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9일에 행, 복아, 소정 활동가가 포항 할머니 댁에 다녀왔습니다. 할머니 댁을 향해 가는 길목마다 봄이 찾아왔음을 여실히 느낍니다. 연두색 이파리들이 손을 흔들고, 복사꽃은 붉게 피어 촘촘하게 바람에 흔들립니다. 할머니께서도 이런 봄 풍경을 만끽하고 계셨으면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 댁에 도착하니 이미 집 앞 마당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시간이 조금 늦어져서 전화를 드렸는데 저희와 엇갈렸는지 계속 통화 연결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전화했는데 받지 않았다며 도착하자마자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이셨습니다. 그만큼 저희를 많이 기다리셨던 것이겠죠. 다음에는 더 일찍 와야겠다 싶었습니다. 새벽을 가르고 포항으로 와야겠습니다. 조금 늦어진 탓에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나설 채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문을 닫고 나섰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열쇠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다 같이 활동가들까지 나서서 열쇠를 찾아보았지만, 열쇠는 꽁꽁 숨어 머리카락도 뵈지 않았습니다. 행 활동가가 세심히 살펴보니 할머니의 바지 안쪽에 열쇠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저희에겐 열쇠가 분명히 없다고 하셨는데.. 역시 등잔 밑이 가장 어두운 법인가 봅니다. 행 활동가의 기지로 무사히 할머니 댁 문을 잠가두고 점심을 먹으러 나섰습니다.
점심 먹으러 나선 시내에서, 소정 활동가는 난생 처음 보는 음식을 마주합니다. 바로 고디 국. 올갱이로 끓여낸 국이었습니다. 한 사발 들이켜니 속까지 뜨듯해지더군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고디 국을 먹는 소정 활동가를 보고 할머니께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지난번 방문에서 할머니께 코다리찜을 놓아드렸다가 처참히 거절당했던 복아 활동가가 오늘은 칼을 갈고 왔습니다. 휘릭휘릭 움직이는 젓가락들 사이로 야무지게 코다리찜의 연한 살들만 모였습니다. 이번에는 조그마하게 올려드린 덕분인지 쉬이 입으로 가져가십니다. 맛있게 드셨지만, 최근 무릎에 침을 맞고 나서 입맛이 없어지셨다며 밥을 반 그릇밖에 드시지 않았습니다. 많이 드셔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섭니다. 연신 입맛이 없다고 하셔서 할머니를 오래 보아왔던 행 활동가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러 갔더니 할머니는 한 손으로 만지작만지작 물건들을 건드려봅니다. 앞치마, 가방, 모자까지 화려한 무늬를 가진 물건들이 할머니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물건의 유혹을 뿌리치고 할머니는 성큼성큼 카트를 잡고 걸음을 옮깁니다. 도착한 곳은 유제품 공간. 작은 요구르트와 떠먹는 요구르트를 담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저것 마트를 둘러보며 필요한 것들도 가득 챙겨 담습니다. 찹쌀을 두 봉지나 사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셔서 찹쌀 봉지도 카트 안에 담았습니다. 마지막까지도 활동가들이 제대로 찹쌀을 담았는지 물으십니다. 잘 담아서 집에 가져가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찹쌀이 집에 똑 떨어졌다며 상황을 공유해주십니다. 요구르트, 세제, 비누, 휴지 같은 것들을 가득 담은 상자를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할머니는 연신 '정대협 없으면 못산다'고 합니다. 할머니에게 '정대협'은 행 활동가이기도 하고, 정의기억연대이기도 한가 봅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온 사람과 단체 모두 할머니에겐 '정대협'입니다.
