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7일 오후 3시, 버지니아 애난데일 한국일보 건물 앞 잔디에서 워싱턴DC 평화의 소녀상이 제막식을 맞았습니다.
워싱턴DC 평화의 소녀상은 2016년 12월 10일 길원옥 할머니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워싱턴 DC 내셔널 몰 실번 시어터에서 환영식과 임시 제막식을 가졌지만, 3년 간 영구설치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지단체들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워싱턴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이하 워싱턴 추진위, 공동대표 워싱턴희망나비 조현숙.워싱턴정대위 이정실, 집행위원장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 박준형)‘ 주최로 10월 27일 일요일 오후 3시 버지니아 애난데일 한국일보사 앞에서 영구 설치되고 제막식을 치뤘습니다.
제막식에는 길원옥 할머니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 손영미 평화의 우리집 소장, 버지니아 저스티스 페어팩스 부지사, 챕 피터슨 주상원의원, 마크 김 주하원의원, 비비안 와츠 주하원의원, 캐런 키즈-가마라 광역교육위원, 이재수 워싱턴DC 19기 민주평통위 회장 등이 함께 했습니다.
축하 공연으로는 정수경 디딤새한국전통예술원 대표와 학생들의 난타 공연, 송승호 소리꾼, 노래패의 율동, 워싱턴 글로리아 크로마하프(단장 김영란) 공연, 정수경 디딤새 대표의 살풀이 춤, 서윤아 학생이 길원옥 할머니에게 드리는 편지 낭독 등은 물론, 길원옥 가수님의 시 낭독 시간도 있었습니다.
워싱턴추진위는 이번 평화의 소녀상 옆에 일본군성노예제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는 기억 공간을 설치하려고 합니다. 기억공간 조성과 평화의 소녀상 관리를 위한 후원금은 WCCW로 소녀상(Statue of Peace)이라 비고에 써 P.O.Box 60961 Potomac MD.20859로 보내실 수 있습니다.
길원옥 할머니께서 읽으신 시 함께 보아요~
“워싱턴 평화의 소녀상이 되어 나 여기까지 왔네요.”
(길원옥)
나 이제 정말 쉬어도 될까요?
참으로 긴 시간을 나 쉼 없이 달려왔나봐요.
멈추지 않으려 했어요.
내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내게 주신 사명 다하려고 애를 썼어요.
그런데...
내 다리 이제 이렇게 홀로 서서 걸을 수 없게 되었으니
아마도 우리 하느님이 이 딸에게 수고했다고,
이제 그만 하고 쉬어도 좋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이제, 여기 나와 함께 길을 걸어온 제 동지들에게 묻고 싶어요.
나, 정말 그래도 될까요? 나 쉬어도 될까요?
여기 이렇게 열세 살 원옥이의 모습 그대로
미국 사람 곁에 한국 사람 곁에
나의 지난 아팠던 역사를 뿌렸으니
그 역사가 평화의 소녀상이 되어 이 곳에 앉았으니.
그러나
열세 살 그 때
내 청춘도, 내 꿈도 모두 앗아간 일본정부
아직 내 앞에 진심어린 사죄도 하지 않고 있네요.
배상도, 역사교과서에 기록하여 교육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의 아픈 역사도,
우리의 용기있는 인권운동의 기록도 지우고 있네요.
해방 후 나를 향해
부끄러운 여자라고 손가락질하며 죄인취급 하던 한국사회,
아직도 나를 자발적으로 몸을 판 여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의 인권을 그렇게도 무참히 짓밟았던 가해국 편을 들며
힘겹게 목소리를 낸 나에게, 내 동료들에게, 우리에게
다시 침묵하는 것이 피해자답다고 조롱하고 있으니,
나 이제 정말 쉬어도 될까요?
나 아직 열세 살 집을 강제로 떠난 후
그리운 우리집 떠난지 8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눈 앞에는 평양시 서성리 76번지 26호
우리집 마당이 펼쳐지고,
하루의 노동을 마감한 후 마루 끝에 걸터 앉아 계시던 내 엄마 아빠 모습,
그 마당에서 놀고 있는 내 동생 모습이 눈에 선한데,
내 인생만큼이나 긴 분단,
기다려도 기다려도 내 집으로 돌아갈 날은 열리지 않은데,
나, 이제 정말 쉬어도 될까요?
(윤미향)
길원옥
내 삶에 가장 뜨거웠던 나의 동지여,
고맙습니다.
열세 살... 길원옥
그 때 어떻게 살았을까요?
