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수요 시위1712차 수요시위_사단법인 아디

1712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의 주관은 사단법인 아디에서 하였고 사회는 권지윤 활동가님이 보았습니다.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의 <바위처럼>에 맞춘 힘찬 율동으로 수요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사무국장님의 주관단체 인사말 후 강경란 정의기억연대 연대운동국장의 주간보고가 있었습니다.

 

연대발언으로 수요시위를 이어갔습니다. 양서고등학교 햇담 고하율, 유현지, 서예린 학생, 사단법인 아디 유광민 활동가님, 히로시마원폭 80주년 조선인희생자 추모제 준비위원회 한충목 공동준비위원장님,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회 위원장 박신자 여호수아 수녀님이 힘찬 연대발언을 했고 멀리 미국에서 보내준 미국 프린스턴 고등학교 이호정 학생의 발언문을 정의기억연대 도담 활동가가 대독했습니다.

 

참가단체 소개 후 사단법인 아디 조혜민, 전예원 활동가님이 성명서 낭독을 하며 1712차 정기 수요시위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수요시위 현장에서는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인보성체수도회, 사랑의 씨튼 수녀회,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양서고등학교 ‘햇담’, 제22회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캠프, 평화통일시민행동, 해남고 인권동아리 ‘같이의가치’, 조국혁신당 여성위원회, 유지호, 홍성고 동아리 ‘시선’, 평화나비 네트워크, 나오코 스나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강원지부 통일위원회 선생님들 등 개인, 단체에서 함께 연대해 주셨습니다.

 

온라인 댓글로는 이원석, Goo Lee(시애틀늘푸른연대), 조안구달, 김정숙, Sung Park, Friends of 'Comfort Women' in Sydney – 시소연, 임계재, ilIiIIliil, 상선약수, lee파도저편, 제2독립군TV, Blessings 2u 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수어 통역은 현서영 님이, 무대와 음향은 휴매니지먼트에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주관단체 인사말_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사무국장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아디의 이동화입니다. 먼저, 정의기억연대의 제1712차 수요시위를 저희 단체가 함께 주관하게 되어 깊은 영광입니다. 사단법인 아디는 미얀마, 팔레스타인, 로힝야, 아프가니스탄 등 아시아의 분쟁 지역에서 피해 생존자의 인권을 기록하고, 그 지역의 현지 활동가들과 피해생존자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개발협력 사업을 펼치고 있는 시민단체입니다. 

2016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아디는 정의기억연대의 나비기금을 만나며 활동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2021년, 아디와 정의기억연대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나비기금을 통해 아시아 각지의 여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인권과 존엄을 지키는 활동을 함께 시작했습니다. 그 첫걸음은 팔레스타인이었습니다. 나비기금은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지역에 ‘트라우마 힐링센터’를 설립하여, 이스라엘의 불법 군사점령과 가부장적 폭력 속에 고통 받는 여성들에게 법률지원, 심리상담, 긴급 재정지원 등을 제공하며 회복과 자립의 길을 열었습니다. 당시 힐링센터에서 만난 한 피해 생존자는 “나비기금을 통해 지옥 같던 폭력에서 벗어나 두 딸과 함께 피클과 반찬을 만들어 팔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희망찬 눈빛은 여전히 제 마음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트라우마 힐링센터는 2024년부터 정의기억연대가 직접 운영을 이어받아, 지금도 팔레스타인 여성 인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4년, 나비기금은 전 세계 최대 난민 캠프인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캠프 여성들에게도 도달했습니다. 로힝야 난민캠프 내 여성과 소녀들이 겪는 인신매매와 성폭력 피해를 기록하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말레이시아에서 인신매매 피해를 겪고 있던 여성 6명을 발견하여, 유엔난민기구와 협력해 그녀들을 인신매매범으로부터 벗어나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1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로힝야 캠프 전역을 돌며, 여성폭력의 실태를 조사하고, 피해자들이 스스로 바라는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 직접 듣는 ‘로힝야 난민캠프 여성폭력 실태조사’도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활동은 “다시는 나와 같은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셨던 고 김복동, 길원옥 할머님의 숭고한 뜻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나비기금은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여성의 존엄을 지키고, 침묵을 깨우며, 희망을 일으키는 살아 있는 연대입니다. 

