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전시성폭력재발방지예일대학교 <'위안부'와 전시성폭력> 국제 심포지엄

예일대 국제심포지엄 - “위안부”와 전시성폭력
일시: 2019년 10월 12일(토) 10:00 ~ 16:00 장소: 뉴헤이븐 옴니 호텔

국제심포지엄은 #STAND 회장 #유민승 학생의 사회와 영화 김복동의 12분 요약편 상영으로 시작했습니다.

유민승 학생은 예일대에서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해 힘쓰는 학생들과 모임을 소개했습니다.

<개막연설> 마이크 혼다 전 미국 하원의원
2차세계대전 중 루즈벨트 대통령 때 아시아계 100,000여 명이 강제수용되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였으며, 이에 대해 1975년 사죄와 배상 요구했다.
마이크 혼다 전 의원은 어린 시절 엘살바도르 평화유지군으로 참여하였고, 이때 엘살바도르 내전의 역사와 미군에 대해 배웠다. 이후 1993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열린 중일전쟁 관련 전시를 접하며 일본의 아시아 전역에 걸친 전쟁범죄가 미국에서 많이 알려지지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1999년 일본정부가 2차세계대전 중 아시아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인정, 사죄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활동하자, 일본정부는 왜 미국에서 이런 일을 하냐고 공격/반박하였고, 이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옳은 일을 하고, 피해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 위해 꾸준히 이어왔다. 하지만 2006년 민주당 집권까지 결의안 통과는 어려움을 겪었다.
2007년 HR121 결의안 통과는 피해자의 증언과 활동가, 연구자 등의 목소리가 침묵을 깬 사례이다.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정부, 아베도 진실을 알고 있으며, 제대로 된 사죄를 위해 힘써야 한다. 국제사회는 여성폭력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콩고, 나이지리아 보코하람 등 전시상황과 자연재해 중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개인 뿐만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으로 여성폭력에 맞서 싸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메인패널>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근대사학자, 주오대 명예교수
1991 일본의 젊은 세대도 알아야 한다는 김학순 할머니 증언을 듣고,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여, 아사히신문에 기고하고 1992년 일본군의 책임을 나타내는 자료 등을 발굴하여 발표하였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정부가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대한 관여를 어느 정도 인정하였고, 미야자와 총리 방한, 1993년 고노 담화 때 일부 인정키도 하였다.
하지만 우익들의 부정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상태이다.
1992년 연구자, 변호사, 시민운동가들과 함께 일본정부 전쟁책임 센터 설립하여 진상규명 등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때 한국, 필리핀 등을 방문해 피해자들의 증언을 녹취했다.
1995년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성폭력, 계급차별 등 임을 알리는 책 <종군 위안부>를 발간하였고, 이는 영어로 번역되었다. 이후 유엔 특별보고관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게이 J. 맥두걸 등의 조사에 협력하였다.
2015년 한일합의 발표 이후, 왜 일본사회에서 아직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 했는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여 2019년 관련 책 <Kaishun suru Teikoku 매춘하는 제국>을 발간했다.

일본군은 1937년 중국, 괌, 미국, 네덜란드 등에 걸쳐 침략전쟁을 일으키며 해외 주둔 부대를 늘렸다. 1932년부터 '위안소'를 설립하여, 일본, 한국, 대만, 중국,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필리핀, 버마,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전역, 남태평양섬, 인도네시아 자바의 네덜란드계 여성들이 피해자가 되었다.
일본군'위안소'설립 목적은 크게 1) 일본군인의 민간인 강간 방지, 2) 사창가가 아닌 위안소를 통해 일본군인 성병 관리, 3) 일본군인의 사기 진작, 4) 사창가 여성들이 스파이로 정보 빼돌리는 위험 줄이기 등 4가지였으나, 위안소를 설립한다고 민간인 강간이 줄지는 않았다.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식민지, 점령지 피해자들의 사례를 통해 식민지배 중 민족차별을 보여주는 한 편, 일본 피해자들의 사례를 통해 가난한 집안에서 인신매매로 이미 성매매 피해를 당하고 있었고, 일본정부와 군이 이런 여성은 ‘위안부’가 되어도 된다고 판단하는 계급차별을 저질렀음을 보여준다.

