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30일, 6년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으로 활동해 온 이나영 이사장이 퇴임하였습니다.
이나영 이사장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피해자와 활동가들이 함께 피땀으로 이어온 지난 30여 년의 운동이 흔들리지 않도록 깊은 책임감으로 정의기억연대를 지켜왔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기억과 기록의 토대를 강화하고 국내외 연대의 확장과 해외 평화의 소녀상 건립,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보호법 개정 등 여러 성과를 이끌었습니다. 지난 6년 동안 역사정의와 인권, 평화를 위한 길을 함께 만들어 온 이나영 이사장의 헌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174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간보고

전쟁의 어둠이 짙어지는 엄중한 시기, 저는 오늘 지난 6여 년간의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임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수요시위 주간보고 겸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2020년 5월, 취임과 동시에 제가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소위 ‘정의연 사태’라는 미명 아래 정의기억연대는 검찰의 무자비한 압수수색과 먼지털이식 수사, 언론의 악의적인 가짜뉴스, 마녀사냥의 집중포화를 한꺼번에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한 시민단체를 향한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 운동의 정당성을 흔들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며, 오랜 시간 쌓아온 시민사회의 신뢰와 연대를 무너뜨리려는 전면적인 공격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활동가 한 분이 목숨을 잃었으며 많은 이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저였기에 억울함과 두려움, 슬픔과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피해생존자들과 선배 활동가들이 30년간 쌓아 올린 진실의 공든 탑이 거짓의 파도에 휩쓸려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쏟아지는 의혹과 왜곡에 사실로 대응하고, 무너진 조직을 추슬러 세우며 활동가들을 지키고, 후원회원과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려 고군분투했습니다. 벼랑 끝에서 뼈를 깎는 혁신을 단행했고, 흔들리지 않는 투명함으로 정의기억연대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더욱 공세적인 운동도 펼쳤습니다.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뚫고 독일의 심장 베를린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으며, 현지 시민들과 연대해 이를 끝까지 사수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독일 카셀과 이탈리아 스틴티노의 소녀상 건립 역시 같은 맥락의 성과였습니다. 이제 소녀상은 더 이상 한 지역의 기념물이 아니라, 전시 성폭력과 역사 부정에 맞서는 보편적 여성 인권과 초국적 기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책임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상황에서 쟁취한 피해자 승소 판결은 국가면제 논리를 깨부순 쾌거였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가 일본국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반인도적인 범죄이며, 피해자들의 법적 권리가 결코 지워질 수 없음을 확인한 세계사적인 성과였습니다. 또한 운동의 역사와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공개하기 위해 개설한 디지털 아카이브는 역사 부정 세력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진실의 성벽이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료 정리를 넘어, 피해생존자들의 증언과 운동의 기록을 다음 세대와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일이었습니다.
극우·역사부정 세력과의 싸움도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2019년부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역사를 부정하며, 수요시위 방해와 소녀상 철거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세력이 조직적으로 확장되어 왔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그 최전선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전국을 돌며 소녀상 테러를 감행하고 수요시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김병헌의 구속 확정을 이끌어냈고, 일본 우익 자금과 결탁한 역사부정 카르텔의 실체를 유엔과 국제사회에 낱낱이 폭로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을 쟁취해냈습니다. 이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부정과 모욕, 명예훼손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사회적 기준을 세우고, 글로벌 극우·역사부정 세력에 대항할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국내 연대의 폭도 한층 넓어졌습니다. 61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을 결성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뿐만 아니라 강제동원, 평화, 생태, 인권, 민주주의를 횡단하는 더 큰 연대의 장을 열어왔습니다. 수요시위는 학생, 종교계, 여성계, 노동계, 문화예술계, 국제연대 단체들이 함께하는 살아 있는 시민광장으로 이어졌습니다. 과거의 아픔만을 호소하는 자리가 아니라, 오늘의 부정의와 내일의 평화를 함께 논하는 생생한 공론장이 되었습니다.
나비기금 역시 더 멀리 날아갔습니다. 콩고, 우간다, 베트남을 넘어 팔레스타인과 로힝야 난민촌 여성들에게까지 연대의 손길을 뻗었습니다. 고통의 기억이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연대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실천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식민주의와 전쟁 범죄의 최대 피해자였던 우리가 이제는 전 세계 전쟁 범죄와 학살에 대항하는 강력한 평화 연대의 주체가 된 것입니다.