장 본 물건을 내려놓자, 할머니의 무한 감주 통이 등장했습니다. 소정 활동가는 포항 할머니를 처음 뵙지만 할머니 댁에 가면 무한 감주의 세계를 볼 수 있다고 소문을 들은 바가 있습니다. 과연 대단한 양이었습니다. 국그릇에 한가득 담긴 감주를 시원하게 들이켰습니다. 뜨듯한 날씨에 시원한 감주가 맛있어서, 두 눈을 빛내며 맛있다고 엄지를 척 하고 올리자 할머니는 소정 활동가의 눈이 너무 커서 무섭다며 눈을 감으라고 하십니다. 앞으로는 눈을 감고 먹어야겠습니다. 더 먹으라며 떠주신 두 번째 그릇도 시원하게 비워내자, 눈이 무섭긴 하지만 잘 먹는 게 예쁘다고 말씀하십니다. 싹싹 비우기에 자신 있는 소정 활동가는 할머니께 점수를 딴 사실이 너무 기쁩니다. 할머니가 감주를 더 떠주시기 전에 얼른 화제를 화투로 바꿔봅니다.
돌돌 말린 화투판을 펴고, 휘적휘적 섞인 패를 할머니께서 뜨십니다. 닷 장을 돌리고 여덟 장을 깔고 화투가 시작됩니다. 복아 활동가는 이름만큼이나 복이 많은지 모든 '광(光)'을 쓸어모읍니다. 높은 점수로 1등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복아 활동가가 승리를 거머쥐다가 할머니께서 드디어 1등을 했습니다. 만족스러우신지 그제야 화투판을 정리하자고 하십니다. 오랫동안 할머니를 뵈어 온 행 활동가의 손을 잡고 마디마디가 굵을 만큼 고생이 많았다며 옛날옛적~ 이야기를 하십니다. 새로 온 활동가들도 좋지만, 역시나 할머니 마음 속에는 긴 시간 동안 함께 했던 행 활동가가 가장 크신가 봅니다. 할머니와 행 활동가의 맞잡은 손을 바라보고 있으니, 오늘 이 순간이 할머니와 행 활동가에게는 긴 시간의 파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함께 시간을 보냈던 순간순간이 모여 오늘에 이른 것이겠지요. 우리 앞에 놓인 시간 동안 자주 뵈러 가고 많이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할머니 오래오래 뵈어요. 건강하세요!
4월 19일에 행, 복아, 소정 활동가가 포항 할머니 댁에 다녀왔습니다. 할머니 댁을 향해 가는 길목마다 봄이 찾아왔음을 여실히 느낍니다. 연두색 이파리들이 손을 흔들고, 복사꽃은 붉게 피어 촘촘하게 바람에 흔들립니다. 할머니께서도 이런 봄 풍경을 만끽하고 계셨으면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 댁에 도착하니 이미 집 앞 마당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시간이 조금 늦어져서 전화를 드렸는데 저희와 엇갈렸는지 계속 통화 연결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전화했는데 받지 않았다며 도착하자마자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이셨습니다. 그만큼 저희를 많이 기다리셨던 것이겠죠. 다음에는 더 일찍 와야겠다 싶었습니다. 새벽을 가르고 포항으로 와야겠습니다. 조금 늦어진 탓에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나설 채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문을 닫고 나섰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열쇠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다 같이 활동가들까지 나서서 열쇠를 찾아보았지만, 열쇠는 꽁꽁 숨어 머리카락도 뵈지 않았습니다. 행 활동가가 세심히 살펴보니 할머니의 바지 안쪽에 열쇠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저희에겐 열쇠가 분명히 없다고 하셨는데.. 역시 등잔 밑이 가장 어두운 법인가 봅니다. 행 활동가의 기지로 무사히 할머니 댁 문을 잠가두고 점심을 먹으러 나섰습니다.