상상할 수도 없는 그 시간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언니 오빠에게 부릴 어리광도 그저 부럽기한 한 남의 일
교실도 놀이터도 구름같이 흩어져버릴 꿈만 같은 일
하루 시간이 다가고 식구들 옹기종기 좁은 방에 둘러앉아
밥상을 마주하고 앉는 것은 분에 넘치는 사치,
추운 겨울, 대동강에서부터 불어오는
매서운 칼바람이 허술한 우리집 벽을 향해 불어댔지만,
한 이불 밑에 고단한 몸 누이고,
식구들 체온으로 온기를 만들어 노곤하게 잠들고 아침을 맞이하면
그까짓 추위쯤이야
아
아무 것도 누릴 수 없었던 그 시간들,
빼앗긴 어린시절의 일상들
어떻게 견디셨을까요?
당신은 그 억울하고 억울하고 억울했던 시간들을 다 참아내시고,
그 참혹했던 전쟁터에서 홀로 울음 삼키며
그 긴 세월 동안 고통을 홀로 견디시고 이겨내시고
우리에게 인권이 되고, 평화가 되어 주셨으니,
길원옥
여성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
통일운동가,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동안도 함께 손잡고 걸어왔듯이
이제부터 제가 길원옥이 되겠습니다.
제 남은 시간, 삶을 그대가 되어 살겠습니다.
여기,
워싱턴
할머니 뒤를 따라 날갯짓 하는
한인동포들과 그리고 미국 친구들과
함께 노랑 날갯짓 펼치겠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그 끔찍했던 역사를 만든
가해자를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진정으로 사죄하고 배상할 때까지
길원옥의 목소리가 되어 외칠 것입니다.
피해자 탓이라며
가해자 편에 서서 2차 3차 피해를 만들어내고 있는
한국사회를 향해서도
길원옥이 되어 당당하게 맞서겠습니다.
“내가 증거다”
“내가 기억이다”
“내가 길원옥이다”
바꿔나가겠습니다.
다시는 성폭력을 만들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싸우겠습니다.
한반도에 진정한 봄이 어여 올 수 있도록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열릴 수 있도록
우리가 평화의 꽃을 심겠습니다.
그리고 그 꽃길,
할머니...
우리와 함께 걸어 평양 가요.
- 글 : 윤미향
- 낭송 : 길원옥, 윤미향
2019년 10월 27일 오후 3시, 버지니아 애난데일 한국일보 건물 앞 잔디에서 워싱턴DC 평화의 소녀상이 제막식을 맞았습니다.
워싱턴DC 평화의 소녀상은 2016년 12월 10일 길원옥 할머니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워싱턴 DC 내셔널 몰 실번 시어터에서 환영식과 임시 제막식을 가졌지만, 3년 간 영구설치 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지단체들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워싱턴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이하 워싱턴 추진위, 공동대표 워싱턴희망나비 조현숙.워싱턴정대위 이정실, 집행위원장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 박준형)‘ 주최로 10월 27일 일요일 오후 3시 버지니아 애난데일 한국일보사 앞에서 영구 설치되고 제막식을 치뤘습니다.
제막식에는 길원옥 할머니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 손영미 평화의 우리집 소장, 버지니아 저스티스 페어팩스 부지사, 챕 피터슨 주상원의원, 마크 김 주하원의원, 비비안 와츠 주하원의원, 캐런 키즈-가마라 광역교육위원, 이재수 워싱턴DC 19기 민주평통위 회장 등이 함께 했습니다.
축하 공연으로는 정수경 디딤새한국전통예술원 대표와 학생들의 난타 공연, 송승호 소리꾼, 노래패의 율동, 워싱턴 글로리아 크로마하프(단장 김영란) 공연, 정수경 디딤새 대표의 살풀이 춤, 서윤아 학생이 길원옥 할머니에게 드리는 편지 낭독 등은 물론, 길원옥 가수님의 시 낭독 시간도 있었습니다.
워싱턴추진위는 이번 평화의 소녀상 옆에 일본군성노예제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는 기억 공간을 설치하려고 합니다. 기억공간 조성과 평화의 소녀상 관리를 위한 후원금은 WCCW로 소녀상(Statue of Peace)이라 비고에 써 P.O.Box 60961 Potomac MD.20859로 보내실 수 있습니다.
길원옥 할머니께서 읽으신 시 함께 보아요~
“워싱턴 평화의 소녀상이 되어 나 여기까지 왔네요.”
(길원옥)
나 이제 정말 쉬어도 될까요?
참으로 긴 시간을 나 쉼 없이 달려왔나봐요.
멈추지 않으려 했어요.