윤석열 내란과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공동의장으로 광장의 최전선에도 섰습니다. 역사 부정은 민주주의의 후퇴와 직결되어 있으며, 피해자의 존엄을 부정하는 사회는 시민의 권리 역시 쉽게 짓밟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 운동이 한일 과거사 운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가 폭력과 전쟁 범죄가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민주주의 운동임을 온몸으로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돌아보면 지난 6여 년은 위기의 연속이었고, 제 개인적으로도 시련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 속에서 저는 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단순한 시민단체가 아니라, 피해 생존자들의 용기와 국내외 시민사회의 연대가 축적된 역사 그 자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센 공격의 파고 속에서 운동의 의미를 다시 다듬고 조직을 재정비하며 국내외 연대를 확장해 새로운 성과를 일구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결코 저 혼자 감당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활동가들, 어려운 시기에 기꺼이 함께해 준 후원회원들, 손 내밀어 준 연대단체들과 이사님 및 위원님들, 매주 수요일 이 자리를 지켜준 시민들이 계셨기에 가능했습니다. 무엇보다 참혹한 고통을 딛고 정의의 길을 열기 위해 목소리 내셨던 피해자들의 용기가 등불처럼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이사장직을 내려놓지만, 연구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활동가로서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이 온전히 회복될 때까지, 일본 정부의 진정 어린 사죄와 법적 배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역사정의가 흔들림 없는 상식이 될 때까지, 역사 부정과 혐오에 맞선 저의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지난 6여 년 동안 함께 버텨주시고, 싸워주시고, 지켜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26년 4월 8일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의 퇴임을 지켜보며 정의연 초기 선배들과 시민들은 힘든 시기에 정의기억연대를 지켜내고 운동성을 확장시킨 이나영 이사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겼습니다. 그 중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의 송별 인사를 전합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 송별 인사
“구치소 그 사람, 이 사람 때문에 망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본성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눈에 거슬리면 죄다 반 국가세력으로 덧칠되어야 했습니다. 앞에 선 사람들은 차례로 고립되었고, 둑이 무너진 자리엔 아우성뿐이었습니다,
먼저 ‘역사’ 문제를 치고 나왔습니다. 역사정의는 미국을 정점으로 한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의 얼개를 짜가는데 걸림돌이었습니다.
망연자실해 있던 가운데 600여 개 시민사회가 처음으로 무릎을 맞대고 나섰습니다. 2022년 8월 9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의 출범이 그것입니다. 윤 정권에 맞선 첫 번째 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보잘 것 없었습니다. 실무책임자라야 겨우 몇 명... 호주머니는 가벼웠고 가진 것은 빈 주먹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 속에 더 강했습니다. 서로는 눈빛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착착 물려 돌아갔습니다.
“지금은 아픈 것도 역사에 죄다!”
바쁘게 흩어지면서도 우리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우리가 무너지면 다음 저지선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의 중심에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이 있었습니다. 대학교수라는 외투는 일찍이 내려놓았습니다. 맑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때 만나도 명랑했습니다.
그러나 과업 앞에서는 돌변했습니다. 한 치 오차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선이 분명했습니다. 옥석을 명확히 구분지었습니다. ‘해야 할’ 일은 ‘해 내야’ 했습니다. 구차한 변명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강제동원 제3자 변제 투쟁에 전환점을 구축한 ‘역사정의시민모금’의 역사적 성취는 순전히 그의 '작품'입니다.
국면이 확 바뀌었습니다. 친일역사쿠데타 정권에 민심은 등을 돌렸고, 윤석열은 자중지란 상황에서 회복할 수 없는 내상을 입었습니다. 반면 그동안 각개격파 당해 주춤해 있던 시민사회는 다시 생기가 돌았습니다. 희망의 근거를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정의기억연대로 보면, 수난과 모욕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하느님은 너무나 멀리 있었습니다. 불의한 정권의 호위 속에 수요집회는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저만치 밀려났고, 평화로워야 할 평화로에는 삿되고 욕된 혐오만이 난무했습니다. 참으로 욕된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도 책임을 다했습니다. 진정한 ‘연대’가 무엇인지를 앞서 보여주었습니다. 더 넓어지면서도 더 단단해질 수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으로서도 빚이 많습니다. 입술이 타들어 가는 그때 그 시간을 함께 지샜고, 흔들릴 때 더 단단히 소매 끝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한번은 밀었다가 한번은 당겼다가, 보통 선수가 아닙니다. 매우 지능적인 분이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돌아보면, 윤석열을 술 끊게 만든 사람도 이분입니다. 서울구치소 그 사람, 이분 때문에 쫄딱 망했습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으로 1차 전투력을 다진 우리는 비상계엄 국면 ‘윤석열 퇴진 비상행동’을 통해 남김없이 분출했습니다. 역사적 순간을 역사적 승리로 매듭지었습니다. 마침내 ‘평화의소녀상’에도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고, 평화로에도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이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외로운 시간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 사람 역시 좌고우면의 시간이 왜 없었겠습니까?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신이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소홀했던 건강 잘 추스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뜨거운 호흡 다시 이어갑시다.