점심 먹으러 나선 시내에서, 소정 활동가는 난생 처음 보는 음식을 마주합니다. 바로 고디 국. 올갱이로 끓여낸 국이었습니다. 한 사발 들이켜니 속까지 뜨듯해지더군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고디 국을 먹는 소정 활동가를 보고 할머니께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지난번 방문에서 할머니께 코다리찜을 놓아드렸다가 처참히 거절당했던 복아 활동가가 오늘은 칼을 갈고 왔습니다. 휘릭휘릭 움직이는 젓가락들 사이로 야무지게 코다리찜의 연한 살들만 모였습니다. 이번에는 조그마하게 올려드린 덕분인지 쉬이 입으로 가져가십니다. 맛있게 드셨지만, 최근 무릎에 침을 맞고 나서 입맛이 없어지셨다며 밥을 반 그릇밖에 드시지 않았습니다. 많이 드셔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섭니다. 연신 입맛이 없다고 하셔서 할머니를 오래 보아왔던 행 활동가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러 갔더니 할머니는 한 손으로 만지작만지작 물건들을 건드려봅니다. 앞치마, 가방, 모자까지 화려한 무늬를 가진 물건들이 할머니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물건의 유혹을 뿌리치고 할머니는 성큼성큼 카트를 잡고 걸음을 옮깁니다. 도착한 곳은 유제품 공간. 작은 요구르트와 떠먹는 요구르트를 담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저것 마트를 둘러보며 필요한 것들도 가득 챙겨 담습니다. 찹쌀을 두 봉지나 사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셔서 찹쌀 봉지도 카트 안에 담았습니다. 마지막까지도 활동가들이 제대로 찹쌀을 담았는지 물으십니다. 잘 담아서 집에 가져가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찹쌀이 집에 똑 떨어졌다며 상황을 공유해주십니다. 요구르트, 세제, 비누, 휴지 같은 것들을 가득 담은 상자를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할머니는 연신 '정대협 없으면 못산다'고 합니다. 할머니에게 '정대협'은 행 활동가이기도 하고, 정의기억연대이기도 한가 봅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온 사람과 단체 모두 할머니에겐 '정대협'입니다.
장 본 물건을 내려놓자, 할머니의 무한 감주 통이 등장했습니다. 소정 활동가는 포항 할머니를 처음 뵙지만 할머니 댁에 가면 무한 감주의 세계를 볼 수 있다고 소문을 들은 바가 있습니다. 과연 대단한 양이었습니다. 국그릇에 한가득 담긴 감주를 시원하게 들이켰습니다. 뜨듯한 날씨에 시원한 감주가 맛있어서, 두 눈을 빛내며 맛있다고 엄지를 척 하고 올리자 할머니는 소정 활동가의 눈이 너무 커서 무섭다며 눈을 감으라고 하십니다. 앞으로는 눈을 감고 먹어야겠습니다. 더 먹으라며 떠주신 두 번째 그릇도 시원하게 비워내자, 눈이 무섭긴 하지만 잘 먹는 게 예쁘다고 말씀하십니다. 싹싹 비우기에 자신 있는 소정 활동가는 할머니께 점수를 딴 사실이 너무 기쁩니다. 할머니가 감주를 더 떠주시기 전에 얼른 화제를 화투로 바꿔봅니다.
돌돌 말린 화투판을 펴고, 휘적휘적 섞인 패를 할머니께서 뜨십니다. 닷 장을 돌리고 여덟 장을 깔고 화투가 시작됩니다. 복아 활동가는 이름만큼이나 복이 많은지 모든 '광(光)'을 쓸어모읍니다. 높은 점수로 1등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복아 활동가가 승리를 거머쥐다가 할머니께서 드디어 1등을 했습니다. 만족스러우신지 그제야 화투판을 정리하자고 하십니다. 오랫동안 할머니를 뵈어 온 행 활동가의 손을 잡고 마디마디가 굵을 만큼 고생이 많았다며 옛날옛적~ 이야기를 하십니다. 새로 온 활동가들도 좋지만, 역시나 할머니 마음 속에는 긴 시간 동안 함께 했던 행 활동가가 가장 크신가 봅니다. 할머니와 행 활동가의 맞잡은 손을 바라보고 있으니, 오늘 이 순간이 할머니와 행 활동가에게는 긴 시간의 파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함께 시간을 보냈던 순간순간이 모여 오늘에 이른 것이겠지요. 우리 앞에 놓인 시간 동안 자주 뵈러 가고 많이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할머니 오래오래 뵈어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