사단법인 아디는 앞으로도 분쟁과 점령, 전쟁과 폭력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들과 함께, 그들의 권리를 기록하고, 그들이 스스로 현실을 바꿔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연대하는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 나비기금이 앞으로도 전 세계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주간보고_강경란 정의기억연대 연대운동국장 

올해는 한일조약 체결 60년, ‘2015 한일합의’ 체결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일조약은 패전국 일본이 미국과 맺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후속으로, 한일이 민사적 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조약이었습니다. 일본은 한반도 불법 강점, 식민지배에 대한 자국의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고, 강제동원, 일본군‘위안부’문제 등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음에도, 일본정부는 65년 한일조약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2015년 한일 외무장관 간 합의는 또 어떻습니까? 책임을 통감한다는 한마디와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10억 엔 거출로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위안부’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말라 강요했던 부당 행위입니다. 피해자를 배제한 채 졸속으로 밀실에서 탄생한 합의는 그 절차, 형식, 내용 모두가 문제입니다. 지난 10년간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해 사문화되었으며, 이제는 폐기되어야 할 걸림돌입니다. 화해치유재단 해산 잔여금 또한 국고환수되어야 합니다.

 

지연된 정의는 역사부정을 불러와, 명백한 역사적 사실마저 부정하는 이들이 피해자를 모욕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지난 21대 국회부터 일본군‘위안부’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을 개정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5만 명 넘는 국민들이 국회 청원을 성사시켜 주셨고 현 22대 국회에서도 다수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개정안은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은 해결을 기다리다 마침내 한국법원에서 일본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일본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했고 2021년부터 올해까지 총 3건이나 승소 판결을 받아내었지만, 일본의 불응으로 아직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역사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의 당면 현안입니다. 다시 돌아온 을사년, 윤석열이 아직 대통령이었다면 우리는 한일관계에 있어 또 한 번의 큰 역사적 후퇴를 겪었을 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뿌리 깊어 모든 문제를 꼬이게 만든 오래된 한일 간 역사문제를 이제 바로잡아야 합니다.

 

다가오는 8월 14일은 김학순 님의 용기 있는 공개 증언이 있었던 날로, 전 세계 시민들이 함께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유명을 달리하는 피해자들을 생각해서라도 하루라도 더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께 촉구합니다. 광복 80년이 되는 올해 8월 15일 새 정부가 일본의 전쟁범죄 책임에 대한 원칙을 천명해주시길 바랍니다. 피해자의 인권을 저버리고 얻을 수 있는 미래는 결단코 없습니다. 부디 윤석열 정권이 망쳐놓은 역사를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에서 복원하고 바로 세워,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시길 촉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고하율, 유현지, 서예린 양서고등학교 햇담

안녕하세요 저희는 양서고등학교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권 수호 동아리 햇담의 저는 부장 서예린 부원 유현지, 고하율 입니다.