역사가 맺어 준 우리들의 인연입니다.
우리들의 독한 인연, 우리들의 독한 사랑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2026년 4월 16일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이국언
언론 기사

한국일보, 6년 임기 마친 이나영 이사장 "개혁 완료 정의연, '포스트 할머니' 시대 맞아 재탄생", 2026.4.3.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42917410004348?did=NA
연합뉴스, "정부, 이번 광복절엔 '과거사 안끝났다, 책임진다' 선언해야", 2026.4.12.
https://www.yna.co.kr/view/AKR20260411033300004?input=1195m
한겨레, “‘위안부’ 운동으로 전세계 피해자 목소리 낼 수 있었죠”, 2026.4.13.
https://www.hani.co.kr/arti/society/rights/1254032.html?utm_source=copy&utm_medium=copy&utm_campaign=btn_share&utm_content=20260413
MBC, [시선집중] 유튜버 소말리, 법정 구속은 됐지만 '소녀상 모욕'에 대한 심판은 없었다 -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2026.4.16.
https://youtu.be/1OEfXw_gyT0?si=aTeUpn1hJ_JDfk_4
뉴스공장, [뉴공 아카이브]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소말리 구속… 소녀상 훼손 처벌법의 현실은? 독일에서 이탈리아까지… ‘세계의 기억’이 된 소녀상. 일본 ‘국가면제’ 깨졌다… 피해자 승소 판결의 의미는? 과거사 대응, 국가와 시민사회 역할은?, 2026.04.17.
http://www.ddanzi.com/879088285
4월 30일, 6년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으로 활동해 온 이나영 이사장이 퇴임하였습니다.
이나영 이사장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피해자와 활동가들이 함께 피땀으로 이어온 지난 30여 년의 운동이 흔들리지 않도록 깊은 책임감으로 정의기억연대를 지켜왔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기억과 기록의 토대를 강화하고 국내외 연대의 확장과 해외 평화의 소녀상 건립,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보호법 개정 등 여러 성과를 이끌었습니다. 지난 6년 동안 역사정의와 인권, 평화를 위한 길을 함께 만들어 온 이나영 이사장의 헌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174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간보고
전쟁의 어둠이 짙어지는 엄중한 시기, 저는 오늘 지난 6여 년간의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임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수요시위 주간보고 겸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2020년 5월, 취임과 동시에 제가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소위 ‘정의연 사태’라는 미명 아래 정의기억연대는 검찰의 무자비한 압수수색과 먼지털이식 수사, 언론의 악의적인 가짜뉴스, 마녀사냥의 집중포화를 한꺼번에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한 시민단체를 향한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 운동의 정당성을 흔들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며, 오랜 시간 쌓아온 시민사회의 신뢰와 연대를 무너뜨리려는 전면적인 공격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활동가 한 분이 목숨을 잃었으며 많은 이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저였기에 억울함과 두려움, 슬픔과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피해생존자들과 선배 활동가들이 30년간 쌓아 올린 진실의 공든 탑이 거짓의 파도에 휩쓸려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쏟아지는 의혹과 왜곡에 사실로 대응하고, 무너진 조직을 추슬러 세우며 활동가들을 지키고, 후원회원과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려 고군분투했습니다. 벼랑 끝에서 뼈를 깎는 혁신을 단행했고, 흔들리지 않는 투명함으로 정의기억연대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더욱 공세적인 운동도 펼쳤습니다.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뚫고 독일의 심장 베를린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으며, 현지 시민들과 연대해 이를 끝까지 사수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독일 카셀과 이탈리아 스틴티노의 소녀상 건립 역시 같은 맥락의 성과였습니다. 이제 소녀상은 더 이상 한 지역의 기념물이 아니라, 전시 성폭력과 역사 부정에 맞서는 보편적 여성 인권과 초국적 기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책임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상황에서 쟁취한 피해자 승소 판결은 국가면제 논리를 깨부순 쾌거였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가 일본국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이고 반인도적인 범죄이며, 피해자들의 법적 권리가 결코 지워질 수 없음을 확인한 세계사적인 성과였습니다. 또한 운동의 역사와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공개하기 위해 개설한 디지털 아카이브는 역사 부정 세력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진실의 성벽이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료 정리를 넘어, 피해생존자들의 증언과 운동의 기록을 다음 세대와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일이었습니다.
