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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성폭력재발방지나비기금, 나이지리아를 가다!

지난 4월 30일에는 세 차례의 나비기금 전달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달로리 2' 난민캠프에 살고 있는 수백 명의 피해소녀 및 여성들 중 10여명이 모여 지켜보는 가운데 이들을 인솔하고 있는 무싸 씨에게 500 달러를 전달했습니다.

이어 두 번째는 무싸 씨와 함께 '무나' 난민캠프로 가 하디싸와 팔마타 AB에게 200 달러를, 세 번째는 '팜 센터'라는 비공식 난민캠프에서 수제천막에 살고 있는 야가나에게 200달러를 전달했습니다.

아침부터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 기자님과 현지코디인 함자 씨는 경찰서로 가 '달로리 2'에서의 나비기금 전달식과 관련해 무장경찰의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해당 난민촌의 안전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오전 11시30분 쯤, 담당 경찰관들의 무장 호위를 받으며 캠프 내 작은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니 무싸 씨와 보코하람 성폭력 피해 소녀들이 아이들과 옹기종기 모여 정은진 기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비기금을 전달하고 나서 회색 부르카를 입은 아제데(30)가 자신이 소감을 발표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녀는 현지어로 "함자와 무싸가 우리에게 이 (한국인) 기자를 데리고 와 한국 여성 위원회 (정의기억연대)로부터의 선물을 전달해주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싸 씨도 "한국의 정의연이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기금을 전달해주어 고맙고, 우리의 사연을 함께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캠프 안에 오래 상주하고 있는 난민에게는 매달 약 5만원의 용돈이 지급되지만 난민들에게는 겨우 한 달을 버틸만한 식비 등 생활비에 불과합니다. 나비기금은 이들을 위한 교통비와 병원비 (엄마와 아이들), 옷이나 모자를 만들기 위한 재료비 등 긴급현금지원으로 쓰여 질 예정입니다.

다음으로 '무나' 난민촌에 살고 있는 하디싸와 팔마타 AB에게 나비기금을 전달하였습니다. 하디싸와 팔마타 AB은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까요?

하디싸 (18~19세 추정)

하디싸가 14살이었던 지난 2014년, 보코하람은 그녀의 고향마을인 '마다갈리' 지역을 침략했습니다. 아버지는 피신하고 그녀와 언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온 보코하람 전사 4명에 의해 '삼비사' 숲 안에 있는 '다보' 마을로 납치됐습니다. 그곳은 보코하람의 기지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납치 된 하디싸와 언니는 어떤 건물로 끌려갔는데, 들어가 보니 자신들 말고도 70명 정도 되는 여자들이 그 안에 앉아있었습니다. 그 중 15명 정도는 아이를 낳은 기혼 여성들이었고, 나머지 55명 정도는 어린 소녀들이었습니다.

하디싸는 그곳에서 40일 정도를 지냈는데, 어느 날 보코하람 전사들이 나타나 자신들이 결혼할 여자들을 골랐습니다. 하디싸는 17~18세 정도 된 소년 알리에게 선택돼 강제결혼을 당했습니다. 결혼 후 그녀는 딸을 낳고 또 두 번째 임신을 했습니다.

어느 날, 알리가 먹을 것을 구하러 한 마을을 습격하러 나간 틈을 타서 하디싸와 언니는 하디싸의 딸과 함께 도주를 결심합니다. 그들은 이틀을 걸어서 나이지리아 군대 검문소에 도착했고, '마다갈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후 마이두구리로 온 하디싸는 시내의 한 병원에서 둘째인 아들을 낳았고, 엄마와 다시 만나 '무나' 캠프에서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소식을 듣지 못했으며, 함께 탈출했던 언니도 보코하람 전사와 결혼 했었으나, 도주 후 출산과정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난민촌에서의 하디싸의 일상은 상당히 단조롭습니다. 아침에 물을 길어 나르거나 나무를 해온 다음 무슬림 남성이 쓰는 모자 등을 만들곤 합니다. 학교를 가고 싶지만 기회가 없다고 합니다.

"나는 미래에 대한 꿈이 없어요."

"그냥 이렇게 살면서 있는 거죠."

팔마타 AB (15세)

보코하람이 2014년 고향인 '바마' 지역의 '담제마리' 마을을 침략했을 때 팔마타 AB는 겨우 10~11살이었습니다. 팔마타 AB는 바로 '삼비사'숲으로 납치돼 2년을 보내게 됩니다.

2년 후 누군가가 그녀를 성폭행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 보코하람 전사들은 또 다른 전사를 데리고 와 그녀에게 그와 결혼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령관 중 한 명인 바나 부티예였습니다. 강제로 결혼한 팔마타 AB는 다른 부인들과 이혼한 그의 유일한 부인이 됐습니다.

3개월 후 그녀는 임신을 했으나 곧 유산을 했고, 바로 또 임신을 했습니다. 팔마타 AB는 사령관에게 부탁했습니다.

"나의 부모님에게 갈 수 있도록 해 줘요. 거기서 좀 쉬게 해 주세요."

한번 유산했던 경험 때문인지 사령관은 그녀가 잠시 친정에 갈 수 있도록 허가해 주었고, 그녀는 고향 마을인 '담제마리'로 돌아가 엄마와 상봉하게 됩니다. 하지만 완전히 안전한 곳에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고향 마을도 보코하람의 점령 하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한 번 더 도망칠 궁리를 하게 됩니다. 그녀는 엄마에게 "채소가 먹고 싶다"며 집 밖으로 나갔으며, 다른 두 명의 '보코하람 와이프'들과 도망을 치게 됩니다.

그 소녀들은 보코하람 전사들이 순찰 중 자신들을 발견할까봐 나무 위에서 자기도 했다고 합니다. 보코하람은 그녀들을 향해 로켓트를 발사하여, 수풀에서 폭발하기도 했습니다. 팔마타 AB는 이로 인해 다리를 다치게 됩니다.

숲에서 폭발과 연기가 치솟자 나이지리아군이 출동하게 되고, 이들은 극적으로 구조됐습니다. 이후 팔마타 AB는 딸을 낳았습니다.

팔마타 AB의 아버지는 마이두구리의 '무나' 캠프에 살고 있지만, 딸이 '보코하람 와이프'이고 손녀가 '보코하람 차일드'라며 함께 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이런 팔마타 AB의 딱한 사정을 보고 캠프 내 한 난민 남성이 그녀에게 청혼을 했고, 그녀는 수락을 해서 두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마저도 돈 문제로 구타를 당해 지금은 별거 중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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