내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내게 주신 사명 다하려고 애를 썼어요.
그런데...
내 다리 이제 이렇게 홀로 서서 걸을 수 없게 되었으니
아마도 우리 하느님이 이 딸에게 수고했다고,
이제 그만 하고 쉬어도 좋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이제, 여기 나와 함께 길을 걸어온 제 동지들에게 묻고 싶어요.
나, 정말 그래도 될까요? 나 쉬어도 될까요?
여기 이렇게 열세 살 원옥이의 모습 그대로
미국 사람 곁에 한국 사람 곁에
나의 지난 아팠던 역사를 뿌렸으니
그 역사가 평화의 소녀상이 되어 이 곳에 앉았으니.
그러나
열세 살 그 때
내 청춘도, 내 꿈도 모두 앗아간 일본정부
아직 내 앞에 진심어린 사죄도 하지 않고 있네요.
배상도, 역사교과서에 기록하여 교육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의 아픈 역사도,
우리의 용기있는 인권운동의 기록도 지우고 있네요.
해방 후 나를 향해
부끄러운 여자라고 손가락질하며 죄인취급 하던 한국사회,
아직도 나를 자발적으로 몸을 판 여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의 인권을 그렇게도 무참히 짓밟았던 가해국 편을 들며
힘겹게 목소리를 낸 나에게, 내 동료들에게, 우리에게
다시 침묵하는 것이 피해자답다고 조롱하고 있으니,
나 이제 정말 쉬어도 될까요?
나 아직 열세 살 집을 강제로 떠난 후
그리운 우리집 떠난지 8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눈 앞에는 평양시 서성리 76번지 26호
우리집 마당이 펼쳐지고,
하루의 노동을 마감한 후 마루 끝에 걸터 앉아 계시던 내 엄마 아빠 모습,
그 마당에서 놀고 있는 내 동생 모습이 눈에 선한데,
내 인생만큼이나 긴 분단,
기다려도 기다려도 내 집으로 돌아갈 날은 열리지 않은데,
나, 이제 정말 쉬어도 될까요?
(윤미향)
길원옥
내 삶에 가장 뜨거웠던 나의 동지여,
고맙습니다.
열세 살... 길원옥
그 때 어떻게 살았을까요?
상상할 수도 없는 그 시간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언니 오빠에게 부릴 어리광도 그저 부럽기한 한 남의 일
교실도 놀이터도 구름같이 흩어져버릴 꿈만 같은 일
하루 시간이 다가고 식구들 옹기종기 좁은 방에 둘러앉아
밥상을 마주하고 앉는 것은 분에 넘치는 사치,
추운 겨울, 대동강에서부터 불어오는
매서운 칼바람이 허술한 우리집 벽을 향해 불어댔지만,
한 이불 밑에 고단한 몸 누이고,
식구들 체온으로 온기를 만들어 노곤하게 잠들고 아침을 맞이하면
그까짓 추위쯤이야
아
아무 것도 누릴 수 없었던 그 시간들,
빼앗긴 어린시절의 일상들
어떻게 견디셨을까요?
당신은 그 억울하고 억울하고 억울했던 시간들을 다 참아내시고,
그 참혹했던 전쟁터에서 홀로 울음 삼키며
그 긴 세월 동안 고통을 홀로 견디시고 이겨내시고
우리에게 인권이 되고, 평화가 되어 주셨으니,
길원옥
여성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
통일운동가,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동안도 함께 손잡고 걸어왔듯이
이제부터 제가 길원옥이 되겠습니다.
제 남은 시간, 삶을 그대가 되어 살겠습니다.
여기,
워싱턴
할머니 뒤를 따라 날갯짓 하는
한인동포들과 그리고 미국 친구들과
함께 노랑 날갯짓 펼치겠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그 끔찍했던 역사를 만든
가해자를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진정으로 사죄하고 배상할 때까지
길원옥의 목소리가 되어 외칠 것입니다.
피해자 탓이라며
가해자 편에 서서 2차 3차 피해를 만들어내고 있는
한국사회를 향해서도
길원옥이 되어 당당하게 맞서겠습니다.
“내가 증거다”
“내가 기억이다”
“내가 길원옥이다”
바꿔나가겠습니다.
다시는 성폭력을 만들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싸우겠습니다.
한반도에 진정한 봄이 어여 올 수 있도록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열릴 수 있도록
우리가 평화의 꽃을 심겠습니다.
그리고 그 꽃길,
할머니...
우리와 함께 걸어 평양 가요.
- 글 : 윤미향
- 낭송 : 길원옥, 윤미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