윤미향 발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운동을 가능하게 한 3가지는 1) 여성폭력 반대하는 사회 운동, 2) 민주화 운동, 3) 피해자들과 동시대를 살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여성학자 등이 있다. 피해자들가 연대하며 피해자들의 인권, 권리회복을 꿈꾸는 나비운동은 일본군'위안부' 신체적, 정신적 피해 지원, 인권캠프 및 쉼터를 통한 정신적 지원, 1993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등을 위한 한국정부 압박, 미래세대가 중심이 되도록하는 수요시위, 평화비 건립,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피해자들의 아시아연대, 남북연대, 국제연대, 세계 전시성폭력 피해여성들을 지원하는 나비기금, 김복동평화상, 길원옥 평화상 활동 동으로 이어졌다.
피해들의 존엄을 나타내는 보라색과 연대를 뜻하는 노랑을 섞은 나비처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노란 나비가 되었으면 좋겠다.

<메인패널 질의응답>
1) State to State apology 가 문제해결책이라고 생각하시는지, 현재 상황을 볼때 가까운 시일내에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은데 향후에는 어떤 방향을 문제해결을 위한 운동이 이루어져야 할까?
공식사죄와 법정배상이 이뤄지려면 범죄사실에 대한 인정이 먼저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 문제는 한일사이 외교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전쟁 중, 자연재해 중 여성에게 일어나는 인권 문제로 보아야 한다. 지금 수요시위는 청소년 등 젊은 세대가 주체가 되어 이끄는데, 이렇듯 다양한 세대가 함께 일본정부에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이 미국을 비롯 세계 각지에서 일어났으면 한다.
2) 종전 직후 1951년 미-일 조약이 있었고 당시 미군을 비롯한 동맹국 정부들은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전쟁범죄로 보지 않은 것 같다.
미, 연합군을 비롯하여 맥아더 장군도 일본군'위안부'의 존재를 ATIS 등의 정보부대를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범재판이나 전범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3) 요시미 교수께서는 지난 30년가까이 증거수집과 사료발굴을 진행했는데 향후 차세대 연구자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어떤방식으로 이러한 활동이 계승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밝혀진 자료 만으로도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일본정부, 군이 계획하고 실행한 범죄라는 점, 위안소 내의 환경이 성노예와 같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더 많은 자료가 공개, 발굴된다면 실제 피해 규모 등에 있어서 더 많은 조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
4) 호주 선주민에 대한 제노사이드에 대해 2007년 호주의 총리가 정부차원에서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인권침해범죄에 대해 사죄했는데 이런 모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법적 구제절차를 통한 해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연행과 동원과정 등 제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바란다.
호주 선주민에 대한 사죄를 본받아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조사, 사죄, 법적 배상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발제 내용 참고)


<미니 패널>
국제인권 International Human Rights (좌장: 완지루 무코마)
Colsolee Nishimwe 르완다 제노사이드 생존자.운동가, Wiola Rebecka 인권운동활동가

역사 정의 그리고 교육 Historical Justice and Education (좌장: 크리스티나 벨레즈 발렌시아)
요시미 요시야키 주오대 교수, 유마 토타니 하와이대 교수, 린다 하수누마 브릿지포트대 교수

운동과 사회적 기업 Activism and Social Venture (좌장: Joliana Yee Hui Joo AACC 디렉터)
윤미향 정의연 대표, 바스피예 굿맨 코소보 생존자, 김건영 마리몬드 글로벌 캠페인 디렉터

김건영 마리몬드 발표
마리몬드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삶과 경험에 근거하여 꽃을 고르고 그 꽃을 이용하여 패턴을 만들고 패턴을 이용한 다양한 상품개발 판매를 진행하여, 영업이익 50%, 판매의 10%을 기부하여 지금까지 약 18만달러를 기부하였다.
미국에서는 곧 마케팅 프로그램과 사회적 영향력을 함께 묶은 마리몬드 앰배서더 프로그램을 시작할 계획이다.