극우·역사부정 세력과의 싸움도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2019년부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역사를 부정하며, 수요시위 방해와 소녀상 철거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세력이 조직적으로 확장되어 왔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그 최전선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전국을 돌며 소녀상 테러를 감행하고 수요시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김병헌의 구속 확정을 이끌어냈고, 일본 우익 자금과 결탁한 역사부정 카르텔의 실체를 유엔과 국제사회에 낱낱이 폭로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을 쟁취해냈습니다. 이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부정과 모욕, 명예훼손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사회적 기준을 세우고, 글로벌 극우·역사부정 세력에 대항할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국내 연대의 폭도 한층 넓어졌습니다. 61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을 결성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뿐만 아니라 강제동원, 평화, 생태, 인권, 민주주의를 횡단하는 더 큰 연대의 장을 열어왔습니다. 수요시위는 학생, 종교계, 여성계, 노동계, 문화예술계, 국제연대 단체들이 함께하는 살아 있는 시민광장으로 이어졌습니다. 과거의 아픔만을 호소하는 자리가 아니라, 오늘의 부정의와 내일의 평화를 함께 논하는 생생한 공론장이 되었습니다.
나비기금 역시 더 멀리 날아갔습니다. 콩고, 우간다, 베트남을 넘어 팔레스타인과 로힝야 난민촌 여성들에게까지 연대의 손길을 뻗었습니다. 고통의 기억이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연대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실천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식민주의와 전쟁 범죄의 최대 피해자였던 우리가 이제는 전 세계 전쟁 범죄와 학살에 대항하는 강력한 평화 연대의 주체가 된 것입니다.
윤석열 내란과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공동의장으로 광장의 최전선에도 섰습니다. 역사 부정은 민주주의의 후퇴와 직결되어 있으며, 피해자의 존엄을 부정하는 사회는 시민의 권리 역시 쉽게 짓밟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 운동이 한일 과거사 운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가 폭력과 전쟁 범죄가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민주주의 운동임을 온몸으로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돌아보면 지난 6여 년은 위기의 연속이었고, 제 개인적으로도 시련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 속에서 저는 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단순한 시민단체가 아니라, 피해 생존자들의 용기와 국내외 시민사회의 연대가 축적된 역사 그 자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센 공격의 파고 속에서 운동의 의미를 다시 다듬고 조직을 재정비하며 국내외 연대를 확장해 새로운 성과를 일구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결코 저 혼자 감당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활동가들, 어려운 시기에 기꺼이 함께해 준 후원회원들, 손 내밀어 준 연대단체들과 이사님 및 위원님들, 매주 수요일 이 자리를 지켜준 시민들이 계셨기에 가능했습니다. 무엇보다 참혹한 고통을 딛고 정의의 길을 열기 위해 목소리 내셨던 피해자들의 용기가 등불처럼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이사장직을 내려놓지만, 연구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활동가로서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이 온전히 회복될 때까지, 일본 정부의 진정 어린 사죄와 법적 배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역사정의가 흔들림 없는 상식이 될 때까지, 역사 부정과 혐오에 맞선 저의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지난 6여 년 동안 함께 버텨주시고, 싸워주시고, 지켜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26년 4월 8일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의 퇴임을 지켜보며 정의연 초기 선배들과 시민들은 힘든 시기에 정의기억연대를 지켜내고 운동성을 확장시킨 이나영 이사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겼습니다. 그 중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의 송별 인사를 전합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 송별 인사
“구치소 그 사람, 이 사람 때문에 망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본성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눈에 거슬리면 죄다 반 국가세력으로 덧칠되어야 했습니다. 앞에 선 사람들은 차례로 고립되었고, 둑이 무너진 자리엔 아우성뿐이었습니다,
먼저 ‘역사’ 문제를 치고 나왔습니다. 역사정의는 미국을 정점으로 한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의 얼개를 짜가는데 걸림돌이었습니다.
