이 힘들었지요? 말할수 없는 고초를 겪게 해서 너무 미안합니다.”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어서 속히 미군위안부특별지원법을 만들어 지원해야 합니다. 미군위안부들이 치유를 위한 자금, 생활안정지원금 등 지원으로 눈꼽만큼이라도 위로받기를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국가 폭력의 피해자인 미군위안부의 고통을 덜어주고 명예를 회복시킴으로써 한국 여성의 인권향상에 기여해야 합니다.
연대발언_김태정(두레방 활동가)
제가 활동하고 있는 두레방은 1986년부터 기지촌 안에 있으면서 기지촌여성들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지촌여성들은 미군과 한국 정부에 의해 조장된 기지촌에서 성착취 피해로 인권 침해를 받아왔습니다.
기지촌은 한국 전쟁 이후 미군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생기게 되었습니다. 미군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마을은 미용실, 식당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미군들의 유흥을 위해 많은 여성들이 필요했습니다. 미군은, 그리고 한국정부는 그들을 미군‘위안부’라고 불렀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위안부를 시작으로 국가는 군인들의 사기라는 목적으로 위안소를 설치 하였고 이는 일제의 군대문화와 제도들이 답습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정착하면서 위안부제도는 유지되었습니다. 국가는 안보라는 이름으로, 미군부대는 미군들의 사기를 목적으로, 일본이 기존 만들어 놓은 위안부 정책을 이어왔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편리하였고, 두려운 성병을 조금이나마 행정적으로 관리 할 수 있는 유리한 장치기도 했습다.
그렇게 닮을 수밖에 없었던 일본군‘위안부’와 미군‘위안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두 가지 이슈에 대한 해석은 여러 곳에서 달랐으며 이 같은 연유로‘위안부’를 단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질타를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2014년 기지촌여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 당시 여성들은 기지촌여성이라는 이름이 아닌 미군‘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제기하였습니다. 한국정부가 미국군인을 위한 시설관리와 기지촌여성들의 성병을 관리하면서 여러 행정서류에서 기지촌여성들을 ‘위안부’라 지칭했습니다.
이러한 문서가 남아 있음에도 ‘위안부’ 단어를 쓰는데 불편을 드러내는 곳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미군이 정착하게 되는 시기는 한국정부가 세워진 때로 기지촌여성들은 자발로 돈을 벌기 위해 기지촌으로 들어간 여성들로 낙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위안부’는 일제가 남겨놓은 산물로 그 고통은 한국군‘위안부’를 거쳐 미군‘위안부’가 된 것입니다. 조국이 있고 없음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닌 전쟁 안에서 그리고 안보라는 이름으로 제일 취약한 여성이 착취된 근거로 ’위안부‘를 봐야 할 것 입니다
많은 연구학자들과 단체들,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생각은 저희와 같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는 기지촌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만나시먄거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고개를 들라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군’위안부‘ 미군’위안부‘ 는 비교 대상이 아닌, 위안부 정책은 군사폭력과 여성 인권침해인
정책임을알아야합니다. . 다시 말해, 군사주의 폐해 아래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증거로서 우리는서로 연대해야 됨을 말하고 싶슴니다.
그리고 그 연대는 군사 폭력의 피해와 국가 폭력 피해안에 여성인권침해사례를 조사하고 그 피해를 드러내서 더 이상 또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두레방은 기지촌 안에 있으면서 기지촌여성들, 성착취 피해 이주여성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러다 2021년 성매매피해상담소 품을 개소하면 기존의 활동에서 확대되어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7년부터 두레방에서 활동 하면서 기지촌여성, 이주여성 그리고 집결지 여성들을 지원하는 활동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 여성들을 착취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정부는 무력하게 이 범죄를 묵인하고 있는 모습에 매일같이 화가 납니다. 설상가상으로 내년부터 여성들을 지원하는 예산이 반토막까지 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여전히 정부는 이 범죄의 고리를 끊고자 하는 의지가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일본군인을 위해 위안부로 동원되고 , 미군을 위해 성병검진을 정기적으로하고 검진증을 신분증처럼 들고 다녀야 하며, 욕구 해소라는 이상한 말로 성산업에 여성이 착취되고 있습미다.
즉 여성의 몸이 사고파는 개념이 되어 물건처럼 취급되는 성착취 현장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일본으로부터 사과받지 못하고, 기지촌을 조장하면서 행해진 국가폭력 사실을 반성하지 않은 작금의 현실은, 한국의 여성인권은 여전히 바닥에 자리잡고 있음의 반증입니다다.