바스피예 크라스니치-굿맨 코소보 생존자
1998년~1999년 코소보 전쟁 중 세르비아계 경찰, 시민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고, 2013년 유엔 등에서 KRCT (코소보 단체) 와 같이 활동하면서 22개국 분쟁 중 성폭력 생존자들과 네트워크를 하는 무퀘게재단과 연결되었다. 2018년 6월 정의연과 함께 유엔 인권이사회 부대행사를 통해 공개 증언을 한 이후 코소보에서 공개증언했고, 이러한 활동은 코소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여전히 코소보의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부장적인 사회로 인해 여전히 공개증언이나 활동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2018년 김복동 할머니 등 한국의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서 성장할 수 있었고 많은 국가들을 다니며 증언활동을 통해 분쟁 중 성폭력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좌장 질문
Q.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은덩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일본정부로부터의 사죄, 대중에 대한 교육인가?
#윤미향: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회복이다. 가해자로부터의 사죄, 책임인정, 배상을 통해 어떻게 이 문제가 올바르게 해결되는지 그 과정을 함께 사는 공동체가 또 살고있는 국제사회가 그것을 목격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가 다시는 그와 같은 피해의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화된 학교교육과 언론 등을 통한 사회교육이 필수적이다. 지지하고 함께 연대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고,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동시적을 이루어지는 것이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

마리몬드의 활동도 문제해결 운동에 있어서 사회교육을 담당하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며, 다른 기업, 사회의 제도들이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에 기여하는 모델들도 적극적으로 개발하면서 온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성폭력 피해자, 사회적 소수자들의 정의실현을 위한 참여와 기여를 만들어내었으면 한다.
30년 운동의 역사속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기업들이 이런 역사의 아픈 문제, 특히 여성들을 성폭력 문제해결에 함께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물론 지금도 대기업들은 이런 문제를 위해 해결하는 데 참여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게 현실이다.
여성과 관련한 기업, 일반회사까지 참여를 확산시키기 위해 로비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가 운영하는 병원이 1995년부터 지금까지 피해자들을 위한 무상의료서비스 제공, 피해자들 쉼터 제공을 진행하고 있다.
#이솔화장품이라는 작은 화장품 대표도 계시지만 고객들이 이 문제해결에 어떻게 동참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속에 고객들을 위한 강연회를 1년에 3~4회 개최하고 이솔화장품의 수익의 일부분을 세계 평화비 건립활동, 나비기금 활동 등에 다시 기부하는 것을 통해 재발방지의 목적을 가진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리몬드 김건영: 기업이 이 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역할들은 자금제공, 일반대중들 고객들이 이 문제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영향력 이 두가지가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함.

#바스피예: 세르비아의 사죄와 범죄에 대한 법적책임을 원하고 있음

Q. 한국사회의 문제해결 운동이 특별한 지점이 있다면?
윤미향: 강한 시민사회. 80년대 후반 여성운동이 확산되면서 피해자들이 목소리 내는게 가능해졌고 이를 통해 정부를 편화시킬 수 있었다고 본다. 시민사회의운동이 정부를 변화시키고 국제사회의 여론을 만들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 60년대에 대학을 다닌 분들이 90년대에 '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운동을 시작했지만 새로운 세대로의 계승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젊은 사람들에 대한 역사교육, 시민사회운동의 중요성 인식이 확산되지 못했다.

시민운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성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들의 미투에 응답하는 강한 위드유 #WITH_YOU 가 그 파급력을 만들고 이를 통해 기업, 학교, 정치의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본다.

김건영: 불의에 분노할 줄 알기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분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넘어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문화가 있었고 이를 통해 인권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잘 진행해 왔으며, 이 맥락에서 마리몬드 활동도 함꼐하고 있다.

바스피예: 전쟁범죄 피해자로 인정받기까지 15년이나 걸렸던 상황이다. 피해자들이 낙인 등의 이유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운동 모델이 이후에 코소보에도 가능해지길 바란다.

Q. 운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공격을 받거나 도전과제에 직면했는지?
바스피예: 세르비아 공동체로부터 많은 공격이 있었다. 그런 부정적인 대응들을 어떻게 다루면 되는지 깨닫는데 시간이 들었지만 긍정적인 방향에 초점을 맞춰 앞으로 나가는 것을 배웠다.