저희 햇담은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양서고등학교의 동아리로, 2006년에 개설되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 20기 8명, 21기 9명 총 17명의 1,2학년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내 유일한 역사 동아리이자, 두 개뿐인 인문 계열 동아리 중 하나로서 햇담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바로 알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실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교내에서는 위안부 관련 체험전 운영, 부스 활동, 굿즈 제작 및 수익금 기부를 통해 학생들에게 이 문제가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의 인권 문제’임을 알리고 있으며, 교외에서는 나눔의 집 정기 방문하여 역사관 관련 도슨트를 진행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문제에 대하여 공부중이고, 수요시위에도 수요일마다 점심시간에 모여 화상으로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피해자분들과의 연대와 기억의 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정의기억연대 및 나눔의 집과도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더 정확하고 진정성 있는 활동을 위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햇담은 이 문제의 역사적 진실을 잊지 않고 청소년의 시선으로 다시금 질문하고 행동하는 소중한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햇담의 활동은 단순한 역사 교육을 넘어, ‘기억하고 행동하는 청소년’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점점 잊혀져가는 역사 속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현재로 끌어와 공감하고, 앞으로의 세대가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나누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저희 햇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한 활동들을 진행 중입니다. 지난 한 학기 동안 진행한 활동은 크게 부스 활동과 일본군 ‘위안부’ 관련 체험전이 있습니다. 저희는 부스 활동을 운영하며 햇담이 직접 제작한 굿즈를 판매했으며 동시에 할머님들께 마음을 전하는 편지 쓰기 활동을 진행했고, 일본군 ’위안부‘ 관련 체험전을 진행하여 ‘나눔의 집‘을 중심으로 할머님들의 삶과 증언 등을 소개하며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우리가 이 문제를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함께 나누고자 했습니다.

저희 햇담이 준비하고 진행한 활동들은 단순히 학생들이 과거를 배우는 활동이 아닌 지금도 끝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이런 활동에 관심을 가질까에 대한 걱정들이 있었지만 활동을 시작하자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져주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공감하고 마음을 나눠주었습니다. 누군가는 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했고, 누군가는 굿즈를 사며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희는 이렇게 함께 기억하고, 행동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문제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 계속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언가를 바꾸는 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나지 않지만, 계속해서 말하는 사람들, 멈추지 않는 행동이 결국 세상을 조금씩 바꿔간다는 것을 이번 활동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또한 혼자였다면 쉽게 지나쳤을지도 모를 이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말로, 편지로, 손으로 조금씩 다른 사람의 삶에 스며들고 있음을 느끼면서 ‘기억’ 이라는 것은 사람 사이에 건네지는 것임을 다시 한 번더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직접 연대의 목소리를 낸 것 또한 같은 의미입니다. 다른 분들의 연대발언을 들으며 지금 이 순간에서, 다른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더욱 깊이 느꼈습니다. 또한 이렇게 직접 연대 발언을 하게 된 것 역시 저희에게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단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이 문제를 이어가야 할지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함께 모여 있는 이유는, 할머님들의 고통이 단지 ‘역사 속 이야기’로 묻히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할머님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목소리는 우리가 기억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햇담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잊지 않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청소년으로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해 나가고 싶습니다.

햇담은 단지 역사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기억을 지키고, 공감을 나누며, 일상 속에서 평화를 실천하는 동아리로 나아가겠습니다.

지금까지의 활동을 넘어서, 더 많은 청소년들이 이 문제를 ‘나와 무관한 과거’가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기억해야 할 현재의 이야기’로 느낄 수 있도록 저희는 새로운 방안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또래 간 토론이나 이야기 나눔의 자리를 마련하거나, 뜻이 맞는 다른 학교들과 연대하여 우리의 작은 목소리를 더 크게 울리는 시도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비록 작더라도, 신념을 담아 움직이겠습니다.

우리가 멈추지 않고 행동을 이어간다면, 그 자체로 진실을 지키는 힘이 되고, 그 힘은 언젠가 반드시 정의에 닿을 것이라 믿습니다.

햇담은 결코 혼자 외치지 않습니다.

진실을 기억하며 이 자리에 함께하고 계신 여러분과 손을 잡고, 할머님들께서 간절히 바라시는 ‘진정한 사과’와 ‘역사적 정의 실현’을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연대발언_유광민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우리는 오늘, 전시 성폭력과 인권침해 앞에서 침묵하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난 3월, 유엔 팔레스타인 및 이스라엘에 관한 독립조사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이스라엘 당국은 2023년 10월 7일 이후, 팔레스타인 여성과 남성을 대상으로 성적·재생산적 폭력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자행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전쟁 범죄를 넘어 팔레스타인이라는 공동체 전체의 생존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한 ‘집단학살’(Genocide)의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스라엘 군은 민간 여성과 소녀들을 고의로 표적으로 삼고 살해했습니다.

