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2019년 나비기금과 함께 떠나는 베트남 평화기행단 류미선
1. 주이응이어 주이하이 주이탄 빈즈엉 학살 통합 위령관 참배
이곳은 1968년 과 1971년 사이에 꽝남성 주이쑤옌현의 주이응이어사, 주이하이사, 주이탄사 그리고 탕빈현의 빈즈엉사에서 발생한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추모하는 통합 위령관입니다. 이 위령관에는 한국군 학살 피해자 271명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학살들이 있었는지 누가 죽었는지 세세히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록엔 다른 위령비와 마찬가지로 정말 어린아이들과 정말 많은 여성들 심지어는 임신한 여성들, 그리고 노인들까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죽인 이 학살의 특징은 모였을 때 누가 모였는지 안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계획적으로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은 우리가 책임지고 사죄하고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2.당소학살 가족묘 참배
1969년 2월 16일 베트남에서 가장 중요한 날인 설을 하루 앞두고 주이하이에서 사당에서 제사 준비를 하던 당서님의 집에 한국군이 들이닥쳤습니다. 한국군이 총을 쏘자 당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북을 울려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제단 밑에 숨어있던 조카님도 달아나면서 “한국군이 쳐들어왔다” 고 전해주민들의 피해는 없었지만 당서님를 포함한 9명의 가족은 몰살을 당하고 맙니다. 학살당시 사이공에 유학 중이던 당서의 아들 당민코아님께서 훗날 만든 가족 묘의 표지석에는 베트남어뿐만 아니라 영어로 자기 가족의 한국군 학살 피해 사실을 표기하셨습니다. 지나가는 외국 사람들이, 한국인들이 이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말이죠.
3.당민코아 선생님, 응우옌티탄 선생님 만남.
그 후 바로 당소학살의 유가족 당민코아 선생님과 시민평화법정의 원고 응우옌티탄 선생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당민코아 선생님은 가족들이 모두 한국군에 의해 학살된 후 이 사실을 한국정부와 세계가 알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오셨습니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당민코아 선생님께서는 “우리가족의 학살은 수많은 학살중 하나일 뿐이다. 당소 가족 학살이라고 불리는 이 학살은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했던 수많은 학살 중 하나이고, 가족 중 저 하나 남았습니다. 탄 아주머니도 비슷한 상황이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덧붙여서 “한국군의 학살로 저희 가족 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아픔을 한국정부가 꼭 시인하고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같이 만났던 응우옌티탄 선생님께서는 2018년 4월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룬 시민평화법정의 원고로 증언했던 하미마을 학살의 생존자 이십니다. 응우옌티탄 선생님께서는 저희에게 1968년에 일어났던 하미마을 학살에서 겪으신 것들을 그대로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 오셨는지도요. 하미마을학살은 50년도 더 지났지만, 선생님께서는 아직도 엄마가 죽어가는 그 장면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시민평화 법정이 아무리 모의법정이라고 해도 그 판결 그대로 이 문제 해결이 진행되었으면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만나 뵈었던 당민코아 선생님과 응우옌티탄선생님의 이야기에서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님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앞장서고, 증언하시고 행동하시는 모습들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우리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하고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은 한국에 있고, 진정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지만, 아직 한국은 문제를 시인하지 않고, 문제해결에도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그사이 피해자들의 고통만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기억해 오고 있었습니다.
6일차 기행에서 많은 할머님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겪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라고 하셨던 김학순 할머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역사에 기록하고 , 제대로 기억하고,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시인하고,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행동에 앞장 설 수 있도록 제주에서 나의 활동을 진심을 담아,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록: 2019년 나비기금과 함께 떠나는 베트남 평화기행단 류미선
1. 주이응이어 주이하이 주이탄 빈즈엉 학살 통합 위령관 참배
이곳은 1968년 과 1971년 사이에 꽝남성 주이쑤옌현의 주이응이어사, 주이하이사, 주이탄사 그리고 탕빈현의 빈즈엉사에서 발생한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추모하는 통합 위령관입니다. 이 위령관에는 한국군 학살 피해자 271명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학살들이 있었는지 누가 죽었는지 세세히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록엔 다른 위령비와 마찬가지로 정말 어린아이들과 정말 많은 여성들 심지어는 임신한 여성들, 그리고 노인들까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죽인 이 학살의 특징은 모였을 때 누가 모였는지 안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계획적으로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은 우리가 책임지고 사죄하고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2.당소학살 가족묘 참배
1969년 2월 16일 베트남에서 가장 중요한 날인 설을 하루 앞두고 주이하이에서 사당에서 제사 준비를 하던 당서님의 집에 한국군이 들이닥쳤습니다. 한국군이 총을 쏘자 당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북을 울려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제단 밑에 숨어있던 조카님도 달아나면서 “한국군이 쳐들어왔다” 고 전해주민들의 피해는 없었지만 당서님를 포함한 9명의 가족은 몰살을 당하고 맙니다. 학살당시 사이공에 유학 중이던 당서의 아들 당민코아님께서 훗날 만든 가족 묘의 표지석에는 베트남어뿐만 아니라 영어로 자기 가족의 한국군 학살 피해 사실을 표기하셨습니다. 지나가는 외국 사람들이, 한국인들이 이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말이죠.
3.당민코아 선생님, 응우옌티탄 선생님 만남.
그 후 바로 당소학살의 유가족 당민코아 선생님과 시민평화법정의 원고 응우옌티탄 선생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당민코아 선생님은 가족들이 모두 한국군에 의해 학살된 후 이 사실을 한국정부와 세계가 알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오셨습니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당민코아 선생님께서는 “우리가족의 학살은 수많은 학살중 하나일 뿐이다. 당소 가족 학살이라고 불리는 이 학살은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했던 수많은 학살 중 하나이고, 가족 중 저 하나 남았습니다. 탄 아주머니도 비슷한 상황이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덧붙여서 “한국군의 학살로 저희 가족 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아픔을 한국정부가 꼭 시인하고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같이 만났던 응우옌티탄 선생님께서는 2018년 4월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룬 시민평화법정의 원고로 증언했던 하미마을 학살의 생존자 이십니다. 응우옌티탄 선생님께서는 저희에게 1968년에 일어났던 하미마을 학살에서 겪으신 것들을 그대로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 오셨는지도요. 하미마을학살은 50년도 더 지났지만, 선생님께서는 아직도 엄마가 죽어가는 그 장면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시민평화 법정이 아무리 모의법정이라고 해도 그 판결 그대로 이 문제 해결이 진행되었으면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만나 뵈었던 당민코아 선생님과 응우옌티탄선생님의 이야기에서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님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앞장서고, 증언하시고 행동하시는 모습들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우리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하고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은 한국에 있고, 진정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지만, 아직 한국은 문제를 시인하지 않고, 문제해결에도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그사이 피해자들의 고통만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기억해 오고 있었습니다.
6일차 기행에서 많은 할머님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겪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라고 하셨던 김학순 할머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역사에 기록하고 , 제대로 기억하고,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시인하고,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행동에 앞장 설 수 있도록 제주에서 나의 활동을 진심을 담아,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