망연자실해 있던 가운데 600여 개 시민사회가 처음으로 무릎을 맞대고 나섰습니다. 2022년 8월 9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의 출범이 그것입니다. 윤 정권에 맞선 첫 번째 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보잘 것 없었습니다. 실무책임자라야 겨우 몇 명... 호주머니는 가벼웠고 가진 것은 빈 주먹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 속에 더 강했습니다. 서로는 눈빛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착착 물려 돌아갔습니다.
“지금은 아픈 것도 역사에 죄다!”
바쁘게 흩어지면서도 우리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우리가 무너지면 다음 저지선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의 중심에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이 있었습니다. 대학교수라는 외투는 일찍이 내려놓았습니다. 맑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때 만나도 명랑했습니다.
그러나 과업 앞에서는 돌변했습니다. 한 치 오차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선이 분명했습니다. 옥석을 명확히 구분지었습니다. ‘해야 할’ 일은 ‘해 내야’ 했습니다. 구차한 변명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강제동원 제3자 변제 투쟁에 전환점을 구축한 ‘역사정의시민모금’의 역사적 성취는 순전히 그의 '작품'입니다.
국면이 확 바뀌었습니다. 친일역사쿠데타 정권에 민심은 등을 돌렸고, 윤석열은 자중지란 상황에서 회복할 수 없는 내상을 입었습니다. 반면 그동안 각개격파 당해 주춤해 있던 시민사회는 다시 생기가 돌았습니다. 희망의 근거를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정의기억연대로 보면, 수난과 모욕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하느님은 너무나 멀리 있었습니다. 불의한 정권의 호위 속에 수요집회는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저만치 밀려났고, 평화로워야 할 평화로에는 삿되고 욕된 혐오만이 난무했습니다. 참으로 욕된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도 책임을 다했습니다. 진정한 ‘연대’가 무엇인지를 앞서 보여주었습니다. 더 넓어지면서도 더 단단해질 수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으로서도 빚이 많습니다. 입술이 타들어 가는 그때 그 시간을 함께 지샜고, 흔들릴 때 더 단단히 소매 끝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한번은 밀었다가 한번은 당겼다가, 보통 선수가 아닙니다. 매우 지능적인 분이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돌아보면, 윤석열을 술 끊게 만든 사람도 이분입니다. 서울구치소 그 사람, 이분 때문에 쫄딱 망했습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으로 1차 전투력을 다진 우리는 비상계엄 국면 ‘윤석열 퇴진 비상행동’을 통해 남김없이 분출했습니다. 역사적 순간을 역사적 승리로 매듭지었습니다. 마침내 ‘평화의소녀상’에도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고, 평화로에도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이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외로운 시간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 사람 역시 좌고우면의 시간이 왜 없었겠습니까?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신이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소홀했던 건강 잘 추스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뜨거운 호흡 다시 이어갑시다.
역사가 맺어 준 우리들의 인연입니다.
우리들의 독한 인연, 우리들의 독한 사랑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2026년 4월 16일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이국언
언론 기사
한국일보, 6년 임기 마친 이나영 이사장 "개혁 완료 정의연, '포스트 할머니' 시대 맞아 재탄생", 2026.4.3.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42917410004348?did=NA
연합뉴스, "정부, 이번 광복절엔 '과거사 안끝났다, 책임진다' 선언해야", 2026.4.12.
https://www.yna.co.kr/view/AKR20260411033300004?input=1195m
한겨레, “‘위안부’ 운동으로 전세계 피해자 목소리 낼 수 있었죠”, 2026.4.13.
https://www.hani.co.kr/arti/society/rights/1254032.html?utm_source=copy&utm_medium=copy&utm_campaign=btn_share&utm_content=20260413
MBC, [시선집중] 유튜버 소말리, 법정 구속은 됐지만 '소녀상 모욕'에 대한 심판은 없었다 -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2026.4.16.
https://youtu.be/1OEfXw_gyT0?si=aTeUpn1hJ_JDfk_4
뉴스공장, [뉴공 아카이브]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소말리 구속… 소녀상 훼손 처벌법의 현실은? 독일에서 이탈리아까지… ‘세계의 기억’이 된 소녀상. 일본 ‘국가면제’ 깨졌다… 피해자 승소 판결의 의미는? 과거사 대응, 국가와 시민사회 역할은?, 2026.04.17.
http://www.ddanzi.com/879088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