두레방은 계속해서 여성인권문제를 다루며 기지촌여성이야기를 알리고 있습니다. 기지촌 안에서 벌어지는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침해를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한 국제 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있으며 다큐멘터리 <나와부엉이>와 같은 다양한 매체와 여러 사례집 출판으로 국내외로 기지촌 내 성착취 구조와 기지촌여성들이 받은 피해 사례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모든 활동은 기지촌 미군’위안부‘ 당사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지촌 여성들은 대부분 고령이 되었고 생애 마지막 순간에 용기를 내어 사회에 본인들을 드러냈습니다. 2014년 시작했던 국가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은 8년 이후인 2022년 국가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당사자분들의 외롭고 힘겹게 사회의 낙인과 싸운 나날을 재판을 통해 공식화 하였고, 기지촌의 성착취 구조와 정부의 기지촌 조장, 관리 등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기지촌여성들이 용기를 내고 모습을 드러낸것은 이미 당사자 활동을 하고 계시는 일본군’위안부‘ 당사자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레방에 오시는 기지촌여성들은 일본군‘위안부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때 언니들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과 본인의 처지가 같기도 하면서 다르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복잡한 말에는 정부가 조장한 기지촌 안에서 미군의 관리대상에 있는 본인들과 같다고 생각하시면서, 사회에 본인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야기 하지 못하는 위치가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2014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에서 기지촌여성들도 일본군’위안부‘ 당사자분들처럼 스스로 피해의 삶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지촌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기지촌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주여성들이 그 안에서 성착취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에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는 무능한 정부, 국가책임 묻는 판결에도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는 정부가 있어 아픈 역사는 계속 되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기지촌여성들을 이제 고령이 되었습니다. 쩌렁쩌렁 말씀하셨던 여성은 어느샌가 소리를 내는 것마저 어려워졌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수락산으로 오르락내리락 하신 또 한 여성은 어느샌가 방에서 티비를 통해 산을 보고 계셨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정부는 일본에 공식적으로 사죄를 이끌어 내는 외교를 펼쳐야 하며, 기지촌 조장에 국가 책임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여성들에게 사과하고 관련 지원을 적극 실시 해야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지촌여성 당사자분들의 활동에 관심가져주시고 평화의 연대로 함께 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후지타 치사코(평화나비 네트워크 서울연합지부)
안녕하세요. 평화나비 서울 연합지부 회원 후지타 치사코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온 교환학생이고 올해 2월부터 12월까지 한국에서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대학교에서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저는 일본군 성노예제를 정치적, 외교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했는지 상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대학교에서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고 일본군 성노예제가 정치적, 외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인권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시중에 여성의 인권을 심하게 침해하는 폭력적인 제도가 공식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은 물론 일본 정부가 지금도 제대로 된 사실인정이나 배상을 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할머니들이 걸어 온 힘들고 험한 길을 앞으로는 저도 같이 걸고 싶어서 평화나비에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본에 귀국하면 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평화나비 도쿄 지부를 세우는 것입니다. 7월부터 평화나비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에서도 이렇게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해 배우고 같이 행동할 수 있는 동아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살아 계시는 할머니들이 줄어드는 가운데 하루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본에서는 역사 왜곡 세력 때문에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서술이 교과서에서 사라진 상황입니다. 이렇게 일본에서도 역사 왜곡 세력의 목소리가 큰 상황이지만 그에 지지 않고 연대해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임연희((사)성매매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성매매근절을 위한 한소리회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연대의 마음을 담아 함께 하겠습니다.
전쟁과 폭력, 빈곤 등 다양한 이유로 여성에 대한 성착취가, 과거부터 오늘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성착취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1992년 1차 수요시위부터 2023년 11월 22일 1623차 수요시위까지
우리의 외침은 피해자와 시민의 연대외침이며 여성인권과 평화의 외침입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은 피해에 대한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은 제대로,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또한 인권과 평화라는 이름으로 해결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이 회복됩니다.
그것은 곧 여성들의 명예와 인권의 회복이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외침이 벌써 천육백스물세번째입니다.
우리는 피해보상이 이뤄질 때까지 함께 외칠 것입니다.
어떠한 꼼수도 훼방도 우리의 외침을 막을 수 없고 진상규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피해배상을 요구합니다.
일본정부는 전쟁범죄 인정하고 법적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외침에 응답할 때입니다.
오늘의 외침이 역사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착취 없는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수요시위에 함께 합니다.
연대발언_조이스(두레방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두레방 활동가 조이스 입니다.
두레방은 기지촌 미군 위안부 뿐만 아니라 국내 성매매산업에 있는 이주여성들과 함께하고있습니다. 한국 예술흥행 비자를 가지고 인신매매되어, 미군위안부 여성들이 과거에 있던 현장인 기지촌 성산업에서 일하게 된 이주여성들, 그리고 그 외 국내 성매매 산업에 피해를 경험한 이주여성들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현장에서 만나는 이주여성들은 기지촌 성 산업에서 성착취, 폭행, 협박과 통제, 경제적 감금, 노동착취 등 다양한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여성들이 피해를 신고해도 경찰은 자발성을 따지면서 피해 내용을 깊이 살펴보지 않거나, 증거 불충분으로 피해자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기지촌 외 국내 성산업 단속에 걸린 이주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성착취 피해가 있었어도 출입국 관리법, 성매매처벌법을 위반한 범죄자로 조사 받고 강제출국 당합니다. 현장 단체들은 성매매여성 불처벌을 외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성매매처벌법은 아직도 성매매여성을 처벌하는 법입니다.
올해 인신매매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여성가족부는 인신매매피해자식별지표를 만들었습니다. 두레방이 만나는 이주여성들은 실제로 피해자 식별지표의 많은 항목에 체크합니다. 이주여성들은 인신매매방지법에서는 보호 받을 피해자로 식별되지만, 성매매처벌법에서는 처벌대상인 피의자가 됩니다.
치료회복, 경제적회복, 법률 사건 진행 없이도 안전한 체류의 보장 등, 피해자 권리구제와 가해자 처벌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보다, 대한민국은 당사자를 탓하고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주여성 당사자를 성매매 범죄자로 처벌하고 추방까지 시켜왔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군위안부 당사자들은 국가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승리하였지만 한국정부의 사죄, 당사자의 진정한 명예회복, 앞으로 살아 갈 수 있기 위한 지원이나 충분한 조치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당사자들의 상황도 역시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정부의 사죄와 책임 추궁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일본과의 우방관계와 친선을 주장하며 역사 왜곡을 시도하고 일본군 위안부 이슈의 본질을 왜곡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위와 같은 피해를 겪은 이주여성 뿐만아니라 전쟁과 군사주의, 그리고 여성 혐오로 피해를 겪게 되는 모든 당사자들의 삶이 온전히 본인들이 바라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같은 피해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한국 사회, 그리고 국제사회가 구조적으로 보장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