한 임산부는 병원에 가는 도중 이스라엘 저격수의 총격으로 사망하였고,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포위하고있어, 그녀의 시신은 20일동안 방치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남성과 여성 모두 검문소와 대피 과정에서 강제로 옷을 벗도록 강요당했습니다. 특히 살라흐 알-딘 거리에서 대피 중이던 사람들에게 이스라엘군은 총을 겨눈 채 옷을 벗고 신분증을 들고 걷도록 명령했습니다. 여성들이 옷 벗기를 거부하면 이스라엘군에게 구타당했습니다.

 

이스라엘 교도소에 구금된 팔레스타인 남성과 여성들은 강간 및 성폭행, 촬영 및 유포, 협박 및 욕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성폭력은 체포 순간부터 처벌과 협박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가자지구의 주요 산부인과 병동과 시험관 아기 시설이 전차 포격 등으로 파괴되었고,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 의료 접근의 차단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여성 개인을 겨냥한 폭력이자, 팔레스타인 민족 전체를 겨냥한 **생존권 파괴, 제노사이드**입니다.

 

 

전시 상황에서, 여성의 어려움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삶을 선택할 권리, 미래를 설계할 자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받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가자에서, 서안에서,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시 성폭력과 인권 파괴는 단지 개인에 대한 범죄를 넘어 구조적 폭력이자 전쟁범죄, 그리고 집단학살의 구성요소임을 분명히 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간으로서 존엄과 자유가, 이스라엘에 의해 인해 체계적으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연대할 것입니다.

 

 

아디는 가자지구 피해생존자 분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고자 모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쟁범죄, 폭격과 공습, 기아로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따듯한 손길을 요청합니다.

 

감사합니다.

 

연대발언_이호정 미국 프린스턴 고등학교(대독)

A couple months ago when I was sitting in my AP world history class learning about Asia in the 1900s, I heard a statement from my teacher that shocked me to the cor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there was an issue of comfort women for which they have apologized for.” The following day, I walked up to my teacher after class, presenting her with information about the real history behind comfort women – how this issue is still being fought for over thirty years, that Japan has never apologized or event properly acknowledged their involvement, and that comfort women have long been wrongly overlooked as a minor issue.

몇 달 전, 저는 AP 세계사 수업에서 1900년대 아시아에 대해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일제강점기 당시 있었던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은 사과했다.” 라고 하신 말씀이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을 찾아가 위안부 문제의 진실에 대한 자료를 드렸습니다. 이 문제는 30년이 넘도록 여전히 해결을 위해 싸워오고 있으며, 일본은 결코 공식적인 사과나 책임 있는 인정을 한 적이 없고, 위안부 문제는 오랜 시간 동안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며 부당하게 외면받아 왔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As I thought long and hard about why this statement had stuck with me the way it did (aside from the wildly concerning inaccuracy behind the statement), I remembered the words she used: the existence of comfort women “was and issue.” Was. MY teacher was guided to perceive that comfort women were an issue of the past, a moment in history that the world had moved on from, dismissing its existence as trivial and irrelevant to the so-called wonderful, industrious, and woke world we have today. A small problem that has long been solved. But the more I thought about it, the more sure I became that comfort women are not only a sustained and relevant issue to our present world but also a reminder and opportunity to create a better future in women’s rights during wartime.

그 발언에 담긴 심각한 역사 왜곡 외에도 그 발언은 계속 제 마음 깊이 남았습니다. 저는 제가 왜 그 말이 그렇게까지 마음에 깊이 남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다 떠오른 것은 선생님이 사용하신 표현이었습니다. 위안부의 존재는 “과거의 문제였다”(was an issue)라는 말이었습니다.
제 선생님은 위안부 문제가 과거의 일, 이미 지나간 역사 속 사건, 오늘날 이른바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세상에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마치 오래전에 해결된 사소한 문제처럼 치부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할수록 확신이 들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전시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한 교훈이자 미래를 위한 기회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현재와 깊이 연결된 이슈라는 사실 말입니다.


