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연대 후원회원분들에게,
이미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계시겠지만 지난 2월 10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1부(문병찬 부장판사)는 국고보조금, 기부금품, 길원옥 할머니 준사기, 안성쉼터 관련 등 정의기억연대 활동과 관계된 검찰의 기소사항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일부 아쉬운 면이 없지 않으나 전반적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의 중요성과 시민단체 활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내려진 판결로 다시 한 번 환영을 표합니다. 이로써 정의기억연대는 지난 2020년 5월 이후 덧씌워진 대부분의 의혹에서 벗어났습니다. 무고하게 죄를 덮어쓴 활동가들의 명예도 회복되었습니다. 그동안 믿고 함께 해주신 국내외 후원회원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기막힌 세월이었습니다. 정확히 2020년 5월 7일부터 시작된 이 ‘사태’는 매일 끊임없이 쇄도하는 수백 통의 전화, 사무처와 쉼터로 들이닥친 수많은 기자들과 극우 인사들, 잔인하리만치 무분별한 의혹제기로 도배가 된 언론보도를 거쳐 보수단체의 외피를 입은 자들의 고소고발이 이어졌습니다. 직후 서울서부지검에 사건이 배당되고 일주일도 채 안된 시점에 사무처와 박물관, 쉼터는 이틀간에 걸쳐 압수수색을 받았습니다. 압수수색 6일 만에 실무자에 대한 첫 소환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신속하게 수사하고 언론에 제기된 모든 의혹을 규명하라”고 대검찰청 간부들에게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였고,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위안부 할머니 피해 진상규명 TF’를 정식 발족하고 곽상도 의원을 위원장으로 임명한 시기였습니다. 이 모든 일은 20일 안에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습니다.
그로부터 사무처 활동가들은 셀 수도 없는 검찰의 무분별한 소환조사와 서면조사, ‘먼지털이식’ 수사는 물론 행안부, 외교부, 여가부, 인권위, 서울시 등 정부부처와 지자체, 국회의원들과 경찰, 언론 등으로부터 쇄도하는 자료제출 요청과 질의에 대응해야 했습니다. 일상은 파괴되었고 심신은 피폐해졌으며 너무도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전·현직 활동가들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 인권침해와 인격말살이 계속되는 와중에 결국 오랫동안 피해생존자들을 보살펴 온 활동가 손영미 쉼터 소장님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지탄과 공격, 조용한 동조와 관망이 압도적인 분위기에서 역사는 아래로부터 흔들렸으며 30여년 운동은 뿌리째 뽑힐 위기를 맞았습니다. 과도한 여론재판, 개인과 운동에 덧씌워진 낙인, 이로 인한 상처와 고통으로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심리치료를 받았지만 지금도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단체와 개인을 악마화한 상당수 언론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와 검찰의 불기소 등을 통해 허위임이 확인되었지만 여전히 인터넷 매체와 소셜미디어를 뒤덮고 있습니다. 이를 빌미로 세를 확장한 극우 역사부정론자들의 공격과 이로 인한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후원회원 여러분,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혀 드렸습니다. 마음 아프게 했습니다. 지난 30여 년 간 열악한 재정과 부족한 인력으로 미처 뒤를 돌아볼 틈 없이 발생하는 방대한 현안에 전방위적으로 대응하느라 행정적 착오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법적 판단과 별개로 부족한 부분, 실수한 부분, 간과한 부분 없다 할 수 없습니다. 모두 뼈아프게 여기며 정의기억연대는 지난 2년 8개월간 쇄신에 쇄신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변함없는 신뢰와 응원, 아낌없는 사랑과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태풍이 몰아치는 칠흑 같은 암흑 속에 여러분은 저희 모두의 우산이 되어 주셨고 등불이 되었으며 길잡이가 되어 주셨습니다. 기적처럼 힘을 모아주신 덕분에 저희는 견디고 일어나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정의기억연대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헛되지 않도록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와 분쟁 하 여성인권 침해 및 성착취 문제를 해결하고 기억하는 데 앞장서는 여성·인권·평화 운동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행정 체계 및 회계 관리 체계 개선을 통해 시민사회 내 모범적 회계 운영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증언과 관련 활동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활용하기 위한 디지털 아카이브 사업,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 여성들의 인권과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한 나비기금 사업, 진실의 은폐와 기억의 왜곡에 맞서기 위한 연구와 세계 평화비 건립 운동,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통한 전시, 문화, 미래세대 교육과 장학사업 등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역사부정세력의 끝임없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많은 시민들과 연대를 넓히며 수요시위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피해생존자들의 못다 이룬 염원을 실현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후원회원 여러분, 더 너른 연대, 더 튼튼하고 단단한 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는 정의기억연대에 계속 힘을 실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지난 시련과 위기, 결코 잊지 않고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사려 깊지만 굳건하게 분골쇄신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귀한 후원금이 결코 헛되이 사용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돌아가신 모든 피해자들의 영면을 빕니다. 모진 시간 속에서도 살아내 주시고 오히려 저희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던 피해자들을 기억합니다. 그 뜻 잊지 않고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은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2023년 2월 17일 정의기억연대 활동가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