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생존자들의 쉼터였던 <평화의 우리집>을 닫으며
지난 2020년 10월 27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이 문을 닫았습니다.
1990년 11월 16일 출범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피해생존자의 첫 증언 이후 지금까지 피해자들의 생활 안정을 위한 지원과 명예회복, 기억과 역사적 계승을 위한 법제도 마련에 앞장서는 한편, 일본의 전쟁범죄 진상규명·사죄배상을 위한 활동을 함께 전개했습니다. 이에 피해생존자들은 일본군‘위안부’피해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아픔이요, 식민지와 가부장제, 군국주의와 전쟁의 문제임을 깨닫고 주체적인 여성인권운동가로 활동해 오셨습니다.
2003년 12월, 피해자들의 고령화, 일상생활을 챙기는 것조차 어려워질 만큼 나빠지는 건강상태, 열악한 주거 환경과 외로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활동을 위해 다른 지역에서 오시는 피해자들을 위한 단기 기거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정대협은 서대문에 단독주택을 전세로 빌려 쉼터로 꾸렸습니다.
피해자들은 쉼터를 <우리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쉼터의 첫 입주자는 김O심, 정O홍, 황금주, 이용수 생존자였고, 이후 이막달, 길원옥, 이순덕님이 입주했습니다. 상하이로 연행되었다가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 살고 있던 박우득님이 딸과 함께 국적 회복을 위해 고향을 방문했을 때 약 세 달 간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황순이, 손판임님이 쉼터에서 돌봄을 받았습니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20년사』, 2014: 228쪽).
그러나 서대문 쉼터는 천장에서 비가 새는 등 30년 된 노후시설에 환경이 열악했습니다. 게다가 쉼터 지역이 재개발 대상으로 지정되자 안정적인 공간마련이 급박해졌습니다.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된 김종생 목사(당시 한국교회희망봉사단 사무총장)는 2010년 열린 ‘한국교회 8.15 대성회’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한국교회가 함께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하게 됩니다. 2012년 10월 22일, 마침내 지상 2층, 지하 1층짜리 단독주택에 비공개 생활공동체 <평화의 우리집>이 개관합니다.
한국기독공보(2020년 11월 01일)에 따르면, 마포 쉼터 입주감사예배에서 불교 신자였던 고(故) 김복동 인권운동가님은 “짐승도 자기 누울 곳이 있는데 오랜 떠돌이 생활 끝에 새 쉼터가 생긴다니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다”면서 “외로운 시간이었고, 사회에서는 늘 차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었지만 한국교회와 함께 일을 하며 많은 위로를 받는다고 감격해”하기도 했답니다. 이후 마포 쉼터는 명성교회의 무상임대로 지원 받게 되어, 피해생존자들의 안정적 일상과 활동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에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초석을 놓았듯, 당사자들의 실질적인 생활 안정에 한국기독교계가 또 다른 도움을 준 것입니다.
마포 쉼터에는 세분의 피해생존자가 생활했습니다. 길원옥님은 2004년 10월 26일, 고(故) 이순덕님은 2005년 9월 22일, 고(故) 김복동님은 2010년 3월 29일 쉼터로 오셨습니다. 셋방살이와 다른 안정적 주거환경은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단기로 서울에 오시는 피해생존자들의 든든한 보금자리가 되었으며 당사자 인권 운동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마포 쉼터는 소장과 요양보호사들의 24시간 돌봄 체제로 운영되었습니다. 동시에 정대협/정의연의 활동가들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원예치료교실, 노래교실, 건강교실, 서예교실 등 다양한 활동이 진행되었고, 일방적 대상으로서 피해자 치유가 아니라, 상호만남과 교류를 통해 운동의 의미를 깨닫고 계승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늘어갔습니다. 연세의료원 노동조합은 정기적으로 방문해 의료봉사활동을 해주었고, 아이쿱 생협에서는 해마다 김장을 왁자지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쉼터 자원봉사자 단체인 <보듬이>는 월 1회 정기적으로 어항 청소, 마당 잔디 뽑기 등을 도맡아 했습니다. 마리몬드도 <짜장면 데이> 등을 통해 할머니가 된 피해생존자들과 미래세대 교류에 큰 힘을 쏟았습니다. 유엔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을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인권과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피해생존자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으며, 식민지와 전쟁, 국가폭력의 역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활동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무엇보다 2004년부터 쉼터에서 동고동락해 온 고(故) 손영미 소장은 피해자들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였습니다. 손 소장은 2020년 6월 영면에 드시기 전까지 <평화의 우리집> 살림을 도맡아 오시며 주야로 할머니들의 건강을 보살피고 정서적 안정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가족과 같은 분위기에서 함께 밥도 해 먹고 서로 의지하고 다독이며 살았습니다.
2003년 <우리 집>에서 시작된 <평화의 우리집>은 쉼터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길원옥님이 가족의 품으로 가시면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존엄과 인권회복,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널리 퍼트리던 쉼터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피해자가 주체로 당당히 일어서는 데 큰 역할을 한 쉼터, 함께 웃고 울며 시간과 공간을 나누었던 피해자들, 이들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 주며 어루만졌던 전 세계 시민들의 마음은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의 역사에 깊이 새겨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평화의 우리집>을 위해, 새로운 운동의 문을 열기 위해, 정의연 활동가들은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기꺼이 귀 기울이며 응원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이순덕, 김복동 ‘할머니’께도 새삼 그리움과 사랑의 인사를 드립니다.
2020년 11월 2일
길원옥 ‘할머니’의 건강을 기원하며,
정의기억연대 활동가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