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오후에는 난민촌이 아닌 마이두구리 외곽에 사는 아이샤 BG(28)씨에게 긴급 현금지원으로 200불이 전달됐습니다.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이자 난민 여성들이 난민촌 안에 살고 있는 것과 달리, 아이샤 BG씨는 마이두구리 외곽의 진흙으로 된 일반 가옥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샤 씨가 밀림에서 돌아온 뒤 <민간합동기동대 (Civilian Joint Task Force: CJTF)> 대원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되고, 이를 부끄럽게 여긴 아이샤 씨의 어머니와 갈등을 빚는 바람에 난민촌을 나와 잠시나마 독립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사연은 다른 소녀들의 납치 후 강제 결혼이라는 양상과는 약간 다르지만 전쟁으로 인해 한 여성의 인생이 얼마나 기구하게 됐는지를 보여줍니다.
5년 전인 2014년, 보코하람이 그녀의 마을이 있는 '바마' 지역을 점령했을 당시 그녀는 이미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남편은 보코하람에게 잡혀 살해됐으며, 보코하람에 가담한 남편의 남동생(시동생)이 다른 보코하람 전사들과 함께 총을 들고 집으로 와 아이들을 먼저 납치해 '삼비사' 숲 속으로 데려갔습니다.
아이샤 씨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 걸어서 스스로 보코하람의 소굴인 '삼비사'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시동생은 이미 아이들을 어딘가로 빼돌렸고, 그녀는 보코하람 전사들에게 차마 아이들을 데려가기 위해 ‘삼비사’로 왔다고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샤 씨는 사령관 중 한명과 결혼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찾기 위해 그의 네 번째 부인이 된 것입니다.
결혼 후 2년간 밀림에서 지낸 아이샤 씨는 사령관이 나이지리아 군대와의 교전으로 죽게 되자 또 다른 전사와의 재혼을 강요받았습니다. 이 때 아이샤 씨는 그들에게 "나는 HIV에 걸렸다"며 기지를 발휘해 재혼을 거부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보코하람은 그녀를 사령관 집에서 내쫓았고, 예전에 빼돌렸던 아이들을 그녀에게 돌려보내주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납치된 지 2년 반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과 감격의 재회를 했습니다.
3개월 후, 새벽 기도시간을 틈타 그녀는 아이들과 탈출했고, 이틀을 걸어 '바마'의 나이지리아 군 초소에 도착했습니다. 이후 '바마' 난민촌에 있다가 '기와' 구치소에서 13개월간 심문 및 검증기간을 거친 뒤 드디어 풀려났습니다.
풀려난 뒤 마이두구리의 달로리 캠프에서 친어머니와 재회해 아이들과 엄마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그녀는 <민간합동기동대> 대원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되고, 2019년 4월23일 현재 임신 8개월째입니다.
아이샤 씨의 엄마는 남편 없이 임신한 아이샤를 질책하게 되고, 아이샤 씨는 달로리 캠프에서 피해여성들을 돌보는 무싸 씨의 도움으로 한 달 전 진흙집으로 분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민간합동기동대> 남자친구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그가 무책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아이샤 씨는 남자친구에게 인공중절에 대해 상의했으나 그가 완강히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샤 씨가 임신을 후회한 것은 이미 6개월째였고, 그때는 너무 늦었다고 합니다. 남자친구는 지금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이고, 아이샤 씨 혼자 출산과 양육을 감당해야 합니다.
경제능력이 없는 아이샤 씨는 분가로 인해 무싸 씨로부터 9개월 치 임대료 및 생활비를 빚 진 상태였고, 약 40일 후에는 출산으로 인한 병원비도 감당해야 합니다. 이에 임대료와 병원비, 아이들 식비 등으로 200달러를 긴급으로 지원했습니다.
아이샤 씨는 "지원금으로 앞으로 집에서 간단히 음식을 만들어 팔고 싶다"며 자립의 의지를 밝혔습니다.