김건영: 기업의 경우는 할머니들을 이용해서 돈을 번다 감성을 판다 이런 이야기들로 공격을 받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는 운동단체에도 마찬가지로 듣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답답한 심정이다. 대응하기 위해서는 결국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히 계속해서 그 이야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하는 방법외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윤미향: 다양한 형태의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국내의 일이라면 가해자 피해자 사회가 있을텐데 '위안부'문제의 경우 가해자는 일본 피해자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90년대 초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때 가장 먼저 부딪힌것은 한국의 가부장문화 즉 성폭력 피해자가 부끄럽게 여겨지는 그런 가부장성. 사법주 정치권 사회 등. 모든 문화들이 가장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첫번째 공격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사회가 공통으로 공격했던 것은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는 것. 국가가 강제로 끌고간것이 아니다라는 비난. 한국의 경우 식민지 36년의 끝에 해방이후에도 여전히 식민지 시기에 정권을 잡았던 사람들 상층권력이 전쟁 후 친일파들 청산되지 않고 해방을 맞게되고 역사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고 피해자들을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못함. 일본우익들의 주장과 같이 돈을 벌기위해서 스스로 성매매를 한 여성들인데 왜 국가가 책임져야하냐는 논조들이었따. 이는 곧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자행한 국가범죄임을 부정하는 태도가 가해국과 한국사회 모두 존재하였고,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경제 안보측면의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세력으로 되버리는 것, 반일여론을 확산하고 만드는 단체라는 공격이 여전히 존재한다.
일본우익들의 협박편지 대표를 받기도 한다. 편지봉투 자체가 굉장히 성폭력적인 편지와 태극기의 중앙에 남녀 나체가 성관계 하는 모습이 있고 만약 운동을 중단하지 않으면 이 내용으로 세계 각국에 윤미향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겠다는 협박 등이다. 일본방문 활동시마다 공항에서 이유없이 억류되기도 하고, 이런 공격들이 결국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차단하려고 하는것. 압력을 가하면 가할수록 가해자의 부끄러운 행동까지 세계에 폭로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스프링을 힘껏 누르면 더 튀어로는 것처럼, 되려 아베의 일련의 방해활동이 우리 운동의 홍보대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코소보의 경우 생존자들에 대한 공격을 막아주는 것도 우리 노랑 나비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Q. 마리몬드 모델은 굉장히 유니크한데. 기업들이 이런 사회운동의 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김건영: 애초에 그 목적으로 기업이 생겼기때문에 이런 사회적기업이 많이 생기는게 좋겠지만... 저희보다 크고 영향력이 있는 기업들은 용기를 가지는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업은 그런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해야하고 그 이야기만으로도 큰 영향력을 줄 것이고 여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단체중에서 아동성매매 문제를 다루는 담당자가 있었는데 기업들의 지원이 없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기업들이 불편한 이슈여서 그렇다 말하더라. 기업들이 마케팅 측면으로만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미향: 기업의 이윤을 사회적 약자 소수자 무엇보다 사회에서 이쁘지않다고 생각하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서 환원하는 것은 사회정의실현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그리고 어떤 사회의 전반적 기부문화를 제대로 확산하고 정립하는 데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내 대부분의 기업들은 정치적 문제와 결부되어있는 또는 근사한 장학사업, 기업주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큰 사업이 더 낫다고 생각하며 예를 들어 성폭력 문제와 관련된 영역에 기부하는 것은 꺼리는 경향이 있다. 기업들의 편견이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기업의 이익을 환원하는 자체가 기업이익 자체에 있어서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만드는 것이 시민사회의 역할이며, 그리고 그런 기업들에게 어떤 유리한 것들을 정책적 제도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기업들과 사회정의실현 통로를 만들어갈 때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일 수 있을텐데. 노동조합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 의료사업장의 노동조합의 역할, 김복동 할머니의 경우 병원비를 연세의료원에서 무상으로 제공했는데 그 역할을 연세의료원 노조의 역할이 있었다. 우리는 또한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문제를 갖게하는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이룰 수 있겠다.

Q. 장기적으로 이 운동을 어떻게 다른 주제들과 다양한 연결성을 가지고 이어질 수 있을까?
윤미향: 청소년들이 멋진 발언을 하고 아주 우리가 보기에 감동스런 발언을 할 때 대견하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청소년들이 그건 청소년 혐오라고 하더라. 청소년에 대한 우리의 편견. 이처럼 우리 운동에 있어서 처음시작에는 미래세대에게 다시는 이런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지만 지금 미래세대들이 이건 우리의 문제고 과제이고 할일이다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우리의 운동은 미래세대가 주체가 되어 그들의 세상을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이미 주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 학생들이 되고 있다는 보람이 있다
어떻게 한국의 청소년운동은 그것이 가능할까? 역시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의 영향이다. 살고있는 사회에 대한 체험 교육활동을 통해. 현장에 참여하게 하는 교육 교사를 통해 혹은 민주화 운동을 해왔던 부모세대들로 부터 그런 교육을 받는다.

