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절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식민사관에 기초한 굴욕적인 기념사를 발표하였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전쟁범죄를 인정하지도 사죄하지도 법적으로 배상하지도 않는 가해국 일본에게 제 손으로 면책권을 쥐어주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구걸했다. 일제 식민지배 책임을 촉구하기는커녕 핵심 현안인 일제 강제동원 문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보수·진보 정권을 통틀어 가히 유례가 없는 최악의 기념사였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3.1 항쟁의 의미를 이해하고나 있는지. 전국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민중들이 목숨 걸고 외쳤던 ‘만세’의 의미를 알고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낯 뜨거운 수준의 기념사가 ‘조국 해방과 의(義)를 위해 죽어도 좋다’던 유관순 열사 기념관에서 이뤄졌기에 더욱 참담하다.
대통령은 일제 식민지배의 책임을 피해국인 조선에 돌리며 전형적인 ‘피해자 유발론’을 내세웠다.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는 둥 망언을 쏟아냈다. 한반도 민중들의 고통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불법 강점과 전쟁범죄의 가해자는 책임이 없다는 말이다.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폭력 유발’의 책임을 돌리며 가해 사실을 부정하고 심지어 피해자를 비난하고 있는데, 피해자 대리인이란 자가 가해 책임을 면책해 주고 2차 가해를 자행하고 있는 꼴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협력 파트너로 변하였”다고 언급하며, “104년 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외친 그 정신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도 한반도 불법강점, 강제동원, 성노예, 민간인 학살을 반성하거나 사과하기는커녕 부정하고 왜곡하는 군국주의 침략자가 어떻게 갑자기 협력 파트너가 된단 말인가?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선제공격 운운하며 군비확장과 자위대 역할 강화를 통해 군국주의·전쟁 국가의 길에 들어선 일본 정부와 어떤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단 말인가? 어떻게 감히 ‘이완용식 친일 사관’을 일제에 항거해 목숨 걸고 투쟁한 선조들의 3.1 정신에 빗대는가?
민족 자주와 주권 회복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들에게 너무나 송구하고 미래세대에 너무도 부끄럽다.
윤석열 정부가 실천해야 할 ‘미래에 대한 제대로 된 준비’는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흔들고 사법주권을 부정하면서까지 전범국과 전범기업에 면책권을 주는 일이 아니다. 피해자들이 어렵게 용기 내어 쟁취한 권리를 외교적 거래로 희생시키는 일이 아니다. 가해국이 원하는 대로 과거사를 지우고 피해자들을 희생양 삼으면서까지 관계 개선을 구걸하는 일이 아니다. 과거 일제로부터 피해입은 대한민국 시민들이 온전히 인권과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민중의 역사를 올바로 기억하고 실천적으로 계승하는 일이다.
3.1 항쟁 104주년, 간토 민간인 학살 100년을 맞는 올해, 정의기억연대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운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하며 국민들과 함께 역사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2023년 3월 3일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 정의기억연대