As many historians like to say, “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This statement should never be dismissed as an overused cliché. Rather, it should be acknowledged just how important and valuable this practice is – one that has been and is currently severely neglected. If we dismiss the pasts and sidestep attempts for conversation and discussion based on the uncomfortable nature of facing failure and shame, how will we ever move forward to create a world where humanity as a collective learns from the past and vow to prevent mistakes from ever repeating again?

많은 역사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반복하게 된다.” 이 말은 진부한 표현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말이 지닌 중요성과 가치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은 오랫동안, 그리고 여전히 심각하게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과거를 외면하고, 실패와 부끄러움을 직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대화와 성찰의 시도마저 피한다면, 인류는 어떻게 과거로부터 배우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진정한 발전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마주하며 반성하고 기억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Going back to the idea of cliché, when you’re a kid growing up, you would have at least heard once from an adult that “every little thing counts and small actions can make a difference.” As I began to get interested in advocacy and voicing my opinions on what I believed was right and important, I’ve found myself at times questioning the validity of that statement. As much as I wanted to believe that my actions were making a difference somewhere in the world or sometime in the future that I couldn’t see just yet, there were times that I wondered why I was even doing this. But as I discovered more and more people, organizations, and communities sharing my thoughts and beliefs, I realized just how right that cliché phrase had been. Even if I’m only a 5’2 high school student from New Jersey scrambling around doing whatever I can contribute, however small it may be, I hope that one day, other students and young adults can also come to the realization that making a difference isn’t always about creating a cataclysmic event. It might just start between a shy high school junior and a history teacher talking, conversing, and openly discussing.

상투적인 표현으로 들릴 수 있지만, 어릴 적 한 번쯤은 어른들에게서 “작은 행동 하나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정의롭다고 믿는 일에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저 역시도 그 말이 과연 사실일까 스스로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정말 세상 어딘가에서, 혹은 아직 닿지 않은 미래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그런 회의감이 들 때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저와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 단체, 공동체를 하나씩 만나게 되면서 저는 그 상투적인 말이 실은 진실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비록 뉴저지에 사는 키 157cm의 고등학생일지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일, 아무리 작더라도, 그것이 세상을 향한 움직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반드시 거대한 사건이나 혁명처럼 시작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한 내성적인 고등학교 2학년 학생과 역사 선생님 사이의 대화에서부터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말하고, 듣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그 작은 시작이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언젠가 다른 학생들과 젊은이들도 이 깨달음을 함께 하길 바랍니다.

 

정의기억연대 파이팅!


연대발언_박신자 여호수아 수녀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회 위원장

안녕하세요,

저희는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에서 참여하였습니다.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는 1995년 11월 제28차 정기총회에서,

한국 여성들의 위치를 밝히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찾으며,

신학적인 성찰을 통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여성상의 온전한 실현을 위해

어떠한 방향으로 살고, 일하고, 노력할 것인지에 대해 성찰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여성 수도자들은 전쟁범죄의 희생자,

일본군 성노예로 희생된 할머니들의 요구가 곧 우리의 요구임을 인식하고,

그 요구가 관철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한다고 결의하였습니다.

 

1996년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오늘까지 매 주 빠짐없이 수요시위에 참가하여,

피해 생존자들의 외침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이 자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지만,

이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함께 행동하고, 끝까지 진실을 요구하겠다는 다짐입니다.

 

할머니들은 오랜 시간 침묵을 깨고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해주셨습니다.

그 목소리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정의와 인권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여전히 일본 정부는 사죄하지 않았고,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진실은 지워지지 않고, 정의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우리 수도자들은 이 자리에 있습니다.

생존하고 계시는 할머니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고,

그 곁을 지키는 우리의 연대 역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위해,

우리 수도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힘차게 걸어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