세계 전시성폭력 피해여성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나비기금, 함께 해주세요!? -나비기금 후원계좌:국민은행 069137-04-018141 -PayPal: war_women@naver.com
4월 26일 오후에는 난민촌이 아닌 마이두구리 외곽에 사는 아이샤 BG(28)씨에게 긴급 현금지원으로 200불이 전달됐습니다.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이자 난민 여성들이 난민촌 안에 살고 있는 것과 달리, 아이샤 BG씨는 마이두구리 외곽의 진흙으로 된 일반 가옥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샤 씨가 밀림에서 돌아온 뒤 <민간합동기동대 (Civilian Joint Task Force: CJTF)> 대원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되고, 이를 부끄럽게 여긴 아이샤 씨의 어머니와 갈등을 빚는 바람에 난민촌을 나와 잠시나마 독립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사연은 다른 소녀들의 납치 후 강제 결혼이라는 양상과는 약간 다르지만 전쟁으로 인해 한 여성의 인생이 얼마나 기구하게 됐는지를 보여줍니다.
5년 전인 2014년, 보코하람이 그녀의 마을이 있는 '바마' 지역을 점령했을 당시 그녀는 이미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남편은 보코하람에게 잡혀 살해됐으며, 보코하람에 가담한 남편의 남동생(시동생)이 다른 보코하람 전사들과 함께 총을 들고 집으로 와 아이들을 먼저 납치해 '삼비사' 숲 속으로 데려갔습니다.
아이샤 씨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 걸어서 스스로 보코하람의 소굴인 '삼비사'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시동생은 이미 아이들을 어딘가로 빼돌렸고, 그녀는 보코하람 전사들에게 차마 아이들을 데려가기 위해 ‘삼비사’로 왔다고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샤 씨는 사령관 중 한명과 결혼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찾기 위해 그의 네 번째 부인이 된 것입니다.
결혼 후 2년간 밀림에서 지낸 아이샤 씨는 사령관이 나이지리아 군대와의 교전으로 죽게 되자 또 다른 전사와의 재혼을 강요받았습니다. 이 때 아이샤 씨는 그들에게 "나는 HIV에 걸렸다"며 기지를 발휘해 재혼을 거부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보코하람은 그녀를 사령관 집에서 내쫓았고, 예전에 빼돌렸던 아이들을 그녀에게 돌려보내주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납치된 지 2년 반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과 감격의 재회를 했습니다.
3개월 후, 새벽 기도시간을 틈타 그녀는 아이들과 탈출했고, 이틀을 걸어 '바마'의 나이지리아 군 초소에 도착했습니다. 이후 '바마' 난민촌에 있다가 '기와' 구치소에서 13개월간 심문 및 검증기간을 거친 뒤 드디어 풀려났습니다.
풀려난 뒤 마이두구리의 달로리 캠프에서 친어머니와 재회해 아이들과 엄마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그녀는 <민간합동기동대> 대원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되고, 2019년 4월23일 현재 임신 8개월째입니다.
아이샤 씨의 엄마는 남편 없이 임신한 아이샤를 질책하게 되고, 아이샤 씨는 달로리 캠프에서 피해여성들을 돌보는 무싸 씨의 도움으로 한 달 전 진흙집으로 분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민간합동기동대> 남자친구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그가 무책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아이샤 씨는 남자친구에게 인공중절에 대해 상의했으나 그가 완강히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샤 씨가 임신을 후회한 것은 이미 6개월째였고, 그때는 너무 늦었다고 합니다. 남자친구는 지금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이고, 아이샤 씨 혼자 출산과 양육을 감당해야 합니다.
경제능력이 없는 아이샤 씨는 분가로 인해 무싸 씨로부터 9개월 치 임대료 및 생활비를 빚 진 상태였고, 약 40일 후에는 출산으로 인한 병원비도 감당해야 합니다. 이에 임대료와 병원비, 아이들 식비 등으로 200달러를 긴급으로 지원했습니다.
아이샤 씨는 "지원금으로 앞으로 집에서 간단히 음식을 만들어 팔고 싶다"며 자립의 의지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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