Q. 직접적으로 전시성폭력 영향을 받지 않았던 우리 같은 사람들이 생존자들이 세상을 떠난 뒤 어떻게 운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
김건영: 수요시위에서 이용수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여러분 모두는 피해자다 나는 직접 피해자고 여러분들은 간접 피해자다 일본정부가 사죄하지 않는 것은 우리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 생각에 어느정도 하게되었다. 김복동 할머니를 보내드리면서 생전에 할머니의 활동을 통해 연대했었는데 돌아가신 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생각하고 알게되고 기억하고 동참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생존자들이 모두 떠나더라도 비슷한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할머니들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을 만들기위해 활동하는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김복동 센터를 통한 전시성폭력 재발방지 활동을 이어가고 현재도 발생하고 있는 일상에서의 성폭력 문제해결을 위한 운동과 연관지어 가는 것,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전파하는 것을 통해 운동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바스피예: 우리 모두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역할들을 할 수 있을 것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가 그 목소리가 되는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침묵하지 않고 다른 문제들과 같이 항상 이야기해야 한다.

윤미향: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것은 중요한 출발이라고 본다. 이 자리에 함께 한 분들이 이미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경험을 또 바스피예의 경험을 우리가 함께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부터 다시 우리가 미국에서 어떻게 활동을 해야할 것인가 각자의 상황에서 각자의 재능으로 역할 속에서 할 수 있다고 봄. 일본대사관, 코소보 대사관이 미국에도 있을 것인데 예를 들면 오늘 행사를 통해 배운 우리들이 11월 25일 세계여성폭력 추방의 날에 맞춰서 가해국의 대사관앞에 모여서 혹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이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실현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의연은 11월 25월 우간다 굴루 지역으로 가서 2020년 11월 25월 김복동 센터 건립할 계획이고 그 센터 내에서 학교, 쉼터, 추모관, 역사관, 경작지 등을 만들어서 그 센터가 우간다 지역에서 또 다른 김복동을 양성할 수 있도록 나라와 나라를 넘어 확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일본군'위안부'문제들에 대한 자료는 여전히 은폐되어있고 우리는 현재 미투를 시작했던 피해자들만 알고있고 전쟁터에서 죽어간 사라져간 수많은 피해자들은 연구자들이 학생들이 재능들을 발휘해 진상조사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는 고독한 해외 캠페인 일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길 가다가 누군가 우리 운동의 표식 나비를 달고 있는 모습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힘을 받게되는데 이렇게 달고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힘을 받게된다.

참석자 질문
Q. 운동을 계속 이어가도록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A. 사람들을 통해서 찾는 것. 저만이 아니라 김복동 할머니 역시 언제 죽을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현실적으로 보면 일본정부 사죄. 배상도 안했는데 희망이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 앞에서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말씀을 되돌아보면 결국은 할머니들과 연대했던 사람들의 힘.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서 받는 지지와 격려. 예일대 #STAND학생들의 오늘 이 활동을 보면서도 어디가서 또 어떻게 자랑할까 생각했는데. 우리 운동을 통해 누군가를 웃게하는 것. 예를 들면 우리 할머니들이 우리들의 위드유 덕분으로 웃게되고 소녀시절 품었던 꿈이 이루어지고 그냥 일반사람들이 누리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 이런 모습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오늘 이곳에 온 분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바스피예: 언제나 옆에서 지지해주는 남편.. 지치고 힘들때 마다 2만명이 되는 또 분쟁지역 곳곳에 있는 피해자들을 대변해서 활동한다는 것을 되새겨주고... 그리고 나의 딸들.. 우리 아이들이 그런일을 겪게 둘 수가 없기때문에 이 일을 이어가고 있다.

김건영: 아직 활동경력이 길지 않아 그만두고 싶다 생각은 들지않았다. 하지만 그 강인했던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저분의 이야기는 누군가는 계속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할머니들이 이 이야기를 하게하는 동기라고 생각한다.

<폐막> #유민승 #STAND 회장
소녀상 건립등을 통한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관심을 높이기 위한 이런 활동을 예일에서 하게된 것 영광. 한국의 활동가들, 일본의 교수, 르완다와 코소보에서 생존자들이 함께 해줌에 감사한다. 향후에도 이런 활동을 이어가길 기대하며 오늘 참석하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