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법적대응[특별기고] 김창록 경북대학교 로스쿨 교수

안녕하십니까?
경북대학교 로스쿨에서 법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김창록입니다.


I.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4부의 판결은 참으로 획기적인 것입니다. ‘보편적 인권이라는 실질이 국가면제라는 형식에 우선한다’라고 명쾌하게 선언한 재판부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주권국가를 다른 주권국가의 법정에 세울 수 없다’라는 국가면제의 법리는, 일본 정부가 주장하듯 그렇게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상행위의 경우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오래 전에 확립된 원칙이고,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중대한 인권침해의 경우에도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그 인권 중심의 새로운 국제법을 만들어가고 있는 도도한 흐름에 동참하기로 선언한 것이며, 그 흐름을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힘찬 추동력이 될 것입니다.


II.

동시에, 이 획기적인 판결을 다름 아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만들어내신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오랜 세월 동안, 피해자들은 전 세계의 거리에서 강연장에서 의회에서 법정에서, ‘우리의 아픔을 구제해달라’, ‘우리에게 정의를 돌려달라’라고 간절하게 호소해왔습니다.

그 호소에 공감한 국제사회는, 수많은 보고서와 결의와 선언을 통해, ‘일본군‘위안부’를 강요한 행위는 반인도적 범죄이며, 일본은 지금 온전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상식’을 확립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법정은 그 상식을 기어코 거부하려 했습니다. 일본 법원은, ‘권리는 있지만 소송은 할 수 없다’라는 궤변을 만들어 내면서까지 피해자들의 호소를 내쳤습니다. 미국 법원은 ‘다른 나라들 사이의 외교문제’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이 지나, 대한민국 법원에 커다란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이토록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서조차 국가면제라는 형식논리를 내세워 눈 감는다면, 과연 법원은 왜 필요하고 판사는 왜 필요한가?’ 바로 이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민국 법원이 응답한 것이 다름 아닌 이번 판결입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할머니들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들의 호소와 그에 공감한 전 세계 시민들이 30년을 외치면서 만들어낸 역사가, 마침내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을 통해 ‘정의’로서 선언된 것입니다. 이 장대한 역사를 만들어낸 모든 분들께 깊이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III.

그런데, 이 지점에 이르러서도 일본 정부는 거부에 거부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국가면제를 만능의 방패라도 되는 듯 내세웁니다. 하지만 그것은 ‘중대한 인권침해를 저질렀지만 절대로 책임질 수는 없다’라는 자백에 불과합니다.

일본 정부는 1965년의 「청구권협정」에 의해 다 끝난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인정한 것은 1992년입니다. 1992년에 비로소 인정한 문제가 1965년에 끝났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합의’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신주단지 모시듯 받듭니다. 하지만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전면 부정하면서, 전 세계의 소녀상을 없애려 혈안이 되어 있는 일본의 모습은,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합의가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습니다.

일본군‘위안부’라는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조차 부정하면서, 온 나라가 나서서 평화와 인권의 상징인 소녀의 동상과 싸우고 있는 모습은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것이 대국을 자임하는 나라의 모습일 수는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금이라도 판결에 따라 배상을 하고, 사실인정, 사죄, 진상규명, 역사교육, 추모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권을 중심에 세우는 국제사회의 도도한 흐름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일본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IV.

이번 판결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는 놀라울 따름입니다. 외교부 대변인 논평에서 판결에 대한 평가라고 볼 수 있는 문구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한 마디 뿐입니다. 게다가 바로 뒤이어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함”이라는 문구가 이어집니다.

2018년 1월 9일의 외교부장관 발표를 통해, 문재인 정부는 ‘2015년 합의’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화해・치유재단’을 해산시켰습니다. 잘못 전달되었기에 돌려주어야 할 10억엔에 해당하는 103억원을 양성평등기금에 출연해 두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이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2015년 합의의 적용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따라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과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하는 것은 하나의 입장 속에 양립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제라도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노력이 만들어낸 역사에 적극 동참해야 합니다. 한국인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들이 앞장서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역사이며,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 역사를 확고하게 딛고서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을 지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이번 판결을 통해 확인된 새로운 국제법을 앞장서 실천함으로써 인권 중심의 세계사를 선도해야 합니다.


V.

끝으로 다시 한 번, ‘여성인권과 평화’라는 새로운 가치, ‘인권이 주권에 우선한다’라는 새로운 국제법을 창조해낸 할머니들과 전 세계 시민들의 숭고한 노력 앞에 깊이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번 판결을 든든한 디딤돌 삼아, 할머니들께서 남겨 주신 ‘여성인권과 평화’라는 가치를 소중히 지키고 잘 키워가야겠다는 다짐을 되새깁니다.

감사합니다.


20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